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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Bshaft (거 봉)
날 짜 (Date): 1993년12월23일(목) 23시38분23초 KST
제 목(Title): 486 똥침 [2]


[2]

거: 가자 키트! 가자니까, 키트! 제길... 닝김 키트! 가자!

왕십리에서 제기동 방면으로 가는 고산자로 한복판에서 거봉이 자신의
포니2를 때리면서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차는 꿈쩍도 않고 길의 한복판을
막고 서 있었다. 다른 차들도 경적을 울려 대며 서로 빠져 나가려고 엉키기
시작했다. 간간히 거봉에게 삿대질과 욕설을 하는 몰지각한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흰소나타를 몰고 지나가던 관지림을 쏙 닮은 묘령의 여인은 거봉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이렇게 얘기했다:
    "요샌 개나 소나 시내로 다 몰고 나온다니까, 웬만하면 폐차해!"

거봉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차 위에 올라가서 외치기 시작했다.

거: 시민 여러분, 질서를 지킵시다.
    여러분 렉카가 도착할 때까지 잠시 여흥 시간을 마련하겠사오니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거봉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위에서 자신의 독특한 스텝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민과 행인들은 더 짜증이 나는 듯 얼굴을 찡그리거나 외면을 했지만
그래도 일부 시민들은 같이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함으로써 아티스트와 함께
호흡을 맞출 줄 아는 세련된 관중의식을 보여 주었다.

***

승교수는 오늘도 거봉이 늦어지자 열이 났다. 항상 한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늦게나오는 거봉이기 때문에 승은 일부러 한시간 늦게 맞춰 나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승의 삐삐엔 거봉이 보내는 '5924'라는 메세지가 계속 디스플레이 되고
있기 때문에 꼼짝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오구있어'라는 그들간의 암호였다.

둘은 언제나 홍릉 과학원 건너에 위치한 할머니집에서 만났다. 이 곳은
겉으로 보기엔 학생들에게 야참으로 라면이나 끓여주는 작은 가게였으나
어두운 지하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훌륭한 댄스클럽이 나타나는 한국 과학계의
비밀스런 사교의 장이었다. 이미 아는 학생은 다 안다.
이들이 여기를 즐겨찾는 이유는 청하 한잔만 시켜놓고 앉아 있어도
부담이 없었고 항상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거봉은 세 시간이나 늦어서야 나타났다. 만약 승에게 거봉에 대한
인격적 정신적 존경심이 없었다면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는 거봉을 늘씬
패주었으리라.

그날도 초저녁부터 둘은 왕십리 분원의 운영에 대한 문제와 최근 논쟁이 그칠 줄
모르는 과기대, 과기원의 존속 문제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물론 정신없이 스텝들을 밟아가면서...

거: ( 짜식... 국제적으로 놀던 놈이라 역시 허리가 유연하군... 음...
      저 스텝은 잘 보고 외어야 겠구만. 좌-2에 꺾고 우-2 돌리고... 쓸만해. )

승: ( 녀석... 이런 힙합 리듬에도 끝까지 지루박만 고집하는군... 음...
      못봐주겠다. 다른 손님들이 없기 망정이지 망신이야, 망신. )

거: ( 애구... 인제 깔다구들이 슬슬 들어 올 시간이 됐는데... 이 동네
      과부들은 다 뭐하나? 님을 봐야 뽕을 따지... )

마침 두 명의 여인들이 통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기다렸다는 듯 거봉의 몸놀림이 격렬해지고 있었다.
거봉이 좋아하는 과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텅 빈 홀에 과감한 두 젊은 여성의
등장은 그런대로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여인들도 전통춤과
최신댄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스테이지에 의미있는 눈빛을 던지고 있어
오늘밤은 웬지 조용히 지날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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