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31일 토요일 오후 11시 32분 15초 제 목(Title): 신동아/ 5대그룹 파워엘리트 ○ 집중분석 ● 5대 그룹 파워 엘리트 표준경영인은 서울출신‘KS맨’…실세는 총수 친족들 ◆ 현대그룹은 정몽구회장 모교인 경복고 인맥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LG 와 삼성은 창업자가 영남 출신인 탓인지 영남 출신이 많다. 대우 경영진 은 ‘KS맨’이 주름잡고 있고, SK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리 고려대 출신 임원이 연세대보다 많다.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5대 그룹 표준 경영인은 서울 출신에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문과 계열 대학에서 공부한, 이른바 「KS맨」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신동아」가 8월 말 현재 삼성 현대 대우 엘지 SK 등 5대 그룹 임원(전무급 이상, 사외이사 포함)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밝혀진 것이다. 5대 그룹에서 서울 출신 임원 비율은 36.6%나 됐다. 서울 출신에 이어 부산·경남 출신이 162명(21%)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대구·경북 출신 95명(12%), 충청 출신 76명(10%), 경기 출신 51명(7%), 호남 출신 46명(6%), 강원 출신 30명(4%) 순으로 나타났다. 영남 출신은 모두 33%로, 전체 인구 가운데 영남인구의 비중을 고려하더라도 특정 지역 편중현상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출신 지역 분류는 본적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원적 기준 분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호남 출신은 과거 「피해의식」 때문에 본적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소평가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영남 인맥이 재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별로는 서울대 출신 임원이 42.7%로,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데 이어 연세대 119명(14.2%), 고려대 89명(10%), 한양대 75명(8.9%) 순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6월30일 현재 상장회사 772개 중 자료 미제출사 36개사를 제외한 736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이사 및 감사(사외이사 및 사외감사 포함) 현황에서는 고려대 출신 임원(708명, 11%)이 연세대(612명, 10%)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출신 고등학교별로는 경기고 출신 임원이 108명(12.9%)으로, 2위 서울고 출신 임원(51명, 60.7%)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경복고 48명(5.7%), 경북고 39명(4.6%), 경남고 33명(3.9%), 부산고 31명(3.7%), 보성고 26명(3.1%), 대전고 25명(3.0%) 순이었다. 영남출신 가장 많은 LG 이번 분석은 대외비인 인사자료를 바탕으로 전무급 이상 임원 현황 자료를 제공해준 5대 그룹 구조조정본부 홍보실의 협조로 이뤄졌다. 이번에 분석 대상이 된 5대 그룹 임원은 모두 840명으로, 그룹별로는 현대 55개사 255명, 삼성 30개사 169명, 대우 27개사 150명, LG 51개사 186명, SK 15개사 80명이었다. 다만 SK그룹의 경우 인사기록카드에 본적란을 없애 임원들의 출신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임원 가운데 전무급 이상으로 한정한 것은 5대 그룹 관계자들이 한정된 시간에 「신동아」가 요구한 양식에 맞춰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 때문이었다. 아울러 대개 전무급은 각 사업부문장을 맡는다는 점도 고려됐다. 규모가 작은 일부 계열사의 경우에는 전무급을 보임하기도 한다. 흔히 얘기하는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만하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임원들의 출신지 분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영남 편중 현상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정권하에서 권력 실세들과 연결된 영남 출신들이 기업 인사에서도 당연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4대 그룹 중에서도 지역색이 가장 심한 그룹은 LG였다. 186명의 임원 가운데 무려 46.8%인 87명이 영남 출신이었다. LG는 이 밖에 서울 출신이 51명으로 27.4%를 차지하고 있고, 뒤를 이어 경기 15명(8%), 충청 13명(7%) 등이었다. 호남 출신은 8명(4.3%)으로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LG 다음으로 영남 편중이 심한 그룹은 삼성이다. 삼성은 169명의 임원 가운데 40.2%인 68명이 영남 출신이었다. 호남 출신은 LG보다 약간 많아 4.73%(8명)의 비율을 보였다. 이밖에 서울 출신 48명(28.4%), 충청 23명(13.6%), 경기 11명(6.5%) 등의 분포를 보였다. 삼성과 LG의 경우 창업자가 모두 경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동향 출신 경영인이 많을 것이라는 점은 수긍이 가지만 그 편향성이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LG그룹의 경우 경남 진양 출신인 구씨와 허씨가 대거 경영진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영남 편중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LG그룹이 친인척들을 대거 받아들인 것은 유교적 가족질서에 별날 정도로 집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창업자인 구인회씨는 형제간에 잘못이 있으면 장남을 대표로 꾸짖었고 궂은 일도 장남에게만 시켰다고 한다. 