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eXpressio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Gentle ()
날 짜 (Date): 1995년12월24일(일) 20시12분04초 KST
제 목(Title):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 [2]





  도로위를 달리는 타이어의 마찰 소리와 간간이 신문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버스안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적은 탓도 있고 멀미를 하거

나 울어대는 어린 아이도 없었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의자를 젖힌 채 못다잔

아침잠에 취해 있었다.



  그녀와 나는 책을 꺼내 읽었다. 가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기도 했고

흔들리는 책을 보느라 피곤해진 눈을 풀겸 버스안을 이리저리 둘러 보기도 했

다.. 물론,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힐끔힐끔 훔쳐 보기도 했다.



  사람은 가만히 있는것보다 조금씩 흔들릴 때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어린애들을 잠 재울때 요람에 태워 흔드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버스나

기차 여행에서 의자를 통해 전해오는 약한 진동도 잠이 들기에는 더없이 좋은

것이다.



  어디쯤 왔는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졸음이 몰려왔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의

책 읽기도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눈도 피곤하고 회사에서 쌓인 피로를 제대로

풀어본 적도 없지 않은가.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무거운 머리를 가누기

가 힘들어 졌다. 이쪽으로 기우뚱, 저쪽으로 기우뚱..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


  진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향기 속에 파묻혀 끊어졌던 의식이 다시 깨어

났다. 한쪽 볼이 따뜻했다. 되살아난 평형감각은 내 몸이 기울어져 있음을

알게 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틈에 나는 그녀의 한쪽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작고 약해 보이는 그녀의 어깨에 나의 이 무거운 머리를 얹어놓고 잠

을 잤던 것이다. 행여나 자면서 침이나 흘리지 않았을까.. 하고 그녀의 어깨를

살펴 보았다. 다행히 침은 흘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쑥스럽고 미안하고 창피

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맙기도 했다. 내가 기대어 자는 동안 나를 깨우지

않고 한쪽 어깨를 빌려준 그녀가 고마웠다. 꽤 오랫동안 잠을 잤으니.. 그동안

그녀는 꼼짝도 못했으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데..

    - "저기.. 이거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면서 무릎위에 놓인 책을 건내 주었다. 내가 자기 전

까지 읽던 소설이었다. 잠에 취해 힘이 빠지면서 내 손에서 떨어진 책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줍게 내미는 책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이 비로서 떠올랐다. 나는 더욱 벌게진

얼굴로 간신히 한마디 했다.

    - "아.. 예.. 고.. 고맙습니다.."



  다른 무슨 말을 하려고 머뭇머뭇거릴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수줍게 웃음

짓는 그녀의 미소가 애써 무슨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같았다. 결국 나는

그녀를 따라 계면쩍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사람이 한순간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는건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그

짧은 순간동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감정들도 이런 몇줄의 글로는 표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소설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어나가는 글은 그저 머리 밖에서 맴돌 뿐이다. 안절부절 못해 두근

거리는 내 마음은 사춘기 소년의 그것처럼.. 창피스럽고 쑥스러워 어딘가 숨어

버리고 싶지만, 또한 결코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은 그런 상반된 감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더욱 자주 힐끗거리게 되었다. 그녀는 노트를 펼치고 뭔가를 쓰고

있었다. 아니 쓰기위해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다소곳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

기다가 뭔가를 끄적이고 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도 평온을 되찾게 되었고 잠시동안 잊었던 겨울바다가

다시 생각났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은 내가 보고 싶어

하던 겨울바다가 아닐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도대체 내가 오늘 하루를 투자하여

찾아가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가야만 한다는 이 의무감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버스는 대관령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창밖에는

이국적인 목장과 드문드문 눈이 쌓여있는 봉우리들이 멀리 보이고 있었다. 어딘들

어떠랴.. 도심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내 오른쪽 어깨에 뭔가 살짝 실리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

려 보았다. 잠이 든 그녀의 머리가 기대어져 있었다. 세상은 이래서 재미있는 것

일까.. 이번에는 그녀가 자고 있었다. 내 한쪽 어깨에 기대어서...


  어깨로부터 전해져 오는 따뜻한 온기와 향기.. 적당한 무게로 실려오는 것이

결코 싫지 않은 부담감이었다.




  [계속..]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