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01시 16분 12초 제 목(Title): 김원방/전자매체와 변형의 힘 논단/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Transformation 전자매체와 변형의 힘 김 원 방(미술비평) ------------------------------------------------------------------------------- - 영상전자매체의 혁신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이미지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영상매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변형 이미지는 가장 ‘전자시대적’이라 할 수 있다. 전자매체예술의 개화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변형 개념을 들어 점차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 증식하고 진화하는 이미지의 생태학을 고찰해 본다. 또한 변형 이미지가 전통적인 미술사의 좁은 한계를 넘어 문화생태학적 문맥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이 글의 목적은 최근 비디오·영화·컴퓨터 등의 전자 매체를 수용하는 예술들에 있어 부각되는 영상 이미지의 특징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데 있다. 그러한 특징들은 미학·문화비평적 문제와도 광범위하게 얽혀있는 만큼 필자는 이 글의 한정된 분량을 감안하여, 최근 영상 - 전자정보 매체를 비판적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중 ‘변형’적 특성에 대한 약간의 예증을 나열하는 것으로 한정지을 것이다. ‘변형’이란 일단 실체주의적 사고에 반하는 것이 되는데, 이런 점에서 그것과 유사하거나 경우에 따라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들은 다양하다. 변화·변질·돌연변이·왜형·기형화 등을 들 수 있다. 1)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술 용어인 ‘몰핑(morphing)’을 이에 더할 수 있다. 이 개념들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들이 아니며, 따라서 필자가 말하려는 최근 영상 - 전자 매체 예술에서의 ‘변형’ 역시 위의 여러 개념들이 지니는 뉘앙스를 경우에 따라 가변적·복합적으로 함축한다. 단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변형에 관련된 위의 상당수의 용어들이 생물학적·진화론적 분야의 용어에서 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돌연변이설(mutationnism)·변형적 진화설(transformism)’ 등이 그 예이며, ‘기형(anamorphosis)’이라는 용어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매체 예술에서 다양하게 보여지는 ‘변형 지향적 실천’들은 이미 광채를 잃어버린 미술사 내부의 폐쇄적 관점보다는 문화생태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변형의 생태학과 전자매체예술 변형은 기본적으로 ‘객체성’과 ‘(항상적) 정체성’의 부정 혹은 그로부터의 일탈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은 이미 근대의 사실주의를 부정하기 시작한 이래 모든 예술 유파들을 통해 나타난다. 세기 초 표현주의·미래파·입체파 미술 등의 경우에는 보통 ‘데포르마시옹(d?forma-tion)’이라 했는데, 그것은 형태적 일탈의 과정 속에서도 기존의 참조물의 형태가 상당히 보존되고 있고, 또 보존되어야만 하는 사실주의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더욱 급진적인 변형들(즉 transformation, muta-tion의 단계로 나아가는)은 참조물의 보존보다는 완전한 변질과 일탈을 드러낸다는 점이 다르다. 잘 알려진 신디 셔먼이나 폴 맥카시의 자기 변장 시리즈는 가장 최근의 익숙한 예이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여자로 분장한 뒤샹을 모델로 한 만 레이의 사진 <로즈 셀라비(Rrose S?lavy)> (1920~21), 거울로 복제된 여러 명의 뒤샹의 모습을 찍은 사진 <경첩거울로 바라본 뒤샹>(1917) 등을 볼 수 있다. 가장 드라마틱한 변형의 예는 초현실주의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한스 벨메르(Hans Bellmer)의 파편적 인형 아상블라주와 라울 위박(Raoul Ubac)·쟈끄-앙드레 부아파르(Jacques-Andre Boiffard)·모리스 따바르(Maurice Tabard) 등의 ‘사진적으로’ 변형된 인물 사진들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이 지니는 변형적 특징은 이미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바따이유의 ‘무정형성(informe)’ 개념을 빌어 정밀하게 분석한 바 있다. 2) 좀더 멀리서 발견되는 변형의 흥미있는 예는 밀라노 출신으로 합스부르그가의 궁정화가이기도 했던 쥬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의 괴이하고도 코믹한 요리사의 초상을 들 수 있다. 