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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8월 29일 토요일 오전 10시 59분 08초
제 목(Title): 정운찬,한국경제 거품의 붕괴와 제도개혁





한국경제, 거품의 붕괴와 제도개혁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주요 저서로 『금융개혁론』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 
『중앙은행론』 등이 있음. 



한국경제의 제도적 취약성 
한국경제의 위기 ─ 거품의 붕괴 
한국경제의 미래 ─ 제도의 개혁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까지 경제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곤 한다. 전국민이 
경제공부를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보건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경제가 파탄위기에 직면하리라고 경종을 
울린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한국경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자는 
목소리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단지 그러한 목소리들이 애써 외면되거나 
혹은 논의만 무성한 가운데 실질적인 개혁이 뒤따르지 않았을 따름이다. 우리 
경제·사회에 깊이 뿌리내려온 기존제도를 바꾸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층의 저항을 다루는 것 모두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과거의 경제운용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기존방식을 
유지할 때 겪을 고통은 개혁의 고통보다 더 클 것이 분명하다. 제도개혁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우리의 임무다. 
  현재의 위기는 제도 또는 구조의 위기다. 일상적인 외환위기로 돌려버리기에는 
그 양상이 결코 예사롭지 않으며, 기존의 위기이론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현상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에 따르면 외환위기는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일으키면서 외환보유고를 소진하거나,註1)실업 등 거시경제의 안정성 
문제 때문에 환율방어를 포기할 것이 예상될 때註2)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위기는 이러한 이론들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우선 위기 이전의 
재정수지는 거의 균형에 가까웠으며, 거시지표를 봐도 국제수지 적자는 컸지만 
실업이나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거시지표만 가지고서 
이렇게 갑작스러운 대규모 위기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즉, 한국경제의 
위기는 좀더 제도적 또는 미시구조적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경제는 환경변화에 따른 충격을 흡수해내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붕괴로 접어들 수 있다. 특히 기존체제가 충격을 지탱할 수 없다는 예측이 
형성되면 경제붕괴의 기대가 스스로를 실현하면서(self-fulfilling) 위기를 더욱 
증폭시킨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한국경제의 미시구조, 특히 금융부문의 취약성을 지적하고 
이를 개혁할 것을 주장해왔다. 註3)경제구조의 3대 축인 정부·금융·기업 모두가 
이미 오래전부터 취약성을 드러내왔고 이들간의 관계도 비정상적인 것이었으므로, 
이를 하루빨리 바로잡지 않는다면 언제고 파탄에 이를 수 있었다. 뒤늦게라도 이런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註4)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작금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 당장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필요한 
시점이므로, 한국경제의 문제를 특히 제도적인 측면에서 다시 한번 철저히 
되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이 토대 위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개혁조치를 
마련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선 한국경제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우리 경제의 
제도적·구조적 문제를 정리할 것이다. 또 현재 진행중인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겠다. 
  
  
  1. 한국경제의 제도적 취약성 
  
  본격적으로 한국경제를 논하기 앞서 제도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자. 모든 
사회활동은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경제현상도 제도와 무관하지 
않으며, 제도의 성격에 따라 경제의 성과도 크게 좌우된다. 일반적으로 제도란, 
어떤 사회의 게임룰 또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규율(discipline)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장치들을 총칭한다. 註5)경제제도는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다양한 
법과 규제, 관행 등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시장규율·규제규율 등이 모두 
경제제도다. 경제제도는 자연질서와는 달리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 또는 아이디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경제제도들은 모두 그 시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아이디어와 상호작용을 지속했고, 우리의 경제제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제도는 어떤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 
지난 30여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경제철학은 ‘성장’이었다. 모든 경제주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성장이라는 지상목표에 따라 규율되었다. 구체적으로 
‘성장’은, 내실보다는 외형적 성장과 총량지수목표의 달성을 의미했다. 이와 
맞지 않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아무리 중요한 가치라 할지라도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1) 한국경제 = 한국주식회사 
  
