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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03월17일(화) 04시53분39초 ROK
제 목(Title): [도니에게] 천주교의 세속화



> 천주교는 오늘날 세속화된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는
> 세속화된 천주교에 대한 개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요? 
> 교황과 바티칸이란 제도자체가 이미 세속화가 된 기독교의 모습을 상징하는
>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개신교가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 아닙니다. 개신교 역시 카톨릭과 별반 다르지않은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할 처지에 이른 것을 보면, 종교와 세속화는
> 떼어버릴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봅니다.

천주교의 세속화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맨 처음에는 탈속화의 과정이 딱 한 번

있긴 했다. 바울이라는 멋장이는 예수보다 더 탈속적인 취향의 소유자였으니까.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에 이르러 눈에 띄는 첫번째 세속화가 시작된다. 그에게 야훼는

든든한 스폰서였을 뿐이며 기독교는 제국 통치의 수단일 뿐이었다. 콘스탄티누스를

기점으로 박해받는 자의 입장을 벗어난 기독교는 즉시 세속에 적응한다. 제국의

통치에 적합한 '권력자에게 복종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웬만하면

이혼하지 말라'는 덕목은 글자 그대로 실행되었으나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식의, 실천하기 싫은 '말씀'은 그 이면에 숨은 '상징적 의미'를

보아야 한다는 학자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신학은 유력한 밥벌이가

되었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오늘날까지 그러하듯 지키기 편한 것만 지킨다.

(돼지고기는 맛있게들 드시고 계시는지요?)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공의회에서 결의된 '삼위일체'의 교리를 신봉하는 이들은

(그게 이단을 구분하는 훌륭한 기준이라면서요?) 니케아 공의회 직전에

콘스탄티누스가 아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유세비우스의 'Vita Constantini', II.

64-72)를 읽어보아야 한다. 이 편지에서 그는 성부와 성자의 일체 문제를 '참으로

하찮은', '유익하지 못한 문제들', '아주 사소하고 전혀 본질적이지 않은 점들',

'사소하고 어리석은 언어적 차이', '참으로 헛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삼위일체

논쟁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가 회피되고 말았다. 제국의 화합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논쟁으로부터 일방적인 '삼위일체 선언'

이상의 결론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던 거다. 이처럼 쓸데없는 논쟁

따위는 적당히 얼버무릴 줄 알았던 콘스탄티누스의 지혜에 비하면 그놈의 삼위일체

(회피된 문제이니 당연히 오늘날 아무도 자신있게 설명하지 못하는)가 오히려 이단

색출과 단죄를 위한 꼬투리로 이용되는 오늘날의 현상은 차라리 희극에 가깝다.

(희극 속의 비극, 시몬드에게 씹히는 탁명환씨의 모습이란...)

 
교황들이 천주교를 어떻게 세속화시켰는지는 굳이 거론하지 말기로 하자. 전두환

노태우도 사면되는 세상 아닌가. 그렇지만 종교개혁이 천주교의 세속화 때문에

일어났다니 천만의 말씀이다. 천주교가 좀더 매끄럽게 세속에 영합했으면 종교개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종교개혁의 전면에서 떠들고 있는 삐에로들(피에

굶주린 루터, 칼빈, 쯔빙글리...)은 주인공이 아니다. 종교개혁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정경유착의 파트너가 바뀐 것에 해당하는 사건일 뿐이다. 천주교는 세속과

시류를 좀더 잘 읽었던, 좀더 교활하고 잔혹한 이들에게 패했다. 교황청은 세금 잘

바치던 젖소(독일)를 잃었고 그대신 수구 세력들의 동정표를 얻었다.


> 그리고 성바돌로뮤의 학살에 관해서 제 생각은 그것은 종교라는 허울을 
> 걸었을 따름이지 역사속에 존재했던 수많았던 학살사건과 그다지 다를
> 바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게 가장 카톨릭다운 엄격함에
> 근거한 사건이란 것은 너무 순수한 생각이 아닌가 싶군요.

성 바돌로뮤의 학살 당시 이미 천주교는 세속화되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당시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세속화 되어 있었는데 학살 당시의 카톨릭다운 엄격함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린가? 스테어가 연대표를 잘못 읽은 거 아닌가? 타락은 단계적이다.

세속화될 대로 세속화된 천주교지만 '원리'를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순수함은

아직도 지키고 있었던 것이 성 바돌로뮤 대학살 당시의 천주교다. 그런 찬란한

승리의 기록은 (몇명이나 죽었더라?)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살은

아직도 순수하던 천주교의 마지막 영광이다. 도니의 말대로 그것은 역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학살사건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다르다면 그편이 더

이상하다. 단지 30년 전쟁 이후 종교는 너무나 세속화되어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죽고 죽이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기독교가 자본을

추종했기에 이제 사람들은 자본을 위해 죽고 죽인다.


> 이런 말을 하면 무슨 무식한 소리를 하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 카톨릭이 개신교측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신앙에의
> 열정이 부족한 탓이라고 봅니다. 종교적 엄격함에 있어서, 오히려 카톨릭이
> 개신교보다 더 엄격하기도 하지만(물론 스테어의 글에서 말하는 엄격함은
> 이와는 틀린 것을 압니다.) 바이블을 중심으로 자신의 신앙을 키워나가는 데
> 있어서 카톨릭에선 개신교적인 열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카톨릭이 비기독교인의 배척을 덜 받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카톨릭은

열정(광기라고도 할 수 있는)의 부족으로 인해 비기독교인에게는 개신교에 비해

덜 위험하게 비친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오랜 세월을 통해 세속에 적응해 온

결과다. 그러니 카톨릭에게 개신교적인 열정을 가지라는 것은 생존의 원리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시끄럽게 떠드는 개신교의 시몬드보다는 음험한 박홍이

수백 배 역겨운 인간이며 위험한 놈이다. ('시몬드는 개신교인이 아닙니다'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쳐도 제 3자는 그를 개신교인으로 본다.) 박홍이 '개신교적인

열정을 키워' 시몬드화되는 것을 천주교인들이 반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 같은 형제끼리 싸우지않았으면 합니다.

닮았기 때문에 더 피터지게 싸운다. 사탕 장수와 소금 장수가 왜 싸우겠나? 사탕

장수와 싸우는 건 엿장수다. 양복장이가 구두장이와 왜 싸우겠나? 양복장이는 다른

양복장이와 싸운다. 이것은 '싸우지 맙시다'라는 구호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해소될 일이었으면 벌써 해결되었을 거다. 신구교 갈등은 기독교가

사라지는 날까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도니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이 나의 안타까움이다. 


"도니야, 네가 원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이냐?"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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