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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01시 12분 55초
제 목(Title): 이원곤/몽타쥬-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논단/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Montage
영상언어의 기초 
이 원 곤(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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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의 제작과 이론적인 연구는 사진과 영화 양쪽에서 거의 동시대에 행하여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측 예술가들 사이에 교류가 적었다. 
포토몽타주가 주로 회화와의 관계 속에서 관찰되었던 반면, 영화는 전통적인 예술 
장르들과 독립된 대중 예술의 장르로서 성립되었다. 

영상언어의 기초이며 기계영상시대의 핵심적인 시각예술 기법인 몽타주가 어떻게 
영상기법을‘전통과 혁신’으로 구분했는지 알아본다. 

몽타주(montage)란 원래 프랑스어의 동사 ‘monter’의 명사형으로서, 일반적으로 
‘본질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전체상을 형성하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결합’의 의미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방면에 다양한 뜻으로 쓰여지고 
있는 말이다. 먼저 일반인들에게 있어 그것은 범죄 수사에 사용되는 합성 사진을 
연상시킬 것이고, 프랑스 영화에서 보자면 ‘편집(edit)’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주로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영상예술의 혁신적인 
규범으로 추구되었던 기법을 지칭하는 용어로서의 몽타주이다. 
그런데 예술 제작상의 한 기법으로서의 몽타주에 관하여 논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것이 원래는 공학 용어였다는 사실이다. 이 용어를 
예술작품의 제작 기법으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그 작가들이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니라 엔지니어로 자처하고, 자신의 행위는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기보다는 
기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명했음을 뜻한다. 

20세기 시각예술의 키워드 

18세기 후반 서양에서 미술(beaux-art, fine ar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미적 
기술’을 ‘실용적인 기술’과 구분했고, 이를 기반으로 근대 예술의 각종 제도가 
정립되었다. 그런데 굳이 공학 용어를 빌려와 미술(아니 시각예술)의 기법을 
설명하고자 한 까닭은 우선 그것이 사진기나 영화촬영기와 같은 너무나 구체적인 
하나의 기계를 통해 ‘생산’한 영상을 자르고 조립하는 제작 과정이 기존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다게레오타이프(1939)나 시네마토그래프(1895)와 같은 구체적인 영상 기계의 
발명이 사진과 영화 같은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음은 자명하지만, 만약에 그것이 
예술 형식을 거의 결정해 버렸다고 단언한다면 너무도 기술결정론적인 편견이라고 
지적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용어가 예술작품 제작의 기본 원리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데에는 미래주의·다다이즘과 같은 미술 운동과 러시아혁명 
및 사회주의에 의해 자극된 지적 혁신주의가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마르크스 앵겔스의 유물론적 사관에 의거하여 구체제를 무너뜨린 러시아의 
혁명지도층은 무엇보다 구시대의 예술이 가졌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민중이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노동자 농민의 예술’을 확립하려고 했다. 그리고 
민중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제창된 구호는‘공업화’였으며, 여기에서 자극된 
기계주의 미학은 ‘예술작품은 바로 공업생산품’이라는 시각을 낳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서유럽의 혁신적 예술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그들은 
스스로를 기계의 생산품인 영상을 자르고 조립하는 기능공이라 보았다. 또 그 
시기가 러시아혁명이라는 사상적 변혁기에 기계에 의한 새로운 문명의 건설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제창되었던 때라는 점에서, 몽타주는 20세기의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할 때 간과할 수 없는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몽타주의 제작과 이론적인 연구가 사진과 영화 양쪽에서 거의 동시대에 
행하여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나, 우선 양측 예술가들 사이에 교류가 
적었고, 포토몽타주가 주로 회화와의 관계 속에서 관찰되었던 반면, 영화는 
전통적인 예술 장르들과 독립된 대중 예술의 장르로서 성립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에 관한 연구도 각각 다른 배경을 지닌 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어, 몽타주 미학을 
일괄적으로 조망하여 규명하는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글은 간략하나마 
시각예술에 관한 전반적인 전망을 개진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우선 몽타주의 
형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평면의 몽타주 - 콜라주와 몽타주 

사진술의 발견은 원래 화가로서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의 하나로 추구된 결과였다. 하지만 사진의 예술성에 관한 긍적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되었고, 동시에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1860년대에 로빈슨(Robinson)이라는 
사람이 발표했던 합성사진 (composite photographs)의 기법은 평면상에서 영상 
이미지를 조립(몽타주)해서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최초의 예였다.

