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01시 19분 09초 제 목(Title): 권중운/화가의 눈,카메라의 눈 논단/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Vision 화가의 눈, 카메라의 눈 권 중 운(한국실험영화연구소 연구원) ------------------------------------------------------------------------------- - 전통적 회화의 시각과 구도 속에서 우리는 영화의 눈과 미장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회화와 영상은 다 같은 시각예술로서 기본적으로 공유된 본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두 장르를 구분하는 변별적 특성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시각양식의 변천사 속에서 발견되는 영상매체의 시각적 특성을 비교·분석해 봄으로써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온 시각예술의 인식론적 구조 변화를 살펴본다. 회화와 영상이라는 두 장르는 시각예술이라는 상위 장르적 개념으로 포괄하여 일반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장르다. 무엇보다도 이들 두 장르는 보는 행위(the act of seeing)의 본성 즉 시각의 본성을 탐구하고, 시각에 의해 창출된 이미지를 그들 장르의 인식론 내지 존재론적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본다는 시각 행위는 기본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시각을 통해 세계를 형상적으로 인식하고 동시에 인식하는 시각방식을 드러내며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것이 시각 행위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시각 행위의 이러한 본질적 특성이야말로 회화와 영상의 관련 양상을 살펴보려고 할 때 설정되는 근본적 문맥이라는 사실이다. 회화와 영상은 다 같이 시각예술로서 기본적으로 공유된 본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두 장르를 구분하는 변별적 특성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우선 매체 형식의 차원에서 회화와 영상은 다 같이 그들의 이미지가 시각적 요소에 의해 조형적으로 디자인된다. 시각예술로서 회화와 영상 화면이나 캔버스 구도에 있어 공간 분할과 깊이, 시각적 형상의 크기, 방향, 위치, 왜곡과 변형, 색채와 선의 조형성, 명암과 조명 효과, 움직임과 리듬감, 시선의 문제와 구도법 등, 회화적 이미지이든 영상이미지이든 간에 이미지는 위와 같은 시각적 요소들로 구성되는 시각적 인식 행위의 산물이다. 그러나 매체의 재료나 제작 도구의 물적 토대가 다른 만큼 시각적 재현물로서 회화적 이미지나 영상 이미지는 존재를 구체화하고 가시화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물감과 필름이나 전자파, 손과 기계, 붓과 카메라 등 재료와 제작 도구의 대립적인 차이는 이들 양 장르의 이미지를 어떻게 달리 산출하고 있는가? 시각이 존재를 인식하고 이미지를 창출해 낼 때 시각적 재현물로서 이미지의 의미는 재현 대상에 종속된다. 이미지를 재현 대상에 종속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입장은 리얼리즘 전통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리얼리즘 전통의 기본적 입장은 이미지가 대상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진정한 사실성을 획득하느냐는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상 이미지의 출현도 이러한 회화의 리얼리즘 전통의 발전선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영상 매체에는 어느 전통적 예술 매체보다도 리얼리즘 전통이 강하게 구현되어 있다. 영상 이미지와 회화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영상 이미지가 회화 이미지보다 시각적으로 더욱 선명하고 투명하며 자연스럽게 보인다. 영상 이미지는 재현 대상과 사실적으로 닮아있거나 거의 동일시되어 재현 대상 그 자체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한다. 더구나 움직임이나 움직임의 가능성을 현시함으로써 시간성과 리듬감까지 갖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또한 시각적 요소들의 구성 원리로서 시각의 중심이 이미지 밖에 존재하고, 이미지는 연속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영상 이미지의 시각은 보는 자의 시선이 분리되고 소외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vision)은 시각예술에 있어 재현 대상의 형식이자 이미지의 의미구성체라는 측면에서 영상 매체의 인식론적 구조를 결정지운다고 할 수 있다. 