결국 장남인 구인회씨나 구자경씨는 기업의 리더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리더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식이 체질화돼 있었고, 이런 의식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돼 혈족을 중용하는 전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LG와 같은 지연 중심 인사가, 부분적으로는 기업 조직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등의 이점이 있을지 모르나 조직내 자유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결국은 효율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삼성이나 LG는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호남 출신의 삼성그룹 고위 간부도 승진 과정에 인사상 불이익을 의식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간부는 다만 영남 출신이 사내에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탄탄한 인맥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영남 출신의 경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다보니 호남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여지는 있을 법하다는 것. 4대 그룹 가운데 임원들의 출신 지역이 가장 고른 분포를 보인 그룹은 현대였다. 현대는 서울 출신 임원이 102명으로 36.6%를 차지한 데 이어 영남 65명(23.2%), 충청 30명(10.8%), 호남 22명(7.89%), 경기 20명(7.2%), 강원 20명(7.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4대 그룹 가운데 호남 출신 비율이 가장 높았고, 강원도 출신이 4대 그룹 가운데 이례적으로 높은 7.2%(20명)를 차지했다. 이는 강원도가 고향인 창업자 정주영 명예회장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우는 4대 그룹 가운데 이례적으로 서울 출신 임원 비중이 절반이 넘어 82명(54.7%)이나 됐다. 이어 영남 출신이 37명(24.7%)이고, 충청 10명(6.7%), 호남 8명(5.3%), 경기 5명(3.3%), 강원 5명(3.3%) 등이었다. 명문대 출신 선호하는 대우 경기고 출신 임원은 5대 그룹 전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우그룹은 경기고 출신 임원이 무려 45명으로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SK(8명, 10%), 삼성(16명, 9.5%), 현대(23명, 9%), LG(16명, 8.6%) 등에서 차례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우 상층부 인맥은 크게 보아 학맥으로는 김우중 회장 모교인 경기고, 출신 직업별로는 금융계 인사가 골격을 이룬다. 여기에다 공채와 관계·학계 등에서 필요한 인력을 수혈받았다. 삼성 현대 등에 비해 연륜이 짧은 대우로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경기고)과 돈을 제대로 끌어들이고 운용할 줄 아는 인력(금융계)이 긴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우의 경영 인맥은 학연의 영향이 큰 대신 삼성과 함께 족벌 경영 색채가 가장 엷다. 한때 김우중회장의 형과 동생이 경영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손을 뗀 상태다. 일부에서는 그 이유를 김우중회장의 성장 배경과 관련해 설명한다. 김회장은 전후에 대학에서 정식 교육을 받은 탓인지 근대적인 경영이념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보다는 김회장이 다른 창업자에 비해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고 자녀들도 어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우측은 강력히 부인하지만 김우중회장이 최근 들어 창업 동지들을 정리하고 50대 경영인들을 대거 해외로 내보내는 것을 두고 2세 승계를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삼성이 족벌경영 색채가 엷은 것은 형제간 지분정리가 완료돼 형제들이 독립 그룹으로 분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솔 새한 제일제당 등이 이미 삼성에서 분리해 나가 삼성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건희회장 형제는 한 명도 없다. 김우중회장은 그 자신이 명문고 출신인 탓인지 명문고·명문대 출신 선호가 유별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몇년 전 그룹 인사팀에서 명문대 출신으로 대학 학점이 나쁜 사람과 학점이 좋은 비(非) 명문대 출신의 입사 이후 조직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비(非) 명문대 출신이 낫다는 보고서를 올렸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대우그룹 외에도 현대 삼성 LG그룹에서는 총수의 출신고 인맥이 형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동문보다는 고교동문이 더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선 현대의 경우 정몽구(鄭夢九)회장의 출신고인 경복고 동문 경영인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이런 탓인지 현대그룹은 경복고 출신 임원(21명, 8.2%)이 5대 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점하고 있다. 