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13일 일요일 오후 01시 17분 47초 제 목(Title): 월간미술/ 프랑스의 미술진흥정책 월간미술 1998. 9 세계의 미술진흥정책[1] 프랑스 아틀리에 제공에서 컬렉션까지 정부 주도의 창작지원 프로그램 김애령 <미술사> ------------------------------------------------------------------------------- - 지난해만 하더라도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와 함께 문화는 더 이상 다음 세기의 비전도 아니고 보살필 여유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버린 인상이다. 경제 침체는 미술 시장의 불황을 초래했고, 특히 창작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월간미술》은 국내외의 미술진흥정책을 비교·분석하여 국내 환경에 적합한 창작 지원 모델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하였다. 문화 진흥에 대한 주장들이 식어버린 지금, 작가의 창작 환경만은 보장되어야 미술의 미래가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이 기획의 첫 번째로 프랑스의 창작 지원 현황을 소개한다. 문화 강국 프랑스는 일찍부터 문학 예술의 창작 지원과 소비에서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것은 창작 지원 관련 제도·기구·시설을 시대와 환경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변화시킨 성과다. 정부의 예산 편성이나 아틀리에 신진 작가 지원 정책 등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본다. IMF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시대에 문화와 문화 정책을 말하는 것은 할일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문화란 경제만큼 절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남아 있는 것이 바로 문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문화는 하루아침에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남의 것을 돈주고 살수는 더더군다나 없다. 문화는 정신 행위의 집산이다. 그것이 경작에 비유되는 것은 시간과 노동의 축적이 기적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점에서 유사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비춰 주는 거울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이다. 그 거울과 이정표가 없는 사회는 목전의 이해에 급급할 수밖에 없고, 외부 상황의 변화에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는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경제 경쟁으로, 그리고 차츰 문화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문화 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문화 경쟁은 단순히 한 국가나 사회의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동반한 경쟁이다. 이런 문화의 힘을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나라가 프랑스이다. 16~17세기부터 국가가 나서서 문화의 가시적 현상인 창작 현황을 파악하고 지원하였으며, 국가 자체가 제1의 문화 소비자가 되었다. 문화는 국민을 계몽하고, 국제 사회 안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드높이는 도구였다. 문화 부분에 있어 국가의 적극적인 참여는 프랑스의 전통이 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문화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정부 1959년 문화부가 독립 기구로 창설되고, 문인 정치가 앙드레 말로가 첫 장관이 되었다. 그는 재임 10년 동안 창작을 적극 지원, 전국에 문화회관을 지어 문화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62년부터 69년까지 총리를, 그리고 69년부터 74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퐁피두는 문화정치를 이상으로 삼고 현대 예술 전반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파리 한복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터에 모든 예술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하고 창작하고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대형 문화의 집을 건설할 것을 결정했다. 그의 꿈은 77년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국립문화예술센터’로 실현되었다. 