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hermit (카똘..) 날 짜 (Date): 1995년05월23일(화) 19시50분34초 KDT 제 목(Title): [퍼온글] 당신의 순결에 관한 보고서 1 Posted By: Anonymous (Anonymous) on 'Anonymous' Title: 당신의 순결에 관한 보고서 1 Date: Thu May 11 20:06:38 1995 그는 겨울이라 그런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행선지들을 훑어보았다. 이제 막 완도에서 올라오는 길이었지만 그는 도시에서 머무르는 것이 싫었다. 더군다나 이제 겨우 오후 2시인데 어디 한군데는 충분히 가볼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는 겨울이라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는 계산하에 지리산 화엄사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스 정원은 40여명, 줄을 선 사람들 의 숫자는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서넛은 커다란 보따리들을 하나씩 둘러멘 모습들이 여기 저기 장사를 다니는 상인들 같았고 중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학생들이 또 서넛 있었다. 그처럼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없는듯 했다. 마악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들어왔다. 그때 조그마한 키에 기다란 목도리를 두르고배낭을 하나 짊어진 갓 스물 정도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안내원에게 화엄사에서 부산으로 연결되는 차편이 있는가를 묻는것 같았다. 혼자 여행하는 남자들은 생각보다 많지만 여자들은 극히 드물다. 그녀는 본격적인 여행 차림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해서 일행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화엄사에 누군가 아는 사람을 찾아가는 모양이군, 그런데 왜 거기서 부산으로 가려는 걸까? 혹시 혼자서 여행을 하는거라면 저 나이에는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뭔가 노파심 같은 것이 호기심과 더불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일부러 그녀보다 한발 늦게 버스에 오른 그는 그녀에게 함께 앉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거의 텅텅비다시피한 버스에서 굳이 같이 가겠다는 커다란 몸집의 남자를 그녀는 생각보다 사근사근하게 대해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버스가 시내를 벗어날쯤 해서 말을 붙여보았다. "화엄사엔 무슨일로 가시죠? 아는 분이라도 계신가요?"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냥 간다는 것이었다. 말투로 보아서는 이 지방 사람이 아닌듯 했다. 그는 먼저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전 서울에서 왔어요, 남쪽 지방을 두루 돌아볼려는 참이죠 특별한 계획같은건 없지만 화엄사를 보고선 부산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녀는 부산 얘기가 나오자마자 반응을 보였다. "저도 부산으로 가려는 참이었어요." "저도 부산으로 가려는 참이었어요." "그래요? 여행길에 친구가 생겼군요, 그런데 혼자 여행을 종종 다니시는 모양이지요? 저는 방학만되면 혼자서 여행하는게 거의 버릇처럼 되었어요, 사실 겨울에 여행하는게 쉬운일은 아니지만, 사람들한테 치이지 않아서 좋은점도 있고..."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실텐데....." "글쎄요, 사람 마다 다르겠죠, 저는 여행을 나설땐 짐가방 이외에 따로 한보따리 짐을 가져와요. 그건 일상의 사소한 고민 거리일 수도 있고 가끔은 심각한 인간적인 고뇌, 뭐, 쉽게 얘기하자면 사람은 왜 사는가 따위의 어쩌면 답이없는 질문들, 혹은 나 자신의 어리석음 그리고 그에 따른 실수들 같은거죠. 그래도 나는 항상 여행 을 끝내고 돌아갈때면 이런것들이 하나둘 답을 찾고 있다는걸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또 나서게 되는거고. 물론 생각이야 어떻든 현실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최소한 그걸 풀어낼 어떤 실마리 같은것을 찾아내게 된다는 거죠. 누구는 여행다닐 시간에 그 문제에 집중해서 풀어내는게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는 잘 답이 나오질 않더군요." 그녀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차창 밖엔 눈덮힌 들판과 산들 그리고 파리한 겨울 해가 고개 숙인채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말을 이으려는 그에게 이번엔 그녀가 먼저 질문을 해왔다. "그럼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세요?" "네, 학교를 다니긴 하는데 학생은 아니죠." "학생이 아니라면...