생선·야채 등 모든 요리 재료들을 동원하여 재배치함으로써 인물 형상의 착시를 만들어 내는 아르침볼도의 회화는 요리 재료들의 이상한 변형적 조합을 통해, 가공적이고 변태적인 초상을 만들어 낸다. 사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대로 그것은 객체적 통일성의 재현의 좌절이란 점에서 ‘회화적 언어의 종말’이며, 3) 이러한 거부는 형태에 대한 리얼리즘적 독해의 자리에 혼성적 파편들의 환유적 읽기라고 하는 ‘변형의 지속’이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르침볼도에서 뒤샹 그리고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변형적 수행은 결국 파편성과 이질성에 입각한 사유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제는 다시 한번 영원한 숙제인 ‘타자’의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정보 매체 시대와 실재의 죽음 - 후기 모더니즘 - 페미니즘 - 변형’이라는 네 가지 개념들이 이루는 문제들의 연결 고리 혹은 격자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기술할 최근 영상 매체 예술에서의 몇 가지 변형의 실례들은 바로 그러한 인식론적 지점으로 계속 회귀되어 이해될 때 다른 중층적 함의도 자연스레 읽혀질 것이다. 비디오 작업: 서사적 구조에 개입하기 비디오 작업들이 컴퓨터 예술과 비교하여, 특히 서사적 층위의 파괴에 전념하고 있다면, 그것은 비디오라는 것이 일단 현실(즉 referent)과의 변증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위 ‘시각성’에 대한 해체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페미니즘적인 개입이 부각되는 현상은 60년대말의 초기 비디오 작가들에게서 용이하게 확인된다. <원더우먼>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 1946~ )은 비디오 이미지의 프로세싱보다는 TV 방영물의 차용을 통해 대중매체적으로 결정된 서사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읽기의 전복에 관심을 둔다. 비디오 테이프 작업인 <테크놀로지/변형: 원더우먼>(1978~79)은 잘 알려진 TV 프로그램의 영웅적 여주인공의 변신 및 활동 장면들과 스포츠 경기 장면 등을 혼성적으로 차용, 이것을 파편적·반복적으로 재편집한 작업이다. 여기서 원더우먼은 극 중 이야기 속에서도 이미 ‘변신‘의 표상이란 점이 흥미로운데, 그러한 극 중의 화려한 변신은 사실 완전한 성적(性的) 표상, 혹은 남근화한 여성-신체적 완벽성을 과시하는데 전념하는 운동선수같이-으로의 변신이다.(번바움의 편집에는 스케이트 선수를 비롯한 운동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이들은 ‘결핍’이 없는, 즉 어떤 주체적 욕망이나 역사성을 지니지 못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이다. 번바움의 작업은 그러한 여성 이미지의 파괴 및 서사적 변형, 즉 ‘변형하는 원더우먼을 다시 탈변형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타나는 것은 “나르시즘적 여성이라는 프로이트적 수사학이나, 자족적 광경으로서의 여성성이라는 라깡식 주제이다. 이것은 남성적 욕망의 재현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4) 더글라스 고든의 작업 역시 주로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시각 이미지에 기초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영화의 단편을 차용한다. 그것을 시간적으로 변형시킴으로서 서사의 확고한 일관성을 붕괴시키고, 서사 이면에 억압된 영화적 잠재의식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정의하면 그의 작업은 영화적 읽기의 파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이코 24시간>(1993)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잘 알려진 영화 일부를 차용한 후, 이것을 사운드 트랙없이 하루종일 보여줄 수 있는 길이로 매우 천천히 잡아늘려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상의 극단적 변형은 원래 필름에서 시각적 층위 저편에 숨겨져 있던 무의미한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시각화시킴으로써 이야기 차원 자체의 전복, 표면적 서사 구조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물과 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서사의 표피적 구축 과정 자체, 오히려 관객을 철저히 무감각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는 ‘기진맥진’하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관성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대신 그 자리에 매우 느린 조명의 변화나 시각적 기표들이 전면에 부각됨으로써 결국 ‘볼거리’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역시 비슷한 시리즈의 하나인 <낯선 환경 속에서의 예측 가능한 사고>(1994)에서는, 영화 <스타 트렉(Star Trek)>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대화장면을 매우 느리게 보여줌으로써, 방금 말한 서사적 차원의 붕괴는 ‘남성/여성’ 성 대결의 기반인 신체적 변별성(혹은 시각적 변별성)의 토대까지도 무너뜨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마르셀 뒤샹 <경첩거울로 바라본 뒤샹> 1917 라울 위박 <거울 속의 초상> 1938. 