회화와 영상과 관련하여 시각의 문제를 인식 활동과 사유에 대한 지배적인 비유를 시각적인 것과 연관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시각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신념 내지 이데올로기 영역 내에서 성립되고 있다. 달리 말해 우리는 무제한의 시각을 가질 수 없다.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맥락 내에서 시각에 대한 반성의식에서 이미지 인식론적 성격을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시각 양식이 있어 왔다고 하겠는데, 특히 서구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를 비롯한 바로크 시대는 인식 활동과 관련하여, 시각적 인간을 중요시하고 시각주의적 전통이 확산된 시대로서 영상 매체가 발명된 기원의 시대다. 이들 시대의 시각적 양식의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영상 매체의 인식론적 구조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르네상스의 시각과 카메라 옵스큐라 영상 이미지를 산출하는 카메라의 발명은 르네상스 회화 속에 반영된 시각 양식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루어졌다. 르네상스 시대란 널리 알려진대로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중심주의(Humanism) 사회로 전환된 시대다. 신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섬에 따라 인식 주체는 인간이고, 그것도 이성적 인간이다. 이성적 인간은 합리성과 기술적 정확성 그리고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과학적 사유 방식을 지향하였다. 과학적 사유 방식에서 창출된 이 시대의 시각 양식이 바로 투시법 내지 원근법이었다. 기하학적 투시법과 인본주의적 투시법으로 분류되는 투시법은 인간 이성의 시점을 특권화한다. 그 특권화된 시점은 그 시점의 범위 내의 것을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 욕망의 공간을 규정하는 시각적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투시법의 시각 양식은 특권화된 단일한 시점이 욕망의 공간을 수렴시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규격화시켜 사실감·깊이감·정확성과 객관성을 강조한다. 투시법이 설정한 시점은 르네상스 회화의 경우 그것은 소실점이며, 이 소실점은 작품 내의 모든 표현 요소를 통일할 수 있는 중심 시점이며 특권화된 시점이다. 각 대상은 이 전지적인 시점을 중심으로 기하학적 비례·균형·통일·조화가 이루어지도록 구조되어 있다. 이 문제를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의 작품에서 예증해 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의 경우, 이 작품은 화면 중심의 예수를 기준으로 정확히 3명이 한 그룹씩 두 그룹이 좌우대칭적으로 정확히 배치되어 있다. 예수 바로 뒤편이 허공(하늘)으로 통하는 세 개의 공간 가운데 중간중간을 중심으로 하여 양편 공간 역시 좌우대칭되며, 예수를 앞에 두고 있는 이 중심 공간이 바로 이 작품의 모든 요소를 통일시키는 소실점이다. 라파엘의 작품 <마리아의 결혼> 역시 성직자 양편의 신랑과 신부, 왼편의 신부 친구들과 오른편의 신랑 친구들이 정확히 5명씩 좌우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경의 중심인 신랑과 신부의 맞잡은 두 손은 원경의 성당 중심 부분의 허공 앞에 두고 겹치게 되어 있다. 이 그림의 허공은 하늘 앞에 두 사람의 결혼의 영원함을 맹세한다는 중심된 주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각적으로도 이 허공의 공간은 그림의 모든 요소들을 정확히 균형있게 통일시키는 지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 그림의 소실점이기도 하다. 사진기의 원조가 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바로 이러한 르네상스식 시각 방식인 투시법의 산물이다. 따라서 카메라는 르네상스적이고 근대적인 투시법을 기계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상자 구멍, 카메라의 렌즈, 회화작품 내의 소실점, 투시법의 단일한 시점 등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같은 의미선상에 서 있는 개념들이라 하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유채 420×910cm 1495~97. 