  이제 성장이라는 아이디어의 바탕 위에 정부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현재의 제도를 구축해왔는지 알아보자. 
  우선 정부는 총량위주의 성장제일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갖가지 성장정책들은 
경쟁제한과 정부에 의한 인위적 자원배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는 유망산업을 
선정하여 기업별로 사업영역을 구분해주었고, 은행을 산업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산업별·기업별로 자금지원 규모와 사후관리를 모두 통제했다. 기업은 
한편으로는 경쟁제한 덕분에 다른 기업과의 경쟁압력에서 해방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고 투자 위험을 부담해주었기 때문에 정부의 
지시대로 성장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경제는 정부가 은행을 
수단으로 기업(특히 재벌)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온 것이다. 
정부부·기업부·은행부의 3부로 이루어진 한국주식회사(Korea Inc.)에서 정부는 
최종 해결사로서 거의 모든 경제부문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성장을 
주도해왔다. 
  이러한 경제구조는 주지하다시피 급속성장을 가능케 했다. 한국경제는 
구미선진국들이 1,`2백년에 걸쳐 이룩한 성장을 불과 30여년 만에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과정은 동시에 경제제도의 왜곡과정이기도 
했다. 경쟁을 제한하고 희소한 자원을 인위적으로 배분하여 가시적 성과를 내려 한 
성장전략은, 형평이라는 또다른 중요한 가치를 희생시켰고 제도적으로는 
시장규율을 훼손하였다. 자연히 성장의 이면에는 많은 구조적 문제가 배태되고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즉, 경제제도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변질되고 공정한 
게임룰은 확립되지 못했으며, 그 결과 경제구조의 불균형은 심화되고 경제의 
내실은 온데간데 없어진 채 거품만 만연했다. 
  
  
 (2) 경제제도의 비효율성 
  
  
  지대추구 
  
  한국주식회사는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 많은 비효율을 안고 있었다. 
규제규율(regulatory discipline)은 자의적이었고 자율적인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은 설자리가 없었다. 정부가 경쟁을 막아주고 은행이 낮은 이자율로 
돈을 대주는 상황에서 대다수 (재벌)기업들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희소성과 독점력이 가져다주는 부수입, 즉 막대한 지대(rent) 註6)를 누리는 데 
급급했다. 재벌이 부동산투기로 번 돈이 다 이런 지대에 속한다. 경제주체들이 
지대추구에 혈안이 되면 경제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원리에 충실한 
사람은 부득이 땀흘리기보다는 손쉽게 지대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번 지대가 
발생하면 경제주체들은 추가적인 지대 창출을 위해 온갖 비정상적 방법을 
동원한다. 기업은 투기를 일삼고 관료와 은행에 뇌물을 바치고, 관료는 추가적 
이득을 위해 수많은 규제를 거미줄처럼 엮어 확대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체질은 허약해지고 온갖 비효율이 양산되는데 이러한 제도적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 금융부문이다. 
  
  
  금융부문의 낙후 
  
  신고전파 경제학에 따르면 금융의 주요 역할은 저축과 투자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케인지언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금융기관이 단순히 저축을 배분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창조하는 역할까지 한다. 註7)즉, 금융은 기업가들이 생산과 투자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용권을 적극적으로 창출해내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금융부문은 한국주식회사 내에서 (정책)금융자금을 창조하여 이를 배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해왔고, 어느정도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금융부문의 역할이 
이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금융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경제발전과정에서 금융불안정성이나 기타 불균형적 
금융구조에 따른 성장저해요인을 최소화하면서 기존자원의 이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註8)또 금융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은 금융제도의 안정성과 실물자원의 
최적배분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 
  우리 금융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상적인 대출심사를 통한 자원배분의 효율성은 
뒷전으로 물러났으며 이 과정에서 부실채권이 대규모로 양산되어 은행산업 또한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그동안 금융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실채권에 관한 획기적인 개혁이 이루어진 적이 없기에 현재 
우리 은행들은 금융정상화를 제대로 이룰 여건과 능력이 모두 결핍되어 있다. 
부실채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은행은 부실기업과 같은 운명이므로 기업과 
자신의 도산을 막기 위해 계속 돈을 대주게 되고, 이것이 부실채권을 더욱 
부풀리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3) 경제구조의 불균형 
  
