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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virOnment ] in KIDS
글 쓴 이(By): RFM (new wind)
날 짜 (Date): 2005년 7월  1일 금요일 오전 03시 33분 19초
제 목(Title): 변화의 조짐?


한겨례21의 칼럼을 인용합니다. 꿈보다 해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선수들이나 청소년들이 정말 쿨∼하게 행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목 : 나카타와 박주영이 ‘떼’로 온다>

애국주의와 비장미 없는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쿨한 발언들!
지고난 경기엔 절절한 ‘속죄’ 대신 “이기는 법 이제 알겠어요" 

누가 뭐래도 나카타는 나의 우상이다. 일본 오빠, 나카타 히데토시. 그는 그냥 
잘하지 않았다. 멋있게 잘했다. 툭툭 차는 패스 하나 하나가 절묘했다. 
슬렁슬렁 몸놀림 하나하나가 부드러웠다. 나카타가 만들어내는 골은 우격다짐이 
아니었다. 뭔가 절묘하고, 뭔가 아름다운 골이었다. 그는 아시아에서 좀체 보기 
힘든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일본 대표팀 대신 AS로마 택했던 신세대 

그의 태도는 그의 플레이보다 멋있었다. 바야흐로 1990년대 후반, 나카타가 
한창 일본의 희망으로 떠오르던 무렵, 그는 축구를 계속할까 공부를 할까 고민 
중이라는 발언을 했다. 국가대표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다. 어쩌면 
스스로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 실제 AS로마 시절, 세리에A 
스쿠데토를 다투는 경기와 일본 국가대표팀의 중요한 경기가 겹치자 단호하게 
클럽팀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쿠울~! 

그는 애국주의에서 저만치 벗어나 있는 새로운 인간형처럼 보였다. 일본정신이 
사라진 신세대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콤플렉스가 없으면, 자신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언행이었다. 나는 그의 콤플렉스 없음에 콤플렉스를 
느꼈다. 그는 한-일전에서 지고 나서도, 한 경기 졌네, 뭐 이런 표정이었다. 
그의 쿨함에는 이기고 뛸 듯이 좋아하는 사람도, 졌다고 죽을 상을 하고 있는 
사람도 모두 바보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에게는 비장미가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의 태도는, 승부보다 내용이, 승리보다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 이런 자발적인 오해를 모아모아, 나카타의 빠돌이가 되었다. 물론 
그의 스타일에도 매료됐다. 얼굴도 멋있지만, 스타일이 죽였다. 헤어스타일을 
바꾸어도, 수염을 길러도, 뜬금없이 튀지 않고, 우아하게 어울렸다. 조선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대동아공영권을 형성한 ‘니뽄 스타일’이 그라운드에 
현현하신 것이다. 쳇, 일본이 선진국은 선진국이군. 그냥 질투심 없이 
부러웠다. 친구들을 만나면 침을 튀기며 그를 “아시아에서 가장 멋있는 
사나이”로 치켜세우기 바빴다.

한국 청소년 축구대표팀을 보면 마침내 이 땅에도 새로운 세대가 당도했음을 
느낀다. 콤플렉스 없는 세대가 마침내 등장했다, 고 축복한다. 박주영은 
교묘하게 쿨하다. 김남일과 비교해보자. 김남일은 끝없는 에피소드를 
자가발전하는 뜨거운 스캔들 메이커였다. 박주영은? 어떠한 자가발전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다. 인터뷰에서도, 약간 무뚝뚝하게, 짧은 
단문으로, 뭔가 뜨거운 대답을 기대하는 뜨거운 질문을 배반하며 차가운 
대답으로 일관한다. 마치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제발 나를 두고 
‘오버’하지 말라는 듯. 그것은 뜨거운 열풍 대신 오래가는 열기를 
만들어낸다.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는 쉽사리 애국주의 
발언도 하지 않는다. 그의 기도 세리머니는 전근대적이라고? 뭐 그럴 수도 
있다. 뭐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에게 종교는 일종의 취향일 뿐이다. 누가 
뭐라든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고 얌전하지는 않다. 
축구에 관해서는 표현이 확실하다. 그가 툭 내뱉은 폭탄 발언을 기억하는가? 
“배울 선수는 있지만, 닮고 싶은 선수는 없다.” 얼마나 오만하고, 얼마나 
솔직한 표현인가? 남을 의식한다면, 자신감이 없다면 언감생심 못할 말이다. 
더구나 장유유서의 전통이 유구한 한국 스포츠계의 미덕에서 벗어나는, 
잔잔하지만 오만방자한 발언이다. 

그런데, 박주영이 아니라 박주영들이 몰려왔다. 한국 청소년 축구대표팀은 
‘떼’로 ‘쿨’하다. 스위스 경기에서 지고 나서도 어찌나 쿨한지. 박주영은 
“이제 이기는 법을 알겠다”고 쿨하게 말했다. “져서 죄송하다”가 아니라 
“이기는 법을 알겠다”니. 맙소사 이건 천지차이다. 다른 선수들은 한술 더 
떴다. “후반에는 우리 게임을 했다”는 ‘오만방자한’ 멘트를 날렸다. 4강 
신화 재현의 역사적 사명을 띤 역군들이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망각하고, 
쿨하디 쿨한 발언만 골라 쏘았다. 그들의 쿨한 발언은 나이지리아전 역전승을 
거둔 뒤에도 이어졌다. 역전골을 성공시킨 백지훈은 “경기를 할수록 골을 넣을 
것 같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후반 40분이 넘도록 조바심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승용은 후반전 나이지리아의 스타 오코롱코가 교체돼 나가자 
엉덩이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경기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고, 그의 팀은 지고 
있었다. 더구나 지면 탈락이었다. 어디 승부에 집착하고, 애국심에 눈먼 
선수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매너인가? 즐겼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고, 여유가 
있으니까 승리했다. 

솔직한 오만…근성 없는 축구할 때 됐다 

박주영은 역시 지존이었다.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실축하고도 약간 주춤했을 뿐 
머리를 쥐어뜯지 않았다. 무엇인가에, 누구에겐가 속죄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오버하는’ 속죄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쿨하니까 
당황하지 않았고, 당황하지 않았으니까 역전했다. 당황하지 않았으니까 자기 
플레이를 했다. 그래서 그들의 역전승은 통쾌하다기보다 유쾌했다. 네가 
잘못했다고 질책하지 않고, 내가 잘했다고 자랑하지 않고, 너는 네 플레이 
하고, 나는 내 플레이 하다 보면, 역전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로를 
질투하지 않는 아름다운 개인주의는 아름다운 조화의 승리를 불러온다. 

나는 체격 좋고, 얼굴 좋고, 스타일 좋은 청소년 대표팀이 좋다. ‘본 투 
비’로다가, 애국심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는 그들의 태도는 더 좋다. 조국에 
대한 비장미가 없으니까 상대에 대한 비정함도 없다. 내가 나카타에 매료됐던 
바로 그 이유로, 청소년 대표팀에 매혹됐다. 나는 근성 없는 한국 축구가 좋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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