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7년11월05일(수) 15시00분06초 ROK 제 목(Title): 테미스토클레스와 살라미스 해전 II 그리고 역사책에 씌어있다시피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그리스를 정복하려는 크세르크세스는 수십만의 대군을 동원해서 제 2차 페르시아 전쟁을 시작합니다. 천하의 요충지 테르모필레에서 (이곳도 테미스토클레스가 골랐다고 합니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결사대가 분투했지만 결국 뚫려 버리고 페르시아의 육군은 그리스 전체에 쏟아져 들어와서 만나는 도시마다 아작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리스 연합군의 대장 격인 아테네에 육박해 왔죠. 이때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를 몽땅 비우는' 전략을 수행에 옮깁니다. 아테네 시민 모두를 근처의 섬으로 집단소개 시켜버리고 아테네를 텅텅 빈채로 페르시아 군에게 넘겨줘 버린 것입니다. 해전에 모든 것을 걸려는 작전인데, 덕분에 아테네는 무혈입성한 페르시아 군에 의해 깡그리 파괴되어 버렸읍니다. 당연히 죽어도 성안에서 농성하다가 죽자는 반대파도 많았겟지만 테미는 그들 모두를 설득해서 섬으로 소개시키는데 성공했읍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는 `건물'은 모두 잃었지만 중요한 `사람'과 `배' 는 하나도 잃ㅈ 않는 결과를 얻었읍니다. 아테네가 모두 근처의 바다로 도망가 버렸다는 것을 안 크세르크세스는 해군을 불러들여 뿌리를 뽑으려고 나섭니다. 이렇게 해서 아테네 근처의 살라미스 만에서 오리엔트의 최강국 페르시아의 해군과, 테미스토클레스가 평생 동안 키워온 아테네 해군을 주축으로 하는 그리스 연합함대간에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배의 숫자나 해군의 규모에서는 당시 세계제일(중국빼고)의 부자였던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압도했지만, 그리스는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이웃도시를 갈때도 배에 돛을 다는' 민족이며 오늘날에도 선박왕 오나시스를 배출한 나라답게 지중해 제일의 해양국가였읍니다. 한마디로 19세기의 영국처럼 해군 하나는 끝내줬다 이겁니다. 게다가 테미가 권력장악이래로 반대를 무릎쓰고 엄청난 돈을 퍼부어 양성해 놓은 정예 아테네 해군이 있읍니다. 그리고 또하나 해군이 중요한 것이... 수십만이나 되는 페르시아 군을 유지하려면 본국 페르시아로부터 병참선을 확보하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스는 그다지 풍요로운 땅이 못되고 일시적으로 약탈하고 지나가는게 아니라 그리스를 통째로 먹어버리려면 장기간 정령할 필요가 있는데 수십만이나 되는 대군을 먹이고 입히려면 병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읍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면 아시겟지만,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근방)와 그리스는 엎어지면 코 닿을만큼 가깝지만 불행히도 가운데가 에게해-헬레스폰토스 해협으 로 이어지는 바다 때문에 배로 건너는 수밖에 없읍니다. 육지로 올려면 흑해쪽으로 빙 돌아서 발칸반도 북부로 오는 수 밖에 없는데 이러면 길이 너무 멀고 험해서 불편하기도 하고 수십만의 먹을거 입을 거를 날라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죠. 따라서 페르시아로부터의 보급선확보를 위해 에게해의 제해권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사실 제 1차 페르시아 전쟁때도 이런걸 무시하고 단번에 수만명의 대군을 아테네 근처에 상륙시켰다가 마라톤에서 개박살난 경험이 있는 페르시아는 이번엔 헬레스폰토스해협을 건너 그리스 북부부터 육지로 침공해 온 것입니다. 이말은 거꾸로 당시 에게해와 그리스연안의 제해권은 아직 그리스에게 있엇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멀리 돌아오는 보급로를 고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크세르크세스도 한번은 그리스 해군과 붙어서 박살을 내고 해상보급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엇을겁니다. 수십만 육군의 병참선을 흑해 연안을 도는 먼 길을 따라 그것도 테르모필레 같은 험준한 곳을 지나면서 유지하기는 곤란하니까요. 제 생각에는 테미스토클레스가 그토록 해군 해군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간 그래서 작게는 아테네와 페르시아 왕가의 운명을 걸고 크게는 장차 동양(그래 봤자 오늘날의 서남아시아를 말하는거지만)과 서양의 운명을 걸고 그리스 해군과 페르시아 해군 사이에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읍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가 군사나 해전에 밝지 못해서 테미스토클레스가 어떤 절묘한 작전을 썼는지는 잘 모르고 전에 읽은 내용도 잊어버렷읍니다. 하여간 굉장히 절묘한 작전을 쓴데다 마침 해풍도 그리스 편이었고 테미가 평생을 걸고 양성해온 아테네 해군이 그 진가를 발휘해서 승리는 그리스 해군 편으로 돌아갔읍니다. 그것도 단순히 이긴게 아니라 살라미스로 총집결하다시피 했던 페르시아 해군을 거의 전멸시켜버린 겁니다. 어떤 책에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오직 이날 하루를 위해 평생을 살았다고까지 극찬해 놨더라구요. 