현대그룹에서는 또 정몽헌(鄭夢憲)회장 출신고인 보성고 동문 경영인이 경복고 경기고 서울고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비중(11명, 4.3%)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대그룹의 경복고 출신 임원들은 96년 초 정몽구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룹 안팎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김영삼 정권 핵심인사들에 경복고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숙원이던 일관제철사업 진출을 추진하던 인천제철 노관호사장, 정계 인사와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던 유인균 산업개발 사장, 조양래 자동차써비스 사장 등이 경복고 라인이다. LG도 구본무(具本茂)회장 출신고인 서울고 동문 임원이 경기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비중(11명, 5.9%)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은 이건희(李健熙)회장 출신고인 서울사대부고 동문 임원들이 아직 뚜렷한 세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그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울사대부고 출신 임원이 여섯번째로 많은 6명(3.6%)이나 된다는 점은 이채롭다. 5대 그룹 가운데 서울대 출신 임원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룹은 역시 대우로 61.3%(92명)다. 대우그룹에서 성공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KS맨」(경기고 서울대 출신)인 셈이다. 대우그룹 임원들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에 이어 연세대(11명, 7.3%), 고려대(10명, 10.8%) 순이다. 대우그룹에 이어 SK그룹이 서울대 출신 임원(42명, 52.5%) 비중이 높았다. 삼성(64명, 37.9%), LG(69명, 37.1%), 현대(92명, 36.1%)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5대 그룹 가운데 SK그룹만 고려대 출신 임원이 연세대 출신보다 많았고, 다른 그룹은 연세대 출신 임원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대학 전공별로 보면 아직도 문과 출신이 이공계 출신을 압도하고 있다.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영진에 이공계 출신이 발탁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문과 출신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사업구조가 중화학 중심인 현대그룹이 5대 그룹 가운데 문과 출신 경영진이 가장 높은 비율(184명, 72.2%)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2세들, 『나의 길을 가련다』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전문경영인이란 개념은 분명히 정립됐다고 할 수는 없다. 재벌 그룹에서 최고 경영층에 있으면서도 창업자 및 그 가족이 아닌 사람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기업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사주에 비하면 극히 제한된 재량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바꿔 얘기하면 창업자나 오너 경영인들이 기업 경영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다. 재벌 그룹의 형성과 성장은 박정희(朴正熙)식 경제성장 전략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나 재벌 그룹 입장에서 보면 창업자를 구심으로 한 수많은 전문경영인들의 기업가적 능력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는 작년 초 부도를 낸 한보의 경우만 보더라도 분명해진다. 김영삼(金泳三) 정권 들어 자기자본 900억원대의 한보철강에 5조원 규모의 금융권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부가 아무리 재벌 위주의 성장전략에 따라 유형 무형의 지원시책을 편다 하더라도 이를 수용할 능력을 갖춘 창조적 소수가 없다면 전혀 쓸모가 없음을 한보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그 기업의 창업자 손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자는 개인의 경험과 판단력에 의존해 기업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이 적중하면 그 기업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80년대 들어 기업 규모가 커진 이후에도 여전히 창업자나 총수는 신규사업 진출 등 핵심적인 사안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다. 물론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그 기업의 성장 잠재력은 창업자 개인보다는 그 기업의 조직을 구성하는 사원 개개인의 능력과 충성심에서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벌 그룹의 성장 사에서 창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예외적으로 높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창업자는 신규 사업 선정이나 중요한 인사, 대 정치권 로비 등을 직접 관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특정 재벌의 모든 부문에 창업자 개인의 인간적인 특질이 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사업구조는 물론이고 경영진의 인적 구성, 기업문화, 심지어 회사의 건물구조나 내부장식에까지도 창업주의 개성이 반영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창업주가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와 대우가 그렇다. 삼성 이건희회장과 LG 구본무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창업자의 색깔 벗기를 우선 추진했다. SK그룹도 최근 타계한 최종현회장의 아들 최태원회장이 그룹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자신의 색깔을 심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회장은 김영삼 정권 들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든 것을 바꾸자』고 외치면서 선친의 색깔을 벗어던지는 작업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구본무회장은 그룹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2005년까지 300조원의 매출을 달성,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구체성이 결여된 선언적 의미」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그의 말은 최소한 그룹내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부친의 색깔을 벗으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은둔자」 이건희회장 현대와 대우의 경우 아직 변화가 없다. 