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01시 02분 22초 제 목(Title): 장문걸/드로잉교육 다시 시작하자!/월간미� 칼 럼 드로잉 교육 다시 시작하자 미술대학생 드로잉 워크숍 참관기 장문걸 (서양화가·서울여대 교수) ------------------------------------------------------------------------------- - 과다한 입시 경쟁에서 비롯된 공정 관리를 지상과제로 삼다 보니 석고 데생은 차선이지만 대안없이 선택되고 있다. 여기에서 드로잉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싹트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고리가 대학 미술교육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최지현. 객관적 재현의 드로잉. 미술에서 소묘(素描)라는 용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밑그림’이다. 영어로는 드로잉(drawing), 프랑스어로는 데생(dessin)이다. 원래 소묘는 일본이 서구미술을 수용했던 근대기에 역관들이 잘못 번역한 용어가 그대로 굳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을 통해 서구적 조형어법을 체득해 온 우리는 이 소묘라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해 왔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서구의 미술 용어인 데생·드로잉이 소묘와 함께 혼용되고 있다. 또 현대미술에서는 드로잉의 영역이 크게 넓어져 하나의 독자적 장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직 용어에서부터 개념에까지 많은 혼란을 빚고 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묘는 석고 데생이고, 드로잉은 무조건 현대적인 것이라는 식의 인식도 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소묘, 데생, 드로잉 석고 데생(소묘)이 우리의 미술교육, 특히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데생이 객관적 재현 능력, 사실적 묘사 능력을 기르는 미술교육의 기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창의력 혹은 상상력을 측정하기에는 석고 데생으로는 불합리하다.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그럼에도 대학 입시의 석고 데생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며 살아 있다. 과다한 입시 경쟁에서 비롯된 공정 관리를 지상과제로 삼다 보니 석고 데생은 차선이지만 대안없이 선택되고 있다. 여기에서 드로잉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싹트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고리가 대학 미술교육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드로잉이 아주 좁게 보아서 종이와 선을 사용한 밑그림으로서의 용도라는 점만 주목하다라도 그것은 창작에 많은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기성작가들의 문제가 아닌가. 드로잉이란 무엇인가. 우리식의 용어는 가능한가. 올바른 드로잉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러한 문제에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서울 시내 미술대학 교수들이 모였다. 그리고 드로잉의 새로운 위상과 다양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드로잉 워크숍’(6월 22일~27일 서울여대)을 개최하게 되었다. 서울 소재 미술대학 1·2학년을 대상으로 6일 간 열린 이번 워크숍은 드로잉의 개념을 정립하고 아카데믹한 재현의 조형 원리를 올바로 이해하여 드로잉의 현대적 개념 속에서 다양한 방법론을 체득하도록 수업 내용이 짜여졌다.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여 무엇보다 입시의 틀 속에 갇혀 왔던 대학 초년병들이 눈과 마음을 열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성균관대 김현정 홍희정. 콜라주와 오브제를 사용한 드로잉.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키스 해링의 작품 세계 감상, 객관적 재현을 위한 실기, 드로잉의 전통적 개념에 대한 이론 강의, 감각 개발을 위한 드로잉, 공동작업을 통한 심리적 주제의 추상적 표현, 드로잉의 현대적 개념에 대한 이론 강의, 콜라주와 오브제 등을 이용한 드로잉 작업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교육 과정을 통해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종합 제작을 하도록 했다. 학습 목표의 효율화를 위해 슬라이드와 영상 매체 등도 적극 도입했다. 또 주제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빔 프로젝트를 통해 제시하거나 현대무용가 이순의 공연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의 제작 작품을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대형 스크린에 비추며 종합평가를 진행했다. 개별 대학 수업에서는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 많았다. 재현 능력만 요구하는 입시 이번 워크숍 행사의 일환으로 드로잉의 개념 정립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미술이론가들의 주제 발표와 질의 토론으로 이어진 심포지엄의 내용은 연구지를 통해 발표할 예정인데, 여기서 그 내용을 간단히 언급해 본다. 