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guest ( hjchoe) 날 짜 (Date): 1994년08월25일(목) 17시31분22초 KDT 제 목(Title): "GAME" - 전날 정오 일단 의뢰인의 집은 냉방이 잘 되고 있었다는 점이 그의 맘에 들었다. "호호.. 저희 집은 삼성 에어콘을 쓰고 있는데, 엊그제 겨우 고쳤어요. 고객 신권리 선언 이전에 나온 물건이라 그런지 몇번이나 말썽이예요." veritas라는 작자가 여자였다는 점도 그를 놀라게 했지만 그 여자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 대는 것이 그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아주 잠깐 동안의 첫만남이지만 그의 예측을 빗나가고 있는 모든 상황들이 냉정한 킬러인 그를 아주 당혹스러운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먼저, 전혀 살인 청부하고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젊은 여인의 발랄함.. 또, 여인의 노출이 많은 여름 옷차림의 틈새를 통해 얼핏 내 비쳤던 검은 브라자가 잘 훈련된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조금씩 압박해오고 있었다. 더우기.. 이 흔해빠져 보이는 어떻게 보면 경박스러워까지 보이는 이 여자가 자신의 이런 혼란된 마음을 다 꿰뚫어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는 크고 긴 호흡을 내쉬며 힘들게 말을 꺼냈다. "누굽니까?" "누구요, 저 말이에요?" 여자가 가벼운 웃음을 잃지 않고 되물어 왔다. 제길~ 겨우 한다는 말이 '누굽니까?' 한마디라니.. "아니요, 상대방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예전처럼 킬러의 짧고 냉정한 말투로 대답을 하려 애썼지만 그러한 부분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베카라는 애에요." "b, e, c, c, a... BECCA 말입니까?" "예.."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베카라는 아이디는 게쓰 비비 내에서 상당히 인기가 높은 여자중의 하나였다. 자신도 그녀의 재치있고 당돌한 글에 호감을 갖고 있는, 그녀의 글이라면 빼놓지 않고 읽을 정도였다. 그녀가 유명하게 된 계기는 anonymous라는 보드에 몇몇 남자들에 의해 벌어진 지저분한 글들에 대한 반박 포스팅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다. 그당시 남자들의 그녀에 대한 저질스런 성적 모욕감을 주는 끈질긴 공격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침으로써 비비내에 공감대를 형성, 저질스런 무리들을 내쫓은 것이다. 특히 그 당시 다른 보드에선 교양있고 수준있는 포스팅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꼬봉이라는 자가 anonymous 보드의 분탕질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사건은 많은 사용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며칠 안에 끝낼 수 있죠?" "글쎄요.. 일주일 정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너무 길군요. 3일 안에 끝내 주세요." 이제 여인의 얼굴엔 더 이상의 발랄함이 없이, 베카를 향한 증오만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서둘러 보죠." 그는 이제껏 사냥을 하는 데 있어서 결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최적으로 조절해왔다. 사실 3일이란 시간이 결코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게임의 기승전결을 제대로 구성하기엔 짧은 기간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인의 요구를 쾌히 승락하고 있는 자신이 놀라왔다. 마치 선생님의 말에 고분고분 하는 착한 학생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아요. 믿음직해 보이는 군요. 사례는 충분히 드리죠."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만히 여인의 젊은 육체를 바라 보면서, 그녀의 몸뚱이 이곳 저곳에 상상의 송곳을 들이 대어 보았다. 여인은 결코 만만한 사냥감이 아니었다. 구석에 몰린 고양이처럼 깨진 유리잔을 들고 그를 노려 보고 있었다. 벌써 그의 뺨과 팔의 상처엔 피가 스며나고 있었다. 그는 정면에서 억센 팔로 여인의 목을 누르며 벽에 여인의 몸을 붙였다. 여인의 팔에 든 깨진 잔이 그의 배를 후비고 있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송곳을 여인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송곳이 여인의 검은 브라자를 끊어 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다시 여인이 밝은 목소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흠칫 놀라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제 밤에 잠을 오래 자지 못한 탓인지.. 더위 탓인지.. 아니면 알수 없는 여인의 의외성 때문인지 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여기 그녀의 주소... 그리고... 이건 착수금이에요." 여인이 테이블 위에 메모지와 돈뭉치를 내려 놓으며 얘기했다. 빳빳한 만원짜리 묶음이 그녀의 준비성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돈뭉치를 가만히 노려 보고 있을 때 그 위에 더 두꺼운 뭉치가 하나 더 얹혀지고 있었다. "이건 특별한 조건이 붙는 돈이에요.." "......" "먼저 죽이기 전에 강간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