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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bonjovi (방통)
날 짜 (Date): 1995년03월22일(수) 04시12분30초 KST
제 목(Title): [고것을 알고 싶다] 도끼만행사건(3)









  재선운동에 뛰어든 미대통령 포드는 무력충돌을 회피하려고 했다.

8월 20일 오전 스틸웰대장도 판문점 근처 미군 부대 키티호크의

대장 비에라 중령 방에 있었다.  중령 의자에 대장이 앉아 박희도

여단의 특공대장 김종헌소령 등 3인에게 명령했다.  미군의 작전

지휘권 장악에 따른 것이었다.

  "문제의 미루나무를 자른다.  미군이 자를 때 그 주위를 한국군이

경호한다.  무기 휴대는 금한다.  한국군은 비에라중령 지휘에 따른다."

미국은 제한적인 '위력과시'로 체면을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무력충돌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한국군 총기휴대를 막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포여단 특공대는 M16과 수류탄을 미군 몰래 숨겨들어가

작전에 임했다.  8월 20일 밤 10시 박희도 특전여단의 특공대 64명은

트럭 2대에 나누어 타고 북으로 향했다.  미8군사령관 스틸웰대장의

비무장 명령에도 불구하고 특공대는 중무장이었다.

  "미국이야 미루나무를 잘라내 피살 장교들의 원수를 갚는다손 치더라도,

그 같잖은 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 부하들은 맨주먹으로 싸우다

죽으라는 말인가.  무고한 사람에게 도끼를 휘두르는 저들을 응징은 못할망정

그 앞에서 태권도 약속대련 준비나 하라는 식인가.  미군은 거듭 한국군

무기휴대 불가를 다짐하면서 규정에 의해 권총 30정을 갖고 가는데 그건 모두

미군이 휴대한다는 것이었다.  그 발상이 이해가 안갈 뿐 아니라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부하들의 생명을 지키려면 M16 소총은 물론 수류탄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내 수준에서 종결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내 수준에서 종결시켜야 한다고

각오했다."  (박희도씨 회고)

  특공대의 무기휴대는 뒷날 중대한 한미간의 갈등을 낳았다.  여단장 

박준장은 '실전 현장의 부하 보호'를 위해 무장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군 통수권자인 박대통령의 결단이었음이 분명하다.  "김일성이와

한판 붙고 말겠다"고 벼르던 그는 8.18사태를 그 계기로 잡았던 것이다.

  당시 처와대 비서실장 김정렴씨의 회고를 들어보자.
  
  "미루나무를 자르는 과정에서 그들이 총 한방이라도 쏘면 개성을 빼앗고

연백평야까지 밀고 올라간다는 계획이었다.  휴전선이 서울에 가까워 늘

위험했는데 차제에 해결하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미국은 대통령선거 등을 고려해 '힘의 과시'라는 매우 제한적인 작전을,

박대통령은 미국의 막강 군사력을 끌어들여 '힘의 행사'를 노린 매우 

공격적인 작전을 구상했다고 당시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스틸웰은 당시 미국의 가장 큰 우려가 전쟁발발이었고 그래서 한국군 

특공대의 비무장을 요구했던 것인데 한국측이 그걸 정면으로 부닥쳐

간 데 대해, 작전 직후 경악하고 흥분했던 것이다.

  한국군 특공대는 미8군 통제지역까지 어떻게 미군 몰래 무기를 숨겨

가느냐가 문제였다.  특공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까지 타고 들어갈

트럭 적재함 양측에 모래주머니를 방호벽으로 쌓고 전투가 벌어지면 거기에 

의탁해 사격하기로 했다.  그 샌드백에 총을 넣어가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M16 소총을 이등분해하니까 딱 들어가고 총구만 약간 튀어나왔다.  그리고,

64명 전원에게 방탄복을 입히고 방탄조끼 안쪽에 권총 수류탄을 표나지 않게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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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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