정주영 없는 현대와 김우중 없는 대우는 생각하기 힘들다. 정주영 회장에게 은퇴란 없다. 새 정부가 오너의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위해 주력 계열사의 대표이사 취임을 요구하자 오랫동안 유지해온 「명예」라는 타이틀을 떼어냈다. 그는 경영현장의 최고령 경영자다. 최근 정회장의 경영행보는 내용면에서 한창 때와 별 차이가 없다. 고향(북한)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을 보자. 500마리의 소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그만이 생각할 수 있고, 그만이 할 수 있는 일」로 평가된다. 소떼는 그의 「고향」이며, 「정신」이다. 소떼의 울부짖음은 일을 앞에 두고 뛰는 그 자신의 심장소리인 듯하다. 김우중회장 행보도 화려하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전경련 차기 회장에 선임된 데 이어 최종현회장의 타계로 정식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의 수장」으로 불린다. 그는 차기 회장에 선임되자마자 「500억 달러 무역흑자 달성」 「대규모 국제 합작은행 설립」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쉴새없이 쏟아내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사무실에서 집무하는 일이 드물다. 총수가 전면에 나서서 각종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대부분의 그룹과 달리 되도록 경영 간섭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그룹측은 설명한다. 대신 그는 수시로 계열사 회장·사장을 집으로 불러 시간제한 없는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이회장은 87년 그룹 회장 취임 이후 한동안 은둔자적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기 시작했다. 재계와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변화는 그룹 내부에 위기의식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과 공격 경영을 감행하는 것으로 집약됐다. 그는 조기 출퇴근제, 간부의 현장근무 강화, 해외 회의, 보고서제 폐지 등 겉으로 드러난 신선한 변화 바람을 주도, 언론에서 「KH(이건희) 신드롬」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그의 행보를 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96년 들어 「반도체 초호황」이 끝나면서 오히려 거품으로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 또 기존 업계의 숱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출을 감행한 승용차사업이 위기에 직면하면서 그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LG그룹 구본무회장 역시 취임 후 과거의 안정과 보수 이미지를 벗고 활발한 기업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는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구회장의 성격이 그룹 운영방식에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주력 사업은 당장에 양적으로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질적으로는 1등을 해야 한다』고 최고경영자들에게 주문한다. 구회장 취임과 함께 주목해야 할 사람이 허창수 LG전선 회장이다. 그는 허준구 창업고문의 아들로 구회장 취임과 때맞춰 부사장에서 일약 3단계 승진했다. LG그룹 창업자인 고 구인회회장과 함께 LG(당시 럭키)를 일으킨 허씨 일가 대표주자의 맥을 잇기 위한 양가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허씨 일가의 수장격인 허창수회장은 온화한 성품으로 양가의 화합 경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 부친을 닮아 앞에 나서기보다는 뒷전에서 묵묵히 일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룹을 끌고 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본무회장이라고 생각한다. 정주영 VS 김우중 재벌 그룹 총수라면 이런 저런 이유로 갈등과 대립을 한두번씩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주영회장과 김우중회장의 대립은 유명하다. 정주영회장이 92년 대선 직전 펴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는 김우중회장과의 악연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80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추진한 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는 결정적으로 벌어지게 됐다. 신군부는 당시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현대가 주력으로 키우는 발전설비와 자동차를 일원화해 각각 다른 업체에 맡기는 방안을 마련했다. 정회장은 이 방안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대했지만 김우중회장은 『찬성한다』고 말했다는 것. 두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회복불능으로 빠지게 된 것은 92년 대선에서 정회장이 국민당을 만들어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였다. 김회장도 이때 은밀히 정치활동을 모색했다. 