선생님 이신가요?" "뭐 말하자면 그런 셈인데,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는건 좀 쑥스러운데요, 아직은 정식으로 발령받지도 못한 시간강사에 불과하니까요." "아아 그렇군요, 뭘 전공하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들을 다루는 거죠, 분자들 원자들 이런거요, 화학을 하고 있어요, 새 학기부터 일반화학 실험 강의를 맡게 되죠." "전혀 과학자 같아 보이지는 않으신데요?" 그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런 얘기를 가끔 듣긴 하는데 만약에 생긴대로 뭔가를 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 문학이나 역사 또는 철학을 했어야 할겁니다. 인간의 모든 나는 아마 문학이나 역사 또는 철학을 했어야 할겁니다. 인간의 모든 고뇌는 혼자 다 짊어진것 간은 표정을 늘 하고 있으니까요." "어머, 그럼 저는 뭘 전공하고 있는것 같아요?" "글쎄요? 설마 화학은 아닐테고....." "금방 말씀하셨쟎아요, 저는 철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네에? 저런, 제가 실수를 한것 같군요."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지금 몇학년이시죠?" "2학년이요, 곧 3학년이 되지요." "현대 철학사 강의는 들었나요?" "아뇨, 하지만 수강신청을 해놨어요, 새학기에 들을려구요." 그는 대학 시절 문학연구회라는 서클에 몸을 담고 있었다. 이름과는 약간 달리 학생 운동에 많은 비중을 두는 서클이었는데 그는 그 안에서 약간 달리 학생 운동에 많은 비중을 두는 서클이었는데 그는 그 안에서 철학과 경제학 그리고 현대사등을 공부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는 그 당시에 익힌 지식들을 두고 이건 내가 고등학교때 끝냈어야 했던 공부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사실 전인교육이니 뭐니들 떠들어대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그가 받았던 교육은 입시 학원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사람되기 전에 공부만 잘하는 기계가 되면 하나도 쓸데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될 확률이 무식한 사람보다도 더 클거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가 자연 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엉뚱하게 인문, 사회 과학에 빠져들게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어느쪽에 관심이 있나요? 서양철학, 아니면 동양철학?"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더 공부를 해봐야죠." "잠깐, 우리 아직 이름도 서로 모르는데, 저는 S라고 합니다. K대 84학번이죠." "저는 L 이라고 해요 인천에 있는 I대를 다니고 있어요." "인천이요? 인천이라면 따지고보면 서울보다도 먼건데 광주까진 무슨일로 오신거죠? 사투리를 안쓰시길래 혹시나 하긴했었는데...." "학교에서 장애자를 돕는 봉사 서클을 하고 있는데 이번 방학때 광주에 "학교에서 장애자를 돕는 봉사 서클을 하고 있는데 이번 방학때 광주에 있는 한 재활원에 활동을 나왔다가 혼자만 남았어요." "혼자 남다니요?" "공식적인 스케줄은 어저께 다 끝나고 오늘 오전에 모두들 올라갔는데 저만 이근처 사는 친척들을 뵙고 가겠다고 하면서 남은거죠. 저도 혼자서 하는 여행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번에 기회가 좋은것 같아서...." "그럼 전에는 혼자 여행해본적이 없다는 얘기네요? 무섭지 않아요?" 세상 남자들은 모두 늑대들인데." "별로 그런 걱정은 안해요, 저도 제 앞가림은 하니까요." "아 , 물론 보통 상황이라면 별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라는게 있으니까...." 잠시 사이를 두고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부산에는 아는분이 있어요?" "아뇨, 그냥 겨울 바다를 보고 싶어서요." "어쨌든 나도 부산으로해서 울산, 대구로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니까 그동안 동행을 했으면 좋을것 같은데...어때요?" 그녀는 말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화엄사까지는 아직도 30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도착시간이 4시경이니까 짧은 겨울해를 감안하면 서둘르는게 나을것 같아 도착하자마자 바로 화엄사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가 그녀와 나눈 대화 속에서 발견한건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뭘까? 단순한 여행이 아닌 건 틀림없는것 같은데. (M)편지답장, (R)답장쓰기, 또는 (C)계속? [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