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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hermit (카똘..)
날 짜 (Date): 1995년05월23일(화) 19시52분43초 KDT
제 목(Title): [퍼온글] 당신의 순결에 대한 보고서 2



Posted By: Anonymous (Anonymous) on 'Anonymous'
Title:     당신의 순결에 관한 보고서 2
Date:      Thu May 11 20:08:33 1995


 화엄사로 올라가는 길은 더 할 수 없이 적막하고 한가로왔다. 바람은
그다지 차지 않았지만 오히려 조용한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한기
같은것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을 이어나가 그로 하여금 편하게  대화를 끌어갈 수 있게
해주었고 그도 마치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많은 얘기들을 자연스레
펼쳐낼 수 있었다. 그는 대웅전에서 인자하고 장엄한 부처님 모습을
바라보며 기원을 할것이 있었다.

  그녀는 무슨 기원을 했을까?

한 겨울의 화엄사는 정숙과 고요로 만들어진 또하나의 세계였다.
그들은 발소리 숨소리 까지 죽여가며 경내를 돌아보다가 명부전에
이르러 발길을 멈췄다. 죽은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시간에 따라 열두
지옥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는,  그 열두 지옥을 다스리는 대왕들의 상이
모셔져 있었고 세상을 떠난지 얼마안되는 몇사람들의 신위가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문득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녀는

  그는 문득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녀는
평등대왕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합장한채 기도를 하는가
했더니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울고 있구나,

  그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게 낫겠다 싶어 조용히 물러나와 어두워지는
저녁 산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겐 분명 뭔가가 있는것 같은데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일이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해는 이제 완전히 넘어가
법당에 불이 밝혀지고 스님들의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한 무게로
들려왔다. 일단은 아랫마을로 내려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는 점심을 굶었던
터라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아직도 명부전에서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식당 아저씨께 차편을 물었더니 여기서 바로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긴한데 그게 막차가 이미 떠났단다. 내일 아침차를 타든지  아니면
광주로 돌아 나가 밤 기차를 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의견을
물었더니 내일 아침차를 타는것이 낫겠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지리산
치마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숙소를 어떻게 하나? 겨울이라 방이 있을까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만 그게 각자 따로 하나씩 잡아야 하는건가 아니면...?

되겠지만 그게 각자 따로 하나씩 잡아야 하는건가 아니면...?

  어찌되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하나만 잡으면 방값 절약되고 좋지 뭐, 얘기도 할 수 있고....'

  단지그녀가 어떤 생각일까가 궁금했는데 물어보기도 어색해서 일단
그대로 모텔을 찾아들어갔다.

  방이 있느냐고만 묻는 그들에게  종업원은 당연히(?) 한방만을 내주었고
어제만해도 생면 부지였던 그들은 하룻밤을 같이 지내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막상 이렇게 되고나니 한편 기가 막혔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남자니까 그렇다고 쳐도 저 애는 도대체 뭘 믿고 나랑
한방에서 묵을 생각을 했을까? 정말 순진한건가 아니면 바보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생긴것하고는 달리 아무때 아무하고나 살을 마주 댈 수 있는
그런 여자 일까? 설마, 지금까지 얘기를 나눈 걸로 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는데, 그건 아닐거다.'

  일단은 어색함을 풀기위해  TV를 틀었지만 볼게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조그마한 가게가 하나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약간의 군것질 거리와 음료수를  살겸해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날이
그다지 춥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불빛없는 시골의  칠흑같은 어두움엔
설명하기 힘든 부드러움 같은 것이 있었다. 흡사 두 팔을 벌리고 뛰어
들면 그 속에 소리도 없이 삼켜질것만 같은 거대한 검은색 털실 뭉치.

  그는 그녀와 나란히 얼어붙은 논둑길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맑은
겨울밤의 별자리들, 특히 이처럼 공기가 맑은 곳에서는 머리위로  별들이
내려와 쌓이는듯한 청량감을  마음껏 맛볼 수가 있다. 그는  몇가지
별자리들과 그에 얽힌 전설들을 얘기해 주었다. 원래 전설이라는 것은
눈물이 나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법이다. 그는 어두움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에 또 다시 어떤 서글픔이 떠오르는걸 느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춥다고 했다.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안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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