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13일 일요일 오후 01시 09분 18초 제 목(Title): 권혁수/ 왜 작가주의 디자인인가?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in Korea 왜‘작가주의 디자인’인가 권혁수 <I&I 디자인 플래너> ------------------------------------------------------------------------------- - 이미지 소비가 현대 사회의 문화적 특징이라면 디자인은 그러한 이미지 문화의 1차 생산자다. 그런데 지금 디자인이 처한 현실은 자본의 논리·소비 성향· 유행· 클라이언트의 취향 같은 갖가지 제약 속에서도 창의성과 개성을 발휘해야 하는 외줄타기의 형국이다. 이 글의 문제 의식은 곧 디자이너가 주체적인 디자인 정신을 구현할 방법론으로서 스튜디오 디자인 시스템과 작가주의 디자인 철학을 제안하는데 있다. 오늘날 디자인의 범주는 산업제품은 물론 기업홍보· 실내공간· 도시환경· 취미생활 등 사회 전반을 망라하고 있으며, 국가정책· 정당정치· 경영전략· 산업기술· 생활설계· 환경공학 등의 분야까지 그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그만큼 디자인은 인문 정신과 과학적 사고, 예술적 직관, 공학 기술의 종합체란 이야기다. 디자인 문화는 이러한 종합적 지식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적 삶의 방식과 의미의 커뮤니케이션 체계’인 셈이다. 그러나 디자인의 현실은 이런 문화를 향한 사회적 인식과 실천 과정에 있을 뿐이다. 디자인의 현실과 문화 사이에는 디자인 과정(생산·유통·소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생산하는 디자인 활동, 유통되는 디자인 물건(또는 언어나 환경), 소비하는 디자인 행동의 문제이다. 이 문제들이 디자인의 문화를 결정한다. 이 글은 생산활동에서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가 성립되기 위한 전제들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디자인의 생산활동은 디자이너 개인이나 집단, 또는 일정한 맴버쉽 스튜디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디자인의 생산적 주체는 행위와 사고의 주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단지 누가 디자인하는가에 앞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관점에 의해 주체가 결정된다. 또한 디자인은 사회적인 컨텍스트, 즉 관습과 제도, 유행과 취미에 대한 보수 또는 진보적 입장과 태도를 통해 실현된다. 그런 만큼 개인의 창조력보다는 조직의 추진력과 상상력이 주체의 생산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특별히 디자이너 개인의 퍼스널리티를 강조한 경우일지라도 결국 그가 속한 환경을 통한 것이므로 디자인 생산활동의 주체는 일정한 시스템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디자인 선진국들의 디자인 정책과 컨설팅 계획들은 이미 생산 주체를 하나의 체계로서 이해하고 있고, 디자이너의 퍼스널리티조차도 시스템의 전략적 형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디자인의 대상이 하나의 정보·제품·공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조건·상품화 계획·환경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근대 이후 1백여 년의 디자인 역사는 바로 이 시스템으로서의 디자이너·그룹·스튜디오의 디자인 활동이다. 최초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1926년 노먼 벨 게데스(N. B. Geddes)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자신의 저서 《지평선》(1934)에서 스튜디오의 디자인 시스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문제가 주어지면 나와 내 동료들은 사무실에 모여 그 문제에 관해 가능한 한 모든 측면에 대해 토의를 벌인다. 주제의 성격에 따라 여러 유형의 디자이너·엔지니어·연구담당자들이 모인다. 당면 과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우리는 거의 표준화된 작업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디자인 운동의 촉매, 스튜디오 활동 게데스는 미국 디자인의 인더스트리얼리즘 시대를 대표하는 4인의 디자이너 중 하나였는데, 헨리 드레이퍼스(H. Dreyfuss)·월터 도윈 티그(W. D. Teague)·레이몬드 로위(R. Loewy) 등과 함께 전후 미국 산업화 시대의 디자인 역사를 만들었다. 이들은 서로 각자 다른 규모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이 스튜디오 활동을 통해 디자인은 점차 독자적인 전문 직종으로 부각되었다. 