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lthNdiet ] in KIDS 글 쓴 이(By): fidelis (성격파란) 날 짜 (Date): 2001년 10월 15일 월요일 오전 11시 03분 25초 제 목(Title): [퍼옴]달림에 생각은 흩날리고 달림에 생각은 흩날리고 조깅경력 6년을 넘어 러닝과 마라톤을 시작한 '백발의 신사'. 춘천마라톤 인터넷사이트에서 [반포혈전]이라는 글로 온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영관씨의 12km 훈련코스에 응집시킨 달리기 철학은... 조영관(종근당 해외사업본부) 전날 동료들과 마신 술로 조갈증이 심해 잠에서 깨어났다. 물을 계속 마셔도 괴롭던 꿈만 꾸다 진짜 물을 들이키며 시계를 보니 당혹감이 가슴에 저며온다. 전신이 천근같은 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라니. 고민을 하려다 그대로 욕실로 간다. 이건 내 전술이다. 망설이면 틀림없이 안 뛸 이유가 떠오르기에 일단 샤워부터 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부은 듯하다.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본다. 양심의 가책 없이 뛰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으려 했으나 상큼한 새벽 내음만 맡는다. 공해물질을 다량 함유한 새벽안개도 없다. 뛰지 않으면 하루 종일 후회할 거란 걸 알고 한숨을 쉬며 장비를 갖춘다. 허벅지가 드러나는 런닝팬츠. 내 장비 중 가 장 프로다운 것인데, 동네 아줌마들에겐 위압감을, 아저씨들에겐 위화감을, 중학교 2학년 딸애에게는 창피함을, 아내에겐 아마도 자부심을 안겨줄 그런 것이다. 그리고 깃달린 반소매 티셔츠. 이건 팬츠의 튀는 맛을 엄청 중화시킨다. 장고 끝에 기록향상과 이웃 분들의 눈총을 감안한 코디다. 집을 나서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큰 도로까지 나갔다가 돌아와 잠자리에 다시 든 적도 있다. 달리기 경력 6년이지만 변덕과 나약함은 아직 왕초보다. 안뛰어도 되는 이유 둘러대긴 거의 경지에 올랐지만. 내가 개발한 12km 코스의 출발선에서 시계를 맞추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일단 뛰면 뛴게 아까워서 중도 포기한 적은 없기에 출발부터 하고 본다. 이시간에 고정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생업이나 종교를 위해 오가는 분들이다. 대개 나이가 많다. 물론 연세든 사람들만의 세계는 아니다. 머리카락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10대들도 어둠 속을 무리져 오간다. 뛰는 분들도 있다. 긴 트레이닝 복이나 무릎을 푹 덮는 반바지같은 오래전의 내 복장을 한 이들이다. 가볍게 추월한다. 우리 동네에선 내가 챔프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감을 잃게 하는 분이 달려온다. 60대 후반의 깡마른 할아버지. 외모만 봐도 고수임이 분명하다. 구리빛 근육질의 어깨를 다 드러낸 그물형 셔츠엔 SAKA 표시도 선명해 공식대회 출전 경험이 없는 나를 우선 주눅들게 한다. 팬티도 나보다 짧다. 대머리 노인네만 아니라면 섹시하기조차 할 정도다. 우리 딸애는 내가 이 분같이 될까봐 걱정이다. 할아버지가 달려온다. 바람을 몰고오는 것같다. 4-5미터 앞부터 스피드를 낸다. 클린치할 때 권투선수 마냥 힘든 걸 감추려고 호흡을 멈춘다. 숨소리 하나 없이 질풍같이 스쳐 가는 나를 보는 그 분의 눈에 언뜻 스친 것은 경탄의 빛일까 아니면 발버둥치는 하수를 재밌어하는 걸까. 1km.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탓에 벌써 땀이난다. 흐르는 땀을 자동차 와이퍼처럼 주기적으로 닦아야 눈에 들어가는 걸 막는다. 기사식당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내다본다. 포장마차엔 아직도 술타령을 하는 유래를 추측키 어려운 젊은이들이 있다. 대단한 체력들이다. 저들은 날 부러워할까 측은하게 여길까. 2km. 탁트인 길에 들어서며 스피드를 낸다. 마라톤 교실의 주법을 흉내내어 본다. 저 멀리 전철역사의 가지런한 불빛이 아름답다. 하늘엔 아직 힘을 얻지 못한 붉은 해와 힘을 다 잃지 않은 하얀 달이 마지막 승부를 겨루며 붉고 푸른 색의 향연을 펼친다. 거리의 가로등이 꺼진다. 고수들이 나를 본다면 ' 제자리 뛰기 하는 모양인데, 팔다린 왜 저렇게 요란하게 흔들지'하겠지만 난 바람을 가로지르며 가슴 가득 숨을 몰아쉬고 달린다. 