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31일 토요일 오전 11시 36분 21초 제 목(Title): 유시민/신동아 돌팔이 경제전문가고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경제이야기] ‘돌팔이’경제전문가를 고발한다 ◇세계적인 석학 폴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학을 ‘원시적인 과학’이라고 규정했다. 경제학은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잘 나간다는 경제학은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잘 나간다는 경제전문가와 연구기관의 경제전망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유시민 〈경제평론가〉 ------------------------------------------------------------------------------- - 두 남자 가 기구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항로를 이탈해서 방향을 잃어버렸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한참을 헤매던 끝에 들판에서 한 농부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큰 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농부가 소리쳤다. 『당신들, 지금 공중에 있잖아요!』 잠시 멍하니 얼굴을 맞대고 있던 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야』 『정확해』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군』 경제학 지식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자조 섞인 우스개다. 경제학자 또는 경제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이 농부의 대답과 같은 것이라면 정말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벌써 1년 넘게 외환위기와 대량실업이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려 온 우리 국민이 그래도 믿고 의지할 데라고는 경제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말씀」 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말씀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일까? 불행한 일이지만 지난 1년간 벌어진 사태를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한국경제 위기설이 돌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벽두였다. 96년 경상수지 적자가 무려 230억 달러를 넘고 한보와 삼미 등 대기업 부도사태가 생기면서,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서 위기론이 인 것이다. 외국의 경제전문가를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언론은 앞을 다투어 인터뷰를 실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조선일보」 97년 3월8일자에 실린 국제통화기금(IMF) 캉드쉬 총재의 인터뷰 기사였다. 캉드쉬는 「아시아의 금융 통합과 홍콩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홍콩에서 열린 1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세미나에 참석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견실하고 지속적인 성장 추세를 유지할 것이며, 멕시코와 같은 외환위기가 온다는 말이 있지만 한국은 멕시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균형되어 있고 안정적이다』고 잘라 말했다. 캉드쉬는 전 세계를 주무르는 거물인지라 한국 같은 조그만 나라를 잘 몰라서 그랬다고 치자. ------------------------------------------------------------------------------- - 민관일체의 「엉터리」 경제전망 ------------------------------------------------------------------------------- -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이다. 내로라 하는 일간신문과 경제신문들은 이 무렵 일제히 「경제살리기 시리즈」를 실었는데, 나중에 일어난 사태와 관련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해외 차입의 문을 더욱 넓히라고 주장한 사실이다. 예컨대 「한국경제신문」은 97년 3월1일자에 사뭇 비장감이 넘치는 어조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과중한 금융비용 때문이며, 그 이유는 해외의 값싼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썼다. 물론 다른 신문도 이와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실었으며, 어느 신문도 1년 미만짜리 단기외채를 도입할 때 도입액의 30%를 무이자로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하는 칠레의 사례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렇게 높은 금융비용을 부담하고도 이윤이 나는 확실한 프로젝트가 없는 한 기업이 단기외채를 들여올 수가 없기 때문에 칠레는 「아직」 환란에 휩쓸리지 않았다. 외자 도입을 무조건 막는 정책이 잘못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외자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이자가 싸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들여오게 했더라면, 우리나라 기업이 갚아야 할 외채의 규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것이다. 적어도 단기성 자본 수입에 관한 한 「규제 철폐가 곧 선(善)」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연구기관도 마찬가지였다. 