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lthNdiet ] in KIDS 글 쓴 이(By): fidelis (성격파란) 날 짜 (Date): 2001년 10월 15일 월요일 오전 11시 16분 23초 제 목(Title): [퍼옴]내 달리기의 파트너들 조영관 1. 뛰는 폼이 마치 수영을 하는 것 같다. 팔치기 폼이 영락 없는 개헤엄이다. 속알 머리 하나 없는 대머리인데, 윗도리는 어디다 두었는지 훌렁 벗고 뛴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분이니, 민망할 정도로 근육이 형편 없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신경을 안 쓰는 건 그것 뿐이 아니다. 달리기 복장에도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다. 잠자리에서 그대로 빠져 나왔는지, 무릎까지 내려 오는 하얀 지지미(깔깔이) 천으로 된 고쟁이 같은 걸 입었는데 속 것이 환하게 드러나 보인다. 이 할아버진 나만 보면 완전히 합죽이가 되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한다. 같은 달리기 동지이니, 그리 하겠지만 좀 모르는 체 했으면 좋겠다. (오우 씨, 내가 행님하고 같은 줄 아능교.) 눈을 내리 깔고 못 본 척 지나치려면 어디서 배웠는지 히-임 하고 소리까지 치니 죽을 맛이다. 주위의 아가씨들이 나와 그 할아버지를 같은 부류로 간주할 텐데. 로우드 런너의 품위와 이미지를 마구 잡이로 떨어 트리는 할아버지, 아, 좀 모르는 체 했으면 좋겠다. 엄청 쪽 팔린다. 2. 성산 대교 밑에만 오면 마주 치는 녀석이 있다. 매우 규칙적으로 뛰는지 거의 어김없이 이 부근에서 지나치게 된다. 이 녀석은 뭐랄까 좀 내성적인 것 같다. 아니면 내 남성적인 체취에 기가 죽은 걸까. 항상 눈을 내리 깔고 모른체 지나 가려 한다. 이런 녀석에겐 달리는 사람들의 인사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환하게 웃어 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마지 못해 자기도 손을 들어 답례한다. 새카만 후배 놈 같은데 좀 건방져 보인다. 녀석은 제법 복장을 갖추느라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지난 해 춘천 마라톤 대회 기념품인 상의를 입고 하의는 역시 지난 해 중앙 하프의 기념품을 입고 있다. 언뜻 지나치면서도 녀석이 심박계를 차고 있음을 알았다.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힘없이 흐느적 거리며 뛰는 주제에 완전 풀 세트다. 저만치서 우리 할망구가 윗도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좀 더 힘을 내 보자. 3. 합수 머리(안양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 근처에만 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소위 BB 클럽 멤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배뿔뚝이 아저씨가 티 셔츠를 걷어 올려 휜 배를 들어 내 놓고 바람을 쐬는 척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합수 머리에서 안양천 상류쪽으로 좌회전을 하면서 스피드를 올린다. 한 2-3분 뛰면 아니다 다를까 뒤에서 달려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솔직히 욕 나온다. 왜 하필이면 꼭 나를 사냥감으로 찍어 추격을 하는지. 그의 자유이고 재미이겠지만 당하는 쪽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생각해 주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고 왜 따라 오느냐고 시비를 걸 수도 없고. 150 초반의 심박계가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174를 가르킨다. 상당한 고수임이 분명한데 왜 하필 나를……마지막 2.5키로는 정말 죽을 맛이다. 4. 한 30분 뛰면 한강에 도달한다. 한강은 언제 보아도 가슴을 툭 트이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인 월드컵 경기장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는 건 아침 조깅의 백미다. 한 오분 쉬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달리기 트레이너가 달려 온다. 내 전속으로 내가 임명했지만, 물론 그는 모른다. 내 상상의 트레이너다. 달리기 경력이 오래된 듯, 자세가 그런대로 무난하다. 특히 발자국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것이 착지가 좋은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그를 트레이너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너무 느린 것이 흠이다. 그래서 멀리 보내 놓고 따라 잡는 게 편하다. 바짝 따라 붙으면 더 속도를 내는 게 분명하다. 어디까지 속도를 낼까 ? 한번 시험해 볼까 하는 장난기가 돌지만, 헉헉 거리는 게 (본인은 거친 숨소리를 안 들키려고 이를 악물지만 내가 그걸 모르나?) 불쌍해 보여 참는다. 춘천 대회를 겨냥해 뱃살을 빼야 할텐데. 5. 나이가 드니 젊은 사람들의 용모를 보고 그들의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고등학생인 듯한데 대학생이고, 대학생인 듯한데, 직장인이고 하는 식이다. 그녀의 나이는 어느 정도일까? 학생일까, 직장인일까? 10대는 아닌 것 같고 스물을 갓 넘긴 대학생인 것 같다. 멀리서 뛰어 오는 그녀만 보면 뭐랄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다.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런 묘한 느낌이 물밀듯 몰려 온다. 아, 이 주책. 아니, 영원한 소년......으음. 자세를 좀 바로 갖추자. 무릎 위 5센티까지 내려 오는 까만 타이즈에 소매는 없지만 목은 있는 연한 미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눈동자가 들여다 보이는 갈색 고글을 쓰고 얼굴은 약간 홍조를 띄고 있다. 그리고 ( 내 상상의 세계에서) 거의 모든 미인이 그러하듯 전혀 땀을 흘리지 않고 달려 온다. 나는 포스터를 노래한다. 아-이 드-림 오브 제니 위더 브- 의 브 순간에 그년 날 지나친다. 그리고 난 생각한다. 그녀가 날 보았다고. 그냥 본 게 아니라 어떤 의미가 담긴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였다고. 황순원의 소나기...... 6. 한국에선 여자가 뛴다는 게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다. 뚫어져라 쳐다 보며, 모두들 뭔가를 수근 거리는 것 같다. 사실 달리기 인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자가 달린다는 건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 생소한 것 같다. 그런 게 싫어 퇴근 후, 헬쓰 클럽의 트레드 밀을 주로 이용하는데, 상쾌한 새벽 바람을 기대하고 한강변으로 나오면 모두의 시선을 끄는 것 같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술을 마신 듯한 낚시꾼들을 지나칠 때면 너무 힘들다. 그러나, 이 부근에서 자주 마주치는 할아버지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흰 머리카락의 할아버지이지만, 오랫 동안 달리기를 하셔서 그런지 얼굴이나 피부는 40대 같이 젊은 느낌을 주는 분이다. 달리기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온 몸으로 나타내 보이는 듯한 분이다. 매너도 좋아 보인다. 타이즈를 입은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훔쳐 보듯 힐끔 거리는 것만 같은 데, 이 분은 무심하게 쳐다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나이가 너무 들어서 관심이 없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