뛰길 잘했다. 새벽길을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와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거대한 스타디움의 수만 관중 환호 소리로 들린다. 장거리 달리기에 공상은 필수다, 적어도 내게는. 3km. 스피드를 줄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체력이다. 술담배를 끊어볼까 매일 생각하는 지점이다. 이때부턴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그럴려고 노력한다. 생각을 하면 달리기의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회사 업무가 단골 메뉴다. 장거리 달리기의 좋은 점은 어떤 방해도 없이 사색을 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집중력도 좋아져 평소엔 생각도 못했던 아이디어나 해결책 이 떠오르기도 한다. 철학이나 정치가 주제가 되기도 하나 코스의 여건상 환경문제 등에 많이 매달리게 된다. 4km. 전문대학 앞을 지난다. 대학 부근이 코스 중 제일 지저분한 곳이라니 믿기 어렵다. 온갖 쓰레기와 예의 그 토사물은 하루도 새롭게 쌓이지 않을 때가 없다. 담장 사이사이로 통닭뼈, 컵라면, 맥주캔 등이 곳곳에 박혀있다. 나도 저랬을까? 자가용을 인도에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아 스피드를 유지하며 뚫고 지나기가 여의치 않다. 마라토너의 유연성을 위한 특별 훈련 코스다라고 자신을 달랜다. 몸이 풀리는 것 같다. 초반엔 무겁고 이곳저곳 결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움직임이 부드럽고 리드미컬하게 느껴진다. 5km. 나를 격려해주는 분이 있다. 청소부다. 언젠가 내게 뭐라고 했다. 달리면서 들었기에 알아듣지 못했다. 다음날 주의해 들으니, 수고한다는 것이었다. 답례를 하려했으나 목이 잠겨 우물거리며 지나쳤다. 마음에 걸려 그 다음날 내가 먼저 인사를 하니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듯 웃었다. 그분과의 우정 같은 것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날 보면 먼지를 일으키는 빗질을 멈추고 기다려주었다. 비오는 날 하수구를 막는 나뭇잎 등을 긁어 낼 땐 나도 달리기를 멈추고 도와드렸다. 달리는 사람들의 인사법을 보여 주기도 했다. 즐겁게 일하면 보는 이에게도 즐거움을 준다는 걸 몸 으로 증명하는 분이다. 내 뛰는 모습도 남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할 텐데. 이미 셔츠는 흠뻑 젖었고 팬티도 젖기 시작한다. 주머니에서 권총을 아니 돌멩이를 꺼내든다. 6km. 콩알만하지만 안심이 된다. 10미터 전방에 녀석이 코를 바닥에 대고 킁킁거리고 있다. 개 주제에 눈치를 못 챈다. 너무 가까이서 나를 보면 놀랠까봐 미리 경고를 보낸다. 그제야 날 보고 슬금슬금 도망친다. 자기 집에 이르러선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잇몸까지 드러내곤 덮칠 듯 짖어댄다. 1년전 처음 당했을 땐 정말 놀랬다. 그러나 녀석의 행동 패턴은 그동안 한치도 변한 게 없어 이미 대비를 끝냈다. 돌멩이가 나른다. 구태여 명중시킬 필요는 없다. 주위에서 두어 번 퉁기기만 하면 된다. 끽소리도 없이 자기 집으로 뛰어든다. 멍청한 녀석, 이젠 대드는걸 포기할 때도 됐을텐데 . 돌아보니 머리만 내밀고 멍하니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니? 주인이 널 못 봐서 다행이지? 사실은 내가 미안하다. 생리현상도 해결하고 영역표시도 해야할 하루 한번의 귀중한 시간에 누군가 갑자기 뛰어와 돌이나 던지고 휑하니 간다면 얼마나 미울까. 그것도 매일. 이제 반을 뛰었다. 반을 뛰고 나면 완주에의 부담감은 말끔히 사라진다. 이상한 운동이다. 6년을 뛰었으면 완주가 아무렇지도 않아야할텐데, 그렇지가 않다. 마음을 항상 다 잡아야 한다. 7km. 자동으로 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느낌과 실제 속도는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의도적으로 속도를 낸다. 먼저 숨이 차기 시작한다. 입에서 침이 튀어나온다. 이를 악물고 최고 속도를 유지한다. LSD의 유혹을 억누른다. 인터발 훈련에 대해서 몰랐을 때가 좋았다. 