97년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KIET) 등 주요 국책연구기관들은 성장률을 연초 발표한 경제전망보다 1% 정도 낮은 5%대로 수정하면서 경기가 하강할 대로 하강해 바닥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KDI는 작년 7월9일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6월의 수출 회복세를 근거로 성장률을 다시 6.2%로 상향조정하고 『경기가 이미 바닥을 치고 상승국면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 등 호기를 부렸다. 그보다 조금 앞서 삼성 현대 대우 LG 등 주요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일제히 하반기 경제 전망을 발표했는데, 경상수지 적자는 대체로 16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 물가상승률은 4.3~5.0%, 성장률은 5.5%~6.0% 사이였다. 전경련도 97년 성장률을 5.9%로 상향조정하고 물가상승률은 4.4%로 하향조정했다. 국책연구소와 민간연구소를 불문하고 환율이 급격하게 인상될 가능성을 언급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경식(李經植) 당시 한은 총재는 재경원과 청와대 수석실에 비해 조금 일찍 외환위기를 경고했다고 해서 직무유기로 고발당하는 사태를 모면했지만, 헛다리를 짚기는 한국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행은 97년 7월7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하반기를 전환점으로 불황을 탈출할 조짐이 확실하게 보인다고 분석하면서, 성장률을 민간연구소보다 더 높은 6%대로 예상했다. ------------------------------------------------------------------------------- - 「환란」도 예측 못한 「전문가」들 ------------------------------------------------------------------------------- - 이처럼 「민관일체」의 낙관적 경제전망이 나온 뒤부터 「환란」이 터진 97년 10월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동남아 외환위기가 끝간 데 없이 이어졌고 기아그룹의 부도 처리 문제로 정치권과 재계가 시끌시끌하기는 했지만, 누구도 환란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97년 8월21일 IMF가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의 한국편은 한결 더 고운 장밋빛으로 내다봤다. IMF는 여기서, 대기업 부도사태가 생산과 수출에 별영향을 주지 않았고, 수출과 투자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금융부문 혼란도 한국 정부가 수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아, 한국이 97년에 6.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돌팔이 의사들이 「가벼운 감기」 정도의 진단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환란이라는 「무서운 열병」은 더 큰 폭발력을 축적해 나가고 있었다. 달러 환율 900원선이 무너진 97년 10월 초에 와서 열흘 넘게 한국경제를 실사한 찰스 애덤스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보 역시 10월15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가 밑바닥을 통과해서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현상황은 절대 위기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종합주가지수는 5년 만에 최저치인 579.25로 폭락했다. 주가 하락세는 며칠간 계속됐고 달러 환율도 야금야금 920원대로 올라섰다. 10월23일에는 홍콩, 동경,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 전세계의 증권거래소에서 3%에서 10%에 이르는 주가 대폭락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정부는 9월 말 현재 외환보유고가 IMF 권고치인 3개월치 수입액에 60억 달러가 모자라는 304억 달러라고 밝혔고, 미국에 있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에스앤피(S&P)사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한국전력, 한국통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향후 전망에도 「부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종합주가지수는 다음날도 22.44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무엇이 와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기업인들도 앞 못 보는 신세기는 한 가지였다. 「매일경제신문」 10월27일자 설문조사에서 30대 재벌그룹의 기조실장들은 920원대의 「고환율」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돌이켜보면 황당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누구나 달러당 920원이면 환율이 너무 높다고 믿었다. 10월28일 세계 증권시장에 또 한 번 대폭락의 파도가 밀어닥쳤고 한국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무너졌다. 서울의 외환시장에서는 달러값이 단숨에 하루 허용 변동폭인 2.25%가 올라 957원 60전을 기록했고 한국은행은 시장 개입을 포기했다. 무디스와 에스앤피 등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은 한국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을 또다시 하향조정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달러 환율이 또다시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금융기관의 외환업무가 사실상 마비된 10월29일을 기점으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위기는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경제관료와 경제전문가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나는 잘 몰라요」를 연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경식 한은총재는 「시장신봉론자」를 자처하면서 「환율은 시장이 결정하도록 할 뿐」이라고 꼬리를 내렸다. ------------------------------------------------------------------------------- - 임창렬 전 경제부총리의 무모한 호언 ------------------------------------------------------------------------------- - 11월 들어 환율은 날마다 2.25%의 변동제한폭만큼 올라갔다. 