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27일 금요일 오후 05시 34분 46초 제 목(Title): 유시민/뉴스+ 한국판 뉴딜정책 유시민의 세상만사 ‘한국판 뉴딜정책’펴라 11월20일 통계청은 「98년 3·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 가계지수 동향」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97년 같은 기간 대비 가계 소비지출 감소폭이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약 207만원으로 14.4%(35만원) 줄어들었다. 첫째로는 취업자가 받는 급여가 깎였고, 둘째로는 대량실업의 와중에서 가구당 취업자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물가인상분을 고려하면 가구당 실질소득은 작년에 비해 무려 20%나 줄었다. 한마디로 살기가 너무 어려워진 것이다. 소득의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가계의 소비지출이 명목으로는 16.8%, 실질 기준으로는 22.3%나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분명 「비정상적 상황」이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자율의 변동을 매개로 저축과 투자의 일치가 이뤄진다고 믿었다. 저축된 액수만큼 투자(생산재 생산)가 이루어지고, 소득에서 저축을 뺀 액수만큼 가계가 소비하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체가 총수요 부족으로 인한 불황에 빠지는 사태는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케인스는 이 낡은 「신앙」을 뒤집어 엎었다. 투자는 이자율에, 그리고 소비는 소득수준에 좌우된다고 본 것이다.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더욱 다양한 이론과 가설을 제시했는데, 대충 뭉뚱그려 보면 기업의 투자결정은 이자율과 예상수익률, 현재의 경기상황, 그리고 미래의 경기에 대한 예측에 영향을 받으며, 가계의 소비 지출은 현재의 소득과 자산의 크기, 미래 소득에 대한 예측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적 거시경제 모델에서는, 호경기에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는 그보다 소폭으로 증가한다. 불경기에 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는 역시 그보다 소폭으로 줄어든다. 증감폭이 소득보다 작기 때문에, 온탕과 냉탕이 반복되는 경기순환에서 소비의 증감은 경기 변동의 폭을 제한하는 일종의 「자동안전장치」로 작용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다. 통계청의 발표는 우리 경제가 「정상적 경기 악화」가 아닌 「공황상태」(panic)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IMF 위기」 극복의 전망이 지극히 어둡기 때문에 국민은 앞으로 가구소득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여기에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가계의 자산 규모도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 그래서 소비가 「현재소득」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현재 경기가 나쁘고 전망도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기업은 설비투자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투자 수요까지 얼어붙은 것이다. 수출의 증가가 아니라 수입의 격감이 그 원인이기 때문에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도 소비수요와 투자수요의 격감을 보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가 긴축에서 재정투자의 확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공황과 대량실업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기조를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돈을 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통화량을 늘리면 금융시장을 장악한 재벌의 부실계열사를 연명시켜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이자율 인하도 나쁘지는 않지만 소비수요를 부추키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다. 소비수요가 급증하지 않는 한 기업의 투자수요도 단기간에는 늘지 않을 것이다. 위기 극복 이후의 성장잠재력 회복을 생각할 때, 가장 현명한 대책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총수요를 확대하는 대규모 공공투자다. 길을 내고 항만을 건설하는 물적 인프라 투자든, 학교와 대학과 연구소를 세우는 지적 인프라 투자든, 금융과 재정 양면에서 과감한 공세를 펴야 한다는 이야기다. 벌써 60년이 넘은 낡은 처방 같지만, 모든 민간 경제주체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처방으로서 확실한 것은 아직 없다. 유시민 / 시사평론가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