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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entle ()
날 짜 (Date): 1995년12월24일(일) 20시18분51초 KST
제 목(Title):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 [끝]





  겨울바다를 보았다. 넘실대는 파도와 하얀 포말, 통통배, 갈매기.. 모든 것이

바다 다웠다. 그리고 단지 바다일 뿐이었다.



  그녀는 버스에서 내린 후 곧 어디론가 가버렸다. 바다를 보면서 줄곧 그녀 생각

만 났다. 이건 또 무슨 심술인가.. 아침부터 허둥지둥 찾아온 겨울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해변가에는 다정하게 팔짱을 낀 남녀의 모습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혼자 경포대를

찾아온 사람은 나 뿐인것 같았다. 결국..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니란 말인가..



  근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창가에 앉아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겨울

바다의 모습.. 오.. 이런.. 이것이 훨씬 더 겨울바다 답지 않은가..


  몸으로 직접 찬 바람을 맞으며,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거닐며,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두 귀로 듣고 보는 것보다, 따뜻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겨울바다가 오히려 진짜 겨울바다처럼 느껴졌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또다시 생각났다. 여기에서 함께 커피를 마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나 처럼 여행을 온 것일까.. 내가 적어놓은 글을

읽어 보았을까.. 무슨 일로 강릉에 왔을까.. 그 글은 왜 썼을까..


  ....



  그날 하루동안 정말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두어시간쯤 지난 후, 경포대를 떠났다.

  나는 다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겨울은 해가 짧아 6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애초에 겨울바다에 대한 강한 희망과 그리움은 사라지고

뭔가를 두고 떠나는 듯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떠나는 마당에 남은 것이라곤 그녀에

대한 기억 뿐이라니..

  내 옆에는 중년의 아저씨가 앉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미널을 빠져 나올즈음 터미널을 향해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노트를 한손으로 품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창가로 몸을

바짝 붙였다. 한손을 유리창에 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그녀였다.

이런.. 조금만 더 일찍 오지..


  그녀가 나를 보았다. 나를 알아본 것이다. 그녀의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둥글게 뜨고 버스를 향해 두어 걸음 다가와 섰다. 버스는 계속 움직였다. 이내

도로로 진입하고 힘찬 소리로 가속을 붙여가고 있었다. 그녀는 버스의 움직임을

따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유리창에 바짝 붙인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을 보았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도 나와 같이 후회처럼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의자에 털썩하고 몸을

기댔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이상한 듯이 나를 한번 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조금만 더 늦게 떠났더라면.. 그녀가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나는 왜 버스를 세울 용기는 없었을까..



  다음날 회사로 출근해 여느때와 다름없는 지루한 하루를 보냈다.



  --------



  일년이 지난 오늘 아침, 시계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연말이라서 더욱 피곤하고 지친 생활.. 무의미한 하루 하루...

  갑자기 바다가.. 겨울바다가 보고 싶었다.



  조금뒤..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회사로 출근을 했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가고 싶어하는 겨울바다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여느날과 다를바 없었다. 쌓인 일을 처리하고, 스트레스 좀 받다가

담배 몇개피 피웠다. 일을 하면서도, 회의를 하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바다를

생각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밤늦게 퇴근을 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모처럼 일기장을

펼쳤다. 하루종일 따라다닌 겨울바다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고 싶었다.


  작년의 일이 어젯밤에 꾸었던 꿈처럼 지나간다. 의미없이 보낸 수개월의 시간

보다 더욱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그런 꿈처럼 말이다..

  나는 펜을 들고 이렇게 썼다.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어슴프레한 저녁무렵의 하늘에 번지는

  노을을 보면서..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반사되는 불빛들을 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찾아간 영화관의 그 어둠속에서.'




  [끝..]



  * 올해의 마지막 글이 될것 같군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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