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gue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senkreutz Guest Auth Key: 84e18780da14c64320461a3998d741d0 날 짜 (Date): 2009년 11월 02일 (월) 오후 10시 07분 56초 제 목(Title): [가비지 쿠키] 헤롯 대왕. 위키에서 헤롯왕 기사를 읽고 감동받으셨나봐.ㅋㅋㅋ http://ko.wikipedia.org/wiki/%ED%97%A4%EB%A1%9C%EB%8D%B0_%EB%8C%80%EC%99%95 헤롯왕에 대한 기록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서 헤롯왕은 그다지 좋게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좀더 주의 깊게 읽으면 정말 뛰어난 수완가라는 걸 알 수 있지. 헤롯은 로마가 이스라엘지역에 세운 일종의 바지왕-_-인데, 오늘날 미국이 이라크에게 하듯이 일종의 충성스러운 괴뢰정부를 세워서 적정한 세금도 알아서 걷어주고 필요시에 군사적, 물류적 써비쓰도 제공해주는 역할을 맡긴거지. 그런 자리에 이스라엘 내에 지위가 확고한 토박이를 세우면 자기들끼리 공모해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니까 토박이도 아니고 지위도 불안정한 에돔 출신의 헤롯을 앉힌거란 말야. 헤롯은 헤롯 나름대로 출신에 대한 부담과 불안한 지위를 만회하기 위해 이스라엘 토착세력인 하스몬왕가와 줄을 만들려고 했고, 그래서 조강지처를 버리고 하스몬가의 마리암이랑 결혼한거지. 하지만 몰락한 하스몬가는 하스몬가대로 헤롯을 일종의 재기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뿐이고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질적인 헤롯을 결코 좋아하지는 않았지. 따라서 헤롯과 하스몬가와의 한판대결은 헤롯와 마리암이 떡을 치는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단 말이야. 알다시피 이 싸움의 승자는 결국 헤롯이 됐지만, 이 싸움에 대한 부담이 결국 유대전쟁의 원인이 되고. 그러나, 이런 개인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헤롯이 대중들에게 잔혹한 착취자로 전락하지 않았다는게 고무적이지. 등거리 외교로 로마의 권력다툼(즉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의 싸움)에서 팔레스타인이 전투장이 되는 것을 막았고, 비옥한 이집트에서 식량을 사들여서 그 지역의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소했고. 헤롯은 생전에 엄청난 건축사업을 벌였고 엄청나게 화려한 이스라엘 성전을 재건축하기도 했는데, 이런 건축사업은 헤롯시절에 얼마나 이스라엘이 풍요롭게 잘살았나 하는 것을 말해주는 반증이 되지. 예수의 법적인-_- 아버지(실제 아버지는 누군지 모름. 하나님?ㅋㅋㅋㅋ)인 요셉은 목수였는데, 요셉도 이런 건축붐 덕분에 대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었던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