그는 음화(nega)단계에서 각각의 다른 프레임에서 온 부분들을 합성해 하나의 
완성된 회화를 제작하고자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대체로 실패로 끝났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서양 회화는 르네상스 이래 지켜지고 있었던 유크리트적이고 
사실적인 원근법적 공간 속에 있었지만, 각각의 음화가 가지고 있는 포커스나 음영 
그리고 스케일 등의 차이는 웬만해서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형식의 불일치가 가장 근본적인 난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불일치는 의외의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19세기 
후반에 대중에 의해 널리 유행되었던 ‘사진 이미지의 콜라주(collage)’ 인데, 
콜라주는 흔히 입체파 화가들에 의해 1911년에 최초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는 제도권 예술의 세계에 범위를 한정했을 때만 그러하다. 실제로는 
이보다 수십 년 전부터 사진 이미지를 잘라 내 풀로 붙이는(coller) 기법이 
일반인들의 재미 거리나 취미로서 유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입체파와 미래파 
화가들은 르네상스 이래의 서구회화가 지키고 있었던 유크리트적이고 사실적인 
원근법적 공간을 해체하고, 그것을 다시점(多視點)과 시간과 운동의 연속성으로서 
재구성하였지만, 이전부터 이 같은 화면 합성은 일반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었다.

포토몽타주는 주로 하우스만(Raoul Hausmann)·회흐(Hannah Hoch)·그로츠(George 
Grosz) 그리고 하트필드(John Heartfield)등의 베를린 다다이스트 그룹에 의해 
활발하게 제작되었는데,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대중들의 작품(?)이었고,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은 포토몽타주를 통해 주로 정치 
풍자적인 내용을 표현하였다. 한편 러시아에서 포토몽타주는 대중에게 혁명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쿠르트시스(Gustav Kurtsis)의 
작품에서 보듯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에서 차용한 기하학적인 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 등이 그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보자면 포토몽타주는 여전히 콜라주의 일부였다. 그들은 정치적 
이념의 표현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사진 이미지의 엉뚱한 결합은 바로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보듯이 ‘오브제의 우연한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사진 콜라주와 몽타주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해 두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콜라주는 말 그대로 ‘풀로 붙이는’행위를 의미함으로 종이나 
사진과 같은 물체 즉 오브제를 사용해 제작하는 기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몽타주는 영상을 합성(또는 조립)하는 것이므로 음화 단계에서 영상 정보만을 
다룸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 요컨대 ‘콜라주는 오브제, 몽타주는 시각 정보’라고 
하면 구분은 확연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술가들이 양자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고 있는데, 예컨대 콜라주 
작가들에게 있어서 몽타주는 바로 콜라주의 한 방법이고, 몽타주작가들이 보자면 
콜라주는 곧 몽타주의 범주에 속하는 기법에 불과하다. 이 둘 간의 구분은 
1920~30년대에 대체로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국경을 경계로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의 하나로서 독일과 러시아 같은 동쪽의 예술가들이 정치적 
활동과 함께 스스로를 기능공이라고 자처한 반면, 프랑스 예술가들은 이 같은 
태도를 비난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던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콜라주와 구별될 수 있는 몽타주의 구체적인 특징을 한 가지 더 지적해 본다면, 그 
조립이 무엇인가를 잘라 내는(cutting) 작업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잘라내는 
것으로 본다면 프레임이 우선 대상 속에서 한 부분(혹은 장면)을 잘라 내는 
것이거나, 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을 고착시켜 얻어 내는, 다시 말해 
잘라 내는 것이다. 나아가 프레임(즉 사진)의 일부를 잘라 내거나, 프레임의 
연속(즉 영화) 중에서 일정 부분을 잘라 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합성(또는 조립)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그 이미지는 대체로 콜라주의 제작 예에서 
보듯이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영화나 비디오에서 마스크처리에 의한 광학적 합성이나 
크로마키(chroma-key)와 같은 기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포토몽타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헨리 피치 로빈슨 <임종> 조합사진 1858. 로빈슨이 발표했던 합성사진의 기법은 
평면상에서 영상 이미지를 몽타주해서 작품을 제작한 최초의 예였다. 





한나 회흐 <케이크 나이프로 자르기> 포토몽타주 1919. 포토몽타주는 베를린 
다다이스트 그룹에 의해 활발하게 제작되었는데, 주로 정치 풍자적인 내용을 
표현하였다.