하여간 엄청난 대 승리엿던 모양입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세계사를 바꾼 10대 전투에는 못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역사이래 10대 해전에는 반드시 포함될만큼 유명한 해전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소수가 다수를 이긴 것이나 풍전등화 같은 조국을 구했다는 점에선 트라팔가 해전 명량해전 만큼 중대한 해전일 것입니다. 살라미스 해전 때 멀리서 전투를 참관했다는 크세르크세스는 실의해서 페르시아로 돌아가 버렸고 병참이 부족한 채로 그리스에 고립된 페르시아 육군은 그 뒤로 기세가 오른 그리스 연합군에 밀려서 계속 깨지다가 육로를 따라 왔던 길로 퇴각해 버리고 말았읍니다. 비록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것은 아니고 그리스가 전 국토가 거의 다 약탈당하고 불탄 가운데 쳐들어온 페르시아 군을 쫓아낸 것에 불과한 방위전이지만 제 2차 페르시아 전쟁은 서쪽으로 계속 팽창하던 페르시아를 저지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그리스 문명의 융성기를 위한 초석을 닦은 사건입니다. 아테네는 불탔지만 사람과 배 그리고 해군은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에 금방 재기할 수 있었나 봅니다. 페르시아 전쟁때 아테네 해군의 공도 있고 해서, 페르시아의 재침입을 대비한다는 명목하에 델로스 동맹이란 것을 만들고 그리스의 도시국가 들로부터 강제로(!) 돈을 거둬서 그리스 해군(을 빙자한 사실상의 아테네 해군)을 양성합니다. 그리고 해군력을 바탕으로 에게해 일대의 통상을 꽉 움켜쥐어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우리가 아는 찬란한 그리스 문화나 그리스=아테네 로 연상되는 그 아테네의 전성시대는 이렇게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양성된 테미스토클레스의 해군으로부터 시작된 부유함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육군국인 스파르타는 물을 먹게 되겠죠? 사실 이런 아테네 중심의 그리스 재편이 스파르타의 불만을 사고 훗날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됩니다. 실제로 테미는 이런 미래를 통찰하고 아테네가 힘가졌을 때 스파르타를 꺾어버리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근데 이때 도편추방에서 돌아온 정적 아리스티데스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아리스티데스가 이겨서 살라미스 이후로 아테네를 거의 독재하다시피 했던 테미는 도편추방으로 아테네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힘든 전쟁을 치르고난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 스파르타를 꺾고 그리스 전체 패권을 잡으려는 테미의 전쟁 계획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리스티데스 옹호자들은 테미가 독재를 해먹다가 벌받아서 쫓겨난 거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나중에 테미의 예상대로 스파르타는 아테네 최고의 적이 되어버리고 페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한 아테네는 몰락해 버립니다. 아테네에서 쫓겨난 테미가 망명한 곳은 황당하게도 페르시아 였읍니다. 비록 서방진출은 저지당했지만 페르시아는 아직도 세계제일의 강대국이었으니까요. 적장이지만 테미의 능력을 높이 샀던 크세르크세스는 테미를 환영하고 군사고문 비슷한 직위를 줍니다. 한 몇년 잘 먹고 잘 살앗나 봅니다. 그러다가 전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다시 그리스 침략을 준비중이던 크세르크세스는 테미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나를 도와 그리스 해군을 격파해 다오.! 페르시아의 강력한 육군이 건재한 만큼 (페르시아 육군을 격파하는건 알렉산더 대왕이 나올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 침공의 관건은 해군이었읍니다. 그리스 해군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테미스토클레스를 이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 부분이 제가 테미스토클레스 전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어쩌면 테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한 버려진 배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이 일생을 바쳐서 양성한 그리스 해군을 내손으로 부술 수는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독배를 마시고 자살해 버렸읍니다. 세계사를 바꾼 영웅에게는 참 비극적인 최후지요? 하지만 그래서 난 테미스토클레스 전기를 좋아합니다. 영웅에게는 비장한 최후가 잇어야 영웅다우니까요. 아테네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 서양 문명의 씨앗 통상으로 쌓은 그리스의 부유함 페리클레스 시대의 민주정치 이 모든 것은 바로 테미스토클레스의 미래를 보는 통찰력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시작합니다. 깡패 + 물리학자 + 화류계맨 = land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