대규모 도서관과 현대미술관을 결합하여 현대의 모든 창작 부문과 사상·학문이 한자리에서 만나도록 구상된 퐁피두 센터는 일반인들의 현대 예술 소비장이자 차세대 예술가를 배양하는 교육장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하여 완성된 예술품을 경배하는 장소인 그간의 미술관과는 달리 토론과 창작을 자극하며 감상과 휴식, 교육과 쇼핑이 혼합된 장소로서 파리의 핵심적 문화 공간이 되었다. 하루 이용객 5천 명을 예상하고 설계된 퐁피두 센터는 예상의 5배가 넘는 방문객을 맞이해, 지난 20년 간의 총 이용객 수는 1억 4천 6백만 명에 달했다. 이런 성공의 피해로 20년된 건물이 50년 이상 사용한 것처럼 낡아 버렸고, 1999년 12월 31일까지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97년 9월 퐁피두 센터를 폐관한 이후 파리의 현대 예술 무대가 썰렁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기관의 역할과 위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또 다른 문인 대통령 미테랑과 아마추어 연극배우였던 자끄 랑 문화장관이 커플이 되어 추진한 80년대의 문화 정책은 과거 왕정 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건축 사업과 고급 예술의 대중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 현대미술과 디자인· 사진· 만화 등 다양한 창작 부문을 지원하기 위하여 문화부 내에 예술국을 창설하기도 했다. 근자에 예술국은 지원 분야를 비디오와 테크놀로지 아트·패션·요리에까지 확대하였다. 예술국은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이다. 미술 교육, 창작 지원 및 홍보, 구매와 공공 주문을 통한 미래의 문화유산 형성을 3대 활동 분야로 정하고 있다. 예술국은 행정부과 학예부로 구분된다. 학예실에는 13명의 학예관들이 교육과 창작 현장을 국가 기관과 연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장을 파악하여 지원 방법을 고안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하며 전시와 심포지엄을 조직한다. 또 국립 컬렉션이나 공공 미술 발주에 작가나 작품을 연결시키며, 그 심의회에 참가한다. 예술국의 연간 예산은 문화부 전체 예산의 3.6%에 해당되는 5억3천만 프랑(1천5백억 원)이며, 이중 공공 컬렉션과 공공 주문에 할당된 예산이 6천만 프랑(170억 원)이다. 지방분권 정책에 따라 지방별로 설치된 지방예술국이 지방의 공공 컬렉션과 공공 미술 발주 결정에 참여하며, 문화부 예술국의 예산 중 60%가 각 지방의 미술 교육과 창작 후원 및 지방 컬렉션에 후원에 할애되고 있다. 예술국 산하에는 가장 실험적인 미술을 보급하는 아트센터가 있다. 전국에 38개를 헤아리는 아트센터는 프로그램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 종종 아틀리에를 갖추고 창작과 연구·이론·교육이 만나는 장소로도 쓰이는데, 어린이에서부터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시를 통하여 현대미술을 경험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가들을 위한 심포지엄 및 워크숍을 개최하여 지역문화 활동에 이바지한다. 또한 문화부 예술국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센터를 갖추고 자유 열람토록 하고 있으며, 모든 공공 컬렉션에 관한 정보를 전산화하여 ‘비디오 뮤지엄’이란 이름 아래 역시 자유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창작의 첫 번째 조건이며, 그만큼 국가는 아틀리에를 수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건설비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임대 아틀리에를 짓는 건물주에 대한 지원 정책 덕분에 70년대부터 신축 시영 아파트나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에는 흔히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장이나 작업장이 딸린 아파트들이 지어지게 되었다. 국가 보조 규모는 위치나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아틀리에 당 최고 10만 프랑(2천8백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런 원조는 문닫은 공장을 단기 혹은 장기적으로 아틀리에로 변용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리처드 디콘 <가상과 사실 사이> 빌외브 다스크 현대미술관 야외 조각 1992년 공공 주문으로 제작되었다. 본 기사의 사진은 프랑스 문화부 예술국 (DAP)에서 제공했다. 사진은 B. Scotti와 L. Lecat, 필자가 촬영했다. 벤 <말의 벽> 프랑스 블루와 시에 설치. 공공 주문으로 제작된 사례다. 1995 안씨 시 주차장 바닥에 설치된 이브 벨로르레의 작품. 1%법에 의해 제작되었다. ------------------------------------------------------------------------------- - 해외미술 월간미술 1998. 9 세계의 미술진흥정책[1] 프랑스 아틀리에 제공에서 컬렉션까지 정부 주도의 창작지원 프로그램 김애령 <미술사> ------------------------------------------------------------------------------- -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창작의 첫 번째 조건이다. 