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Art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13일 일요일 오후 01시 05분 40초
제 목(Title): 월간미술/디자인 스튜디오 베스트 7


디자인 정신을 실천하는
DESIGN STUDIO BEST 7 


-------------------------------------------------------------------------------
-

Product
이노디자인
Interior
가슴시각개발연구소

Typography
안상수

Editorial Design
I & I 

Animation
오돌또기

Public Design
김현선디자인연구소

Multi-Media
ISM Coporation 


-------------------------------------------------------------------------------
-
경제개발의 후광으로 본격화된 한국 디자인은 지금 ‘디자인 국부론’을 주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디자인이 고부가 가치의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많지만 ‘돈이 
되는’ 디자인이 굳 디자인이라는 논리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디자인이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제품과 소비자 사이에서 개성과 보편성, 
창의성과 시대적 미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관계속의 행위이고 보면, 
그만큼 주체적인 디자이너상을 찾기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디자인 스튜디오는 
그러한 한계 상황에 대한 상대적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문화생산적 활동 무대를 
확보하기 위해 형성되었다.
《월간미술》에서는 짧은 한국 디자인의 역사 속에서도 각자의 영역에서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스튜디오들을 소개한다. 일상의 모든 부분이 디자인의 
영역이듯 수많은 전문 스튜디오들이 있지만, 새로운 생활문화를 창조하고 
개선시키는 디자인 정신과 성과를 겸비한 스튜디오는 아직 흔치 않다. 여기 소개된 
7개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통해 인간·사회·문화를 생각하는 디자인너들의 활동과 
정신을 알아본다. 
-------------------------------------------------------------------------------
-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이노디자인·PRODUCT 
기업 이미지를 개발하는 제품
<김상규·디자인 이론>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제품 디자인을 통해 기업 전체의 정체성을 유도한다는 이노디자인의 전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어떠한 요구에도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준비와 연구가 대중의 삶 속에 오래 남는 굳 디자인을 만든다는 신념이다.
몇 해 전부터 ‘김영세’와 ‘이노디자인(INNO DESIGN)’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리콘 밸리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세우고, 성공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한국에 지사를 세웠다는 사실 등을 따져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대기업 디자인실 중심 구도를 갖는 한국의 제품 디자인 전통에서 그러한 
개별적인 조직 활동이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노디자인의 전략, 곧 김영세의 
전략이 설득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기본적인 그의 모토는 의외로 단순하다. 
보기에 좋고, 사용하기 쉬우며, 만들기 쉬워야 한다는 것 정도다. 실제로 
이노(INNO)의 디자인 결과물들은 그다지 ‘혁신적’이라 할 만큼 눈에 띄지는 
않는다. 스타급 디자이너와 스튜디오가 ‘튀는’ 디자인으로써 자신들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표출하고 지명도를 높이는 유럽의 경우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는 이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디자이너의 지명도에 민감하고, 기업들조차 내부의 
조직보다 외부 디자이너들을 활용하는 유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디자인 
주체보다 생산 주체에 대한 인식이 더 지배적이다. “좋은 디자인은 곧 판매에 
성공한 디자인”이라는 김영세의 말처럼, 이노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철저히 마케팅 측면을 고려하여 기업에 성공을 안겨 줄 제품을 
디자인한다. 개별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기업의 전체 제품에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도록 총괄적으로 컨설팅을 해오고 있다. 브라운이나 
필립스 제품들의 레이블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회사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은 
그러한 아이덴티티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세가 CIPD(Corporate Identity through Product Design)라고 정리하여 
동양매직 등에 적용하고 있는 이 접근 방법은 일회성에 그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포괄적인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확장, 제품 기획의 초기 단계부터 디자이너가 
참여할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디자인 과정에서도 스케치보다 컴퓨터 그래픽 
모델링을 많이 활용하는 것도 특별한 점이다. 초기부터 3차원적인 발상을 함으로써 
이미지 스케치의 왜곡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판단의 오류를 줄이고 프로세스를 
단축시킨다. 