변형은 기본적으로 ‘객체성’과 ‘항상적 정체성’의 부정 혹은 그로부터의 일탈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쥬세페 아르침볼도 <물> 캔버스에 유채 1566. 아르침볼도의 회화는 요리 재료들의 이상한 변형적 조합을 통해, 가공적이고 변태적인 초상을 만들어 낸다. 더글러스 고든 <낯선 환경 속에서의 예측가능한 사고> 비디오설치 1994. 고든은 영화의 단편을 시간적으로 변형시킴으로서 영화적 읽기의 파괴를 노린다. 윌리엄 레이섬 <형태의 진화> 컴퓨터 동화상 1990. 끊임없이 증식하는 무정형의 상상적 괴물을 연상케 하는 그의 3차원 이미지 작업들은 화면상에서 새로이 ‘조각’되고 변형될 수도 있다. 다라 번바움 <테크놀로지/ 변형:원더우먼> 비디오테이프 작업 1978~79. 번바움의 작업은 여성 이미지의 파괴 및 서사적 변형, 즉 ‘변형하는 원더우먼을 다시 탈변형시키는 과정’이다. 논단/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Transformation 전자매체와 변형의 힘 김 원 방(미술비평) ------------------------------------------------------------------------------- - 컴퓨터 아트: 가상적 진화와 돌연변이 컴퓨터 아트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프랑스의 베라 몰나르(Vera Molnar)는 “컴퓨터의 우발적인 변화는 그 미학적 충격과 동시에 체제 순응적인 ‘대칭 지향적 사고’와 단절함으로써 일종의 전복적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5) 이러한 ‘우발적 혹은 요행에 의한 변화’는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에 의한 이미지 변형으로 나타난다. 컴퓨터 기술로는 흔히 ‘몰핑’이라 총칭하는 것이지만, 이 몰핑의 실행에 있어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우리가 캔버스에 데생을 해나가는 경우와는 다르다. 그것은 그 어떤 특정하고 정확한 결과를 예측하거나 그것과 일치하는 결과를 얻는 방식으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어떤 알고리슴(algorithm)의 결정을 추구할 뿐이며, 그 결과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예기치 않은 그 어떤 것이 된다. 즉 돌연변이적 진화를 수행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몰핑 기법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컴퓨터 아트에 있어 ‘생물형태적(bio-morphic)’ 이미지의 범람이다. 이러한 생물형태적 변형의 범람을 단순히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특성에 매혹당한 사용자들의 무책임한 탐닉의 결과라고 본다면 큰 오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컴퓨터만이 지니는 탈중심화된 사고가능성의 가장 명확한 표현이다. 끊임없는 몰핑과 진화, 물활론적 이미지들의 교환과 대체의 차원에서는 어떤 지배적 서사의 분절 대신, 유동적 시니피앙들의 ‘현실화/잠재화’가 결절없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시점의 중심적 주체’와, ‘확인 가능한 시니피앙의 사라짐에 따른 시니피에의 명확한 분절’ 모두 불가능한, 일종의 ‘의미론적 해방’이 실현되고 있는 차원이라 볼 수 있다. 정지 혹은 애니매이션의 방식으로 변형해 나가는 3차원 그래픽 작업들은 무수히 많은데, 그 중에서도 영국의 윌리엄 레이섬(William Latham, 1961~ )이 진화시켜 나가는 이미지는 매우 특별하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무정형의 상상적 괴물을 연상케 하는 그의 3차원 이미지 작업들은 달리나 탕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화면상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이 조각되고 변형될 수도 있다. 그는 인터액티브한 작업 조건에서 고도로 복잡하게 변형해 나가는 가공의 이미지를 창출해 내려 한다. <형태의 정복>(1988), <형태의 진화>(1990) 등의 작품은 그 어떤 특정한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의 선택과 우발적 변형을 병행시키는 일종의 가상적 진화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이다. “‘뮤테이터(Mutator)’라고 하는 ‘예술적 진화 프로그램’ 을 통해, 매순간 어떤 요소가 생존하고 어떤 요소가 제거될 것인지 결정된다. 