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guest ( Bshift) 날 짜 (Date): 1994년08월25일(목) 16시46분18초 KDT 제 목(Title): "GAME" - 전날 아침 그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쓰 비비에서 새벽까지 매달리다 보면 해가 중천까지 뜰 때 쯤 되서 일어나서는 세수하기도 전에 꼭 게쓰에 접속하여 밤 새 또 무슨 일이 없었나 확인하는 습관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는 항상 자신의 육체적 건강과 자신의 정신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이 게쓰 비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뭔가 생활에 틈이 생기고 흐뜨러짐이 나타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분명히 게임 스코어의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의뢰인의 집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그가 아주 짧은 2줄 짜리 메일을 받은 것은 어제 밤이었다. * 보낸이(From): veritas () * 날 짜 (Date): 1994년08월04일(목) 23시23분26초 KDT * 제 목(Title): * * 의뢰할 일이 있습니다. * 내일 아침 9시까지 XX동 901-8호로 와주세요. 그가 재빨리 Admin 메뉴로 나와서 사용자 확인을 해 보았으나, 이미 veritas라는 사용자는 자신의 아이디를 삭제한 뒤였다. 이런 식으로 의뢰인이 먼저 자신에게 의뢰 메일을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인 데다가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고 아이디를 없애버리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기분이 찝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아무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불러내는 건 무엇인가? 제길~ 어떤 놈이지? 내가 킬러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여러가지 기분나쁜 의문들이 생겼지만 그에게 있어 게임의 진짜 묘미는 아무 판단도 예측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뛰어드는 데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발 밑에 굶주린 사자가 들어 있는 함정이 파여 있는 걸 알고도 송곳 하나 들고 맨몸으로 뛰어들 인물이었다. 그는 XX동 전철역을 나왔다. 겨우 아침을 벗어난 시간인데도 옷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몇년만의 지겨운 무더위가 그의 예민한 신경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사실 여름은 살인이 사람들의 불쾌지수를 높여 놓기 때문에 살인이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살인하기에 좋은 계절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갈라진 살틈으로 베어나는 빨간색의 피를 좋아했지만, 땀에 젖은 살덩어리나 무더위 속에서 풍기는 피냄새, 더욱 나쁜 것은 자신의 몸을 땀으로 뒤집어 써야 하는데 대한 불쾌함이었다. 마치 불결한 도살장에서 일하는 백정같은 느낌이 그를 참기 힘들게 했다. 적어도 자신은 냉방이 잘 된 정육점에서 살코기와 내장들을 분리해 내는 산뜻함 같은 것이 더 어울리게 느껴졌다. 그가 사냥을 할때 일부러 불리한 조건을 즐기면서 게임을 풀어간다는 면에서 볼 때, 더위는 그의 유일한 예외적 조건이기도 했다. 이번 사냥감은 제발 에어콘 시설이 잘 된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