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Gentle () 날 짜 (Date): 1995년12월24일(일) 20시16분27초 KST 제 목(Title):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 [3] 나는 그녀가 편안히 잘 수 있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내 한쪽 어깨에는 부담스런 무게가 실려있고, 또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는 속박된 상황임에도 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니 말이다.. 힘이 빠진 그녀의 손으로부터 노트가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노트를 받아 들었다. 조금전까지 무언가를 끄적이던 그 노트였다. 펜이 끼워져 있 는 페이지를 무심코 펼쳐 보았다. 잡기식으로 어지럽게 쓰여진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어슴프레한 저녁무렵의 하늘에 번지는 노을을 보면서..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반사되는 불빛들을 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찾아간 영화관의 그 어둠속에서.' 흐트러진 필체로 쓰여진 이 글 밑에는 물음표 몇개와 의미없는 단어들을 몇개 끄적이다 만 흔적이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너는 누구일까.. 그녀가 그렇게 깊은 생각에 잠긴것이 '너'를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너'의 무엇을 기억하려고.. 나는 펜을 들었다.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그녀를 조심스레 보고나서 그녀가 적어놓은 글 밑에 이어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를 기억하면서.. .... '내가 혼자 있을때 문득 찾아오는 너의 기억은 이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너는 나와 함께 살고 있진 않지만,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헤어짐이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가슴 저미는 그리움도, 행복했던 추억도, 고통스런 후회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가끔씩 떠올리게 되는 아픈 기억들 뿐 이다. 그때도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는 사실이다. 너와의 마지막 만남을 기억한다. 항상 젖어있던 너의 두 눈에서 떨어져 내리 던 그 눈물도 기억한다. 너의 작은 몸으로 격정에 휩싸여 바이얼린을 연주하던 그 모습도 기억한다. 나에게 들려준 너의 마지막 얘기.. 너의 두터운 비브라토를.. 바흐의 샤콘느를.. 졸업 연주회에서 바흐의 샤콘느를 왜 그토록 슬프게 연주해야 했는지 알고 있다. 연주회장 가득히 울리고 있던 그 소리는 나에게 들려주는 너의 못다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선율에 실려 전해오는, 너의 음악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사랑과 열정, 남겨진 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너의 선택.. 괴롭게 견 뎌야 하는 이별의 고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너를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수들과 청중의 박수속에서 슬프게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 나와 함께한 3년의 세월이 있었다. 뒷풀이를 제껴두고 나를 만나러 나온 너의 한 손에는 내가 준 손수건이 쥐어 져 있었다. 자리를 뜰 때까지 그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그렇게 슬픈 이별을 왜 애써 하는가... 곱게 화장한 너의 얼굴에 배어있는 슬픔을 보았다. 너 스스로의 결정으로 나를 떠나보낸다. 나 스스로의 결정으로 너를 떠나보낸다. 사랑하면서도 헤어진다는 유행가의 가사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는걸 알았다. 우리는 헤어지면서도 이렇게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너의 고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내 손으로 훔쳐내었다. 언제나 너의 눈물을 내가 씻어주고 싶었다. 내 품안에서 울고 있는 너를 감싸 안았다. 언제나 너의 슬픔을 내가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으로 품어보는 내 사랑이리라.. 가거라 사랑아.. 조금도 보이지 않는 희망에 나를 의지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사랑했던 나의 너를...' .... 두서없는 얘기를 알 수 없는 열기에 휩싸여 미친듯이 써 내려갔다. 마치 오랫 동안 품고 있던 얘기를 우연한 기회에 모두 털어놓듯이.. 참으로 오랫만에 너를 떠 올렸다. 노트를 덮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감정이 흐르는 대로 내 몸을 맡겨 두었다. 이젠 더이상 슬프지 않다. 하지만... 아프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고른 숨을 쉴때마다 조용히 들먹이는 어깨와 가슴을 보았다. 거품처럼 사라지는게 감정이다. 그녀의 평온히 자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다시 평온해 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겨나오는 향기 또한 더없이 아늑했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몸을 일으 켰다. 그녀도 나처럼 당황스러울 것이다. 두 뺨을 양손으로 비비고 나서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보며 수줍은 미소를 띄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 "저기.. 이거요.." 나는 그녀의 노트와 펜을 돌려주었다. 그녀가 자면서 떨어뜨린, 한쪽 구석에 나의 글이 적혀있는 노트를.. 흠칫 놀라면서 노트와 펜을 건네 받았다. 더욱 붉어 지는 그녀의 얼굴.. 우리는 마주보며 함박 웃었다.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계속..]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