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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entle ()
날 짜 (Date): 1995년12월24일(일) 20시10분37초 KST
제 목(Title):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 [1]





    '나는 때때로 너를 기억한다.  어슴프레한 저녁무렵의 하늘에 번지는

  노을을 보면서..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반사되는 불빛들을 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찾아간 영화관의 그 어둠속에서.'



  그녀의 무릎위에서 미끌어져 떨어지는 노트에는 흐트러진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 글 밑에는 물음표 몇개와 의미없는 단어들을 몇개

끄적이다 만 흔적이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너는 누구일까.. 그녀는 누굴

생각하며 이 글을 썼던 것일까..

  나는 펜을 들었다. 내 한쪽 어깨에 기대어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

나는 그녀가 적어놓은 글 밑에 이어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의 너를 기억하며..


    '내가 혼자일 때 문득 찾아오는 너의 기억은 이내 나를 .....'

    ......


  ------------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아침마다 울어대는 시계소리에 잠을 깼다. 언제부

터인지 시계가 울어주지 않으면 잠을 깰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잠을 깨고도

정신을 차리기 까지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잠을 자고나도 개운하지

않은 이 피로감. 눈을 뜨면서 후유.. 하는 긴 한숨부터 새어 나온다.


  오늘도 여느날과 같은 하루가 될 것이다. 회사에 출근해서 쌓인 일을 처리

하고, 스트레스 좀 받다가 담배 몇개 피고, 밤 늦게 지친 몸으로 퇴근 할 것이

다. 그래.. 지쳤다. 사는게 재미가 없다. 온통 무의미한 것들이 주위에 가득

할 뿐이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 거릴 뿐이다.



  지난 밤에는 꿈을 꾸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꿈을 꾸었었다. 아주 긴 꿈을 꾼것 같았다. 의미없이 흘러가버린 지난 수개

월의 시간보다 더욱 기억할 만한 그런 꿈이었을 것이다. 다시 그 꿈을 꾸고

싶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애써 꿈을 기억해내려 하다가 갑자기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살다

보면 그럴때가 있지 않은가. 불현듯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때.. 곧바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애타는 조바심에 초조해

하는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곤 하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그런 것이다.

겨울 바다는 그날 내가 꼭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회사에 하루 휴가를 신청하고 고속 터미널로 갔다. 출발 대기중인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적한 버스간에서 창가에 앉아 내가 왜 겨울 바다를

보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생각은 굳어져 버리고

내 머리 속에는 그저 활짝 펼쳐진 수평선과 넘실대는 파도, 간혹 심술굳게

끼룩 거리는 갈매기와 바다 특유의 시끄러운 소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누군가 내 옆에 가볍게 앉는 기척이 멍해진 나를 깨웠다.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다 보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 옆에 앉고 있었다. 스치듯 지나

가는 어색한 눈인사. 으례히 그런 것이다. 서로 모르는 처지에 4시간씩이나

같이 앉아 가야하기 때문에 어색하게 인사같지 않은 인사를 하게 된다. 그리

고는 더욱 어색하게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려 버린다.


  그녀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었을때.. 나는 어떤 향기를 맡을 수 있었

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겨 나오는것 같았다. 아직도 그녀

의 머리가 촉촉한 윤기를 띄고 있는것을 보면, 머리 감을때 사용한 비누 냄새

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 향기에 놀란 것은.. 그것이 바다 냄새였기 때문이다.

아니,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분명히 바다 냄새였고, 나는 놀란

듯이 그녀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 전과는 달리 찬찬히 그녀를 새겨 본 것이다.

긴 생머리에 눈을 감고 차분히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뭔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던 것일까.. 그녀는 눈을 뜨고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바라 보았다.

생각보다 눈이 컸다. 당황해진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쑥스

러운 미소를 흘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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