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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uest ( hsung)
날 짜 (Date): 1994년08월25일(목) 16시32분28초 KDT
제 목(Title): "GAME" - 바로 전날


그는 은밀한 게임을 즐긴다. 그에게 있어 이 삶은 하나의 게임이고
이 게임의 목적은 죽음이다. 누구든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걷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은 죽음이라는 목적지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그렇게 죽음을 자신의 일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게 그의 삶, 그의 게임이다. 그는 물론 삶의
방편으로서 자신의 의뢰인에게 돈을 받기는 하지만 돈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었다. 그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새롭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상대에게 죽음의 고통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에게 살인은 그야말로
하나의 시이며 예술인 것이다.

그가 즐기는 또 하나의 게임은 게쓰라고 불리는 비비에스이다.
그는 오히려 실제의 삶보다 더 진지하게 통신상에서 자신의 identity를
구축해 갔다. 가끔씩 벌어지곤 하는 논쟁이나 토론에 있어서도,
어느 한쪽편을 드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양비론이나 양시론에
기울지 않는 독특한 균형감각과 그렇면서도 자기 할말을 결국 다하는..
궤변적인 논리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그의 포스팅을 읽다 보면
가늘고 튼튼한 철사줄을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손가락이라도
대면 금방 잘려 나갈것 같은 그의 날카로운 신경증이 그가 사용하는
단어 단어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RE:를 달지는 못했다.
가끔 그에게 멋모르고 reply를 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결국 그의 현기증나는
아름다운 악마주의 시를 메일로 받게 되고는 슬슬 꽁무니를 빼곤 했다.

한편으로 그는 채팅과 잡담 수준의 포스팅, 농담, 또 아주 가끔씩 보여주는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그의 순수한 감성을 보여주는 글등에도 나름대로
열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그와 어울리는 걸 즐겼다.
사실 이부분야 말로 그가 게쓰라는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내는 그의 이미지였기에 대부분의 게쓰 사용자들은 그의 발랄함과 재치,
순수함을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 들였고, 간혹 그의 억제되지 못하고 드러나는
지나치다 싶은 예민함을 보여주는 글을 읽더라도 그럴수도 있겠지 하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에게 또 다른 게쓰 비비에스의 용도는 그의 의뢰인과의 대화 채널로써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통신이 갖는 여러명이 사용한다는 매체로서의
취약성 때문에, 직접적인 청부 거래가 이루어 진다기 보다는 비비에서
자주 발생하는 분쟁이나 개인적인 감정의 틈에 직접 끼어들어서 고객을
확보하는 조심스러운 방법을 써왔다. 특히 자신이 직접 감정적으로
갈등을 빚어내는 인물이 나타날 경우, 그 인물을 사냥감으로 정한 뒤에
제3의 인물을 끌어들여서 그를 의뢰인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야
말로 그의 최대 성취요 살아가는 맛이었다. 그는 가끔씩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가는 아이디들과 또 금방 그 틈을 메꾸는 새로운 아이디들을 확인
하면서 비비에스라는 이 묘한 사냥터에 만족을 금치 못했다.


그는 오늘도 바지 주머니속에 들어있는 송곳을 손으로 확인하면서 문을
나섰다. 직업 킬러에게 있어 어울리는 무기는 결코 아니었지만, 이렇게
유치하고 원시적인 무기가 그의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에게 송곳은 칼보다도 몇 배 더 자신의 감정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 도구였다.

그는 가능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일에 성공할
때마다 더욱 더 게임 스코어가 높아지고 자신의 에너지가 늘어나는
것으로 믿었다. 무방비의 상대를 총으로 쏜다거나 - 그 시끄러운 총의
소음과 함께 한번에 푹 거꾸러지고 마는 상대의 몸뚱이를 본다는 것은
인간 생명의 정교함과 오묘함을 창조하신 신에 대한 모독이며 무책임한
짓이었다 - 뒤에서 기습적으로 줄로 목을 조르는 따위의 짓들은 직업정신이
아직 생기기 전의 초보 시절에나 하던 짓이었다.

전에 게쓰 비비에 직업에 대한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을 때에도, 그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고 그 일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 패배자들에 대해 강한 비난을 퍼부은 일도 있었다. 그는 강한 상대를
또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들 고유의 죽음에 대한 반응을 사랑했다.
정말이지 죽이기도 귀챦은, 존재 가치가 파리 정도 수준도 못되는 인간들도
많았다. 왜 그들은 더 그렇게 자신들의 삶에 애착하는지...
그는 모든 생명은 공평한 존엄성을 부여받았다는 따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신이 최선을 다해 만든 걸작품의 신체 부위가 하나 하나 절단되고 파괴되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 그는 그런 걸작품을 파괴하는 데는 신의 창조력에
버금가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만이 그가 할수 있는 최선의 신에 대한
기도였다 - 그는 신의 예술성에 경탄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높아져 가는 게임 스코어와 자신의 내부에서
점점 더 늘어가고 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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