경기고 동문인 이종찬 현 안기부장이 신당을 만들고, 그를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검토했던 것. 이와 관련, 김회장은 나중에 『정회장이 정치에 나서고 어떤 식으로든 정치세력을 형성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에 공감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여기에 현대와 대우는 기본적으로 사업구조가 중후장대형으로 비슷해 숙명적인 경쟁을 피할 수 없었던 점도 두 사람의 갈등을 깊게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런 갈등의 근저에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세계관이 자라잡고 있는 듯하다. 정명예회장을 지배하는 것은 유교적 질서의식이다. 현대에서는 다른 그룹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재산분쟁이나 돈을 둘러싼 스캔들이 아직 없다. 가장의 결정은 곧 법으로 통하고, 이는 경영현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정회장은 형제들을 모두 독립시켜 또다른 그룹을 일구도록 지원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장남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다. 한라(정인영회장), 성우(정순영회장), KCC(정상영회장)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작고한 동생 신영씨의 아들인 몽혁씨는 현대석유화학과 현대정유 사장으로 현대 울타리 안에 있다. 경영진에 대거 참여하고 있는 아들들도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로 작고한 몽필씨 유족은 동서산업, 몽우씨 유족들은 현대알루미늄을 경영하고 있다. 이들은 독립된 길을 걷고 있지만 종가의 영향력 아래 있다. 반면 대우에는 2세 경영자가 없다. 김회장 아들인 선협씨가 대우자동차 부평기술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나 대우나 경쟁사의 신차 발표회 같은 큰 행사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특별취급받기 싫어』 제품개발실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했다. 현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대우에는 현대에서 볼 수 없는 일이 또 있다. 김회장 부인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재벌그룹 회장 부인들 가운데 남편 못지않은 열정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경우다. 전문경영인 앞세운 SK그룹 SK그룹은 최근 최종현 회장의 타계로 최고경영진이 개편돼 관심을 끌었다. SK그룹은 9월1일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의장에 전문경영인 출신인 손길승 SK텔레콤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에 앞서 그룹은 SK텔레콤 부회장인 손씨를 대표이사 회장, 최회장 장남인 최태원 (주)SK 부사장을 (주)SK 회장, 창업주인 고 최종건회장의 장남 최윤원 SK케미칼 부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 선임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SK그룹은 오너 집안을 대표한 최회장과 전문경영인을 대표한 손회장 두 사람의 쌍두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SK그룹의 새 운영체제는 재벌 총수 타계 이후 직계 가족이 최고경영권을 승계해온 이제까지 관례를 벗어나 최초로 전문경영인이 주요 그룹을 대표하는 실세 회장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그러나 SK그룹 안팎에서는 고 최종현회장과 함께 30여년간 그룹 경영을 이끌어온 손회장이 최회장의 후견인으로 당분간 회장직을 수행하다 최태원회장이 좀더 성숙하면 그룹 회장직을 승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씨 일가의 장자인 최윤원회장은 그룹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형제들간 구심점으로 단합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게 SK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태원회장은 작년 말 주력기업 가운데 하나인 (주)SK의 대표이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다. 최회장은 83년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92년 그룹 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장에 이어 SK상사 (주)SK 상무 등을 거치면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인 소영씨와 결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총수의 최측근들 총수들은 자신들의 절대권력 행사를 위한 보좌조직으로 흔히 비서실이나 기획실을 두고 있다. 비서실 또는 기획실은 계열사간 관계를 조정·통제하고 계열사의 일상적 경영활동을 감시·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5대 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책임경영 원칙이 확립되면서 비서실이나 기획실 조직은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이 바뀌어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구조조정본부장은 총수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경련이 주도한 5대 그룹 빅딜 논의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조조정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전경련 태스크포스 멤버는 현대 박세용 사장, 삼성 이학수 사장, 대우 김태구 사장, LG 이문호 사장, SK 손길승 부회장 등 각 그룹의 간판 경영인들이다. 현대그룹 박세용 사장은 오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67년 공채로 건설에 입사, 해외영업쪽에서 성장해왔다. 