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태하) <tide88.microsoft> 날 짜 (Date): 2000년 8월 19일 토요일 오전 08시 06분 56초 제 목(Title): 퍼온글/ 아베 피에르 신부 [문화] 작은 사랑이 세계를 구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휴머니스트 전사 피에르 신부기 박애를 호소한다 프랑스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지난 50여년 동안 프랑스사람들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여겨왔던 이는 두 사람이었다. 해양학자로 ‘칼립소호’라는 배를 타고 세계의 바닷속을 탐험했던 해양학자 자크 쿠스토(1910∼97). 그리고 프랑스말로 ‘신부’를 뜻하는 ‘아베’라는 칭호를 언제나 앞에 붙여 부르는 ‘아베 피에르’다. 쿠스토는 세상을 떠났지만, 올해 여든아홉살의 피에르 신부는 여전히 프랑스사회의 ‘큰 어른’으로 정정히 남아 있다. 아베 피에르가 이처럼 반세기 동안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사랑받아온 이유는 그가 ‘프랑스의 양심’을 일깨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약했고, 지난 1949년에는 세계적 빈민구호단체인 ‘엠마우스’를 만들어 평생을 헐벗은 이웃들의 수호자로 헌신했다. 소신과 신앙이라는 무기로 세상의 불합리와 불평등에 맞서 전사처럼 싸워온 휴머니스트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김용채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바로 이 피에르 신부가 지난 50년 동안 직접 행동으로 실천해온 ‘형제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빈부의 격차와 행복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현대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리고 어려운 이웃과 부와 가치를 나누는 형제애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일목요연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지난 96년 ‘국경없는 의사회’의 창립자인 베르나르 쿠슈네와 그가 대담한 <신과 인간들>(장락 펴냄)이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피에르 신부 개인의 저작으로서는 이번 <당신의…>이 처음이다. <신과 인간들>에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두 휴머니스트인 이들은 치열한 대담을 통해 세상사람들이 자신만을 돌보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타인들의 불행에 시선을 돌리라고 외쳤다. 새로 출판된 <당신의…>에서도 피에르 신부는 세상사람들에게 남과 나누는 삶으로 시각을 바꾸라고 호소한다. (사진/피에르 신부는 늘 언론이 세상의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알려줄 것을 바란다.지만 소중한 가치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박애의 정신이 더욱 널리 퍼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피에르 신부가 프랑스에서 받는 존경과 사랑은 물론 프랑스라는 한 나라의 상황 속에서 구축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하는 진리와 실천의 중요함이 프랑스만의 가르침은 아니다. 세계 보편의 스승으로 그의 말은 프랑스를 넘어 세계인 모두의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의 말이 화려한 미사여구와 멋진 문장력과 비유로 짜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늘 이상을 향해 실천해온 그의 투쟁적 삶에서 축적된 힘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에서 그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며 행동하는 기본 사상은 바로 ‘박애’ 또는 ‘형제애’라는 신념이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이 ‘박애’의 실천을 강조한다. 사회적 연대의식이 유달리 강한 프랑스에서도 요즘 가장 커다란 사회문제는 바로 빈부격차의 심화와 장기실업자다. 이런 모순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박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사회적 연대가 우리보다 앞서 있는 프랑스에서도 이처럼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보다 훨씬 사회안전망이 열악한 우리의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사회적 연대가 익명관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주는 자의 오만스런 만족감도, 받는 자의 굴욕감도 함께 벗어날 수 있지만 피에르 신부는 그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형제애로 인간과 인간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처럼 박애의 정신을 부르짖는 이유는 공동체 지향성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을 막지는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산업화가 될수록 경제가 성장할수록 소수의 부자들만이 점점 더 부유해지고, 이들이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한대로 가난에 빠져드는 현실을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그는 분노한다. <세계화의 덫>이 신자유주의가 파생시키는 빈부격차의 문제를 조리있게 조목조목 비판했다면, 피에르 신부는 인간 보편의 양심에 호소하는 진솔한 목소리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주장은 단순히 감정적 설득에 그치지 않고 수긍할 만한 논거를 곁들이고 있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과 집단, 나라를 넘어 박애가 확산돼야 하며,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촌이 한 가족이 된 지금 시점이야 말로 우리가 새로운 나눔과 베품의 정신을 행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 방법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적게 일해 같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이상론처럼 들리기 쉽다. 