국가는 아틀리에를 수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건설비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임대 아틀리에를 짓는 건물주에 대한 지원 정책 덕분에 70년대부터 신축 시영 아파트나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에는 흔히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장이나 작업장이 딸린 아파트들이 지어지게 되었다. 창작조건 확보 위한 아틀리에 지원책 아틀리에를 직접 짓거나, 기존 건물을 개조하여 작업 환경을 꾸미려는 작가들도 전체 공사비의 50% 한도 내에서 최고 5만 프랑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96년도 한 해 동안 아틀리에 공사 지원 및 설비 구입 지원을 받은 작가는 총 65명이었으며, 총 지원금액은 1백40만 프랑이었다. 지역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을 단기 초청하는 목적을 가진 아틀리에도 국가의 원조를 받아 건설할 수 있다. 이 경우 초청 작가 선정은 지방 문화 프로그램에 따르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 보조 아틀리에 입주자는 국가가 선정한다. 선정 대상은 예술가협회에 등록한 작가로서, 다시 말하면 년간 일정 액수의 소득을 가지고 세금을 내며 예술가 사회보장법의 혜택을 받는 작가로서 문화부 예술국이나 지방 예술국에 공공 아틀리에 입주 신청을 한 경우에 해당된다. 한 해에 20~30개 정도의 아틀리에가 국가 보조로 건설되며, 새로 아틀리에를 배당받는 숫자도 이 정도 수준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모자르기 때문에 작가들은 한 번 아틀리에를 얻으면 절대로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파리에서 공공 아틀리에를 얻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다수의 한국 작가들이 파리 시내와 근교에 공공 임대 아틀리에를 얻어 작업하고 있다. 다른 모든 부문의 지원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국적은 문제되지 않는다. 1910~20년대에 레제와 샤갈이 작업했던 유서깊은 아틀리에촌 ‘라 뤼슈’에서 작업하는 작가 한명옥 씨는 “이런 아틀리에 지원 제도가 작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작가로서 자리 잡을 때까지 정말 어려운 시기에는 어떤 지원도 요청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작가로서 자리를 잡아야 아틀리에뿐 아니라 각종 지원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데뷔 시기에 극소수의 행운아들은 빌라 메디치에 6개월에서 2년간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다. 예술국 산하기관인 빌라 메디치는 1666년 로마에 세워진 프랑스 학술원으로 미술, 음악, 건축 분야의 ‘로마상’ 수상자들에게 이태리 체류의 기회를 주었다. 앙드레 말로 문화장관이 아카데미즘의 전형이 된 로마상을 폐지하고 빌라 메디치를 학업을 마친 25~35세의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초청 아틀리에로 변경했다. 응모 조건은 프랑스나 유럽연합 혹은 불어권 국적 소지자에 제한되며, 로마 체류에 관한 합법적인 사유나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 매달 적지 않은 액수의 생활보조비까지 받으며 작업을 할 수 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영구적인 아틀리에 외에 단기간 거주할 수 있는 아틀리에는 전국에 40여 개 있다. 연간 이런 아틀리에에 초청되는 작가는 2백여 명을 헤아리게 되는데, 체류기간 중 작업을 전시하거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들뿐 아니라 외국 작가들도 초청되며, 거탕? 기간 중 매달 일정액의 재정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방의 아트센터들 중에는 초청 아틀리에를 갖추고 작가와 지역사회간의 교류를 문화 프로그램화하는 경우도 흔하다. 단기 초청 아틀리에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이 뚜렌느 지방에 위치한 칼더의 아틀리에다.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가 살던 전원 주택과 그가 건설한 아틀리에를 국가가 인계 받아 1988년부터 매년 한두명의 조각가를 초청하고 있다. 아틀리에의 총면적은 6백평방미터에 달하며,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갖춰져 있다. 6개월에서 1년 간의 체류 기간 중 제작된 작품은 전시되고 화집으로도 발간된다. 예술국과 칼더 아틀리에 협회가 초청 작가를 선정하며, 국제 교류의 목적을 띠고 있는 만큼 종종 이름 있는 외국 중견 작가들이 초청된다. 그 중에는 라비노비치·가와마타·콜리발·플렌사 등이 초대된 바 있다. 창작·출판·전시 지원정책 예술국은 80년대부터 연간 4백50만 프랑(12억원)의 창작 장려기금(FIACRE)을 책정, 국적과 상관없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개별적인 프로젝트나 국내외 연구 여행과 현대미술 관련된 출판을 지원해 주고 있다. 개별적인 지원을 받는 작가들의 수는 연간 1백여 명에 달한다. 