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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obbes (Calvin)
날 짜 (Date): 1998년 5월  3일 일요일 오후 12시 42분 33초
제 목(Title): 중세 5] 일본의 조선침략.



며칠 전이 충무공 이 순신 장군의 탄신일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바빠서 여기에 이제사 들어올 수 있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중세에 있었던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결정적인 한 전쟁. 1592년 조-일전쟁을 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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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왕씨 일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마침내 위태위태한 왕조를 겨우 반석위에 

앉힌  이성계의 후예들은 그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켜갑니다.   

이때 다행히도!! 천만 다행히도 조선 제4대왕이신 세종께서 개인적인 많은 

어려움에도 민족사의 획을 긋는 정치와 대마도 정벌과 같은 외치로 나라를 확고히 

다지게 됩니다.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조선왕조는 면면히 계속해서 이어져 

옵니다.   그러나,  이때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이러한 평화가 힘이 없으면 뒷받침 

되지 않는다는 역사의 교훈을 그 당시 위정자들이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구태의연한  복색싸움, 정권싸움으로 시작된 집권층과 지식인들 사이에 생긴 큰 

갈등은 여러차례의 경고를 무시할 만큼 위험 수위에 달합니다.

 왜가 분할된지 100여년이 지난후 서서히 통합되고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하는 

강도가 거세져 삼포왜란등의 분쟁이 있었는데도 안이하게 대처하는 그당시 집권층의 

복지 부동은 오늘날 우리 공무원 사회의 복사판과 같다고 봐도 됩니다. (쩝쩝)

 어쨋든, 노부나가에 이은 권력자인 히데요시는 영주들의 불만분출, 문화적 진출, 

경제적 이권확대, 권력의 확대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형태의 결정과정을 통해 

조선으로  출병을 결정합니다.

 이때 조선은 전쟁의 징후를 간파했지만 위정자들이 악착같이 고혈을 빤 

백성들이기에 방어시설등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그야말로 성수대교 짓듯, 

삼풍백화점 시공하듯 합니다.   이것도 불과 몇달후에 취소되고 정책이 혼선되어 

오락가락 마치 인도에서 영국군에 박살난 프랑스군 지휘부와 같이 줏대없이 

휘둘리게 됩니다.

  마침내 1592년 운명의 아침, 수백척의 왜선이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가장 준비되지 

않았던 전쟁이 발발합니다. 순식간에 부산, 동래등을 장악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위로 진격하고  임금이 도망가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욱,해 병진 작전을 쓰려던 

일본은 그 당시 전라 좌수사였던 이 순신과 그 밖의 조선수군으로 인해서 초반에 

쓰라린 패배를  안게되고  마침내 한산도앞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자 진격이 중지되고 지구전으로 형태가 바뀌게 됩니다.   명의 출병으로 

국제전으로 비회되고  그당시 일본에 와 있던 포르투갈 선교사와 용병들이 일본군과 

같이 조선에서 활동한 전쟁, 명의 요청으로 오늘날 비에트남, 라오스등지에서도 

병력이 차출되어 아시아에서의 한 판 승부를 벌였던 전쟁은 육지에서 명군에게 

패하고 바다에서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 이 순신에게 12:133의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싸움에서 30여대 이상의 격침을 당하고 그야말로 궤멸된 일본 해군으로 

인해서 7년간의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이 전쟁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일본이었습니다.   비록 200년간의 쇄국 막부통치가 

이어졌지만  이때의 조선문화는 그 쇄국동안열매를 맺고 영글어서 마침내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구에 대등한 나라가 되게하는 밑바탕이 되었고, 수천년동안 

조선(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문화적 

열등감의  이상한 방식으로의 해소,  수십만 조선 민간인 납치로 인한 경제적  

이익, 이후 벌어지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아시아 지역 활동창구가 일본으로 

됨에따라 얻어지는 서양지식의 축적등등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을 이 전쟁으로 

얻습니다.  또한 당당하게 아시아의 한 열강임을 과시합니다.      

조선은 이 전쟁으로 인해 거의 궤멸적인 인적 물적 타격을 입고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 전쟁의 패배자가 됩니다.    이때 싹튼 

신분상의 차별폐지, 실용적인 학문풍토, 개국을 통한 근대적 기술도입, 허례허식 

철폐와 경제개혁등의 많은 요구들은 끝끝내 집권층의 두터운 벽을 뚫지 못하고 그로 

부터 300여년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명또한 이 전쟁의 패배자가 되죠.  그렇지 않아도 비실대던 나라가 별 이득도 없는 

전쟁에서  돈을 그렇게 썼으니.   결국 청에게 명은 한방 먹고 맛이 가고 조선은 

두방 먹고  꼼짝없이 끌려다니게 됩니다.

잔인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잔인한 전쟁이 되어버린 1592년전쟁.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일본계자금이 

주축이 된 IMF에 의한 경제적 예속화와 경제의 파탄이 진행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을 자초한 것은 우리라는 것.   그당시 위정자들이 복지부동이었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거의 신토불이수준에서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식으로 

무장되어있고 내가 있을 동안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순환하지만 그 모습으 언제나 가면속에 숨어있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겸허함이 있을때만  우리에게 그 진실을 드러냅니다.

        중세 5]  일본의 조선침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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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란 결코 더 나아갈 수 없을때 한걸을 더 나가는 스러한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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