  성장제일주의 체제에서 형평은 도외시되어 도농(都農)간 불균형, 빈부의 격차 등 
각종 불균형이 심화되어왔다. 이 중 근래 들어 그 심각성이 특히 두드러진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이다. 
  원가절감·생산성향상·신기술개발 등은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진다. 또 
산업의 핵심요소인 주조·단조·열처리·표면처리 등도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영위된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튼튼한 토대 없이는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배양할 수 
없다. 일본이나 대만의 경제가 최근의 여러가지 시련을 잘 견뎌내는 것은 바로 
중소기업이 강한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매우 취약하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정부가 지나치게 
대기업에 편중된 자금 및 행정 지원을 해왔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강자의 약자지배 원리’가 통용되어왔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어음을 발행해서 납품대금 지급을 연기하는 식으로 중소기업에 자금난을 전가하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때문에 중소기업 고유업종이 
침해되기도 하고, ‘사람빼가기’나 부품단가 인하 압력 등 그 횡포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대기업이 한국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2,30년 동안 정부는 대기업의 도산은 막고자 했는데, 사실 이것이 정부의 입장, 
나아가서 사회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기업들은 ‘망하지 않으려면 기업규모를 
키워야 한다’(too big to fail)는 규칙을 터득하고 금융부문의 도움 아래 
註9)거의 무제한적인 팽창을 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바로 비관련 다각화 
기업집단, 즉 재벌이다. 
  재벌구조는 한국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 먼저 재벌은 각 계열사를 
상호지급보증이라는 끈으로 묶어 파산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는 부실기업의 
퇴출을 어렵게 해서 망할 기업은 망해야 한다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강자 또는 
대자(大者) 생존의 원리로 대체해버렸다. 
  그룹내 수십개의 계열사를 ‘총수’라는 단 한 명의 자연인이 총괄지배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것은 내부적·외부적 경영통제장치가 미비한데다가 계열사간 
상호출자라는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6년 4월 현재 30대 재벌의 
총자산 340조원 중 자기자본은 70조원에 불과하다. 또 자기자본 중 재벌총수 및 그 
가족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약 7조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24조원에 
달하는 계열사간 상호출자를 감안할 때, 재벌총수는 자기자본 70조원의 44.3%인 
31조원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결국 재벌총수는 340조원의 2%인 7조원에 
대한 소유권을 기반으로, 39조원의 지분을 소유한 외부주주뿐만 아니라 270조원의 
부채자금을 제공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소유권 행사를 철저히 막아온 것이다. 
  재벌이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세번째 경로로는 내부거래를 들 수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만드는 선박의 외장도료로 계열사인 고려페인트의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내부거래를 통해 자금이 계열사 사이를 옮겨다니기 
때문에, 경쟁력이 낮아 이익을 낼 수 없는 계열사도 살아남게 된다. 반면 
중소기업이 아무리 값싸고 질좋은 상품을 생산한다고 해도 재벌의 내부거래로 
판로가 제한되기 때문에 생존이 위협받기도 한다. 
  이렇게 재벌은 상호지급보증·상호출자·내부거래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극도로 
비대해지면서 시장과 경제를 지배해왔고, 이 과정에서 시장의 불완전성은 더욱 
심화되고 적자생존이라는 게임룰은 왜곡되었다. 
  재벌의 횡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은 경제지배에만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특히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갖가지 경기부양책과 국제화, 세계화 구호를 앞세운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재벌이 
고삐가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나날이 그 위세를 더해왔다. (넓은 의미의) 
정부·재벌·언론의 ‘신(新)삼권분립시대’가 도래한 지 이미 오래며, 더 나아가 
지금은 재벌이 막강한 금권을 동원하여 정부와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註10) 
  
  
 (4) 거품경제 
  
  거품경제에 대한 논의는 현재 우리 경제의 위기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준다. 
거품이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붕괴된다는 점, 그리고 붕괴가 
예상될 때에는 그 발생과정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실현하는 속성을 보이면서 
파괴적 사태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註11) 거품이란, 어떤 자산의 
시장가격이 그 내재가치를 초과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거품은 언제나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호전시키는 정치·경제적 계기와 더불어 발생하며, 
경제상황에 대한 근거없는 낙관을 통해 증폭된다. 근거없는 낙관은 투자자금 등 
적당한 조건이 마련될 때 스스로 현실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가 
거품이다. 예컨대 만원이면 적당한 주식이 십만원으로 오르리라 기대되면 수요가 
늘어 정말 십만원이 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사회는 거품 속에 푹 빠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1988년 서울올림픽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지게 된,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80년대말의 거품을 낳았다. 또한 1996년 4·11 총선을 전후해 정부가 제시한 우리 
경제의 장밋빛 전망은 80년대 후반의 근거없는 낙관을 연장시키기에 충분하였으며, 
최근에는 2002년의 월드컵대회 유치를 계기로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경제에 대한 이와같은 근거없는 낙관과 함께 금융부문의 규율 부재는 한국경제에 
거품이 만연하게 만들었다. 재벌은 무분별한 기업확장을 계속하고, 가정의 
소비성향은 증가했으며 대학은 규모 늘리기에만 급급하는 등 거품의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현상들은 ‘경제체질의 약화’를 초래했다. 기업이 내실을 
다져 착실히 경영하기보다 부동산투기나 규모확장에만 열중했으니 자본축적과 
기술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뿐만 아니라 거품물결에 제때 편승한 
재벌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의 불균형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졌다. 
이처럼 우리 경제의 체질이 저효율과 각종 불균형의 심화로 허약해진 것은 바로 
거품의 폐해 때문이다. 
  이렇듯 규율 없는 취약한 경제제도를 바탕으로 거품이 부풀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0여년간 한국경제는 결과적으로는 급속한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그 이유로는 
먼저 5,`60년대에는 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 용이했고 노동력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이 단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국제환경까지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다. 60년대에 유엔이 설정한 ‘개발의 10년대’, 70년대의 중동건설붐과 
오일달러 환류, 80년대 중반의 3저현상 등 모두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정부의 
경제정책도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은 1980년대 후반 들어 점차 사라졌다. 선진국들의 
기술보호정책으로 첨단기술 도입이 어려워졌고, 노동력 특히 고도의 숙련노동력이 
부족했으며, 임금은 큰 폭으로 상승하고, 기업경영 역시 복잡해졌다. 국제환경도 
나날이 불확실성을 더해갔다. 이렇듯 환경이 급속히 변함에 따라 수십년 동안 
겉으로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구조적 문제점들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한국경제의 위기 ─ 거품의 붕괴 
  