따지고 보면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시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전략과 
프로세스지만,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을 프로젝트에서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클라이언트의 입장에 너무도 충실하여 
의식적인 주관이 약해지고 일종의 서비스에 그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은 김영세가 말한 ‘디자이너의 두 가지 책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디자이너의 진정한 기능을 기업 경영진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개발 첫 단계부터 창의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임을 넘어서서 디자이너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 즉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스스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가 늘 주장하는 ‘독립적인 사고 방식과 뚜렷한 디자인 철학을 가진 
창조자로서의 디자인 리더쉽’이라는 것도 이러한 역설적인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노는 디자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Good Design’을 하는 것에 지향점을 
두고 있으며, 이 ‘굳 디자인’이란 대중의 삶 속에 오랫동안 남는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함께 공유할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노에서 자체 브랜드 제품 개발을 계획하여 처음으로 내놓은 는 그러한 철학의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김영세의 디자인 철학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와 이노의 
디자인 결과물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파급 
효과가 큰 것이다. 이노가 자력으로 디자인 갤러리를 국내에 세우려는 계획도 
직접적인 기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김영세와 이노의 활동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거대 조직의 일부분으로 존재해 온 한국의 제품 디자인이 개인이나 
소규모 조직의 능력을 인정하고 또 그만큼 디자이너가 결과물에 대한 책임감을 
부가하는 문화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서울대와 미국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한 김영세가 86년 미국에서 설립했다. 작년 
10월에는 한국지사도 개설했는데, 미국 《비즈니스 위크》지가 선정하는 IDEA상을 
91년에 ‘Best Design of the Year’, 93년에 금상을 수상했다. 컴퓨터·통신 
기기, 부엌·가전제품 등을 전문으로 디자인한다.





김영세 씨(왼쪽에서 세번째)와 이노디자인 스탭들.





동양매직 가습기. 
제품 하나하나가 기업 전체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만든다는 이노디자인의 구상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다. 





손목 시계 (클라이언트 한독)


 
 

-------------------------------------------------------------------------------
-
DESIGN STUDIO BEST 7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가슴시각개발연구소·INTERIOR
예술과 통속의 기이한 결탁 
<김주원·NK 디자인 실장>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설치작가와 디자이너 사이를 활보하는 최정화의 감각이 돋보이는 스튜디오다. 
예술과 통속을 넘나드는 실내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인테리어 디자인계에서는 
이단아로 치부되는 ‘최정화 스타일’의 문화코드를 분석한다. 
세간에 떠도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범용적이다. 주택 단지 
어귀에 자리잡은 도배커튼집에서부터 목공소·간판집에도 인테리어는 이미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혹자는 꾸미지 않았기 때문에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노라고 ‘인테리어 디자인=방 꾸미기’라는 공식을 확정짓는다. 또 유식자 중 
일부는 인테리어 디자인이야말로 미학과 과학의 총합으로서 최고의 예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진리의 길임을 주장하며, 디자이너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사실에 
굳은 신념을 표명한다. 

이런 총체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성(聖)’과 ‘속(俗)’의 개념은 유용하다. 
엄밀히 말해 디자인은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존재하였으며 보다 
본질적인 것, 즉 성과 속이 혼재된 양상의 것이었다. 전문적 디자이너의 성역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여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급화된 키치 공간이나 시장 
패션을 속된 것이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정화는 인테리어 디자인계에서 흔히 말하는 이단아다. 그의 성분은 소위 정통이 
아닌 환장이 출신 사이비(인테리어 디자인계의 비정통에는 크게 환장이, 건축장이, 
그 외 기타 사이비가 있다.)이며, 디자인을 성으로 생각하는 주류 디자이너에게 
반기를 든 게릴라였다. 그러나 성과 속, 영과 육, 물질과 정신, 내용과 형식의 
경계를 혼돈케 하는 그의 코드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설치미술에서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뿐만 아니라 영화의 예술감독 
및 세트디자인·그래픽·편집 디자인에 이르는 광범위한 활동 영역은 이른바 
‘최정화 스타일’이 문화적인 상징성을 획득했음을 입증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최정화가 이제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가 자신의 활동 기반이 되지 
못하는 스타 디자이너, 즉 제도권 디자이너의 반열에 들었음을 의미한다. 

90년대 초반부터 그는 ‘스페이스 오존’· ‘올로올로’·‘+-O’ 같은 일련의 
바 시리즈와 파세르·박윤수 올스타일·소르젠테·데무· 전승현 부티끄· 
보티첼리 등의 패션부티끄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심상치 않은 경력을 가진 끼 있는 
디자이너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의 디자인 전략은 ‘속’된 부류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여지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성’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발가벗긴 재료들을 날것인 채로 갖다 붙이고,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나 알전구 아래 
드러난 벌건 살들을 태연하게 유린하듯 코앞에 들이대는 데도 그의 공간은 
이상하게도 해방구와도 같은 통쾌함으로 다가온다. 

