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9년 1월 3일 일요일 오후 06시 39분 17초 제 목(Title): 이코노/대담 야마지 케이죠 전 캐논사장 해외인터뷰 / Business Interview 제 468호 1999.1.5 ------------------------------------------------------------------------------- - “美國 베끼는 게 꼭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다” ‘일본의 캐논’을‘세계의 캐논’으로 변화시킨 야마지 케이죠 前 사장 특별 인터뷰=이정옥 효성가톨릭대 교수 ------------------------------------------------------------------------------- - 일본을 카피했던 한국경제가 이젠 너도나도 미국쪽을 배우기에 바쁘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게 따지고 보면 미국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일본에서 배울 게 사라진 것일까. 그간 일본의 진짜 장점보다는 흉내내기에만 머문 게 아닐까. 결코 대세(大勢)는 아니지만 아시아적 가치의 내용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원튼 원하지 않튼간에 글로벌 격류를 타고 있는 한국경제는 자신의 독자적인 선택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속에서도 우리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선진국들의 장점을 우리식으로 고민하며 소화해 낼 여유와 시간조차 없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일본기업들의 속을 신년(新年) 특별시리즈로 다시 들여다본다. 이 작업은 일본 와세다대학 자금지원을 받아 일본 톱 경영자들을 차례로 직접 만난 이정옥 효성가톨릭대 교수(사회학)가 맡았다. 그가 만난 첫 번째 인물은 야마지 케이죠 前 캐논사장. 그는 한때 일본내에서 거세게 분 M&A 열풍을 반대해 온 인물. “다 팔아넘긴다”며 지나친 국제화에 반대해 온 그는 글로벌리제이션과 내셔널리즘 사이에서 고민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톱 경영자 -. 그는 그런 고민속에서도 캐논의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직접 인터뷰한 이정옥 교수는 서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그 동안 미국 하버드대 및 일본 와세다대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테트라팍에서는 언제부터 일하게 되셨습니까? “스웨덴 테트라팍 기술연구소를 견학할 때 그곳에서 환경과 기업과의 관계를 역설하는 내 강연을 듣고 여러 해 전에 스웨덴의 테트라팍 사주가 스카우트 제의를 해 왔어요. 테트라팍 창립자인 선친이 늘 하시던 말씀을 다시 듣는 것 같다고 하면서 같이 일해 보자는 간곡한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영어도 잘 모르고 테트라팍 관련 기술도 문외한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언하는 역할을 맡기로 하고 수락했어요.” ─캐논 입사시절 얘기가 궁금한데요. “원래 꿈은 노벨 물리학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물리 선생님의 고등학교 동기생(유가와 히데키)이 노벨 물리학상을 타는 바람에 전후에 상처받은 일본인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 역시 노벨 물리학상의 꿈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던 거죠. 아주 어릴 적 꿈은 아버지처럼 철도 기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철도 기사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의 꿈을 불태우면서 연구실에서 조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도교수님이 돌아가셨고 지도교수님의 가르침 없이 노벨 물리학상에 도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회사에 취직한 겁니다. 그 때 취업 제의를 받은 곳이 캐논이었죠. 이론물리학만 한 탓에 광학 분야는 전혀 생소했는 데 그 분야에 전문가였던 교수님이 연구 노트를 빌려 주어 그것으로 6개월간 독학하다시피 한 끝에 캐논의 렌즈 설계사로 입사하게 됐어요.” ▲日 캐논社의 사무실 풍경. 한 연구원이 일에 몰두하고 있다. ─입사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의 캐논은 그야말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셈인데요. 성장을 이끌어 온 추진력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 캐논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캐논은 조그만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였어요. 전후에 있는 것이라곤 그야말로 일 욕심 많은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캐논의 설립자는 의사 출신의 미타하리 다케시였는데, 그 분은 ‘新가족주의’ 기치 아래 공은 아랫사람에게, 허물은 자신에게 돌리는 경영 철학을 고수했습니다. 나의 경영 방침과 일치했죠. 현재 종업원 7만 명의 세계적 규모의 회사로 캐논을 만들기까지 여러 가지 상황 변화가 있었습니다. 엔저 시대에는 수출을 늘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고 이를 위해 우선 연구하는 회사로 만들었죠. 