92년 대선 때는 국민당 사무총장 특보를 지냈다. 그는 80년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리베이트와 관련해 1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92년 대선 직후에는 현대상선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정몽헌회장과 함께 구속되는 등 두 차례 옥고를 겪기도 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를 각별히 아낀다고 한다. 95년 종합기획실장에 임명된 그는 96년 초 「현대호」 선장이 정몽구 회장으로 바뀐 후에도 유임돼 그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었다. 현재 그는 상사와 상선 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러나 빅딜 논의 과정에서는 그룹내 몽자돌림 형제들간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최장수 기획실장 손길승 삼성호의 총참모장격인 이학수실장은 95년 말 인사에서 이윤우 전자 사장과 함께 40대에 사장으로 발탁된 차세대 경영인. 96년 여름 비서실 차장으로 재진입한 이래 그룹 전체의 안살림을 챙기고 있다. 경남 밀양 출신의 이실장은 삼성의 인재양성 코스였던 제일모직 경리과장·관리부장을 거쳐 82년 부장 때 비서실 팀장으로 발탁됐다. 84년 제당의 관리담당 이사로 옮겼다가 85년 다시 비서실 재무팀장으로 돌아와 92년 9월 비서실 차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이후 삼성화재와 제일제당 대표이사를 거쳐 49세이던 95년 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발탁·승진했으며, 96년 친정인 비서실로 복귀했다. 25년여의 삼성 근무중 10년 이상을 비서실에서 근무했고, 7년 7개월간의 최장수 재무팀장을 맡은 경력이 말해주듯 수치에 밝고 꼼꼼하며 치밀한 성격이다. 대우 김태구 사장은 청주고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산업은행 대리로 재직중이던 73년 대우로 옮겨와 기조실장, 자동차 사장 등을 거쳐 95년 말 자동차 회장직을 맡았다. 김우중 회장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기 드물게 칭찬한 경영인이다. 그는 대형 노사분규와 경영부실로 어려웠던 대우조선과 대우자동차를 차례로 맡아 김우중 회장과 함께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데 공헌했다. 성격도 느긋하고 합리적이어서 임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김우중회장이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특히 자동차의 세계경영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김태구 사장이 자동차 회장 시절 안에서 꼼꼼히 챙겼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도 있다. 현재는 50세 이상 임원들은 해외로 내보낸다는 김우중회장 방침에 따라 해외지역 본사 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LG 이문호사장은 91년 호남정유에서 회장실로 옮겨온 이래 LG호 「선원」간에 불협화음이 일지 않도록 내부 조율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계열사간 마찰이 생겼을 때는 소방수 역할을 하기도 한다. 8월 말 최종현(崔鍾賢) 회장의 타계로 그룹 회장을 맡은 손길승 SK텔레콤 회장은 최종현회장의 분신으로 알려진 SK의 대표적 전문경영인. 경남 하동 출신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후 65년 선경직물(현 SK 상사)에 입사했다. 78년 그룹 경영기획실장을 맡아 20년간 자리를 지켜온 기획통으로 재계 최장수 기획실장으로 유명하다. 5대 그룹에는 이들 외에도 수많은 전문경영인이 있다. 특히 국내 기업 가운데 최초로 공채제도를 도입한 삼성그룹은 최고경영진에 공채 출신 인맥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 공채 6기의 이수빈 이대원 회장이 대표적인 경우. 경쟁자이자 동기인 두 사람은 이필곤 전회장과 함께 삼성내에서 6기 시대를 열었다. 이들은 정계·관계 및 재계 인사들과의 폭넓은 교분을 바탕으로 그룹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1급 해결사 역을 맡기도 했다. 유현식 종합화학 사장도 공채 6기다. 이대원회장은 작년 자동차를 맡은 후부터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상태. 전자업계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강진구 회장은 95년 삼성그룹이 신설한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로 헌액되는 영광을 안은 국내의 대표적 전문경영인. 동양방송을 거쳐 73년 삼성전자로 옮긴 뒤 만년 적자였던 이 회사를 흑자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세워 상무가 된 지 3개월만에 대표이사 전무로, 전무가 된 지 9개월만에 다시 사장으로 발탁되는 초고속 승진 신화를 남겼다. 현명관 부회장은 삼성의 최고경영자 가운데 드물게 공무원 출신이다. 66년 행정고시에 합격, 감사원에 근무하다 78년 전주제지 총무부장으로 삼성과 인연을 맺어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해왔다. 호텔신라 대표, 삼성시계 삼성건설 사장을 차례로 거친 뒤 93년 10월 11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작년부터 물산 부회장을 맡고 있다. 끊임없는 충성경쟁 현대그룹과 LG그룹은 친족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경영인이 없는 편이다. 김정국 현대중공업 사장과 이내흔 현대건설 사장이 주목을 끌었으나 이사장은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재계에서는 현대의 경우 정주영 명예회장 이후 경영 구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더 쏠려 있는 상태. 김정국 현대중공업 사장은 66년 공채로 입사한 뒤 건설 사장과 회장, 인천제철 회장을 거쳐 93년부터 중공업 사장을 맡고 있다. 