프로젝트는 개인전이나 카탈로그 출판이 아닌 작품 제작을 뜻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업이나 국내외의 특정 지역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은 특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매해 20여 명의 화가·조각가·사진가들이 창작 장려기금 덕분에 외국에서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미술시장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젊은 작가들의 화랑 전시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 첫 전시 지원금 제도를 두고 있다. 청년 작가의 첫 전시를 기획하는 화랑이 예술국에 지원요청을 할 수 있으며, 매해 60여 건의 신청 중 자료 심사를 거쳐 30건 정도가 후원을 받는다. 또 젊은 작가들에 한해서 개인전 카탈로그 제작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재불 한국 작가 중에서도 한명옥과 유봉상이 첫 전시 지원을 받은 바 있다. 한편,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국제 아트페어의 위치가 커지면서 그에 따른 전시 효과가 큰 점을 감안하여 94년부터 바젤 아트페어와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화랑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 지원 조건은 전시 작가의 절반 이상이 프랑스 작가여야 하는데, 연간 30여개 화랑이 이런 지원을 얻어 아트페어에 나가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큰 컬렉터는 정부이다. 일찍이 1873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생존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1959년 독립된 문화부가 탄생하면서 진정한 현대미술 구매 정책이 시작되었으며, 1977년에는 ‘국립현대미술 수장고(FNAC)’가 탄생했다. ‘프낙’은 미래의 문화유산을 구성하고, 프랑스 현대미술을 장려하며, 공공 미술관의 전시는 물론 관공서나 대사관을 장식한다는 공공 서비스 목적을 가지고 있다. 최대 컬렉션, 정부의 구매 정책 연간 2천만 프랑(56억 원)의 구매 예산을 가지고 현대미술· 사진· 디자인 세 분야에 걸쳐 2백~3백여 점을 구입한다. 구입 심사회는 1년에 3번 열리며, 화랑이나 미술관 큐레이터 혹은 작가가 직접 작품 구입을 의뢰할 수 있다. 심사위원은 예술국과 국립미술관을 대표하는 관공 소속인 4명과 문화부 장관이 임명하는 작가· 평론가· 컬렉터 등 미술계 인사 9명으로 구성되며 이들의 임기는 3년이다. ‘전시실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프낙은 여느 컬렉션과는 달리 특정한 성격이나 방향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한 시점의 창작 양태를 기록하며, 국제적인 미술 동향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구입한다. 여기에는 원숙기에 달한 작가들 외에도 신인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된다. 매해 구입 물량의 30%는 프낙에 수장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택하며,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같은 작가의 작품을 연이어 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가지고 있다. 전체의 절반 가량은 외국 작가의 작품들이며,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심문섭의 조각, 이우환의 데생과 조각, 윤희의 조각, 구정아의 설치, 한명옥의 조각, 신성희의 회화가 소장되어 있다. 구입 작품들은 파리 근교의 라데팡스에 위치한 지하 5층, 총면적 3천2백평방 미터 규모의 지하 수장고에 보관된다. 프낙은 작품의 보관과 보수를 책임지며, 동시에 자료화하여 국내외 미술관과 공공장소를 통하여 일반에게 알려지도록 한다. 일단 프낙에 소장된 작품은 영구 보존되며 어떤 이유에서건 국립컬렉션에서 분리되거나 판매될 수 없다. 정부의 작품 구입은 구매자 층이 상대적으로 적은 현대미술 취급 화랑들에게 경제적·정신적 지원이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다양함이 결국 성격 없는 컬렉션을 형성하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전위미술의 관용예술화라는 비난도 있다. 또 규모에 비해 외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예술국 학예관인 알베르트 그린파스 엔귀엔 씨는 “선택에는 오류의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문화란 살아 있는 현상인 만큼 이를 지원하는 정책은 끊임없이 현상에 적응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프낙 컬렉션은 가능한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걸작이 아니라 이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들을 수집하고 있다. 프낙이 있기에 프랑스 미술관과 전시들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정부의 컬렉션 정책을 변호한다. 