종합주가지수는 500을 넘나들며 큰 폭의 등락을 거듭했다. 그러나 유수한 경제신문과 기업연구소에서는 원화의 평가절하(달러환율 인상)로 인한 수출 호조를 근거로 98년 성장률을 6% 내외로 예상하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주간매경」 11월12일자 커버스토리 제목은 「어렵지만 공황까지는 안 간다」였는데, 여기서 내로라 하는 기업 경제연구소의 전문가들은 97년 말과 98년 상반기의 환율 예상치를 내놓았다. 민병균 장은경제연구소장은 달러당 960원대와 970원대, 박우규 선경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두 기간 모두 960원대, 이인형 LG경제연구원 금융실장은 958원과 995원,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은 970원과 920원을 예상했다. 유한수 포스코경영연구소장만이 구체적인 예상치를 제시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을 넘으면 IMF가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태전개는 이 모든 「경제전문가」들의 넋을 빼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11월 들면서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때문이 아니라 달러를 빌려주려는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해외에서 자금을 들여올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가 바닥으로 내려가 더이상 환율 안정을 위한 시장 개입을 할 수 없었다. 종합금융사 등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끌어다 쓴 단기차입금의 상환기한은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돈을 빌려쓴 기업들이 갚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대외 채무 상환능력 부족으로 인한 국가부도는 불가피한 사태로 다가들었다. 11월19일 경제부총리직을 넘겨받은 임창렬씨(林昌烈)도 전임자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취임 직후, 적정 환율 수준을 묻는 기자들에게 『현재 환율 수준에서 모든 산업이 충분한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환율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투기할 사람은 자기 위험부담 아래 투기해 보라』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11월20일 서울 외환시장의 달러 시세는 가볍게 1100원을 돌파했다. 그러자 정부가 IMF에 지원을 요청하려고 검토중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고, 환율은 잠시 안정세를 찾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430대로 곤두박칠쳤다. 대한, 삼양 등 8개 종합금융회사의 외환업무를 정지시키기로 한 재경원의 방침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게다가 무디스 사가 한국의 외환장기신용등급을 한꺼번에 두 단계나 낮추자, 12월 초에는 종합주가지수 400선이 무너지고 달러 환율은 1200원대로 성큼 올라섰다. 임창렬씨의 경고를 무시하고 달러 투기를 한 사람들은 불과 열흘 동안에 한 재산 장만할 수 있었다. ------------------------------------------------------------------------------- - 최근 경제 전망이 잿빛 일색인 이유 ------------------------------------------------------------------------------- - 그런데도 경제전문가들은 여느때처럼 「희망사항」을 그럴듯한 전문용어로 포장해서 내놓는 일에만 매달렸다. 구제금융 지원을 둘러싼 IMF와 한국정부의 합의 타결이 임박했음을 강조하면서, 「환율 진정, 증시 바닥권 접근」이라는 식의 분석과 상황 호전을 예측하는 보도가 주조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예로 「IMF지원이 확정되면 연말까지 주가가 20%는 반등할 것」이라고 한 한누리투자증권 김모 사장의 11월27일 인터뷰를 들 수 있다. 12월3일 정부와 IMF는 구제금융 조건에 합의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의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예측」이 무색하게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었고,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도와 기업신용도를 더 낮추었으며, 12월23일 달러 환율은 일시적으로 2000원을 돌파했다. 주가는 큰 폭으로 요동치면서 약간의 상승세를 그렸다. 하지만 98년에 접어들면서 외환위기는 극심한 자금 부족으로 이어져 기업의 무더기 도산과 대량해고를 불러왔고, 이것은 다시 내수시장의 수요감축으로 이어지면서 한국경제는 단순한 외환위기가 아닌 실물공황의 어두운 터널에 들어섰다. 그러면 97년 내내 엉터리 분석과 헛다리 짚는 예측만 남발했던 「경제전문가」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재벌 경제연구소의 소장은 「대한민국 경제학자들은 모두 정리해고감」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그 사람을 포함해서 어떤 경제전문가도 환란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거나 정리해고를 당한 일이 없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다루는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서 국민의 「정신나간 과소비」를 질책하고, 개혁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지 못하는 김대중(金大中) 정부를 힐난하면서도 스스로 저지른 「돌팔이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우리 국민은 IMF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등 「형이상학적인 큰소리」를 친다. 이런 「거짓 선지자」와 「돌팔이 전문가」들의 호언장담을 도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경제전문가와 연구기관들은 이제 97년의 수치스러운 「전과(前過)」를 의식해서인지 작년과는 정반대로 달려가고 있다. 