사진기의 원조가 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바로 이러한 르네상스식 시각 방식인 투시법의 산물이다. 라파엘 <마리아의 결혼> 목판에 유채 170×117cm 1504. 투시법이 설정한 시점은 르네상스 회화의 경우 그것은 소실점이며, 이 소실점은 작품 내의 모든 표현 요소를 통일할 수 있는 중심 시점이며 특권화된 시점이다. 벨라스케스 <궁정의 시녀들> 캔버스에 유채 318×276cm 1656. 대상 세계를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바로크적 시각은 반투시법적이고 다중적 초점의 시각이기도 하다. 논단/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Vision 화가의 눈, 카메라의 눈 권 중 운(한국실험영화연구소 연구원) ------------------------------------------------------------------------------- - 영상 매체에는 어느 전통적 예술 매체보다도 리얼리즘 전통이 강하게 구현되어 있다. 영상 이미지와 회화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영상 이미지가 회화 이미지보다 시각적으로 더욱 선명하고 투명하며 자연스럽게 보인다. 영상 이미지는 재현 대상과 사실적으로 닮아있거나 거의 동일시되어 재현 대상 그 자체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한다. 바로크 시대의 시각과 무빙 카메라 투시법의 시점이 전체적인 구도를 가장 균형있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점에 소실점을 설정한 것이라면, 바로크 시대의 시각은 인간과 대상과의 거리를 다양하게 창출하면서 동시에 대상 세계를 포착함으로써 그들 상호간의 거리를 제시할 수 있는 중심점을 설정한다. 대상 세계를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바로크적 시각은 반투시법적이고 다중적 초점의 시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의 특성은 오늘날 영화 매체의 등장을 예견케 하며, 20세기 초엽의 모더니즘 계열의 입체파의 미학적 관점과도 상통성을 갖고 있다. 부언하자면 상이한 시점들을 하나의 형상에 공존시킴으로써 시각 자체를 균열시키고 고정되었던 형상 내부에 균열을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다중시점은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 낸다. 그리하여 시각 경험 속에 시간성이 개입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세계의 어떤 모습도 재현할 수 있는 영화 카메라의 발명이 이루어진다. 영화 카메라와 바로크 시대의 시각적 특성을 상관시켜 본 입장과 더불어 영화의 시각 경험과 영화기구(Appartus)와의 관계를 바로크 시대의 한 작품을 통해 살펴 보기로 하자. 이것은 영상 매체의 인식론적 구조의 이해를 위해 의미 있는 분석 작업이 되기도 한다. 17세기경에 제작된 벨라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이란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은 작품 속의 거울에 비춰진 화면 밖의 왕과 왕비를 바라보고 있는 화가·어린 왕녀·시녀들, 그리고 궁정의 난쟁이와 개 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의 구도상의 특징은 중앙에 있는 어린 왕녀 양편의 두 시녀와 뒤편의 두 남녀를 잇는 나선형의 곡선 배치와, 오른쪽 끝 난장이 두 명과 시녀 그리고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를 잇는 나선형의 곡선 배치가 어떤 흐름을 주면서 교차되어 있다. 그리고 왕과 왕비라는 모델을 대상으로 그림 작업을 하는 화가와 모델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구도는 이중적이다. 이중적 구도의 가능성은 거울을 통해 전체적인 공간을 현시하고자 하는 화법에 있다. 이러한 화법의 구도상 특성은 영화 기구 장치의 시각 경험과 유사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보는자로서의 화가가 동시에 보여지는 대상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중 구조로된 영화의 시각 경험과 유사하다는 말이다. 영화의 시각 경험에 있어 이중 구조는 영화 작가가 촬영한 대상을 영사기로 다시 스크린에 투사하여 감상자가 인식하는 두 가지 행위를 의미한다. 즉 영화작가 → 카메라 → 대상이라는 한 축과, 영사기 → 감상자 → 스크린이라는 또다른 한 축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영화 작가의 시선과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선은 두 개의 다른 시선이 아니라 대상 인식의 차원에서 실제로는 같은 하나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 작가가 자신의 시선을 카메라 렌즈와 일치시켜 대상을 구도잡을 때 영화 작가의 시선은 대상의 소실점이 된다. 