지방분권 정책의 일환으로 1982년부터 각 지방들도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23개 지방에 현대미술 수장고 ‘프락’(FRAC)이 있으며, 문화부 예술국과 지방 정부로부터 작품 구입 예산을 마련한다. 각 프락은 작품 선택에 있어 자율권을 가지며 지역별 특성을 중시하고 있다. 오늘날 프락의 소장품은 2천5백여 작가의 작품 1만2천 점에 달하며, 프낙과 함께 전산 자료화되어 있다. 프락은 지방에서 현대미술의 창작 지원과 소개에 관한 중심 역할을 하며, 지방 작가를 발굴하는 기능도 아울러 갖고 있다. 알베르트 엔귀엔(문화부 예술국 조형예술부문 학예관) 아틀리에 ‘라뤼슈’ 전경. 20세기 초 레제와 샤갈이 작업하던 아틀리에 촌인 라뤼슈는 국가 소유의 건물로, 관내에 50여 개의 작업장이 있다. 문화부 예술국 정보센터 전경. 아틀리에· 워크숍· 전시· 장학금 등 각종 지원에 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파리의 한 아파트 1층에 마련된 시영 아틀리에 전경 아트센터 훼름 드 뷔쏭 전경. 파리근교의 곡물창고를 전시장으로 개조한 경우다. 이처럼 많은 아트센터가 공장이나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빨레 루와이얄에 위치한 문화성 전경. 내정에 폴 부리의 움직이는 조각 분수가 보인다. 국립현대미술 수장고(FNAC) 전경. 멀리 보이는 <인간 개선문>과 대응하여 FNAC건물에 설치된 모흘레의 기하학적인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FNAC의 지하 수장고 전경 ------------------------------------------------------------------------------- - 해외미술 월간미술 1998. 9 세계의 미술진흥정책[1] 프랑스 아틀리에 제공에서 컬렉션까지 정부 주도의 창작지원 프로그램 김애령 <미술사> ------------------------------------------------------------------------------- - 프랑스의 가장 큰 컬렉터는 정부이다. 일찍이 1873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생존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1959년 독립된 문화부가 탄생하면서 진정한 현대미술 구매 정책이 시작되었으며, 1977년에는 ‘국립현대미술 수장고(FNAC)’가 탄생했다. 공공 주문과 1%법 1983년 예술국 내에 설치된 공공주문기금은 연간 2천만 프랑의 예산을 갖추고, 생활 환경을 향상시키거나 특정 장소의 역사를 기념하는 작품을 주문 설치하고 있다. 공공 주문은 주어진 환경에 내용적, 시각적으로 부합하는 작품을 설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성이나 성당 같은 문화재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꾀하기도 하고, 신도시의 환경 프로그램에 공공주문을 포함시키거나 조각 공원 조성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주문한 경우라도 환경조형물은 곧잘 시비 대상에 오른다. 관(官)이 현대미술 소비를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공공주문 기금에 의한 첫 케이스 중 하나로 문화부 안뜰에 세워진 다니엘 뷔랑의 줄무늬 기둥 <2개의 무대>는 과거 에펠탑이나 퐁피두센터,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처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또 뒤뷔페의 모뉴멘트 <형상의 탑>은 주민의 반대로 예정된 자리에 세워지지 못하고 결국 파리 교외의 한적한 공원 내에 설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질적 선택과 작품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결국 토론과 대화로 극복, 시민들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었고, 오히려 명소로 만들었다. 공공 주문은 기념비적인 작품뿐 아니라 조경· 공연· 비디오· 사진· 판화· 조명에도 해당된다. 프랑스는 공공주문 기금을 설치한 이래 지난 15년 간 전국에 총 7백여 점의 공공 미술품을 설치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84년부터 93년까지 10년 동안 1천8백여 점의 환경조형물을 설치한 우리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로젝트 결정에서부터 실현까지 보통 3~4년, 때로는 10년 이상 소요되는 행정상 복잡한 절차는 작가들을 지치게 만들지만, 공공 미술이 가지는 책임의 막중함은 복잡한 절차를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공공 주문은 국립컬렉션의 작품 구입처럼 예술국의 행정관·학예관 및 작가·평론가·큐레이터·컬렉터 등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공공 미술 부분에는 리챠드 세라·루이즈 부르주아·클레스 올덴버그·코수스·온 카와라·일리야 카바코프 등 국제적인 명성의 외국 작가들도 다수 참가하였다. 장소성과 지역성이 중요한 부문인 만큼 지역 문화 행정이 적극 참여하며, 이 때 예술국은 프로젝트의 행정적 진행과 예산을 관장하며 전체 예산의 50% 정도를 원조한다. 나머지 50%는 지방 예산과 민간 메세나가 담당한다. 1951년도에 제정된 1%법은 공공 주문과 함께 공공 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이다. 1%법은 처음에는 공립 교육 시설물 신축이나 확장 공사시 공사비의 1%를 환경미술에 지출할 것을 의무화한 법이었으나 차츰 그 적용 대상을 모든 공공 건물로 확대했다. 1%에 의한 공공 미술 제작은 국가나 자치단체 같은 건축주와 건축가가 작가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결정한다. 