이러한 진화와 변형의 과정을 통해 거의 무한한 수의 조각적 존재들이 합성되어 나간다. (…) 그것은 일종의 컴퓨터적 진화의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윌리엄 레이섬)6) 요이치로 가와구시는 생물형태적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대표적 작가인데, 해초나 해파리, 기타 열대 해저 생물들로부터 영감을 받는 그의 환상적 디지털 풍경들은 그 역시 매우 동적인 방식으로 탄생과 합체·증식을 해 나간다. <플라라(Fla-ra)>(1989)란 작품의 경우 식물과 동물의 두 가지 성질을 지닌 존재들이 끊임없이 상호 변형을 해 나간다. 가와구시의 작품에서는 특히 생물적 존재들의 외피가 주변 환경을 거울처럼 반사시킴으로써 단순한 빛의 표면으로 환원되기도 하고, 나아가 그 환경과 동화됨으로써 소위 로제 카이유아(Roger Caillois)가 말하는 ‘곤충의 신경쇠약증’ 같은 변태의 생태성을 보여준다. 7) 이상 몇 가지 변형의 예를 살펴보았다. 한정된 근거로 어떤 총체적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우선 이러한 ‘변형’이란 것은 당연히 영상매체와 관련해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뒤샹과 신디 셔먼의 예에서 언급했듯이, 일종의 ‘변형자들’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는 일단의 신체예술 작가들이 현재 번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기 표현을 위한 ‘낭만주의적 과장’이나 ‘데포르마시옹’보다는 ‘타자 지향적·탈정체적 돌연변이’를 지향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잘 알려진 예로서는 기괴한 변장의 매튜 바니·오를랑·토마스 루프의 사진과 찰스 레이 등을, 한국의 경우 김준·이불·이윰·권여현 등을 들 수 있다. 변형과 관련된 또 하나의 작가군으로서는 이른바 ‘사이보그 작가’가 있다. 방금 언급한 작가들과 내용상 그리 구분되지 않는 경우인데, 스텔라크(Stelarc)·캐서린 이캄(Catherine Ikam) 등이 그 경우이다. 8) 이제 변형에 대한 철학적·문화비평적 접근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드 세르또(Michel de Certeau)가 무한한 변형적 증식 기계에 대한 은유로써 사용한 ‘독신자 기계’의 개념, ‘의태’에 관한 까이유와의 이론,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페미니즘적 사이보그론’, 넬 텐하프(Nell Te-nhaaf)의 ‘생-기제(bioappara-tus) 이론’ 등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힘과 이질성에 입각한 사유자들인 니체와 들뢰즈가 남아 있다. 주 ------------------------------------------------------------------------------- - 1) 영어로는 transformation·transmutation·mutation· deformation·distorsion·metamorphosis·anamorphosis 등을 들 수 있다. 2) Rosalind Krauss, Corpus Delicti, N.Y.(October, no 33 summer 1985) 그리고 ‘ informe‘ 개념을 더욱 확장 적용한 현대미술의 분석으로서는, Yves-Alain Bois와 R. Krauss가 1996년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에서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도록 <L'informe: mode d'emploi>를 보라. 3) Dalia Judovich, Unpacking Duchamp : Art in Transit, Berkeley, Univ.of California Press, 1995, p. 83-84 4) Craig Owens, <The Discourse of Others: Feminists and Postmodernism>, Beyond Recognition: Representation, Power, and Culture, Berkeley, Univ. of California Press, 1992, p.182 5) Frank Popper, L'art `a l'age electronique, Paris, Hazan, p.80 6) 위의 책, p.96 7) 카이유아의 ‘곤충의 신경쇠약증‘에 대한 논의는 전자 매체 예술 전반에 있어 특히 사이보그 이론이나, 몰입 이론, 그리고 ‘techno-feminism‘의 이론들과 관련하여 자주 참조되는데, 그것은 주로 타자와의 접속에 대한 생물학적, 나아가 문화인류학적 생태성을 논하기 때문이다. 8) 이러한 작가들에서의 ‘돌연변이적 미학’에 대해서는 졸고, <몸의 돌연변이적 확장: 그 문화적 테크놀로지>, 《미술과 담론》(1997 여름호) 참조. 요이치로 가와구시 <증식> 컴퓨터 동화상 1990. 가와구시는 생물형태적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의 환상적 디지털 풍경들은 매우 동적인 방식으로 탄생과 합체·증식해 나간다. 매튜 바니 <Cremaster 4> 비디오 1994~95. 일종의 ‘변형자들’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는 일단의 신체예술 작가들은 ‘타자 지향적·탈정체적 돌연변이’를 지향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칼 심즈 <입자의 꿈> 198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