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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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3일 수요일 오전 02시 38분 34초
제 목(Title): 한/정운영 누구의 장단인가?


[정운영에세이] /누구의 장단인가/ 
최근 국내 신문에 발췌된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읽고는 설마 그러랴 했다. 뭔가 
의미가 거칠게 전해진 것이 아닌가 싶어서 원문을 찾아보았더니, 번역은 잘못이 
없고 오역이기를 바랐던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세계적 전염'이라는 연재물의 
2월16일치 기사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국가안보회의(NSC)의 위세를 본떠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국가경제회의(NEC)는 초대 의장 로버트 루빈의 주특기대로 금융 
자유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 기구의 논의를 거쳐 미국 정부는 금융 
자유화 요구에 “한국이 굴복하면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허용한다는 매력적인 미끼를 내걸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설마'를 토한 것이다.  

미끼 던지고 압력 뒤따라 

우리가 아는 대로 김영삼 정부는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이 신문은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애초 계획보다 빨리 시장을 
자유화하기로 합의했다”는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너무 빨리 개방하면 
많은 금융 기관이 적응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결국 “한국 
시장을 비집어 열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를 이용했으며, 그것은 미국의 
은행과 투자가를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는 말씀이다. 금융 기관이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개방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이며, 또 그 장본인은 누구인가? 그것이 
미끼만으로 될 일은 아니고, 당연히 압력이 뒤따랐다. 

1996년 6월20일 미국 재무부가 작성한 세 쪽짜리 내부 비망록은 그 물증이 될 
만하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 메모는 재무부 최우선의 자유화 희망 분야이며 
미국 금융계의 중요한 관심 사항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국내 채권을 매입하도록 하고, 한국 기업에 단기 및 장기의 외자 도입을 허용하며, 
외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의 주식을 더 쉽게 구입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금융 감독 체계 확립을 강조해온 미국의 평소 태도와는 달리 “한국 정부가 은행에 
대한 규제나 법적 조처를 개선해야 한다는 암시는 이 비망록의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그런 조처들이 한국 기업으로 하여금 외국인 
자본과 투자에 더 쉽게 다가가게 하겠지만, 반면 1997년 말에 일어난 바와 같은 
자본 유출 패닉에 더 쉽게 무너지도록 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미국 정책의 도구”에 불과한 국제통화기금은 1996년 여름 인도네시아의 자본 
개방에 이어 한국 정부가 실행한 “자본 자유화 강화 조처를 환영했다”고 전했다. 

지루한 인용이었지만 내용은 분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은 애초에 남의 
장단에 맞춘 춤이었다. 더욱이 그것을 미끼로 던지면 콱 물으리라는 속내마저 
들켰다. 선진국 명함이 그렇고, 세계화 구호가 그렇다. 졸속 개방으로 상당수의 
금융 기관이 쓰러질 줄 알았지만 한국 정부는 밀려드는 달러에 정신이 나갔고, 
미국 정부는 자유화 설교로 그런 위험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1997년 11월에 
돌발한 한국의 외환 위기는 96년 6월 미국 재무부의 금융 자유화 작전 메모에서 
이미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이교관 기자의 <누가 한국경제를 파탄으로 
몰았는가>(동녘, 1998)는 한층 폭넓은 시각과 논의로써 환란의 외인―음모론―을 
주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 환란 청문회에 빠진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부자만이 아니라 이들 `외세'도 있다. 외세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인을 
빼놓고 사태의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는 한낱 희화에 불과하다. 

연금과 기금 등 미국의 금융자본은 1995년 벌써 세계 교역량의 4배나 되는 
20조달러에 이르렀다. 그중 일부는 수익성 높은 해외로 나갔는데, 위험 부담이 큰 
제삼세계 대신 `신흥 시장'을 주로 찾았다. 특히 “아시아 시장은 미국 은행과 
투자가한테 잠재적 금광으로 보였기” 때문에 집중적인 개방 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 안에도 클린턴-루빈의 자유화 탱고에 이견이 많았다. 미키 캔터, 
로라 타이슨, 제프리 가튼은 내 글에서 유쾌하게 기억되는 인물이 아니다. 불공정 
거래, 반덤핑 제소, 슈퍼 301조 등등 재직 당시 그들이 던진 한마디 한마디에 한국 
경제가 경기(驚氣)를 했기 때문이다. 

너무 늦은 반성문이나마 

그런데 이들이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무역대표를 역임한 캔터는 현대적 금융 
기법과 법적 장치 없는 금융 자유화를 “기초 없이 마천루를 짓는 것”에 
비교했다.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전임 의장 타이슨 역시 각국의 여건을 무시한 
자본의 자유 이동은 “나라를 파산으로” 이끈다고 경고했다. 전직 상무부 
국제무역담당 차관 가튼도 재직 때의 자유화 강요에 대해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나쳤고, 상당한 오만이 곁따랐다”고 고백한다. 이제라도 문제를 바로 보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반성조차 없다.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 
따위의 `매력적인' 미끼와 음험한 자유화 비망록 대신 이번에는 무엇이 
기다리는가? 과연 무엇을 주고 저들한테 열렬한 위기 극복 칭찬을 받고 있는가?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벗어버릴 `폐쇄적 민족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 장단에 따른 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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