존 하트필드 <금화를 집어삼킨 슈퍼맨 아돌프 히틀러> 포토몽타주 1932





엘 리씨츠키 <소련예술전> 전시 포스터 126.5×90.5cm 1929





구스타프 쿠르트시스 <다이빙 선수> 콜라주 포토몽타주 60.5×44.5cm 1928. 
러시아에서 포토몽타주는 대중에게 혁명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논단/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 
 

Montage
영상언어의 기초 
이 원 곤(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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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몽타주 
영화에서의 몽타주론 내지 그 기법은 혁명 후의 러시아에서 가장 치열하게 
추구되었다. 그 과정을 상술할 수는 없겠으나, 여기서의 핵심 개념은 바로 
쇼트(Shot)이다. 쇼트는 자연 상태의 대상으로 부터 어느 한 시간과 시각(視角)을 
잘라 낸(cutting) 것이고, 그것을 조립함으로써 영화적 현실이 창조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는 몽타주란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쿨레쇼프(L. 
V. Kulesov)는 다른 장소에서 찍은 필름을 이음으로써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창조하거나, 하나의 영상이 다른 장면과 연결되어서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가를 실증하는 등의 실험을 통해 영화 몽타주의 선구적인 작업을 
수행했다. 이어서 푸도프킨(V. Pudovkin)은 ‘단어를 가지고 문장을 써 내려가듯 
영화는 쇼트를 벽돌처럼 이어감으로써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연와론). 

이에 반하여 에이젠슈테인(S. M. Eisenstein)은 쇼트와 쇼트가 단지 서술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가는 변증법적인 
구조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중국의 상형문자가 모여서 새로운 
글자(會意文字)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하이쿠(俳句)처럼 구(句)가 서로 
충돌함(連句)으로써 새로운 심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예로 들고 있다. 요컨대, 
상형문자-회의문자-하이쿠로 이어지는 각 과정에서 충돌에 의한 변증법적인 이행이 
일어나듯이, 영화에서도 쇼트 - 신(scene) -시퀀스(sequence)로 이어지는 각 
과정에서 마찬가지의 이행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인 공식의 명료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쇼트를 기본 요소로 해 그것들의 조립에 의한 새로운 영화적인 현실을 
창조하거나 지적영화(知的映畵; 에이젠슈테인)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에서의 몽타주론의 핵심이겠으나, 여기서도 자연 상태로부터 쇼트를 잘라 내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수직의 몽타주 

토키(Talkie)와 색채 영화의 등장은 영화의 현실 재현력을 혁신적으로 향상시킨 
사건이었지만, 많은 감독들에게 있어서는 기존의 무성영화의 미학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돌이켜보자면 시네마토그래프가 비록 마술과도 같은 대체 
현실로서 받아들여졌다 하더라도, 소리와 색채가 없는 기존의 영화는 아무래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세계였다. 이러한 영상 세계에서는 그만큼 예술가들의 
표현력이 발휘될 여지도 많았다. 

아른하임(R. Arnheim)이 지적하였듯이 “요소의 결핍이야말로 그만큼 (예술적)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영상 미디어의 등장으로 예술가의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인식은 
많은 감독들로 하여금 한동안 고집스럽게 무성 흑백영화를 고집하게 하기도 했고, 
토키의 등장이 10년쯤이라도 더 늦어졌더라면 영상예술 미학은 그만큼 더 발전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영상예술이 그 미디어의 특성에 의해 결정적으로 한정될 수도 
있는 분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하지만 에이젠슈테인은 ‘수직의 
몽타주’라는 이론을 제시해서 몽타주론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어 내었다. 그것은 
마치 필름 위에 영상과 오디오의 분리된 트랙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총보(總譜)에서 각 악기를 위한 
악보가 존재하듯이 영화적 현실도 이처럼 평형하는 트랙 사이를 종단하는 
‘수직적’ 관계 속에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젠슈테인이 직접적으로 사용한 말은 아니지만, 예컨대 영상에서 오디오를 
사용하는 기법에는 ‘(frame) IN’ ‘OUT’ ‘OFF’등의 용어가 있다. ‘IN’은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 장면에서 그 사람이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상태이며, ‘OUT’이란 그 사람이 프레임 바깥에 있는 상황, 마지막으로 ‘OFF’는 
그 공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나 배경음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같은 기법들이 오늘날의 영상예술에서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토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영화감독들이 
‘주인공이 대사를 말하고 있는 동안에 카메라를 그 곳에 고정시켜야 될 것이므로, 
영화는 결국 연극의 복사판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각각의 트랙이 존재하는 한 그것들 사이의 관계는 변경될 수 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영화적 현실’의 창조도 가능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감각 정보는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하게 되어 있다. 
SF영화 <브레인 스톰(Brain Storm)>을 보자면, 인간의 오감을 모두 기록·재생해 
뇌에 직접 입력시키는 장치가 등장하는데, 그 기록 장치는 필름이나 비디오와 
마찬가지로 띠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5개의 트랙이 놓여져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가상현실(VR) 시스템의 한 형태를 상상해 본 것이겠으나, 오감이 각각 다른 
형태의 정보인 까닭에 그 기록과 재생의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처럼 
평행적인 관계 속에 놓여져야 한다는 상식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그 구조는 
에이젠슈테인이 지적한 대로 오케스트라의 총보와 마찬가지이다. 예술가들이 
여기에 ‘수직적 몽타주’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풍부한 예술적 표현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구성의 또 다른 이름 몽타주 