상업 공간이라는 대중 문화의 현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고급 지향, 혹은 위장된 
교양과 점잖음 대신 최정화가 우리 앞에 내놓은 것은 조잡스러운 키치로 대표되는 
직설적인 일상의 흔적과 외설스러움과, ‘아직도 공사중’이라는 완성에의 거부, 
다듬어지지 않은 재료의 날(生) 감각, 물성(物性) 등이다. 이것들은 본래 재래 
시장 같은 ‘속세’에서나 볼 수 있던 것들로 감히 디자인의 성역에 
등장하리라고는 몇 년 전만 해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최정화의 예민한 수신 능력은 빠르게 다음 시대의 문화 코드를 읽어 내렸고 
한발 앞서 이를 보여줌으로써 혼돈과 무질서, 다중코드의 혼재, 경계의 부재 등과 
같은 90년대 초반의 우리 문화계의 일반적인 현상을 이끌어 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최정화를 맹신하는 그의 추종 세력들은 실상 최정화 자체를 신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화 코드 속에 깊이 잠식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섭섭하게도 최정화는 벌써 그 곳을 떠날 채비를 한다. 그의 수신기는 이미 
다음 시대의 문화 코드를 감지한 듯 ‘제스티’· ‘e·u’· ‘쌈지스포츠’ 등 
최근의 작품들에서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데, 보다 단순하고 묵직하고 젖어 있는 
듯한 재료 자체의 물성에 몰입하며 새로운 90년대 스타일인 미니멀리즘을 실험하고 
있다. 

다음 시대의 문화 코드를 감지하고 이끌어간다는 의미에서 최정화는 오피니언 
리더의 덕목을 갖추었고, 비록 이것이 그가 보여주는 형식과 전략이 속스러움에 
기반을 둔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것이 성스러울 수있는 진짜 이유이다. 

 



92년부터 설치미술가로 알려진 최정화를 중심으로 그래픽디자인· 사진·조각 등을 
전공한 스텝들과 함께 출판· 인테리어· 로고타입 등을 기획했다. 대학로에 
위치한 주점 ‘살’을 비롯 ‘오존’, 의류 매장 ‘e·u’· ‘보티첼리’· 
‘쌈지스포츠’ 등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했다.





압구정동 쌈지스포츠 매장에서의 최정화(왼쪽에서 두번째) 씨와 스텝들.





워커힐 호텔 댄스바 제스티 1997 
알루미늄 애노다이징, 카핏, 무늬목, 홀로그램 시트, 자개판, 벨벳, 인조 털가죽, 
아크릴 등을 재료로 ‘껍질의 향연’이 컨셉이라 한다. 


 
 

-------------------------------------------------------------------------------
-
DESIGN STUDIO BEST 7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안상수·TYPOGRAPHY
글자를 타고 노는 맛 
<양난영·자유기고가>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인 한글 서체를 개발하고, 타이포그래피의 문화적 의미를 
일깨운 개척자 안상수. 자신이 개발한 서체를 포스터나 편집디자인 등에 
응용하면서 무크지를 발행하는 등 적극적인 시각문화 생산자의 모델을 보여 준다. 
“타이포그래피와 관련된 디자이너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글자 
자체를 디자인 하는 사람, 두 번째는 이미 개발된 서체를 응용하여 작업에 
적용시켜가는 사람, 마지막으로는 글자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안상수 
나름의 분류법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에 속하는가? ‘안체’를 비롯하여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로 이어지는 개발 과정을 생각한다면 첫 번째로 
분류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고, 82년 월간 <마당>의 아트디렉터 일이나 85년 
안그라픽스 설립과 함께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은 개발된 서체를 응용하여 
공간과의 조화를 꾀하고 의미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두 번째 시기로 볼 수 있다. 

