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garbages ] in KIDS 글 쓴 이(By): Estee (그저나그네) 날 짜 (Date): 2011년 07월 29일 (금) 오전 12시 13분 46초 제 목(Title): Re: 태평양 전쟁의 개전은 우연? 말씀하신대로 개전의 전체 프로세스가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 없이 군부 강경파 주도로 된 성급한 결정으로 보인다는 느낌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동양권 국가들은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개전에 있어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덜 중시하는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전쟁에서 진 자는 말이 없으니 정말 그랬는지 아니었는지 그 속 사정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외부에 보여진 사실들로만 유추해도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석유 공급 중단이 태평양 전쟁의 불씨를 제공했습니다만 그것이 본질적인 전쟁의 이유는 아니죠. 어차피 군국주의에 의한 팽창을 구가하던 일본은 서구 열강과 어디에선가 충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 어디에서냐가 남았겠지요. 석유와 철이 필요한 건 제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힘을 전달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고요. 그럼 그 시절로 돌아가서 한번 생각해보죠. 일본제국은 그냥 달리는 기차와 같습니다. 자기 딴에는 이렇게 팽창하다 어느 시점이 되면 과거 제국으로서 안정적인 영화를 누렸던 로마나 영국처럼 안정권에 들어갈 거라 기대하지만 언제가 그 시점일지 스스로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달려야 할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서구 열강과의 충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대편은 수차례 경고를 보냈으나 엄포로는 별 효과가 없으니까 제대로 간을 좀 보고자 합니다. 그게 경제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해 석유와 철의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겁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본제국주의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침략한 국가는 물론 침략중인 지역에도 힘을 보내기 위해 석유와 철은 필수입니다. 그게 떨어지면 전세는 역전될 수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제국으로서의 안정적인 영화도 물거품이 되는 거죠. 다 아시는 이야기를 유치하게 길게 쓴 것은 그 시점의 일본의 입장에 서 보면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조치를 받아들여 철수를 하게 되는 것은 제국주의를 포기하는 것이고 사실 그렇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많은 석유나 철을 수입할 이유 또한 없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냐 하는 거죠. 이미 점령한 국가들이나 다스리면서 살아간다? 이건 어렵습니다. 힘이 아주 강한 줄만 알았던 일제는 미국의 헛기침 한번에 두 손을 든 것이고 약점을 제대로 잡혔기 때문에 이젠 미국의 압력을 자꾸 받게 됩니다. 그럼 대한제국, 중국 등 피해를 입은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일제에 대항하려 할 것이고 모든 정황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겠죠. 다른 대안은 미국의 주장을 일축하고 인도차이나로 진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미국에게는 전쟁에 참여할 명분과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미국은 대규모 부대를 아시아로 착착 데려와서 일제의 목 바로 아래 포진할 겁니다. 이때에는 일본과 미국이 제대로 붙는 것인데 승산이 전혀 없습니다. 일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제국주의에 의한 패권을 원했다는 그 잘못된 발상에서 태생적으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뜨거운 이슈 하나가 남아 있죠. 만약 하와이에 주둔한 미 태평양 함대를 "제대로" 제압할 수만 있다면??? 이게 정말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들에게 유일한 정답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제압할 것인가 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의 프로세스만 놓고 보면 마치 시한부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서두른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이 졌지만 진주만 공습만 놓고 보면 대단한 작전이었고 그 자체는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군 수뇌부가 얼마나 여기에 대해 고민하고 전력을 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제국은 죽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었지요. 미국이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할 걸 알면서 미끼로 던졌다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단지 음모론일 뿐이고 현실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의 상황이 매우 안좋았다고 해도 즉시 전면전까지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본 이유가 양국간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었고 직접 무력으로 충돌할 교차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면서 미국에서 여러 떡밥을 여기저기 뿌려 놓는다는 것은 어려웠을 듯 합니다. 일본이 미국의 금수조치를 무시하고 인도차이나 등으로 진군을 계속 할지, 미국 요인 암살 등의 테러를 할 지, 모종의 협상을 통해 일부나마 해결될지, 만에 하나 군사적인 충돌이 있다고 가정해도 그것이 어디에서 또 언제 발발할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