특히 이들은 자신의 디자인 이념을 피력한 저서들 ― 《오늘의 디자인》(W. D. Teague, 1940), 《인간을 위한 디자인》(H. Dreyfuss, 1955) ― 을 통해 스튜디오의 정책과 디자인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레이몬드 로위는 자신의 독특한 디자인 스타일을 과시하면서 최초의 스타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들 디자인 스튜디오 시스템은 디자인의 생산 원리와 실제를 규정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 시스템은 단지 개인과 집단 행위의 집합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디자인 생산 환경과 디자인 스튜디오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후기 산업사회인 오늘에 이르러 세계 디자인계가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디자인 시스템이 있다. 198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모던 디자인 개혁을 선언한 스튜디오인 에토레 소사스(E. Sottsass)를 주축으로 한 멤피스(Memphis) 그룹이 그것이다. 멤피스의 목적은 “폭 넓고 의미있는 디자인 언어를 개인과 사회 속에 공급”(E. Sottsass)하는 것이다. 이는 “디자이너는 그가 속한 사회와 시대를 디자인한다.”는 멤피스 맴버 미켈레 데 루키(M. D. Lucchi)의 21세기 디자이너상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 그룹은 단순한 디자이너들의 모임이 아니라 디자인을 둘러싼 산업 이데올로기로부터 디자인 조형의 언어적 독자성을 회복하려는 1960년대 이후 후기 모던, 또는 포스트 모던 디자인 운동이었다. 안드레아 브란치(A. Branzi)의 아키줌(Archizoom, 1966년) 스튜디오, 알렉산드로 멘디니(A. Mendini)의 알키미아(Alchymia, 1977년) 스튜디오 그룹 운동과 같은 연장선상에 멤피스가 있는 것이다. 이들 역시 저술과 창작활동을 통해 모던 디자인에 대한 급진적인 반디자인(Anti-Design)운동을 전개했다. 디자인의 산업주의적 편향과 경제적 결정론을 경계하고, 의미체계의 디자인 조형과 디자인 언어의 상징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디자인 스튜디오의 역사는 그 시대의 디자인 이념과 목적을 향한 운동적 차원의 약진이었다. 그것에 대한 비평적 평가는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디자인 생산의 주체가 하나의 장르운동적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디자인 문화의 시대적 좌표를 설정하는 과정에 주목한 것이다. 이러한 약진운동의 또 다른 예로는 1954년에 설립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푸시 핀(Push Pin Studio)과 1970년에 결성된 그라퓨(Grapus Studio)를 들 수 있다. 푸시 핀 스튜디오는 1950년대 미국의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새로운 세기를 여는 전초기지였다. 밀튼 글레이저(M. Glaser)와 시모어 크와스트(S. Chwast)를 중심으로 한 이 스튜디오는 개념적 일러스트레이션의 가능성과 함께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그래피즘을 선언했다. 에이전시 기능을 넘어서야 한편 프랑스의 그라퓨 스튜디오는 피에르 베르나르(P. Bernard)를 주축으로 4명의 맴버로 구성된 그래픽 디자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집단 창작을 통해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기존의 상업적 자본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그래픽 메시지 기능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한 의견과 입장을 제시한 디자인 행동주의자들이었다. 디자인 스튜디오는 동시대의 디자인 환경에 대한 생산적 주체, 다시 말하면 디자인의 사회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디자인의 주체는 시스템이며, 디자인 이념의 원리와 실제를 구현하는 생산 시스템이다. 디자인의 원리는 문화적 의미를, 실제는 가치를 결정한다. 지금 한국에 이러한 디자인 시스템이 있는가? 이 비판적 질문은 직업으로서의 디자인 직종과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디자인 산업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자각하고 반성하는, 그래서 그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의 있음과 없음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디자이너의 전문성이 제자리를 찾고, 한국 디자인의 국제적 지위와 독자적인 정체성을 세우는 열쇠이다. 그러므로 한국 디자인의 생산 체계, 스튜디오의 문화적 인식 능력을 묻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는 대학의 커리큘럼 속에, 그 가치는 클라이언트에게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국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없다. 만약 있다면 에이전시 기능만을 지닌 도안·공작·장치 공사가 있을 뿐이다. 