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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virOnmen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월 26일 금요일 오후 03시 38분 54초
제 목(Title): 정운영/ 과식에서 절식으로 


▶ 게 재 일 : 2001년 01월 06일 35面(10版) 
▶ 글 쓴 이 : 정운영 

[독서 칼럼] 과식에서 절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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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판매대에서 이 책을 대하는 순간, 허허 아주 안 팔려도 좋다는 작정을 하고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코팅 처리조차 안된 껄끄러운 표지에다 재생지로 보이는 본문 용지까지 한마디로 
백자 화병 진열대에 억지로 끼워 넣은 질그릇 뚝배기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벌컥 이것이 고도로 계산된 호객 행위(?) 아니냐는 의심이 뒤따랐다. 
어수룩한 척하면서 엿먹이는 일이 세상에 어디 한둘인가. 이런저런 궁리 끝에 책을 
샀고, 20세기 연말 휴일을 그 독서로 보내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다.

스웨덴 출신의 환경학자 겸 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허울뿐인 
세계화` (따님.2000)가 바로 그 책이다.

*** 갈수록 커지는 노름 판돈

경제학을 공부한 나는 개발과 성장에 대한 관심이 환경 보호나 생태계 보존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영양 실조로 부황 든 사람들 앞에서 다이어트 설교가 웬 말인가.

그러니 `하나뿐인 지구` 를 들먹이고 `제로 성장` 을 외쳐대는 소리가 평소 
꼬부장하게 들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가 죽으면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니, 다이어트가 필요한 녀석들은 제발 
반성하라는 이 책의 메시지만은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당장 굶주리는 사람들 또한 나중의 다이어트 고민이야 어떻든 우선 `과식` 의 
소원부터 풀어보고 싶을 터이다.

성장은 이처럼 파괴와 손잡고 더 큰 성장을 부추기는데 "이렇게 하여 도박꾼의 
파멸로 끝나고 말 세계적인 노름에서 판돈은 갈수록 커진다" (28쪽). 모두가 
과식을 피해야지 한쪽은 다이어트를 외치면서도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반대쪽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과식이 해롭다며 다이어트를 권한들 그게 씨나 먹힐 말인가.

생존 질서를 파괴하는 과식의 원흉으로 저자는 이윤 동기에 의한 산업화 진행을 
지목한다.

돈 버는 일이라면 지구라도 팔아먹을 초국적 거대 기업들한테 환경 시비 따위는 
그야말로 우습지도 않은 만담이다.

따라서 우선 커야 하고, 그러려면 세계적이라야 한다. 초고속 정보 통신에서 
대륙간 수송망까지 시공으로 빈틈없이 무장한 세계화야말로 지구의 구석구석을 
거대 기업의 이윤 사냥터로 제공한다.

`열려라 시장` 명령으로도 열리지 않을 때는, 그들이 부리는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주먹을 휘둘러 강제로 부숴버린다.

1995년 세계의 1백대 경제 주체 가운데 48개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었다니까, 
세계를 걸터듬는 거대 기업 앞에 웬만한 나라의 정부는 그저 밥일 뿐이다.

게다가 `싸고 편한` 것만 찾는 소비자 의식이 가세한다. 문제는 거기서 생기는 
이익에 비해 그것이 가져올 손실이 훨씬 더 크다는 데에 있다.

월마트 체인점이 들어서자 반경 20마일 이내의 소매상 매출이 19%나 줄어든 미국의 
경우나 대형 슈퍼마켓 하나가 문을 열자 인근 소도시 상점들의 70%가 문을 닫은 
영국의 사례는 결코 희귀한 예외가 아니다.

싸고 편한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이웃이 생계를 잃고 지역 공동체가 
무너진다면 그 대가는 결코 싸고 편한 것일 수 없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는 수입부터 물류까지 막대한 인프라 서비스가 필요하며, 
소비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시설 재원은 다 납세자의 부담이다.

따라서 "우리 주머니 속의 돈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금이 어떻게 
우리에게 불리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1쪽)는 저자의 외침은 
한 점 흠잡을 데가 없다.

이렇게 거대 기업의 `효율` 이 사실은 보조금투성이의 가짜 효율이란 내막을 해당 
기업은 물론 의회도 알고 정부도 안다.

알면서도 놔두는 이유는 뻔하다. 일례로 미국의 "의회 후보자들은 91년부터 96년 
사이에 여러 오염 산업으로부터 8천9백만달러가 넘는 기부금을 받았고, 의회는 
같은 기간에 같은 산업들에 1백90억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했기" (1백77쪽) 때문이다.

행정부 역시 거대 기업에 `회전문` 을 열어놓아 고위 관리와 기업 경영자가 수시로 
자리를 바꾼다. 저자의 걱정은 경제와 정치의 오염만이 아니다.

퇴비를 대신한 화학 비료가 얼마나 우리 생명을 해치며, 대규모 운송에 필수적인 
화석 연료가 얼마나 생태계를 파괴하는지 실감나게 독자를 설득한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은 알아도 창 밖의 나무 이름은 모르고, 2차 방정식은 풀면서도 
옷에 단추조차 달지 못하는 현재의 교육 내용과 교과 과정이 얼마나 잘못인지를 
조목조목 따지기도 한다.

이런 경고가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부자 된 뒤의 다이어트로 
느긋이 미뤄놓을 일도 아니다.

*** 질그릇 뚝배기의 장맛이

저자의 처방은 자명하다. 큰 것 대신 작은 것을 취하고, 세계적인 것 대신 
지역적인 것을 택하라는 말씀이다.

정녕 그것이 공생의 길이라면, 누가 거기에 반대하랴.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받아들이면서도 현실이 어디 그렇더냐는 이유를 앞세워 대개는 망설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하다. 아직 세계화에 오염되지 않은 세계의 변방들이 꿋꿋이 
버티고, 전세계로 치닫는 거대 기업의 성장이 자연적 진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 - 특히 정부가 우리를 대신하여 선택하는 정책 - 의 결과라는" (26쪽)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대비하는 한, 공동체적 삶과 경제적 삶의 과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상생의 삶과 경제렷다! 젠장 질그릇 뚝배기의 장맛이 이처럼 `흐뭇하게` 
괴롭힐 줄이야.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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