김영나 서울대 교수는 드로잉이 정의내리기 어려운 매체이지만 “표면에 선을 긋는 행위 및 선이 지배하는 결과물들”이라고 요약했다. 드로잉의 기본적인 개념은 화가의 사고가 투영된 가장 지성적인 매체로 회화·조각·건축 작품에 기초적인 통제 역할을 한다는 개념과, 작가의 아이디어와 형상이 직접적이고 자연스레 그래픽한 형태로 드러나는 가장 개인적인 매체라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현대미술에서 기술적 중요성보다 인간 경험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시되었으며, 드로잉의 묘사적 기능의 감소는 오히려 많은 가능성을 지닌 매체로 대두되었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정소영. 같은 사물을 보고 다른 재료와 기법으로 그리기. 정형민 서울대 교수는 현대 화단에서 드로잉과 회화의 구분이 실패했다는데 공감하며, 동양화에서는 패인팅과 드로잉이 하나로서 개념 구분이 없었고, 그림이라는 것이 글과 어떻게 다른가를 구분짓는 것이 중요한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 한국화단의 상황을 살피면서 해방 이후 서구 개념이 동양 전통 미학과 중첩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나름의 용어를 찾아 내고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동양적 개념과 전통 속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김복영 홍익대 교수는 편식화된 의식을 깨뜨리고 드로잉의 함축된 지평을 마련하여 미술교육의 올바른 진로가 모색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드로잉의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전 시대의 리얼리티의 재검토 작업이 필요하며, 드로잉의 학습 과정이 손과 가슴, 머리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 열린 미술교육을 위하여 이번 워크숍은 각기 다른 울타리에서 다른 체제로 학습한 학생들의 흥미로운 결과물들을 보여주었다. 예상 외로 실기 능력은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손 기술 , 객관적 재현 능력 이상의 조형 능력은 상대적으로 허약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은 하나의 지식 체계이며, ▲동국대 정원희. 무용가의 공연을 20미터 두루마리 종이에 그리기 거기에는 과학 정신과 인문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객관적 재현이 단순히 기계적 표현에 머무르고 있다. 학생들의 원근법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맹목성을 지적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입시에서 굳어진 맹목적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드로잉의 교육 방법에 따라 다양한 성과가 나왔다. 같은 인체 모델을 대상으로 드로잉 수업을 하더라도 묘사 시간에 따라 제작 결과가 매우 달리 나타났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모델의 포즈 시간을 극히 짧게 하고 동작을 주고 그리게 했다. 현대 무용가 이순의 때로는 정지된 듯하고 때로는 무너지는 듯한 격렬한 동작을 취해 주었다. 그 결과는 외양의 움직임 포착보다는 선의 흐름과 표현력으로 추상적이고 행위적으로 표현한 드로잉이 나왔다. ▲모델 수업 광경 공동작업에서는 심리적 주제(실연·두려움·슬픔·기쁨 등등)를 던져 주고 추상적 표현을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추상적 표현에는 다소 미숙했다. 이 역시 입시의 영향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큰 화면을 주었음에도 화면 외부로 드로잉이 넘쳐 나간다거나 개념적 요소와 행위적 요소들이 적극 개입된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나름대로 현대적 개념의 드로잉에는 피상적이나마 친숙해 있고, 의견 교류로 아이디어 상승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풀이된다. 실기 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참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사실 묘사를 잘 하는 학생, 표현적 요소에 강한 학생, 물질을 잘 다루거나 평면을 벗어난 조형 요소에 강한 학생 등 그 특질이 있음을 확인했다. 역시 미술 교육에서 개성을 중시하는 특성화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드로잉 워크숍은 앞으로 행사 내용을 확대 심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드로잉의 폭을 극단적으로 좁히거나 반대로 극단적으로 넓혀 장르별 특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의 미술 교육도 효과적 방법을 연구하고 학생 개인의 관심과 능력을 고취, 발전시키는 다양한 교과과정을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입시제도에 희생된 작가 지망생들은 입시의 높은 벽을 안고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오늘의 대학 교육은 이 벽을 헐어 주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이론가들도 이 문제에 공동의 관심을 가지길 기대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