한국 디자인의 생산 활동 즉 시스템으로서의 스튜디오 활동이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운동적 차원의 디자인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작가(auteur; creator)이다. 작가 정신, 작가 태도, 작가 활동으로서 디자인의 생산 시스템을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디자이너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미학적 문제이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에서 진화된 예술 형식(디자인)의 주체, 또는 근대적 문화생산자로서의 디자인 작가는 오늘의 디자인 현실을 반성하고 자각하는 하나의 계기이다. 그래서 디자인의 주체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인가’이다. 작가는 무엇인가? 디자인에서 작가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작가주의(auteur-ism)로부터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와 디자인은 매우 흡사한 사회 문화적 컨텍스트를 갖기 때문이다. 미술과 사진이라는 전통적 예술 체계로부터 분화된 장르, 기계 복제와 집단 기술에 의한 생산 방식, 대중사회의 감성공학적 소비재라는 점과, 산업과 대중에 대한 변증법적 장르인식의 역사가 또한 그렇다. 영화의 작가주의는 1960년대 뉴 웨이브 운동과 함께 산업과 영상 기술에서 영화를 끌어 내는 전위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영화의 진정한 주체는 누구이며, 영화 장르의 문법은 무엇인가를 규명함으로써 영화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 영화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킨 작가주의의 기수는 앙드레 바쟁(A. Bazin)과 프랑소와 트뤼포(F. Truffaut)였다. 멤피스 그룹 멤버인 에토레 소트사스의 책꽂이 디자인 1981 멤피스 그룹은 디자인을 둘러싼 산업 이데올로기로부터 디자인 조형의 언어적 독자성을 회복하려는 1960년대 이후 후기 모던, 또는 포스트 모던 디자인 운동의 진원지였다. 그라퓨(Grapus) 그룹 전시 포스터 푸시 핀 스튜디오 멤버들 위로부터 밀튼 글레이저· 폴 데이비스· 에드 소렐· 짐 맥멀란· 레이놀드 루핀스· 존 알콘· 시모어 크와스트 시모어 크와스트 제40회 아스펜 국제디자인회의 포스터 디자인 1990 이억배 글·그림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야기》 재미마주 1998 아동 일러스트 전문 출판사 재미마주가 펴낸 책들 ------------------------------------------------------------------------------- - Design Studio in Korea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in Korea 왜‘작가주의 디자인’인가 권혁수 <I&I 디자인 플래너> ------------------------------------------------------------------------------- - 작가 정신을 통한 시스템 재편 요청 작가주의는 작가의 창조 이데올로기(예술 천재론)가 아니라 작가정신을 향한 하나의 비평적 태도이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헐리우드의 영화 생산 시스템(협동 기술) 속에서도 일인칭 관점으로 말하는 존 포드(J. Ford)와 알프레드 히치코크(A. Hitchcock)였다. 이들을 작가로 명명하고 다른 기술적 장인과 구별했다. 따라서 영화의 작가는 영화가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산업이라는 제약된 장르 조건을 견제하면서도 자신의 영상적 퍼스널리티를 성취했거나 성취해 가는 일련의 전략적 태도의 주체를 말한다. 이것은 장르의 사회적 조건에 낭만적으로 저항, 도피하는 행위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앙드레 바쟁은 “작가의 정책(politique des auteurs)은 다른 어느 예술보다도 영화에서 필요하며, 본질적으로 비평적 진실을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영화에 있어 진정한 예술적 창조 행위는 어느 곳보다도 약점이 많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타적 적용은 또 다른 위험을 몰고 오게 마련이다.”라고 경고하면서 “영화는 공동 작업하는 예술이므로 작품마다 각각의 작가에 개별적 비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모든 감독이 작가는 아니며, 모든 작가도 감독은 아니다.”(엔드류 세리스)는 것이다. 이 작가주의 역사와 함께 오늘의 현실, 한국 디자인 스튜디오의 문화적 생산성을 가늠해 보자. ‘디자인은 예술인가, 산업인가’의 차원이 아닌 과학으로서의 디자인, 그 생산 시스템인 작가는 프로젝트와 언어에 대한 생산적 태도를 통해 논의할 수 있다. 디자인 프로젝트는 단일한 디자인 대상(物, object)이 아닌 그것을 둘러 싼 행위·기능·조건 등의 유기적 관계인 디자인 계획(事, project)을 말한다. 