실용적 연구 개발 투자에 집중하고 그 결과는 즉시 특허출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품의 다각화에도 힘을 쏟아 카메라 중심에서 사무기기로 확대했고 잉크젯, 복사기 등의 특허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캐논을 세계화할 때 그 몫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내의 기술개발을 통한 특허출원이 오늘의 캐논의 원동력이었던 셈입니다. 신기술 개발은 전 종업원이 연구하는 자세일 때 가능하다는 것이 내 신조입니다. 엔고 시대에는 기업의 현지화를 통한 글로벌 경영을 통해 문제를 풀었습니다. 글로벌 경영의 결과 일본 캐논은 동아시아·동남아·오세아니아 지역을 커버하고 미국 캐논은 북미·중남미 지역, 유럽 캐논은 동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커버하는 것으로 권역을 나누고 각각의 권역에서 생산, 판매, 연구개발까지 독자적으로 함으로써 주식과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였죠.” ─최근 일본에도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는 분위기인 데 일본식 경영이 특별히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일본식 경영의 요체는 인간성 존중을 토대로 한 노사관계입니다. 사원도 경영자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의미입니다. 성과주의, 연봉제 등이 유행하고 일본에서도 이것을 도입하는 경향이 일고 있습니다. 캐논에서는 95년까지 연봉제를 택하지 않았는 데 개인적으로는 성과주의를 택했을 때 한편으로 이익을 보면 다른 면에선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종업원을 감원해야 할 경우 어떻게 했습니까? “캐논에서는 아직 인원감축을 한 적이 없습니다. 굳이 감축을 해야 할 경우는 신규채용 감축, 자연 퇴직 등의 방법을 쓰죠. 실제로 자주 쓰는 방법은 배치전환입니다. 예컨대 후쿠시마 공장에 있던 메인공장을 타이완·중국·말레이시아 등 해외로 옮기고 나서 후쿠시마 공장은 컴퓨터, 프린터 공장으로 바꿔 거기서 계속 일하게 배려했습니다. 그래도 남는 인원은 충분히 재교육을 시켜 다른 공장에 취업시켰어요. 나는 종업원도 고객이라는 점을 항시 강조했습니다.” ─경영자로서 바라는 종업원 상은 어떤가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일에 대한 정열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종업원이 우수한 점이 있다면 어떤 점입니까? “전반적으로 종업원의 레벨이 고른 편이고 유연성이 있으며 정보의 공유화를 통해 상호 이해가 빠른 편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개인화를 추구하는 미국에 비해 이런 특성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죠. 지나친 인내심 역시 미덕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구요.” ─요즘 신세대 종업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나가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생각해요. 한편 미국적인 것이 반드시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죠. 예컨대 미국은 레터사이즈가 표준이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A4 용지가 글로벌 스탠더드 아닙니까. 지구의 자원, 인간의 인내력은 유한합니다. 그것에 대한 공존의 규범을 확립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생각합니다.” ◇야마지 케이죠 약력 ·27년 출생 ·51년 도쿄대 물리학과 졸업, 캐논 카메라 입사 ·68년 연구개발 부장 ·69년 캐논社로 사명 전환 ·72년 이사 ·89년 대표이사 취임 ·93년 대표이사 부회장 취임 ·95년 상담역, 캐논 명예 고문, 일본 테트라팍 회장 취임 ◇상 훈 ·62년 공학 박사 ·77년 일본과학기술처장관상 수상 ·84년 텔레비전 카메라용 연속변용렌즈개발상 ·92년 BUSINESS WEEK지가 뽑은 세계 최고 경영자상 ·93년 프랑스 레종되뇌르 훈장 ·네덜란드 오렌지낫소 훈장 ─캐논의 경영 후계자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장은 모든 사람이 추천해 거의 전원일치에 가깝게 결정됩니다. 마치 ‘감이 잘 익어 떨어지는 것처럼’ 누구나 이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내 경험으로는 사장은 성공의 경험이 많아 자신 있게 회사를 끌어갈 수 있는 사람, 운과 감이 뛰어나서 사회 현상에 숨어 있는 법칙을 경험을 통해 발견해 낼 줄 아는 사람, 담력이 큰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요약해 주신다면요? “기업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것, 창조하는 것, 정열 등이 다 중요하죠. 내가 갖고 있는 경영의 5대 원칙을 요약하면 경영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이념을 만들어 내야 하고, 알기 쉬워야 하며, 재미없는 것이 돼서는 안 되고, 멋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며,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첫째,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겁니다. 둘째, 자연환경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셋째, 그 기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넷째, 기업이 항구적으로 살아 남고 다섯째, 자기의 본업을 통해 고용을 확보함으로써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468호 -------------------------------------------------------------------------------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