중공업은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의원의 지분이 크다는 점에서 김사장은 정의원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친화력을 바탕으로 노사문제를 원만히 풀어가는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후문. LG그룹은 엔지니어 출신의 성재갑 부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업무 추진력이 강해 탱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성부회장은 LG화학의 부사장 4명을 실무 결재 라인에서 빼고 별도의 부사장단 조직에 편입시키는 대신 그들이 가진 국제화 등 개인별 주특기를 각 사업단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케 하는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대우그룹의 경우 새 정부 들어 배순훈회장과 윤영석회장이 각각 정보통신부 장관과 한국중공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의 뒤를 이어 강병호 자동차 사장, 추호석 중공업 기계부문 사장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강사장은 금융통이 많은 대우내에서도 손꼽히는 국제금융통으로 서울대 법대 졸업후 산업은행에서 근무하다 75년 대우실업으로 옮겨왔다. 95년 말 공채 20년만에 사장 자리에 오른 추호석사장은 당시 전무에서 2단계 승진, 화제가 됐다. 부장에서 상무 시절까지 김우중회장의 해외 출장 때마다 수행했을 정도로 김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부산고,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일의 실질 내용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현장경영을 강조한다. SK그룹은 손길승회장과 김항덕고문이 최종현회장 생존시 좌청룡 우백호 역할을 맡았다. 94년 신설된 SK그룹 부회장직 1호인 김고문은 일본 이토추상사 한국 지사에 다니다 69년 선경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80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유공 인수단장을 맡아 재계에서 화제가 됐으며 10여년 동안 유공을 이끌어온 정유업계의 대표적 경영인이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 총수의 손발이 돼 우리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전문경영인들은 총수의 명령이 떨어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일에 대한 열정도 높아서 개인 생활을 희생하면서 일과 씨름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던 세대들이다. 총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부리기 쉬운 세대였다고 할 수 있다.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크게 성공한 부류에 속하는 이들은 그 성공을 있게 해준 사람이 인사권자인 그룹 총수였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대개 연말이나 연초 정기임원인사 때가 되면 자신들의 직장내 운명이 총수 손에 달려 있음을 더욱 실감하면서 총수에 대한 충성경쟁을 강화한다. 대기업 임원들은 요즘 괴로운 가을을 맞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 우선적인 해고 대상이기 때문이다. 임원이란 법적인 신분보장이 안 돼 있어 그만두라는 총수의 말 한마디에 짐을 싸야 한다. 대우그룹의 한 임원은 『임원이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얘기를 요즘처럼 실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앞에서 인용한 상장사협의회 조사를 보면 임원들이 국제통화기금 한파를 겪으며 「파리 목숨」이 됐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778명의 사외이사와 사외감사가 새로 선임됐음에도 불구, 6월 말 현재 총 임원수는 6968명으로 1년 전보다 14.6%가 줄었다. 숫자로 따지면 1년 사이에 무려 1192명이 줄어든 셈이다. 1개사 평균 임원수도 9.47명으로 작년 7월 초에 비해 1.31명이 줄었다. 특히 상근 임원은 6847명에서 5117명으로 25.3%나 감소했다. 한 회사당 상근 임원수는 6.96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2.09명이 줄었다. 또 승진 임원이 지난해 한 회사당 2.3명에서 올해 1.9명으로 줄어들고 이에 따른 영향 등으로 평균 연령도 53.1세에서 53.7세로 높아졌다. 자리를 보전한 임원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임원들에 대한 대접이 전에 비해 형편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경제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한 언제 목에 칼날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임원들이 영수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경비를 작년에 비해 50%나 깎았다. 대우그룹은 상무 이상일 경우 1인 1비서를 두던 것을 2인 1비서로 줄였다. 대우는 열악해진 반면 책임과 업무는 날로 커가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커지면서 언제 부실 경영의 책임을 추궁받을지 모르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책임과 의무만 더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정부가 올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오히려 총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능력만큼 대우받는 때도 곧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머지 않아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처럼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는 전문경영인도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IMF 한파는 우리 전문경영인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