범죄 수사를 위한 기법이든 편집 혹은 포토몽타주이든 몽타주는 시각예술이 
예전부터 원천적으로 사용해 오던 원리, 즉 ‘구성’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서 이 점을 거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먼저 범죄 수사의 기법으로서의 몽타주 제작 과정을 보자면, 그것은 목격자의 기억 
속에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는 용의자의 ‘진짜 얼굴’을 전체적인 인상이나 
이목구비로 나누고, 그것을 하나하나 견본과 대조·조립해, 다시 기억 속의 인상과 
조회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목격자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영상을 구체적인 
화상(畵像)으로 구체화시키는 기법이다. 여기서 목격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용의자의 진짜 얼굴, 즉 ‘X’를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심상 혹은 
내용’으로 바꾸어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저술가 플리니우스(Plinius)가 지은 <자연사(Naturalis Historia)>에는 
그리스 시대의 화가 이야기가 나오는 데, “화가 젝시우스(Zexius)가 크로토나 
섬의 가장 아름다운 다섯 명의 소녀들의 아름다운 부분의 형상을 따 헬레나 
여신상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헬레나 여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을 
것이고, 젝시우스는 그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다섯명의 처녀에게서 따온 
얼굴·팔·다리 등의 부분을 조립함으로서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서 헬레나가 
위의 ‘X’에 해당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전술한 로빈슨은 자신의 기법이 
예술작품 제작의 기본 원리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예로 
들었는데, 이는 사진을 매도하고 있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몽타주가 회화의 ‘구성’과 동의어임을 역설한 것이다. 

하지만 몽타주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벤야민(W. Benjamin)은 이 차이를 ‘기도사와 외과 의사’의 그것에 
비유했다. 

즉 기도사가 영적인 힘으로 환자를 치료하고자 할 때, 그가 자신의 권위로 환자와 
자신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줄일 수 있지만, 외과 의사는 직접 환자의 몸 
속으로 침입해 물리적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처럼, 화가가 만드는 영상은 
전체적이고 뭉뚱그려진 것이지만, 포토몽타주 작가나 영화 제작자는 기계가 생산해 
낸 결과물을 조각조각 자르고 그것을 새로운 법칙에 따라 조립한 것이다. 

카메라·영사기·광학장치 등 100여 년 전의 유럽 사회에 흘러넘쳤던 영상 
기계들은 마치 그것이 본능이기라도 하듯이 어떤 수단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표현 방법의 개발을 거듭해 왔다. 예전의 ‘기계의 생산물’들은 오늘날 ‘(영상) 
정보’로 불리고 있으며, 그것들을 기록·처리·보관 그리고 전송하는 기술이 
진화를 거듭한 결과, 그 정보가 선택(cutting)되고 합성(montage)되어 만들어 내는 
현실은 현대인들의 삶에서 물리적인 현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이며, 또 그 
경계조차 애매해지고 있다. 

우리가 신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외계와 접할 수밖에 없고, 그 감각기관들이 
미디어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 한, 개인에게 있어 모든 정보는 결국 현실인 동시에 
환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전함 포춈킨>의 계단 장면. 에이젠슈테인은 쇼트와 쇼트가 
서로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가는 변증법적인 구조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앨리스 렉스-네를링거 <여자 재단사> 포토몽타주1930





르네 마그리트 <신들의 분노> 캔버스에 유채 61×50cm 1960





막스 에른스트 <플레이아데스 성단> 1921. 몽타주가 만들어 내는 현실은 물리적인 
현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이며, 또 그 경계조차 애매해지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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