예술국 내에 1% 담당부서가 있으나 행정적 진행 역할을 담당하며, 작가와 작품의 결정에는 건축주(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와 건축가가 적극 참여한다.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공모 형식을 취하여 환경미술에 대한 범사회적인 토론을 유발하고 작가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신도시의 경우 마스터플랜 단계에서 예술가를 참가시켜 공공 미술을 도시계획의 일부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10여 년 걸려 완성된 파리 교외의 세르지 퐁뚜와즈시에 설치된 다니 캬라반의 <거대한 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와롱성 국립 현대미술 컬렉션 공공 주문 중에서 역사와 현대미술, 미술 행정과 지역 사회가 행복하게 조화를 이룬 예가 와롱성 컬렉션이다. 1993년부터 문화부 예술국과 문화재관리국 그리고 고성이 위치한 뿌와뚜 샤랑뜨 지방의회·뚜와르스시·와롱시가 공동으로 14·15세기의 고성에 현대미술 컬렉션을 추진하였다. 컬렉션의 내용은 큐레이터 쟝 위베르 마르뗑에게 일임되었고, 그는 와롱성의 역사이기도 한 르네상스의 기이한 물건 컬렉션 전통을 계승하여 ‘기이함과 경이로움’이라는 테마로 79명의 작품을 구입했다. 이 중 47점의 작품은 현지작업으로 공공주문되었으며 솔 르윗·볼탕스키·스포에리·볼프강 라이프·마리나 아브라모비치·펠릭스 바리니 등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또 프낙과 프락의 컬렉션에서 대여받은 작품 중에는 재불 작가 윤희의 조각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와롱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 속에 만들어졌다. 이는 과거와 현대의 대화를 통하여 현대미술의 수용을 돕고 지역 문화에 이바지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상 살펴본 프랑스의 현대미술 후원정책과 제도는 문화부 예술국과 지방 예술국이 중추가 되어 문화부 내의 다른 전문 부서에 비하면 적지만 액수상으로는 상당한 예산을 확보, 작품의 산실인 아틀리에에서부터 목적지인 전시실까지 창작의 전과정을 작가와 함께하는 것이다. 동시에 일상 속에 현대미술을 보급하고 미래의 문화유산을 준비하는 것이다. 일단 프랑스에 거주하는 예술가에 한해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지원하는 것도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정책이지만, 그 내용과 방식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막대한 창작 지원금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눠 주기식이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프랑스 작가를 효율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미술과 미술시장이 관공서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또 너무 큰 권한을 가진 정부가 현대미술 분야에 적극 관여함으로써 일종의 국가 독점사업처럼 되어버렸으며, 민간 메세나들이 현대미술에 관해 소극적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현대 창작 지원은 그 자체에 대한 찬반 시비를 떠나 프랑스의 전통이며, 문화에 관한 하나의 사고 방식이라 말할 수 있다. 또 수혜자에게는 물심 양면으로 소중한 계기가 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프랑스의 손꼽히는 현대미술 수집가인 영화 제작자 마렝 카르미츠 씨는 “국가뿐 아니라, 전 국민이 제각기 능력껏 예술가들이 살아남도록 도와야 한다. … 이것이 크리스티나 소더비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술이 상품가치 이전에 한 사회의 동질성을 말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국경 없는 자유 경쟁의 시장논리에서 제외시켜 보호해야 한다는 프랑스 문화관을 대변하고 있다. 쟝 뒤뷔페 <형상의 탑> 파리 근교의 이씨 레 물리노시 공원에 설치된 건축적 조각이다. 강렬한 그레피즘의 표피 안에는 흑백의 명상공간이 있다. 내부의 닫힌 공간 중심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며 환상적인 공간 체험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다니엘 뷔랑 <2개의 무대> 문화성이 위치한 파리 중심지 빨레 루와이얄 내정에 설치된 흑백 줄무늬 기둥과 창문에 드리워진 천 설치 작업. 뷔랑의 이 작품은 공공미술로서 역사에 남을 찬반 논쟁을 야기시켰다. 국립 컬렉션 와롱성 전경. 르네상스 때부터 컬렉션 전통이 있는 고성을 국가가 구입하여 ‘경이와 기적’이란 테마로 영구 컬렉션화했다. 실내는 솔 르윗의 벽화로 장식된 방이 있다. ------------------------------------------------------------------------------- - 해외미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