예컨대 의자를 디자인한다면 대상은 의자이고, 계획은 ‘앉는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다나카 요(田中 央, 다나카 디자인오피스 대표)에 따르면 의자에는 앉는다는 행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인데, 의자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고 ‘앉는다’를 디자인하는 것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디자인의 문화적 개념은 이러한 계획의 디자인, 즉 보이지 않는 일(事)의 디자인이다. 디자인 작가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컨텍스트를 가시화하는 계획으로서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러한 디자인 프로젝트는 최근 디자인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를 주목한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은 정병규이다. 한국 북디자인의 작가주의 시대를 연 그는 1984년 책이라는 대상의 디자인 계획을 이렇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을 디자인 할 때는 음식을 요리할 때 인간의 미각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책이란 인간화될 수 있는 상상의 논리와 감동의 공간을 포함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책의 본질적인 측면을 밝히고, 책과 인간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입장이 아마도 북디자이너의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듯이 책에는 책격이 있다.’는 북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명제를 세웠다. 또 하나의 사례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공동체와 출판사 재미마주(대표 이호백)의 활동이다. 1995년 결성된 일러스트레이션 공동체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 류재수를 주축으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교육·출판 그룹이다. 이 그룹은 그 동안 한국 어린이 그림책의 근본적인 오류, 즉 어린이는 미숙아이고 그들의 미의식은 동심 천사주의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자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가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워크숍 교육, 관습적으로 정형화된 그림책과 언어를 다양하게 확대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의 조형적 리얼리티를 회복하기 위한 기획 출판사업, 독자들(어머니와 어린이)을 위한 그림책 문화 강좌 등을 열고 있다. 그림책을 만든다는 소극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그림책 환경을 만들어가는 디자인 계획인 셈이다. 한국의 선구적 디자인 스튜디오들 산업디자인 분야에서는 1993년 ‘동양매직 포터블 가스쿠커’로 미국 IDEA (Industrial Design Excellence Award) 상을 수상한 이노디자인(INNO DESIGN) 의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다. 이노디자인의 힘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휴대용 가스쿠커를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연료가 공급되어야 하고, 이동이 자유로와야 한다는 기능만을 전제한 자유로운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디자인을 프로젝트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례들은 이 밖에도 많다. 매체의 형식적인 특성과 한계에 종속되기보다는 내용적인 특질을 찾아 내 독자성은 물론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노력들이 그것이다. 안상수와 한글 디자인, 전통과 일상이 결합된 최정화의 복합문화 공간, 역사 해석의 수단으로 전진하는 박재동의 애니메이션, 사회적 컨텍스트를 문화적 패턴으로 재구성하는 김현선의 환경 디자인 등은 디자인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계획으로서 바라보고, 컨셉과 프로그램을 편성·운용하는 작가 태도의 결정체들이다. 또한 디자인의 생산적 태도는 언어에 대한 것이다. 이 언어는 디자인의 프로그램 언어이며, 동시에 디자인 정책을 구성하는 담론이기도 하다. 영화의 작가주의 비평에서도 이 문제는 매우 단호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개성없는 감독들을 가리켜 “그들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다. 그 무엇을 자신있게 이끌고 가는 일정한 기준인 사실주의· 낭만주의· 공산주의 등 그 자신의 중요성이다. 그들은 이것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 전문가· 기술자이다.”