요즈음 경제전망들이 잿빛 일색인 것은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KDI 등 국책연구기관과 재벌그룹의 민간 경제연구소는 물론이요 에스앤피 등 국제신용평가기관과 IMF까지도 모두 한 목소리로 98년 성장률이 -6% 내외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99년은 성장률 1~2%의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큰 차이가 없다. 9월 말 나온 IMF 보고서는 더 끔찍하다. IMF는 98년 성장률을 -4%에서 -7%로 수정했는데, 연말까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이 예상치는 경제전망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없다. 문제는 99년 성장률 역시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2%내외보다 훨씬 낮은 -1%로 전망했다는 것이다. ------------------------------------------------------------------------------- - 경제학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 - 그러면 이런 잿빛 경제전망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믿을 필요가 없다. 왜 그런가? 지난해 「돌팔이짓」을 한 경제전문가와 연구기관들이 그 사이에 명의(名醫)가 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경험은 바보의 가장 좋은 스승」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분석 패러다임과 모델을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들의 99년도 한국경제 전망이 적중할 확률은 96년에 내놓았던 97년 경제전망의 적중률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경제가 금년 말에 밑바닥을 지나 내년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전망은 전망이라기보다는 정치지도자로서 희망 또는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달러 약세와 엔화가치의 폭등현상이 빚어진 10월 초순 이후에 벌어진 일을 보라. 달러 환율과 국제금리, 원자재 가격이 모두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를 이유로 「절호의 위기 탈출」을 점치는 장밋빛 전망이 도처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만약 이런 현상이 당분간 지속된다면 모든 연구기관과 경제전문가들은 99년 전망은 물론이요 석 달도 남지 않은 98년 경제전망까지도 수정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을 욕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은 원래부터 몇 달이나 1년 후의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내다볼 능력이 없는 학문이다. 공인받은 경제학자도 아닌 주제에 말을 함부로 한다고 화낼 분이 있을지 모르니까 권위 있는 「세계적 석학」의 후광을 빌려야겠다. 노벨경제학상 후보 0순위로 거론되는 MIT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학의 향연』이라는 책에서 경제학을 「원시적인 과학」으로 규정했다. 경제학은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그리고 극단적인 경기침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용한」 충고를 해줄 수는 있지만, 가난한 나라를 부자 나라로 만드는 법이나 사라져버린 경제성장의 마법을 다시 불러들이는 방법은 전혀 알지 못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에 관해서 옳고 정확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쓸모도 있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크루그먼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극단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유용한 충고」를 해줄 수도 있다. 경제학은 「사라져 버린 성장의 마법」을 다시 불러들일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인 경기침체 시기에 국가와 기업과 가계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적 역사적으로 검증된 처방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이 이런 처방전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다는 「경제전문가로서 밥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원시적 학문」인 경제학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단기적 경제전망을 남발하고, 그에 의거해서 검증되지 않은 처방을 써대는 데 있다. 금융경색과 내수 위축과 대량실업의 「하향나선형」 악순환을 저지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경제학이 제공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유용한 충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면사정상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다음과 같은 「호소」로 마무리하자. 『잘 나가는 전문가와 연구기관의 단기 경제전망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맙시다.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할 능력이 없는데도 일을 해야 하는 가련한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경제전망이 엉터리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너무 욕하지는 맙시다』 ------------------------------------------------------------------------------- -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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