대개의 편집 디자이너들은 “그래픽 디자인의 기초는 글자에서 시작한다.”며 
타이포그래피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기존의 서체를 마음껏 휘두르며 작업하는 
것도 어렵고 새로운 서체를 개발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서체를 제대로 알고, 그 맛을 느끼며, 유희적으로 작업하는 아트디렉터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안상수는 국내에서 글자를 가지고 타고 놀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안상수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나 문화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안상수체’의 개발이다. 타이포그래피라는 말조차 낯선 
84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서체의 개발은 ‘고딕체’ ‘명조체’에 익숙하던 
대중들도 세련되고 젊은 감각의 ‘안체’의 매력에 빨려들게 되면서 점차 각종 
포스터와 잡지·정부기관 등에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름 석자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글자의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 새로운 구조를 
발견해야 가능하다. 그가 개발한 ‘미르체’(92년)와 ‘마노체’(93년)의 작업 
일지를 들여다보면(이후 새로운 서체는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점자와 같은 
간결한 글자를 만들고 싶어했음을 알게 된다. 그만큼 정보 전달에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한글 글자꼴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일보다도 한글 서체 개발이 자신에게 주어진 몫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던 한글 서체 개발이 최근에는 
윤디자인연구소와 산돌글자은행 등과 같은 서체 전문 업체를 통해 개성있고 다양한 
본문용 서체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고(故) 김진평 교수·상명여대 
원유홍·대유공업전문대 한재준·명지전문대 김주성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가능성 
있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실험되고 있지만, 아직도 좀더 심화된 토론과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이 시대 문화 생산자를 인터뷰하는 무크지 《보고서 보고서》를 현재 
14호까지 발행했는데, 디자이너 역시 문화 생산자의 일원이므로 문화에 대해 
발언하는 것 역시 작업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디자인뿐만 아니라 문학·사진·연극·영화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관심사를 보여주며, 인터뷰어이자 편집자·디자이너로서의 다양한 
역할에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 

미국의 타이포그래피 전문지인 《에미그레》에서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는 주자나 
리코(Zuzana Licko)는 “타입페이스를 디자인할 때 나는 기본적인 글자의 형태가 
그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 목표다.”라는 
흥미있는 말을 했다. 그 변화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것이 바로 타입페이스 
디자이너가 할 일이며,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을 것처럼 수많은 서체를 
보유하고 있는 영어의 경우에도 여전히 기발하고 새로운 서체들이 계속 개발될 수 
있는 것도 끊임없는 실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글자에는 당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타입페이스 디자인 역시 끊임없이 성장 발전해 가게 
된다.

따라서 시각 문화 전반의 총체적인 발전 기틀이 될 새로운 타입페이스의 개발을 
안상수에게 다시 한번 기대하게 된다. 타이포그래퍼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가 함축하고 있는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안상수(46)는 82년 월간 <마당>의 아트디렉터, 85년 안그라픽스 설립과 함께 
안상수체(84)· 이상체(91)· 미르체(92)· 목판체· 마노체(93) 등을 개발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다수 논문과 전통문양관련 저서가 11권에 이른다. 현재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이며 세계그래픽디자인 단체협의회 (Icograda) 
부회장이다. 










《보고서 보고서》 표지 1997
올 해로 발판 10주년을 맞는 《보고서 보고서》에 참가한 문화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기념전을 9월에 가질 예정이다. 


 
 

-------------------------------------------------------------------------------
-
DESIGN STUDIO BEST 7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아이 앤 아이·EDITORIAL DESIGN
지식과 상상력이 담긴 편집 
<양난영·자유기고가>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인간의 삶과 문화의 총체를 담는 책을 디자인한다는 I&I는 단행본과 잡지의 
편집디자인을 리드한 한 축이었다. 적절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풍부한 상상력이 
특징인 I&I의 디자인도 이제 멀티미디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편집 디자인(editorial design) 분야는 단행본의 내외장을 디자인하는 북 디자인, 
잡지나 사보와 같은 간행물을 디자인하는 매거진 디자인으로 크게 나누지만, 그 
밖에도 브로슈어·카탈로그·포스터·캘린더 등 인쇄 매체와 관련된 작업까지 
총칭한다. 

서기흔(경원대 교수·I&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씨는 이렇게 시각디자인의 
근간이자 중심에 서 있는 편집 디자인에 대해 “인간의 삶과 문화 영역, 모든 지식 
체계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편집 디자인이 얼마나 
매력있는 분야인가를 종종 기술하곤 한다. 

시각디자인의 맥과 근원을 잃어버린 채 컴퓨터에만 매달려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서기흔의 출판 편집 디자인에 대한 예찬론이 다소 낯설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웹디자인·CD롬 디자인·게임 디자인 등 멀티미디어 분야를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만 바라보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뿌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결국 그것은 시각디자인 분야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컴퓨터 보급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시각 디자인의 담론이 더욱 
풍성해져야만 단순히 컴퓨터 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기계적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사회 문화를 살찌우는 작품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91년에 설립된 편집 디자인 전문회사인 I&I(Image & Imagina-tion)는 서기흔에게는 
학교와 현장을 연결시켜 주는 결합의 장이자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실험의 
장이었다. 이론을 토대로 변화하는 환경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또 새로운 이론을 
쌓아가면서 작업하는 곳으로서 다양한 작업 세계를 꾸준히 펼쳐 보이는 생산의 
장인 것이다. 

