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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Sman (공사중)
날 짜 (Date): 1998년02월23일(월) 07시30분34초 ROK
제 목(Title): 2/22 말씀의 이삭


2월22일 서울 주보에 실린 내용입니다.
서울 분들은 다 보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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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말씀의 이삭





                        
                           자화상
                  박완서 정혜엘리사벳/작가
  

  주님,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말라니요. 누굴 바보로 아십니
까.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 중에도  맹수의 서식지나 다름없는 이 
무서운 경제사회에서 좌충우돌  도처에 원수도 만들면서  요령껏 
살아남은 약아빠지고도 질긴 인간이올시다.  이렇게 살아남는 동
안 가장 큰 힘이 된  게 있다면 원수진 이들을  미워하고 언젠가 
복수해줘야지 하는 앙칼진 앙심이었습니다.  그런 복수심없이 어
떻게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이만큼 살림을 일굴  수가 있었겠습니
까. 

  아무리 주님 말씀이라  해도 그것만은 따를 수가 없어서  저는 
주님 곁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멀어질수록 불안해집니다. 추운  날씨도  아닌데 떨리
기까지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든든한 빽을 잃은  것
처럼, 양지에서 음지로 쫓겨난 것처럼 초라하고 온몸이 시립니다. 

  주님이 뭐관대 저는  얼마 못가서 다시  주님을 돌아다봅니다. 
아직도 주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
복해주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까지 내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까
지 내주라고요? 아이고,  주님. 점점 더하시는군요.  아무리 주님 
말씀이라도 그리는 못하겠습니다. 누구  거지되는 꼴 보시겠습니
까?  한때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
니까?

  저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주님을  떠나기로 합니다. 
다시는 안 돌아올 작정으로 말입니다.  주님 빽 없이도 초라하거
나 춥지  않으려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말입니다. 아주 아주 멀
리 도망칠  작정으로 걸음을 빨리 합니다. 문득 무서워집니다. 길
을 잃을까봐서입니다. 제가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건  앞으로 갈 
길이 아니라 주님에게로 돌아갈 귀로(歸路)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문득 듭니다.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다는  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립니다. 
제 진짜 마음은 돌아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는 내가 돌아가고 싶어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기다
리니까 할 수  없이돌아가주는 거라고 생각하려  듭니다. 주님이   
불쌍해집니다. 혼자서 외롭고 슬픈  얼굴로  저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요. 그래,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주님이 가엾어서 돌아가
주는 거야. 그리고 돌아섭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줄 알았는데 주
님은 바로 제 뒤에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슬프고 외로운 표정
만은 제가 상상한 대로입니다. 주님이   다시 입을 여십니다. 또 
그 지겨운 설교를 계속하실 모양입니다.  다시 주님을 배반할 채
비를 해야겠습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그 말씀에 저
는 도망치기를 단념합니다. 아이고 주님, 저는 별수  없이 주님의 
발 아래 몸을 던집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원수를  만들었
습니다. 하다못해  자식까지 저는  원수였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원수질 짓만 하면서도 저는 원수로부터 용서받기를,  사랑받기를 
갈구해 마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것을  반대로 할 수만 있다면 
주여, 제 영혼이 당장 나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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