그래서 피에르 신부도 지난세기 두번의 세계대전보다도 지금이 더욱 힘들고 추악한 전쟁중이라고 인정한다. 세상사람들 모두가 지금이 태평성대라고 착각하지만, 사회적인 단절과 양분화, 빈곤의 확산, 소외, 그리고 편협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격에 굴하지 않고 대응하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사진/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젊은이들과 음악을 즐기는 피에르 심부의 모습) 책을 통해 피에르 신부는 강론처럼 나즈막히, 그러나 시종일관 내재적인 강한 힘을 실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주문한다. “어느 날 아침 눈뜨면서 오늘부터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삶을 바치겠노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역시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하는 일련의 만남과 상황을 만났고,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회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대단한 동포애를 실천하거나 모든 것을 다 주겠노라고 굳이 굳은 결심을 하지 않아도, 나눔의 생활은 작은 선택의 연속과 참여의 확산, 소박한 동의로 이루어진다는 것, 사회제도나 구조를 정비하는 사회적 혁명이 아니라 개인의 결단에서 박애는 비롯된다는 점을 그는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박애의 정신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함께 가자는 것이란 점을 그는 책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힘주어 설파하고 있다. ‘아베 피에르’가 사랑받는 이유 1954년, 프랑스는 유난히 추웠다. 영하의 추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던 2월1일 피에르 신부는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절규했다. “세바스톱가에서 숨진 여인의 죽음이 보여주는 의미를 외면하지 말라. 권력은 눈이 멀었고 가난한 자들은 침묵한다.” 세바스톱 거리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된 그 여인은 집없는 가난한 시민이었다. 싸늘하게 죽은 채 그는 아파트 퇴거증명서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아파트 집세를 더이상 낼 수 없어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뒤 거리를 헤매다 결국 얼음장 같은 보도블록 위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이 라디오 방송이 오늘날 피에르 신부가 프랑스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평을 들으며 온 프랑스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게 되는 계기였다. 그리고 피에르 신부의 라디오 방송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본격적으로 노숙자문제가 사회문제로 제기되었다. 이 일화는 <1954년 겨울>이란 제목의 영화와 샹송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프랑스에서 노숙자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뒤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피에르 신부는 노숙자들을 돌보고 있다. 1912년 리옹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열아홉살에 신학교에 들어간 피에르 신부는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나치의 박해를 받는 유대인들을 도피시키는 지하조직원으로 활약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49년 그는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빈자의 벗’으로 나선다. 엠마우스는 현재 세계 44개국 300여 지부가 설립됐을 만큼 널리 퍼졌다. 그는 특히 불합리에 맞서는 방법으로 직접적인 행동과 매서운 질타를 퍼붓기로 유명하다. 지난 94년에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무주택자 126명과 함께 파리시내의 5층짜리 빈 건물을 무단점거했다. 그리고는 “집없는 사람이 80만명에 이르는 반면 빈 가옥은 200만채나 되는 모순이 어디 있느냐”고 일갈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벌어진 이 사건은 당시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이 즉각 무주택자 대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대선에 나선 자크 시락 파리 시장이 파리시내의 빈 건물을 강제 징발해 무주택자들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자 피에르 신부는 따끔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왜 진작에 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는가”라고.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2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에 대해 중과세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세입자들이 월세를 내지 못하더라도 강제로 퇴거시키지 못한다는 법이 통과됐다. 이런 실천적 행동으로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프랑스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일요판 신문인 <주르날 디망시>가 88년부터 해마다 발표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 50명’이란 설문조사에서 그가 2위로 밀려난 것 자체가 화제였을 정도였다. 예술가와 사상가, 철학자를 숭상해온 프랑스에서 올해에는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마치 미국처럼 대중스타가 국민영웅으로 부상한 것에 대해 프랑스 내부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아베 피에르’는 여전히 2위에 오른 점으로 볼 때 프랑스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