시종 등속을 유지하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중간중간 속도를 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8km. 속도를 떨어트리자 호흡이 금방 정상이 된다. 뛰면서 휴식을 취한다. 뛰면서 쉬는게 대견해 웃는다. 달리며 찡그리는 대신 웃을 수 있는 것이 신이나 웃는다. 웃으며 달리는 게 우스워 또 웃는다. 흰머리를 나부끼며 얼굴이 벌개 웃으며 달리는 나를 아무도 안보니 다행이다. 보폭을 크게 하고 탄력을 주어 달린다. 팔을 흔들어 본다. 주위를 확인하고 고함도 쳐본다. 가슴 속에 힘이 느껴지고 그것이 뭉쳐 소리에 실려 나오는 것 같다. 이게 내공인가?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땐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허리 아래로 돌아가며 곳곳이 쑤시고 결리고 시리고 땅기고 아팠다. 아내가 제발 마소했다. 그러나 그후, 규칙적인 달리기 덕택인지 전혀 불편한 증세가 없다. 일요일마다 반포에서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이건 그냥 문학적 수사다. 사실은 고수들의 뒤통수만 멀리서 보며) 21km 이상을 달려도 끄떡 없다. 9km. 언덕길이 200미터쯤 이어진다. 경사가 급하다. 숨이 거칠어진다. 앞에서 걷던 여고생이 놀라 뒤를 보며 길을 비킨다. 땀방울이 닿지 않게 하려고 간격을 두고 지나친다. 골목길을 나온 트럭이 큰길로 들어서려다 나를 보고도 여유를 주지 않고 막아선다. 뒤로 가려다 배기 가스가 싫어 앞으로 돌았다. 위협적인 엔진소리가 신경 쓰이지만 설마 하고 지나친다. 10km. 힘이 든다. 달리기에 지쳐 페이스가 떨어지든지 걷고 싶을 때 정신적인 나약함을 탓하며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나 아니면 체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리를 말아야 하나. 쉽게 판단할 방법이 없을까? 버스 전용차선 감시원이 자신의 자가용을 인도 한복판에 주차시키고는 캠코더를 들고 폼을 잡는다. 파출소 순경도 뒤질세라 자신의 자가용을 파출소 수돗물로 대로에서 세차한다. 하위공직자들의 배짱 겨루기 거리다. 11km. 힘내라 히-이-임! 가슴을 내밀고 머리를 뒤로 제치고 멋대로 내치고 달린다. 스트레스를 푸는 구간이다. 만남의 광장에서 히-이-임 구호를 주창하는 글을 보았을 때, 말울음 소리를 흉내내자는 줄 알았다. 히-이-잉...말처럼 빨리 달리려고. 역시 고수들은 차원이 다르군. 경쟁 상대를 말이라고? 내가 말띠인데. 잡념에 잠겨있던 순간 클락션 소리에 놀라 인도로 뛰어 오른다. 개들의 배설물이 많아 조심스럽다. 자기 개의 것을 바로 옆 화단으로 치울 시간도 없는 바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우리 나라. 12km. 기록을 노려 스피드를 내지만 곧 속도가 떨어진다. 한시간을 뛰었으니 지친 것같다. 자신도 믿기 어려운 장시간이다. 처음 조깅을 시작했을 때 10분도 못 뛴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 전날 양복을 사러 갔었다. 점원이 추천한 바지는 뚱보 아줌마의 몸빼같아 보였다. 그런데 더 놀란 건 내게 꼭 맞는다는 것이다. 허리띠 없이도. 그래서 시작한 달리기 결과 이젠 자대에 배치되는 훈련병 몸매라고 누가 그런다. 팬티도 완전히 젖어 땀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려 신발이 물에 잠긴 듯하다. 버스 승객들 몇몇이 무심하게 내려보는 가운데 골인. 시계를 스톱시키고 제자리 뛰기를 한다. 호흡과 맥박이 아무렇지도 않다. 심폐기능의 향상 때문인지 온갖 잡생각을 하며 거북이처럼 달린 때문인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고 시계를 보니 또 60분대 벽을 깨지 못했다. 기록에는 초연한, 달리기 자체를 사랑하는 순수한 런너라고자위해 보지만 씁쓸하다. 아파트 옆 학교로 가 몸을 푼다. 진짜 이유는 그곳에서 조깅을 하는 남녀노소(소는 거의 없다)께 수영하다 나온 듯한 모습을 자랑하고파서다. 소림사 고수가 시골 동네 무술 도장에 들어서면 아마 이런 기분이 들겠지. 집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만족스럽게 본다. 붓기가 다 빠진 뺨에 내밴 하얀 소금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다리의 나릇한 피곤함이 감미롭다. 6월의 햇빛이 눈부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