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5년02월27일(월) 11시30분46초 KST 제 목(Title): [동학] 『새야 새야 파랑새야』 ( 1) 역사 교실 담당 : 신현길 () 제목 : [동학] 『새야 새야 파랑새야』 ( 1) #34/56 보낸이:신현길 (toaya ) 10/31 21:08 조회:46 1/10 # 새야 새야 파랑새야 (1) - 민의 함성 되살아나는 고부들녘 １９９４년은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지 １백년이 되는 해． 동학 １ 백주년을 맞아 시인 곽재구씨와 함께 오늘날 민중의 삶속에 녹아있는 동학의 숨결을 찾아가는 시리즈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시작한다． ＜편집자주＞ -------------------------------------------------------------------- １８９３년 동짓달의 어느 저녁． 추수가 끝난 들판을 슬몃슬몃 걸 어오는 몇 명의 농군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침소리와 발자국 소리도 최대한 줄인채 대밭이 무성한 어느 초가집 속으로 모여들었다． 전라도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현 정읍군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송두호의 집．모여든 농군은 집주인을 포함하여 모두 스무명이었다． 그 가운데서 한 사내가 일어섰다． ５척 단신에 샛별 같은 눈빛．사 내의 눈빛은 한동안 모여든 사람들을 휘둘러 보았다． 낮지만 더할 나위 없이 단호한 목소리가 그로부터 흘러나왔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 만석보 아래의 새 민보는 단 한푼의 노임도 없이 우 리의 손으로 쌓은 것이오． 그 보의 부당한 수세로 걷어들인 ７ 백섬의 쌀이 예동과 백산에 그대로 쌓여 있소』 사내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계속 되었다． 그 대부분의 이야기가 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관한 것으로 모여든 농군들 모두 온몸 을 전율할만큼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이날 밤 송두 호의 집에모여든 농군들은 이제부터 삶과 죽음의 시간을 함께 맹 세하는 한 장의 「사발통문」을 만들었다． 사발을 뒤집어 원을 그린 뒤 차례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으며 거기 다음 네 가지의 목표를 차례로 새겼다． １，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한다． ２，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한다． ３， 군수에게 아첨하여 인민을 탐학한 아전들을 징치한다． ４，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곧장 서울로 진격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계획이었다． 모여든 농군들은 특히 자신들이 세운 네 가지의 목표중 마지막 네번째에 이르러 자신들도 알 수 없는 마음속의 뜨거운 떨림을 느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그리고 이로부터 정확히 두 달 뒤． 명절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갑오년（１８９４년） 정월 열하룻날 새벽． 죽창을 겨눈 수 백명의 농민들이 고부 관아를 습격했다． 학정의 주범 조병갑은 혼비백산하여 버선발로 줄행랑을 놓았으며 농군들은 자신들이 쌓은 새 민보를 헐어버리고 야적된 ７백섬의 쌀을 굶주림에 시달린 인 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근세사의 최대의 개혁운동이며 사상운동인 동학농민전쟁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봉건왕조시대의 모순을 타파하고 만민평 등의 근대시민정신을 추구한， 아울러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외세 의 문제를 집중추구한 동학농민군의 투쟁이 지금부터 백년 전 전 라도 고부의 들녘에서 횃불로 타오른 것이다． 사발통문을 작성하 고 고부봉기를 일으킨， 키 오척의 형형한 눈빛의 사내． 그 사 내의 이름은 전봉준이었다． 나는 내 기행의 첫 기착지를 고부면 신중리의 주산부락으로 삼 았다． 바로 송두호의 집이 자리한 마을， 사발통문이 작성된 바 로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옛 농군들의 숨결과 발자국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동학농민전쟁의 기행에 나선 모든 여행자들이 기본적으로 지닌 꿈이라 할 것이다． 