감상자는 영사기와 일치하여 작품 내의 소실점에 따라 스크린을 본다. 여기서 영화 작가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를 매개로 하여 감상자의 시선과 동일시되어 일직선상에 서 있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렌즈를 통한 시선의 놀이는 동일시를 형성하여 영화 작가의 시선과 촬영된 대상을 보는 시선을 렌즈의 조작을 통해 객관적인 시점으로 특권화시켜 놓고 작품 내에 내장시킨다. 전자 영상 매체의 시각 경험 영화 기구 장치를 통해 본 영화 경험의 이중성은 촬영과 영사라는 두 개의 분리된 행위의 사건들이다. 카메라 렌즈의 조작에 따라 영화의 시각 경험은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 엇갈림이 없는 일직선적이고 단선적인 시선이다. 영화 이미지의 사실성·투명성·자연스러움, 그리고 환영과 실체의 동일시는 바로 이와 같은 시선 장치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존재를 형상적으로 현시하는 ‘본다’는 행위는 영화 경험뿐만 아니라 시각예술 일반에 있어서도 이중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단일한 시점에 수렴시켜 사물을 대상화하는 투시법의 근대적 이데올로기가 해체되고, 새로운 시각 양식이 제시되는 시각 경험 본래의 이중성이 현대에 와서 회복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시각 경험의 본래적 이중성은 근대 회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초상화 장르에 있어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던 렘브란트의 작품 <노화가의 초상>이란 17세기의 작품을 여기서는 예로 들기로 한다. 이 작품에는 모진 세파를 헤쳐 나온 한 늙은 예술가의 허무감과 비애감이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표정으로 초상화의 인물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은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제작할 당시의 상황에서 그렇게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세속적인 좋은 환경을 버리고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온 자기 인생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자기와 바라보는 자기의 두 가지 시선의 교차 속에 작품의 의미가 성립되고 있다. 바라보는 입장의 특정한 시공간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단일한 의미로 규정되는 시각 경험은 해체되는 것이다. 16세기 홀바인의 <외국 대사들>이란 작품을 한 번 더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은 르네상스적 원근법에 의해 좌우대칭적으로 균형잡힌 구도 속에 과학적 기구들을 나열, 통일성 있게 구도잡힌 작품이다. 주의깊게 보면 전경의 중앙 앞 부분에 그려진 해골 모양의 긴 타원형은 작품 내용의 규정성을 논평하는 의미로써 그려진 부분이다. 이러한 시선은 시선을 상대화시켜 바라보게 되는 빈 마음이 교차하게 하는 화법이다. 즉 봄과 보여짐의 관계는 봄을 통해 보여지는 방식을 드러낸다. 20세기 중반 이후 전자 영상 시대의 시각적 이데올로기는 봄과 보여짐의 동시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다같이 이중적 시각 경험에 기초하고 있지만, 영화 카메라와는 달리 비디오카메라와 컴퓨터기기의 경우 피드백(Feed-back)장치에 의한 모니터와 촬영기의 동시적 결합, 즉 입력한 정보와 출력하는 정보의 쌍방적 관계 등은 비록 나르시스적인 자기 반영일지라도 전자 영상 시대의 시각 경험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사항들이다. 따라서 전자영상매체시대의 시각 경험은 내부 주관적 차원에서 제작자가 지각과 표현을 상호 주관적으로 수행하며, 관객은 제작자가 지각하고 표현한 것을 동시에 상호주관적으로 지각하고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 <자화상(노화가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95×90cm 1669. 시각경험의 이중성은 초상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자기와 바라보는 자기의 두 가지 시선이 교차 한다. 홀바인 <외국 대사들> 목판에 유채 206×209cm 1533. 전경의 중앙 앞 부분에 그려진 해골 모양은 작품 내용의 규정성을 논평하는 의미로써 그려진 부분이다. 이것은 시선을 상대화시켜 바라보게 하는 화법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