  제도의 취약성이 만들어낸 거품은 과거의 방식이 통용되지 않으리란 기대가 
형성될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즉, 제도의 변화가 예견될 때 숨어 있던 
거품이 드러나면서 기존체제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 
과정은 거품을 지탱해주었던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 위기의 촉발 
  
  대기업 부도사태 
  
  절대 안 망할 것 같던 대기업들이 망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주식회사라는 
기존제도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증폭되었다. 이때 
대기업에 무분별하게 자금을 대주었던 금융기관들은 겁을 집어먹고 서둘러 돈을 
회수했고 그것이 실제로 기업부도를 촉진시켰다. 한보사태가 이러한 변화를 
촉발했고 기아사태가 이를 급가속시켰다. 정부는 당시 기존 체제의 지탱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레짐(regime)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신속히 기존 레짐을 
탈피하고 개혁을 통해 새로운 레짐에 경제주체들을 적응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 정부의 대응은 그 정반대였다. 어떻게 해서든 기존 체제의 붕괴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1997년 여름의 부도유예협약이 바로 이러한 시도의 대표격이 아닌가. 
  위기의 진행에 결정적 역할을 한 기아사태를 보자. 1997년 9월 하순경 두 달여간 
질질 끌던 기아사태의 해결은 결국 산업은행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이것은 한국이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기존 체제를 억지로 유지하려 함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국가신용도를 급격히 훼손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불신이 증폭되어 거품이 
파괴적으로 붕괴될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자연히 해외차입여건이 급속히 악화되어 
외화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정부는 외화공급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산업 구조조정 종합대책’이라는, 그 당시에는 다소 과격하게도 보였던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믿음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외환공급은 계속 줄어들었고 결국 11월 23일에 국제통화기금(이하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IMF의 구제자금 지원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98년 
1월 중순 현재도 위기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차환(借換) 
또는 신규대출은 여전히 위축된 상태이며 주식시장에서 외국인투자한도를 대폭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 투자자들이 아직은 관망하고 있는 편이다. 
  
  지구화와 외환위기註12) 
  
  한국경제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 외환위기는 한국뿐 아니라 3년 전 
멕시코, 그리고 작년 늦은 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일기 시작했고 브라질에도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외환위기를 국지적인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외환위기 파급의 근본적인 소지는 
지구화 즉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한 측면은 자본이동에 국경이라는 제한이 없다는 것이며, 
외국자본이 언제나 단기적 투기목적을 위해 이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냉전체제가 붕괴한 것도 지금의 외환위기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 
과거에도 단기 투기수입을 극대화하려는 국제금융의 이동은 있었으나 
자본주의체제를 위협하는 재앙은 방지해야 한다는 경계심 때문에 어느정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 중심부를 잠재적으로 위협하던 
현존사회주의가 붕괴한 오늘날에는 그러한 자제요인은 제거되었다. 
  한편 현금의 한국과 동남아의 위기상황은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하는 
데 따른 영향도 받았다. 1994년에 단행된 중국 위엔(元)화의 대폭적 평가절하는 
국제교역환경, 특히 동남아 시장의 중대한 교란요소였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중인 외환위기의 국제적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냉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시대, 정치적으로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개막됐다는 사실이다. 중심국가들은 여기에 어느정도 적응이 가능했지만 
주변국·신생국·개발도상국·중진국들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즉 철저한 
시장주의에 입각한 경제체제에 익숙하지 못한 가운데 종래 안고 있던 여러가지 
내재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노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 
나라에서는 단순한 외환위기도 금융대란 또는 국가경제 파산의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듯 국제경제환경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열악해진 것이 외환위기 발생의 
대외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위기가 세계경제 전체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우리나라의 위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두드러진 점을 보면, 국제환경 
변화만 가지고서 당면한 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환경 변화에 지극히 취약한 
제도, 즉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사회의 구조화된 관행 및 병폐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좀더 올바른 시도일 것이다. 
  