“작업할 때마다 투쟁사를 남겨라”라는 서 교수의 작전명령과는 달리 I&I에서 
작업한 결과물들은 대체로 밝고 예쁘다고 하는 편이 옳다. 특히 국내에서 
편집디자인 전문회사로 대표되는 세 곳을 디자인적인 면에서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초창기 국내 편집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할 때 디자인 원칙과 담론을 
형성시켜 놓았던 정병규 디자인(대표 정병규)의 경우는 기호와 
암시·타이포그래피의 절제된 사용으로 다소 무게감을 주는 편이었고, 사외보 
디자인에 있어서 과감한 레이아웃과 별색의 사용·그리드의 파괴·판형의 변형 
등으로 실험성을 주목받고 있는 안그라픽스(대표 김옥철)와 비교하자면, I&I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적절한 사용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변화있는 레이아웃을 
선보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삼성, 삼성인》 사보나 《삼성화학소그룹》 브로슈어 등을 보면, 편집 
디자인의 중심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자리잡게 하려는 아트디렉션의 역할과 디자인계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여 디자인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점, 디자인피의 
인상 노력, 기획에서부터 컨셉 설정, 카피까지 I&I의 주도하에 작업해 낸 것 등은 
디자인 전문회사의 위상 제고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서 교수에게 있어 올해는 특별하다. IMF라는 거대한 폭풍 앞에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디자인계. 그 중 편집 디자인 회사의 위상은 무엇이며, I&I는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남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종합 
커뮤니케이션 회사로서 거듭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99년 
신학기부터는 경원대에 멀티미디어학과를 설립할 계획이며, I&I도 멀티미디어팀을 
신설, 커뮤니케이션의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편집 디자인 분야에 대한 매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말대로 
“디자인을 바라보는 주체적 시각이 확립될 때, 고립되어 있는 각 분야를 통합시킬 
때, 종속적 개념에서의 컴퓨터 활용이 아니라 시각언어를 확장시키는 도구로서 
실체를 제대로 볼 때” 그 동안 풀리지 않았던 많은 문제들, 나아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각 디자인 문화가 꽃필 것으로 보인다. 

 


I&I는 서기흔을 중심으로 88년 A&C란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그룹 사보 
《인재제일》 《삼성인》이나 각종 단행본 출판물 등 도서 잡지 디자인을 주도해 
왔다. 특히 출판 디자인의 아트디렉션 시스템 도입이나 국내 북 디자인 개념을 
선도하는 디자인 및 연구 성과,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서기흔(오른쪽에서 세번째) 교수와 I&I 스텝들.





최기철 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민물고기 백 가지》 서기흔 디자인 현암사





사외보 《삼성인》 표지 1996 내지에 별도의 간지를 끼워 넣어 두가지 내용과 
일러스트레이션이 동시에 전개된다. 


 
 

-------------------------------------------------------------------------------
-
DESIGN STUDIO BEST 7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오돌또기·ANIMATION
풍자와 비판이 살아있는 그림 
<김이랑·만화비평>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한국적 캐릭터 하나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편 애니매이션 <오돌또기>를 만들기 위한 한 스튜디오의 
의욕과 좌절, 극복을 위한 창의적인 변신을 소개한다. 
“내 만화에 생명을 불어 넣고 싶었습니다.” 90년대 가장 잘 나가는 
시사만화가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돌아온 박재동의 말이다. 《한겨레신문》에 
<그림판>을 연재하며 권력의 속살을 벗기는‘9㎝의 촌철살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풍자 무대를 TV로 옮겼다. 국내 최초로 시사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선보인 것.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반, 7시 반 2차례 MBC 
<굿모닝 코리아>에서 방영하는 1분짜리 <박재동의 TV만평>이 그것이다. 지난 8월 
1일 처음으로 방송된 <잡아라, 신창원!>편은 황지우 시인이 ‘쾌변의 기쁨’이라고 
노래한 그의 신랄한 풍자의 칼날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박재동이 총감독을 맡고 있는 ‘오돌또기’는 애니메이션 전문 기획사. 그렇다고 
기획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것은 직접 제작한다. 상근 인원은 오성윤 
PD·김환영·유승배·유경열 등 5명에 불과하지만, 기술감독 이종혁 등 짬짬이 
도와주는 사람이 다수 있다. 그러나 소규모 기획사이다 보니 모두가 바쁘다. 대외 
업무서부터 실제 제작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이 꽉 짜여 있다. 기획 회의를 비롯하여 
시나리오와 콘티를 짜고, 캐릭터를 창조하고, 원화 그리는 일이 공동의 몫이다. 
동화(動畵)의 마지막 펜터치만큼은 박재동이 직접 하느데, 그렇지 않으면‘그림 
맛’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과부하입니다. 은 앞으로 10월까지 매주 한 편씩 꼬박꼬박 만들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제 손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동화맨’의 확보가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입니다.” 

