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hjchoi () 날 짜 (Date): 1994년11월27일(일) 02시13분10초 KST 제 목(Title): 왕십리 분원 비망록 (10) 그 발표회가 있은 후 일주일이 채 못되서 그는 전세계적인 명사 가 되어 있었다. 국내 각 언론매체에서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사실도 수천명을 학살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로부터 면죄부 를 받았다는 사실도 금새 꼬리를 감춰 버리고 어느새 온통 자하 랑 교수의 발명품 이야기 뿐이었다. 심지어는 자하랑 교수의 의료기기가 15년만 일찍 발명되었다면 성수대교 사고때 죽은 사람들이나 광주사태때 죽은 사람들도 모 두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신문 기사들도 종종 나곤 하였다. 세계 도처의 대학 병원들에서 보낸 이 발명품의 임상실험에 참여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들이 자하랑 교수의 이름을 수취인으로 봉투에 달고 왕십리 분원 메일박스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사실 그날 발표회에서는 쥐를 대상으로 해서만 실험결과를 입증 해 보였지 사람에 대해서는 입증해 보인 것이 전혀 없었다. 따라 서 이 의료기기가 과연 사람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 를 알아보는 임상실험은 아주 필수적인 것이었다. 보통 이러한 임상실험은 의약품의 경우 그것의 부작용이 나타나 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에서 10년까 지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자하랑 교수의 발명품은 워낙 폭 넓은 범위의 난치병들을 아주 짧은 시간내에 치료할 수 있는 장 점이 있기 때문에 말이 임상실험이지 결국은 난치병에 걸린 수많 은 사람들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베팅(betting)에 의 해 각 병원에 설치되자마자 본격적인 치료용으로 사용될 것이 분 명하였다. 이제 칼자루는 자하랑 교수가 쥐고 있었다. 부르는 것이 값이라 는 말은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듯 싶다. 과연 그는 이 기기의 값으로 얼마를 부를 것인가? 각 언론사에서 자하랑 교수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였지만 그 는 거의 한달이 지나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번에는 전번 발표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왕십리 분원으로 운집하여 발디딜 틈도 없게 만들었다. 이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자하랑 교수의 회견 내용을 요약해 보 면 다음과 같다. 그는 이 기기의 대당 가격을 100억원(회견 당시의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거 밑지는 장사지만 인류공익을 위해 단돈 100억원만 받겠다고 하였다.)으로 정하였으며, 이 기기를 팔아서 생기는 수 익금은 전부 자신의 꿀꿀이 공학 전용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데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금에 대한 결제는 발표 당시의 물가기준으로 100억원에 상당하는 금의 중량을 기준으로 해서 전적으로 그 중량 만큼의 금으로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발표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왕십리 분원 본관 지하에는 커다란 금고가 설치 되었으며 매일 같이 금을 가득 실은 트럭이 본관 앞에 도착하고 금을 금고에 내려놓고 돌아가고 하는 쳇바퀴 같은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자회견이 있은지 약 1년후 그 기기는 난치병에 걸린 수많은 사 람들을 부작용이 전혀 없이 치료하여 그 안전성을 입증하였고, 전세계로 약 400대가 팔려 나간 것으로 보도 되었다. 그 해 연말에 국세청에서 발표된 소득세 1위는 물론 자하랑 교수 였다. 400 * 100억원 = 4조원 이에 부과된 세금과 기기를 만드는데 사용된 원자재 및 인건비 등등을 전부 빼도 3조원 이상이 순수익으로 남았다. 기자회견 때 언급했던 그의 연구단지 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시 작되는 찰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