  경직적 관행 
  
  그간 우리나라는 정부·은행·기업의 삼각구도로 경제를 운영하는 데 익숙해져 
WTO에 가입하고 OECD의 회원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방화시대의 국제적 
게임룰을 체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현재 위기의 도화선으로 간주되는 작년 
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작년 봄 신동방그룹과 홍콩의 페레그린이 합작설립한 동방페레그린 증권회사가 
신동방그룹과 함께 대농그룹의 미도파를 인수하려 하였다. 그러자 정부와 전경련이 
나서서 이를 저지하고, 2개월간의 업무감사를 실시해서 동방페레그린을 길들이려 
했다. 이에 동방페레그린은 온갖 법률과 규정을 들어 M&A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항의했고 이 와중에 대농그룹은 도산위기에 처해 그만 부도방지협약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성원그룹의 대한종금이 
동방페레그린의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는데도 이번에는 정부가 수수방관하자 
동방페레그린 사장이 홍콩에 돌아가 국제적인 게임룰조차 모르는 한국정부와는 
상대하지도 말라며, 한국경제는 금융뿐만 아니라 실물적인 기초도 문제투성이라는 
문건을 작성, 배포했다. 이 일을 계기로 홍콩 금융기관들이 한국계 금융기관들에 
대한 신규대출을 재고하고 기존대출의 상환연기를 거부하게 되었으며, 이미 
이때부터 조만간 한국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룰을 
무시하고 자기 것 지키기에만 급급해왔던 관행이 국가부도 운운되는 현재의 
외환위기에 불을 지폈던 것이다. 
  또다른 예로는 지난 연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뒤의 정부 행태를 들 수 
있다. 작년 12월 3일의 이행조건 협약에는 상황에 따라 두 개 시중은행을 폐쇄 
또는 외국은행에 인수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그후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에 대해 현물출자를 해서 국책은행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것은 IMF측이 한국정부를 더더욱 불신하도록 만들었으니, 이러한 행태들 
하나하나가 개방화시대에 우리나라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한 것이다. 
  
  
 (2) 위기의 근본원인 
  
  앞서 지적한 다양한 요인들이 외환위기를 촉발시켰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한국경제의 내재적 취약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성장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게임룰은 강자 또는 대자 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면서 
과잉투자 등 거품현상이 만연해졌고, 이로 인해 한국경제가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져서 대내외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또 그러한 모습이 
비관적 기대를 증폭시켜 지금의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다. 
  
  위기의 중심지 ─ 금융부문의 기능 마비 
  
  한국경제의 허약성은 크게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으로 나누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금융부문은 바로 위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금융중개기능의 마비와 
금융시장의 규율 부재가 위기를 증폭시켰고, 또 문제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은행과 종금사 문제가 금융부문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은 정책금융과 관치금융의 부산물인 대규모 부실채권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실채권 비율이 약 2~3%라고 공표되어왔지만, 이는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부실채권이라고 공시하는 것은 
‘추정손실’과 ‘회수의문’에 해당하는 것만 포함할 뿐이며, 일본처럼 6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채권인 ‘고정’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7~8%가 되고, 
미국처럼 3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채권인 ‘요주의’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20%에 근접한다. 이러한 기준에서도 미국의 부실채권 비중은 1~2%이니, 
우리나라 은행들의 부실 정도가 어떤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실상을 숨기는 데 급급했고, 그것이 의구심을 증폭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이토록 부실해진 
것은 무엇보다 그간 성장일변도 정책 아래 은행이 정부에 예속되어 정부의 지시에 
따라 무조건적·무제한적으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부실채권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부수적으로는 은행들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자금을 배분하는 데 
안주하여 기업들의 투자계획을 심사할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는 점도 은행부실화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종금사 문제에서도 우리나라 금융의 취약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1975년 12월 제정된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자도입을 목적으로 외국계 금융기관과의 합작으로 설립된 6개의 기존 종금사가 
있고, 1972년 8·3조치 이후 사채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투자금융회사들이 ‘금융기관 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94년과 96년에 
종금사로 전환한 24개의 후발 종금사가 있다. 후발 종금사들은 외화자금업무에 
대한 노하우도 일천하고 영업기반이 허약해 국내외적으로 무리한 영업행태를 많이 
보여왔다. 
  국내에서는 재벌기업들이 무한팽창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고자 무제한으로 발행한 
신종기업어음(일명 CP)을 할인하여 이를 다시 은행신탁에 넘기는 방법으로 이윤을 
챙겨왔는데, 이윤을 많이 남기려다 보니 공(空)매도·이중매도 등 여러가지 
불법적인 행태를 범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전체 종금사의 기업어음 할인과 
어음매출 규모는 1995년에 각각 42조원과 35조원에서 97년에는 90조원과 
75조원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는데, 결국 97년 들어 재벌들이 줄줄이 도산하자 
대규모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외화자금업무를 한다고 홍콩에 들어온 일본자금을 싼 이자로 
단기에 차입하여 비싼 이자를 받고 장기로 빌려주는 일을 계속했는데, 부채 중 
단기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80%, 자산 중 장기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르러 만기불일치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다만 이러한 만기구조에서도 종금사들에 
대한 신뢰가 지속되어 단기부채의 만기가 계속해서 연장되거나 차환이 
이루어졌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작년 봄부터 한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만기연장 및 차환이 어려워졌고 홍콩에 진출해 있던 종금사들은 
부채상환용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콜시장에서 
은행으로부터 원화를 차입하여 외환시장에 나가 외화를 조달할 수밖에 없었고, 
외환시장과 자금시장 불안정의 종범으로 몰리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 종금사에 대해서는 통일적 회계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고 부실자산 
분류기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업무검사나 감독도 이루어지지 않는 등 
관련 법률 및 규정이 미비한 상태였다. 후발 종금사들은 이렇게 시장규율도 
규제규율도 존재하지 않는 틈을 타 전사회적인 거품현상에 편승하여 자산 
부풀리기에 주력하다가 종국에는 좌초하고 만 것이다. 
  