으로 마침내‘움직이는 그림’의 꿈을 조금씩 이뤄 가고 있는 박재동 총감독. 
그러나 그가 96년 ‘오돌또기’를 세운 후 걸어온 지난 2년 간은 고난과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의욕에 차 기획한 첫 작품 <오돌또기>부터 뼈아픈 좌절을 
경험했는데, <오돌또기>는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 그가 강요배 화백의 전시회를 보고 감명받아 기획한 것.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너무 무거운 주제에 똥깅이·해아·누렁코 등 주인공들 또한 
캐릭터 산업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샀다. 게다가 셀 1장에 
2만 원씩, 총 8만장을 팔아 16억 원의 제작비를 충당하려던 계획 또한 여의치 않아 
결국 이 장편 애니메이션의 꿈을 잠시 접어야만 했다. 

<오돌또기>의 실패를 거울 삼아 그는 이번에는‘돈이 되는’작품에 손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7분짜리 TV 애니메이션 <아구찜과 빠가사리>. 
그러나 아구찜과 빠가사리라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학창 시절의 애환과 
에피소드를 39편에 담겠다는 이 야심찬 계획 또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IMF가 
문제였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아구찜과 빠가사리> (연출 김환영)는 현재 
데모를 겸한 <노란 스웨터>편만 완성된 상태. 그나마 4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든 <노란 스웨터>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인 
서울무비의 도움이 컸다.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 부족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수출국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하청 수출에 따른 사상누각 아닙니까?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부와 방송사의 관심 및 지원이 절실합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그는 국산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한 고언도 아끼지 않는다. 

 
 1996년 제주 4·3항쟁을 무대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오돌또기> 제작을 위해 
설립되었다. 현재까지 <알파와 베타, 매직 몬스터> (비디오용 각 45분, 10편, 
1997), <아구찜과 빠가사리> 1편인 <노란 스웨터>(98)를 제작했다. 현재 
시사애니메이션과 CD롬 애니메이션인 <토종과 조타의 한글 탐험>을 제작중이다. 





주간 TV 만평 제작 때문에 1주일이 벅찬 오돌또기 스텝들. 왼쪽에서 세번째가 
박재동 총감독이다.





<박재동의 TV 만평>(총감독 박재동)의 첫 회로 방영된 <잡아라 신창원!>편. 탈옥자 
신창원으로 빚어지는 경찰과 여론을 풍자하고 있다.


 
 

-------------------------------------------------------------------------------
-
DESIGN STUDIO BEST 7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김현선디자인연구소·PUBLIC DESIGN
도시 공간의 코디네이터 
<안인기·월간미술 기자>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개성보다는 공공의 편리와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공공디자인을 실천하는 
김현선디자인연구소의 무대는 도시다. 거리나 공공 건물, 기념물 하나에도 지역과 
공동체의 아이덴티티와 문화 환경을 고려하는 종합적 개발 모델을 살펴 본다. 
도시에는 도로· 공원· 광장· 철도 역사에서부터 교량· 고속도로· 항만· 공항 
등 대형 건조물에 이르기까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이용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다양한 공공 공간들이 있다. 이러한 공공 공간의 기능성을 높이면서도 특징있는 
도시 이미지를 연출하는 분야가 공공 디자인(public design)이다. 버스 정류장의 
쉘터나 벤치· 가로등· 휴지통· 공중전화 부스 등의 가로 장치물(street 
furniture) 디자인에서 교통 사인(sign), 특정 지역이나 건물의 색채 계획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공공 디자인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한데 일반적으로 
환경 디자인(en-virenmental design)이라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통용되어 있다. 
전문 영역도 확보되지 않은 채 건축·조경·도시설계·제품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 다른 맥락과 관점으로 공공 디자인에 접근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성 보다는 공공성을 우선해야 합니다. 기능성을 겸하면서도 장소적 컨텍스트와 
이용자 컨텍스트를 고려하는 ‘관계 속의 디자인’이어야 공공 디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선 씨가 꼽은 공공 디자인의 덕목이다. 96년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 퍼블릭 
디자인전>을 주관하면서 ‘환경’이란 가치 중립적 용어보다 공공 공간이란 개념을 
채택, 기존의 환경 디자인에 보다 분명한 역할과 성격을 부여했던 사람이 그였다. 