아직 해는 많이 남아 있다． 원래 이야기는 밤에 피는 법． 대청마루나 마당 위에 편 멍석자리 위에서 지천으로 반짝이는 별 자리를 보며 저절로 흘러 나오는 법． 나는 고부 면소재지를 그냥 스쳤다． 고부에 들를 적마다 나는 옛 고부동헌의 터나 황토현의 싸움터， 전봉준 장군의 옛집보다도 먼저 찾아가는 두 곳이 있다． 면소재지에서 ４▦쯤 떨어진 용흥 리의 석불과 영원면 은선리의 삼층 백제석탑이 바로 그 곳이다． 해정사라는 묵은 절터， 해발 ２백ｍ쯤의 산기슭에 자리한 이 석불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 아미타여래불로， 고려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 도대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부처의 형상이 그러했다． 고상한 아미타여래불과는 처음부 터 거리가 멀었다． 두 눈은 동공이 팬 듯 퀭하니 뚫려 있었으 며 입과 코의 흔적은 아예 문드러지고 없었다． 왼손은 가슴에 들 어 올렸으되 오른손은 절단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게 다가 부처의 목이 부러져 있었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더라도 부 처의 머리와 몸통의 석질이 달랐으며 부러진 목 부위를 시멘트로 봉합해 놓은 흔적이 뚜렷했던 것이다． ○목잘린 석불의 충격 목이 부러지고， 한쪽 팔이 잘리고， 눈알마저 빠져나간 부처님 ． 이상한 것은 운주사에 모셔 놓아도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험상스런（？） 부처님이 그날 이후 내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 는 것이다 퀭한 눈자위는 이승의 어느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잘린 팔은 또한 이승의 어느 곳을 가리키고자 했음일까？ 부처의 목이 잘릴만한 큰 죄는 또한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이 끝없이 번져 나 갔으며 또한 그 만큼의 연민과 뜻모를 신뢰가 내 가슴 속에서 일 었던 것이다． 나는 그 부처의 모습에서 왕조시대에 시달려야 했던 뭇 백성의 모습을 읽었다． 그 모습은 백제 유랑민의 한으로도 살아오고 만 적과 홍경래와 끝내는 고부 들을 가득 채운 동학 농민군들의 함 성으로도 되살아 났다． ○민초의 꿈이 서린 탑 영원면 은선리의 삼층석탑은 용흥리의 석불과는 또 다른 깊은 충격을 내게 주었다． 그 충격의 이름은 아름다움이었다． 신라 석탑의 원조로 어떤 미술사학자가 오로지 「감은사여 감은사여」하 는 영탄을 뱉을 수 밖에 없다고 설파한 감은사지의 삼층석탑들도 내게 이렇게 깊은 설렘을 주지는 못했다． 우선 이 탑이 서 있는 땅의 이름이 아름다웠다． 영원면 은선 리（ 영원면 은선리）． 비록 한자가 한 자 어긋나 있다하더라도 내게 이 땅은 「신선이 사는 영원한 땅」의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 이다． 그리고 탑이 선 자리는 사바의 한가운데， 농군들이 그 살과 땀을 아끼지 않고자 하는 밭 한가운데였다． 봄이면 탑은 보리밭 가운데 섰고 가을이면 늦메밀이 화사한 꽃을 피운 그 가 운데에 섰다． 보리밭 가운데 섰을 때 탑은 듬썩한 힘처럼 뻗어 나갔고 메밀꽃밭 새에 섰을 때 탑은 한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 다． 탑은 아무런 수식이 없었다． 옥개석의 평범한 추녀 장식조차 사양한 채 탑은 가장 소박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솟아 올랐다． 꼭 한 가지 파격이 있다면 그것은 １층의 탑신이었다． 그 탑신 이 보릿대처럼， 메밀꽃대처럼 우련 길었다． 바람이 불면 탑신 또한 메밀꽃대처럼 하염없이 흔들릴 것만 같았다． 고려탑일 것이라고 쓰여진 이 탑의 건립 연대 또한 내게 아무 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 탑을 백제탑이라고도 생각했고 이조 의 탑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당대의 민중들의 서원이 바로 그 탑의 아름다움에 스며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을 주산부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곽재구 ◇약 력 ▲５３년 광주태생 ▲８１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９２년 신동엽창작기금수상 ▲시집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서울 세노야」， 장편동화 「아기참새 찌꾸」， 문화기행서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등 경향신문 93.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