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bages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garbages ] in KIDS
글 쓴 이(By): Estee (그저나그네)
날 짜 (Date): 2011년 07월 29일 (금) 오후 11시 48분 41초
제 목(Title): Re: 태평양 전쟁의 개전은 우연?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해서 반드시 패퇴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미국 일본간에 장기적으로 사활을 건 전면전으로 간다면 산업력이 10배나 
우월한 미국이 이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전개 되지 않을 거라는 예측도 당시에 상당부분 가능했을 것으로 봅니다. 
우리야 결과를 아니까 그게 틀렸다는 것을 쉽게 말하지만 미국의 일본 본토 
공격 또한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유럽쪽 전황이 워낙 다급해지면서 
미국의 참전은 사실상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까지 감당하기 
벅찰 것이란 예측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자연스레 어느 정도 포기를 하게 될 것이고 그 
시점에 가서 일본에서 뭔가 적당한 양보를 하면서 명분과 실리를 적당히 나눌 
수도 있다고 봤겠죠.

그러니까 결과론적으로 왜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쟁이 끝나지 않았느냐는 것과는 
관계 없이 당시 무력충돌을 여러 카드 중 주요한 하나로 진지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 이전에 여러 전쟁에서의 승리로 인한 
일본군 수뇌부의 자만심도 한 몫 했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일제가 도취감으로 건성으로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리고 일제는 지들 나름의 소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위해 
죽기까지 싸우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들의 합리적인 판단력과 
정책의 유연성을 빼앗아 버렸을 겁니다. 이건 히틀러도 그랬고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잘못된 국가관에서는 빠짐 없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태생적 한계지요. 그리고 역사상 제국주의는 대부분 한없이 과욕을 부리다가 
자멸하는 길로 빠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건 그들의 한계를 이해한 
측면이고요.

그렇다면 그 이후의 전황이 왜 그들 예상대로 들어맞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저는 제 처음 글에 썼던 것처럼 진주만 공습의 성과가 사실은 애매했고 미국에 
대한 이후 예상이 틀린 점, 그리고 이후의 프로세스가 완벽하지 못했던 점에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처음 의도대로 태평양 함대에 충분한 타격을 입혔다면 미국은 이후 
일본과의 해전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러일전쟁과 비슷한 양상을 띌 
것이라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손실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었지요. 그리고 이게 
비록 군 작전이긴해도 아주 치사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미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일제가 미해군과 정상적인 군 작전 중에 전투를 벌여 그만큼 
승리했다면 미국도 매우 신중해졌을 것이고 이후의 프로세스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진주만 공습으로 일제가 뭔가 얻긴 얻은 것 같지만 실은 긁어 
부스럼을 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인데 사실 이런 미스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세계 전쟁사에 워낙 흔한 일이라 이것을 두고 정신줄 놓은 
일제가 떡밥을 그냥 물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쟁개시 전에 모든 프로세스를 완벽히 정의하고 명확한 출구전략을 세우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 세우려해도 이후 상황은 예측을 대부분 빗나가기 때문에 
계속 전략을 바꿔야 하고 어느 시점에 가면 출구전략이 있었는지조차 
불명확해지는 것이 전면전입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사를 살펴보시면 그런 
프로세스가 통하는 것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는 경우에 국한되죠. 
결과적으로 대부분 전쟁을 지속할 경제력이 얼마나 우수하냐 내부적으로 얼마나 
단합되느냐에 따라 종국의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는데 개전 초반에 힘이 
엇비슷할 경우 사전 프로세스 예측이 다 빗나가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명확한 
출구전략조차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의심을 얻기 쉽습니다. 물론 이건 
일반론이고요 정황상 추론하는 것이지 일제가 정말 어땠는지 속사정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만약 저라면 당시에 일본에게 무력을 통한 패권주의를 여기쯤에서 포기하고 
이제부턴 경제와 문화를 통한 침략을 하자고 주장했을 겁니다만 이미 
험산준령의 7부를 넘었다고 믿는 그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겠지요.

다른 대안으로는 미국의 주장을 무시하고 진군을 계속하다가 본보기로 미국 
해군과 정상적으로 무력 충돌을 해서 실력을 보여주자라고 했겠지만 그러다가 
미국이 전쟁에 개입해서 대규모 함대가 자기 바로 밑까지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고요.

아무튼 일본은 제국주의라는 폭주열차에 올라탄 이상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가능성이지만 
효과가 클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모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