도쿄 예술대학에서 환경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일본의 환경 디자인 전문업체 
‘GK설계’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대규모 신도시가 건설될 무렵인 92년 ‘산본 
신도시 색채 계획안’이 당선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그 동안 ‘광주 지하철 색채 
계획’ ‘울진 원자력발전소 환경친화 계획’ ‘강남구 가로포장 및 사인 시스템, 
가로 장치물 계획’‘분당 삼성플라자 가로 장치물 디자인’등 많은 공공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의 성격상 문화 복지나 생활환경 개선에 관련된 것이 
많기 때문에 정부 산하 기관의 의뢰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가로 사인 계획을 의뢰한 강남구청의 경우에도 제안한 시안과 시공 결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죠. 가로 장치물 설치만 하더라도 
행정적·제도적 뒷받침이나 전담 부서도 없고, 절차 과정도 복잡해요. 그래서 거리 
하나를 특화 거리로 만들어 모범적인 샘플을 제시할 수 있다면, 각 지자체에 
설득력을 얻을 것입니다.” 

최근 김현선디자인연구소의 ‘아리랑고개 영화의 거리 조성 계획’ 현상 설계가 
당선됨으로써 그러한 샘플을 제시하였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아리랑길 1.5km에 
야외공연장이나 테마 파크, 한국 영화의 정보를 담은 가로 장치물들을 만들어 
‘영화의 거리’란 특정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과 동일한 가로명이 이 프로젝트의 모티프였다는 게 어찌 보면 다소 
무리인 것 같지만, 성북구의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보완하면서 이미지 쇄신의 한 
계기를 만드는 것이 연구소 측의 의도인 것 같다. 

특화 거리는 그 지역이나 시 전체의 성격(City Identity)을 부여하며 동시에 
그것을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평범하고 진부했던 거리가 한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거주민의 삶과 역사·문화적 배경·자연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절한 개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김현선디자인연구소의 강점은 공공 디자인이란 기본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해당 
공간의 문화적 상징을 제시, 그것을 상품할 수 있는 문화·관광 상품이나 이벤트를 
개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계시키는 총괄적인 마스터 플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종합적인 이미지 산업이듯 공공 디자인 역시 복합적인 문화 인프라 
구축할 수 있는 모델인 것이다. 연구소 측에서는 요즘 서울시가 의뢰한 ‘서울시 
문화환경조사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의 가로마다 개성있는 얼굴을 
구축하고 각각의 거점을 연결하는 문화벨트로 조성하기 위한 기초 연구다. 그것은 
또한 공공 디자인의 데이타 베이스를 구축하는 첫 걸음이다. 

 


92년 개설한 이래 울진 원자력발전소 색채계획, 강남구 가로장치물 계획 등 10여 
개의 프로젝트를 실행했으며, 95년부터 <서울문화상품전>을 주관하고 있다. 그외 
환경조형물 설계 및 서울대와 공동으로 ‘약수지구 상세계획’ 등 지역 개발 
연구도 수행했다. 





김현선 소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스텝들





‘정릉 아리랑길 영화의 거리 조성계획안’으로 제안한 테마파크의 시뮬레이션 
이미지. 





‘정릉 아리랑길 영화의 거리 조성계획안’으로 제안한 공연장의 시뮬레이션 
이미지. 





분당 신시가지에 들어선 삼성플라자의 가로장치물 계획안. 


 
 

-------------------------------------------------------------------------------
-
DESIGN STUDIO BEST 7  

  

월간미술 1998. 9 DESIGN STUDIO BEST 7
 

아이에스엠·MULTI-MEDIA DESIGN
정보·기술·디자인의 통합
<김신·월간 디자인 기자> 
 

-------------------------------------------------------------------------------
-
 
이노디자인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안상수
I & I
오돌또기
김현선디자인연구소
ISM Coporation
 