라고 맥도날드는 혹평했다. 디자인은 그 대상의 존재 형식으로는 책이고 자동차고 부엌 공간이지만, 일상적인 존재 방식으로는 하나의 언어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그 대상이 사회적으로 갖는 상징적 언어 행위이며, 그 자체가 또 다른 이야기 방식을 결정한다. 최근 신문만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조선일보》의 <광수생각>은 단지 신문만화의 시각적인 변화가 아니라 말하기 방식의 일대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이야기의 내용이 시사적이든 교양적이든 간에 일러스트레이터가 자신의 어법(문체는 물론 관점과 해석, 수사적 비유와 상징)을 통해 일관된 퍼스널리티를 유지하면서 독자들과 대화를 이끌고 있다. 그 동안의 시사 만평·만화의 관행적 소재주의를 극복하고 매우 폭넓은 이야기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작가가 박광수다. 그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디자인 문제를 자신의 언어, 즉 만화 형식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산적 디자이너의 조건 한편 디자인 언어의 사회적 역량을 보다 의식적으로 강화한 포스터 디자인 프로젝트가 지난 몇 개월 동안 서울 시내 지하철 벽면에 게시되었다. 전국민주철도· 지하철노동조합연맹·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기획한 시민운동 차원의 공보 활동에 디자이너들이 먼저 포스터 디자인을 제안한 것이다. 단지 포스터 제작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역할 분담한 것이 아니라 실업 대책, 공공 부문 구조조정 등 사회적 이슈들을 함께 토의하고 지하철 공간의 커뮤니케이션 조건과 시각적 인지도, 이미지와 메시지의 상호 관계 등 전달 내용과 형식을 디자인하는 경험을 서로 나눈 것이다. 1996년 <인 루브(In Luve)전>을 통해 그래픽 데몬스트레이션을 선보인 디자인 작가들(김영철·장문정)이 그래픽 아지테이션을 시도한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의 자본 논리와 산업 환경을 벗어나 사회 단체의 입장과 견해를 전달하는 또 다른 언어 방식을 모색한 것으로서 자치단체들의 디자인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디자인 문화 환경을 예측하게 한다. 요컨대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는 현상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다. 인식적 차원에서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단지 물질로 존재하는 것을 문화적 관점에서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정의하고 또 다른 가치로 전이되는 문화 행동을 요구한다. 마구리지오 비타(M. Vitta)는 오늘날 ‘디자인 문화’라는 이념은 디자인이 생산에 선행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다양한 분야와 통합·상호작용하는 측면과 ‘물건의 문화’를 설명하는 차원에서 디자인은 생산의 잔여적 존재로서 사회적 분석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측면이 함께 있다고 말한다. 이 양측면의 모순을 전유(appropriate)함으로써 디자인의 문화적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디자인에 있어 생산 주체인 디자이너(특히 프로덕션 체제)와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가주의는 디자인 환경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의 재조정(예술도 산업도 아닌 디자인이라는)과 함께 매우 선급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앞선 어떠한 디자인 문화에 대한 논의는 공허한 것이며, 오직 생산적 전위(前衛)―작가주의 시스템― 만이 디자인 문화를 ‘경작(cultivate)’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박광수 조선일보 연재 <광수 생각>의 중 한 편. 시사만평과 만화의 관례적인 소재를 벗어나 일상의 폭넓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여 신문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김영철·장문정 지하철 노조 포스터 <공공부문 개혁> <실업> 1988. 그래픽을 통한 적극적 자기 발언을 시도한 경우로 디자인 액티비스트의 보기드문 사례다. 정병규 북디자인 이문열중단편전집 5권 1994 정병규는 책의 본질적 측면을 밝히고 책과 인간의 관계를 고려한 북디자인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북디자이너다. ------------------------------------------------------------------------------- - Design Studio in Korea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