  실물부문의 과잉투자 
  
  실물부문에서는 ‘과잉투자’가 큰 문제인데, 이것은 한국경제의 체질이 
지금처럼 허약해지게 된 원인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과잉투자는 
실물부문의 거품이다. 특히 재벌의 과잉투자는 심각한 지경이다. 
자동차·반도체·조선·석유화학 등이 재벌들이 과잉투자한 대표적 분야로, 
석유화학 및 조선에 대한 투자는 이미 시들해졌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과잉투자의 원인은 경제합리성의 결여, 즉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인 적자생존 
원리가 지난 30여년간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처지고 망할 기업은 망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인데, 
한국에서는 ‘크면 망하지 않고 작으면 망할 수 있다’는 원리가 지배해왔고, 이 
잘못된 관행을 경험법칙으로 터득한 기업들은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규모극대화·성장극대화를 추구해온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유신, 5·6공 정부가 정권의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도 과잉투자를 부추기는 데 한몫을 했다. 정치적 정당성의 결여를 
경제적으로나마 보상하려고 가시적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장에 도움만 
된다면 무엇이든 지원해주려 했고, 재벌들은 바로 이같은 약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속적으로 규모를 늘려왔다. 특히 친재벌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김영삼정부에 이르러서는 거의 무제한적인 팽창이 이루어졌다. 
  재벌들이 과도한 팽창을 한 결과, 공급과잉으로 재고조정에 실패하면서 
1996년에는 수출단가가 12.8% 하락했다. 또 그간 시설투자에 주력하다 보니 
자금회수가 늦어지고 금융비용이 급증해서 재무구조도 극도로 악화되었다. 97년 
들어 한보를 필두로 진로·대농·기아·뉴코아 등이 줄줄이 무너졌으며 지금도 
차입경영에 의존해왔던 수많은 재벌들이 은행·종금사 등 금융부문의 부실화와 
맞물려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 
  재벌 과잉투자의 폐해를 보면 재벌구조가 경제위기에 끼친 부정적 효과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작년에 국가신용도 저하의 단초가 되었던 기아사태에서, 
기아자동차는 매년 1000억원 가까이 적자를 내던 기아특수강에 1조 8000억원의 
보증을 서준 것을 비롯해 아시아자동차에 5500억원, 기산에 8350억원 등 총 3조 
6700억원의 보증을 해주었다. 註13)그 결과 생산시설이나 기술력은 세계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기아자동차가 얼마든지 건실한 경영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빚더미에서 도저히 헤어나오기 어려워졌고, 그후 위기 확산을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은 상호지급보증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상호출자를 빌미로 한 총수의 총괄지배도 매우 큰 문제다. 이것은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에서 알 수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해서 각국이 
전부 자동차산업을 통폐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자동차산업에 진출한 것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우리 기업들의 투자계획 판단력과 관련하여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국내에서는 GNP증가율·물가상승률·국제수지 등의 거시총량지표를 
실물적 기초(fundamentals)로 보는 데 비해 외국 투자자들은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등) 미시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실물적 기초를 판단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들의 파장은 무시 못할 정도였다. 
  