인터넷·CD롬이라는 새로운 정보 전달·저장 시스템 환경에서의 디자인은 그러한 
정보 환경을 어떻게 친숙한 환경으로 바꿀 것인가에 관건이 있다. ISM은 컴퓨터가 
재편하는 정보화 사회에 요구되는 신르네상스적 디자이너를 실천한다. 
국내에서 멀티미디어 디자인만큼 빠르게 성장했다가 급속도로 냉각된 분야도 없을 
것이다. 90년대 초반 CD롬과 게임 소프트웨어를 필두로, 95년 월드 와이드 웹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상륙하자 각종 매체는 앞다투어 멀티미디어가 기존의 인쇄 
매체를 위협할 존재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97년 말부터 이어진 컴퓨터 관련 
유통업체들의 연쇄 부도, IMF 한파에 따른 기업들의 광고·홍보비 삭감 등의 
여파는 지금까지 멀티미디어 시장이 회생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멀티미디어 관련 개발 업체와 디자인 업체들이 사업의 
날개를 접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멀티미디어 시장은 정말 거품일까?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매체와 각종 디자인 관련 세미나에서는 멀티미디어가 앞으로 지배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따라서 디자이너와 
디자인 전문 회사들은 이 사업에 대해 혼란된 전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전망만을 믿고 침체된 시장 속으로 뛰어들 수도 없고, 발을 빼자니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소득을 보지 못한 많은 디자인 업체들과는 달리 ISM은 악화된 
시장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면서 멀티미디어가 지배할 
앞으로의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그들만의 접근 방식에 있다. ISM의 
설립자인 하한수는 멀티미디어 디자인은 ‘정보’를 디자인이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산업사회의 제품에서 기술과 디자인은 서로 다른 영역, 즉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라는 역할이 판이하게 다른 두 전문가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세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제품은 물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가 될 것이다. 이 정보 자체는 디자인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를 
통해 소통되기 때문에 그것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문제를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과 달리 멀티미디어는 기술적인 접근이 
비교적 쉽다.” 

하한수는 멀티미디어 디자인에서는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의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으며, 그 둘의 결합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 동안 멀티미디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디자이너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로는 
거의 강박적으로 자신의 ‘디자인 감각’을 제품에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디자인 감각은 그래픽적 요소에 국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예쁜 아이콘과 단추, 그리고 멋진 배경, 화려한 동영상들이 자신들의 
디자인 감각을 수놓을 요소들이라 믿는다. 그럼으로써 정보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역할은 프로그래머들에게 넘긴다. 그렇다고 프로그래머들이 글자의 
자간이나 행간(이러한 문제들은 멀티미디어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과 같은 
디자이너의 감각이 요구되는 요소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95년에 출범, 인터넷 디자인 업체로는 비교적 역사가 긴 
ISM은 ‘정보와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이라는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프로그래머 못지 않은 기술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프로그래머들과 파트너가 되어 일하다가 지금은 대부분의 
문제를 디자이너 스스로 해결할 정도에 기술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의 주요 
프로젝트가 감각적인 홍보용 사이트보다는 정보량이 방대한 사이트가 대부분인 
것은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를 다루는 사이트에서는 
무엇보다 DB설계, 내비게이션의 편리함과 같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의 실력은 십분 발휘된다. 

최근 ISM은 나모 인터랙티브와 공동으로 ‘iBBS’라는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웹 
게시판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게시판은 기존의 것과는 달리 사용자가 단순히 
글만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레이아웃을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어 
인터랙티브한 요소를 더욱 강화시켰다. 특정 디자인 프로젝트 수행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 중심의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힘쓰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기술과 디자인을 
접목하려는 이들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준다. 멀티미디어 등장 이후 디자인 
페러다임 변화의 핵심적인 요소인 ‘인터랙션’이라는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이즘 리서치로 창립, 96년에 (주)ISM으로 변경했다. 현대전자의 Aminet, 
한국일보 사이버시티 웹사이트, 코리아 헤럴드, 한국 모토롤라 웹사이트 등을 
디자인했으며 건축·인테리어 디자인 정보 CD롬 제작, 인디월드 인터넷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하한수 씨 외에 16명의 디자이너·프로그래머가 있다. 





하한수(ISM 대표, 왼쪽 첫번째) 씨와 스텝들





이미지클릭 홈페이지. 사진이나 웹사이트용 아이콘, 서체 등을 인터넷 상에서 
열람하고 주문할 수 있는 사이트이다. 3D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VR, 
Shockwave 관련 기술 등 웹사이트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ISM은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디자인이 
이루어진다. 





ISM과 나모 인터랙티브가 공동 개발한 인터넷 웹 게시판 시스템 프로그램 iBBS 
사이트이다. 다양한 폰트와 위지웍 방식으로 적용, 손쉬운 HTML 문서 작성을 
실현시켰다. 웹상에서의 다양한 편집,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 제작업체를 
타깃으로 한다. 


 
 

-------------------------------------------------------------------------------
-
DESIGN STUDIO BEST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