  
  3. 한국경제의 미래 ─ 제도의 개혁 
  
  현재 IMF 구제금융 체제의 한국경제는 집중포격을 당한 형상이다. 구제금융이 
제공된 후에도 외환위기가 근본적으로는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기업은 
연쇄도산하고 실업률은 급등하고 있다. 포격의 파편과 연무로 인해 어떤 부문이 
죽었고 어떤 부문이 살아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시행착오의 시간마저 갖지 못한 채 코너에 몰려 
제도개혁을 대대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시급한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 
  
  
 (1) IMF의 프로그램 
  
  우리의 현 경제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전개되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IMF의 처방이 
잘못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 비판론이 세를 얻어가고 있다. 
  IMF는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 이행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당면한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요인에 대한 
대책이며, 둘째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요인에 대한 대책으로 (IMF 또는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구제금융 대상국의 허약한 경제질서를 개선하기 위한 것들이다. 
  안정화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전자는 기본적으로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지출의 축소를 목표로 하기에 자연스레 긴축정책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도 
재정긴축과 물가상승률, 총유동성(M3) 註14) 증가율과 목표성장률의 하향조정이 
요구되고 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후자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명확하고 엄격한 퇴출정책과 경쟁촉진에 의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금융개혁을 통한 재벌의 차입경영행태 쇄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의 제반 조치들을 실시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 및 기업구조를 근대화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안정화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해서, 우리나라와 같이 
하이퍼인플레이션도 없고 재정도 비교적 건실하게 운용되고 있는 나라에 그토록 
긴축적인 재정과 금융을 운용하라는 것은 무리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매년 18%씩 증가하던 M3를 갑자기 10% 내외로 축소하라는 것은, 
현재와 같이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화폐유통속도가 급격히 
감소한 상태에서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도, 고용보험을 
대폭 확충할 필요성이나 금융산업 구조개선과 관련된 세제지원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IMF에서 요구하는 재정긴축은 문제가 많다. 따라서 IMF의 지나치게 엄격한 
거시안정계획은 단기적으로는 실업과 그에 뒤따를 사회불안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마비를 초래하여 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구조조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안정화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협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IMF에서 요구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그것이 아무리 철저한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미국과 IMF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 
경제체질의 허약성을 개선하고 자생적인 성장능력을 배양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면 따르는 것이 옳다. 아니, 어쩌면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IMF의 
요구내용보다 더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30여년간 
한국경제는 체질이 허약한 가운데서도 급속한 외연적 성장을 해왔지만, 지금과 
같이 경제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져 기업가의 혁신과 창의성에 기초한 내연적 성장이 
요구되는 단계에서 시장경쟁에 따른 적자생존이 아닌 시장 부재 아래의 강자생존 
패러다임은 국가경제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註15) 
  
  
 (2) 구조조정과 금융의 정상화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의 거품을 안고 있는지, 
재벌문제는 얼마나 심각한지 등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구조조정을 전방위적으로 신속하게 이루기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공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후에 구체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실물의 흐름 이면에는 금융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실물부문의 구조조정을 
위한 필요조건 또는 선결조건으로서 금융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 
  금융정상화란 다름아니라 금융기관이 그동안 정부의 정책금융·관치금융에 
길들여져 유명무실해진 대출심사기능을 회복하고, 자율적 대출심사를 통해 
자금공급대상과 그 조건을 스스로 결정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금융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은행들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정부는 최근 외환위기를 겪는 와중에 기존의 성업공사에 
은행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안고 있던 대규모 부실채권을 정리함으로써 부실채권 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잡혔는데, 금융산업의 대외개방이 목전에 닥쳤음을 감안할 때 
한층 신속한 정책처방이 요구된다. 
  다음으로는 은행에 대한 쓸데없는 속박을 풀어야 한다. 명시적이고 공식적인 
규제는 많이 없어져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잔존하는 업무지도 등의 비공식적 
간섭도 없애야 할 것이다. 또, 금융기관 내부적으로는 재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의 
질을 향상시켜 선진적 대출심사기법을 개발·적용토록 해야 하고, 금융시장의 
규율확립을 위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을 이루고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금융감독기관도 
설립해야 한다. 
  금융정상화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사항은 현재 공론화되고 있는 
금융산업에의 재벌참여 문제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일은 자본주의 
역사상 흔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벌이 소유한 은행이 계열사의 어려움으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산업에 대한 재벌의 참여는 
금융산업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소지가 많다. 또한 실물부문과 관련해서도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면 방만한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은행을 소유한 재벌기업과 
경쟁기업 사이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재벌의 은행소유는 
견제해야 할 일이다. 
  
  
 (3) 게임룰의 확립 
  
  시장경제원리의 이점을 누리려면 실물부문에 게임의 룰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룹 대 그룹, 그룹 대 기업의 경쟁이 아닌 기업 대 기업의 경쟁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재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차입경영을 통한 재벌의 무모한 규모확장경쟁과 총수의 총괄지배가 
직접적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이토록 허약하게 만든 것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재벌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꿔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재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선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출자를 억제해야 하며, 이를 통해 독립경영과 
업종전문화를 유도해야 한다. 금융을 정상화하여 대출심사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재벌의 무분별한 팽창을 억제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편 총수의 총괄지배에 따른 
밀어붙이기식 경영행태를 억제하려면 상호출자 제한 외에도 기업 내외에서 경영을 
실효성있게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이사회와 감사의 독립성과 기능을 강화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며, 기업 외부의 경영규율을 위해서는 기업인수시장을 활성화하고 
투자자로서의 금융기관의 위상이 제고되어야 한다. 문제는 금융기관이 대출자이자 
대주주로서 재벌경영에 대한 확실한 통제씨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국민기업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만약 재벌의 실질적인 은행소유가 허용되면 그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이다. 
  또한 재벌이 정부와 언론을 장악하여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없어져야 한다. 정부와 공무원들이 재벌의 금력에 의해 포로가 되는 현상, 즉 
정경유착, 더 정확하게 표현하여 권금(權金)유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시장경쟁을 촉진하여 지대추구를 없애고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을 
적자생존이라는 게임룰로 대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아울러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현행의 관련법률과 규정을 좀더 강화하여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註16) 
  
  
 (4) 정부의 역할 
  
  한국경제의 내연적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도 재벌 이상으로 과감히 개혁되어야 
한다. 더이상 정부가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한국경제를 주무를 수는 없다. 미국 
중심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 철저한 시장주의에 입각한 경제체제라는 변화된 
국제환경 속에서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정부는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한국경제는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게임룰을 
정착시킴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진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구시대적인 경쟁제한적 규제와 인위적인 자원배분을 없애야 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 
시장경쟁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공정거래법을 
강화하고 국제규범에 맞추어 기업회계의 통일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 등은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국제화에 직면한 
한국정부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앞서가는 나라가 아니며 아직도 
선진국들을 따라가야 하는 나라다. 이런 점에서 한국경제가 궁극적으로는 영미식의 
자본주의를 지향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2차대전 후의 일본식 또는 독일식 
자본주의를 참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을 예로 들면 5,`60년대에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수입대체전략과 
수출촉진정책을 동시에 실시했다. 그 성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자 70년대 
들어서는 앞으로의 산업구조가 지식집약적 산업 중심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산업구조를 개편하고자 했고, 80년대에 와서는 에너지 보호, 대체에너지 개발, 
고차원적 기술 개발 등을 주도해왔다. 일본정부는 현재도 고도로 세련된 산업구조 
창출을 목표로 다양하고 효과적인 산업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과거처럼 기업간에 사업분야를 
구체적으로 배분해주는 ‘기업정책’을 실시해서는 안되지만, 어떤 산업분야의 
육성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면 그 분야를 지원해주는 넓은 의미의 
‘산업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에 속한 
국책연구기관들을 통해 다양하고 깊이있는 정보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현장으로 전파한다든가, 산업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 등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기술개발과 인력투자에 소홀하지 
않아야 하는데, WTO체제에서도 이와 같은 분야에는 산업정책수단을 사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정부는, 앞으로 다가올 다품종소량생산 체제에서는 노동의 양보다 질이 
훨씬 더 중요해짐을 깨닫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능력을 개발하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소득분배의 개선과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그리고 경제정의의 실현 등 시장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5) 새로운 제도를 위하여 
  
  지금과 같은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 철저한 시장경제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현재 아시아의 상황이 매우 위험한데다 일본까지 
위험해지면 미국경제의 성장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미국과 일본의 
환율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금융자산의 매각 여부를 놓고 양국이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된다면 현재의 
세계체제가 온전히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당분간 현체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생존의 노력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 노력의 핵심은 
여러번 강조했듯이 튼튼한 제도의 확립에 있어야 한다. 환경변화에 날아가버리는 
거품을 키울 것이 아니라 시장규율과 규제규율을 적절히 확립하여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하면서 동시에 모든 경제주체가 어떤 변화에도 신속히 유연하게 대응하여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다. 
  이제 제도확립을 위한 개혁은 눈앞에 다가온,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혁의 
성공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제도의 개혁은 
초단기적으로 또 모든 분야에 걸쳐 동시에 실시할 때 성공할 수 있다. 기존제도에 
안주해온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극소화하고 또 기득권세력간의 연대를 막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개혁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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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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