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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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iLeen (-: rest :-�)
날 짜 (Date): 1996년07월18일(목) 04시58분56초 KDT
제 목(Title): 여행    




여행-


이 단어가 얼만큼의 신선함을 읽는 이들에게 줄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그 단어에 기대할 신선함을 선물할 의도는 전혀 없는데.

다만 이번 내 '여행'에 대해, 나중에 내가 들춰봐도 기억이 나게끔

혼자만의 언어로 쓰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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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이 남부지방으로 북상한다는 일기예보를 마감뉴스에서 얼핏 들었다.

   -- 다음주로 미룰까. 

매번 무슨 일이든 미루기만 하고 제대로 해놓지도 못하지 않았냐는

자책감이 들어 이번은 고집을 꺾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대신 우산을 챙긴다. 

   -- 내가 우산을 챙기면 오던 비도 그쳤으니까.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나보고 '신의 딸'이라고 놀렸다.

학생회관에서 천오백원짜리 우산을 사서 문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오던 비는 뚝 그치고 해가 쨍쨍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요즘 읽던 책을 챙길까 하다가 다시 책상위에 살그머니 얹었다.

    -- 여행은 여행다워야 할거야.

단지, 혹시 모를 언짢은 소음에 대비해 전람회 2집을 삼킨 워크맨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려가는 버스안에서는 아무생각없이 잠을 청했다.

휴게소 나오는 순서를 외우고 싶지도 않았고, 

나중에 혹 혼자 차를 몰고 여행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주의깊게 보던 

고속도로 진입로까지의 길도 열심히 보려 들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두근거리며 떨리는 건 흔치 않다.

더우기 나이가 조금 먹은 뒤. 요즘 같은 건조한 삶에 익숙해진 나에겐.

- 차가 출고된 때의 디폴트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좋다는 사람이었다.

  그 흔한 챙도 안달고, 트렁크 위쪽에 날개도 안달고, 핸들에조차도 커버가 

  없었다. 물론 시트도 출고된 때의 그대로. 그의 담백한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미리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혹시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까 싶어서

  내게 '여자친구 생일선물에 뭐가 좋을까' 묻는 그를 보면서, 

  그의 여자친구는 부러운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새롭고 낯선 곳으로 나를 자유로이 옮기는 댓가로 몇천원을 지불하고서 

차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했다. 

풍경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 내 자신의 소중함을 느낀다. 

  통통한 편인 내 팔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굽낮은 샌들에 싸여진 발을 보며

  실재하는 내 영혼을 느낀다. 

  어떻게 해야할 지 결론지을 수 없는 일들이 전혀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명랑해지기는 쉽다. 표면만 훑는 것이다. 대략적인 개요만을 생각한다.



이곳은 지난 번 왔을 때보다는 훨씬 푸근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튀어나온 골격을 본다. 그녀들은 알 수 없는 열에 들떠 보인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보이는 듯한 나를 유심히 여기저기 뜯어보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내가 '이방인'이란 걸 일깨우는 사람들의 시선.

잘 모르겠다. 나의 어떤 면이 눈에 띄었을까.



마음을 먹고 들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곳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발길이 끌리고 마음이 끌렸다.

가이드해주신 분도 처음. 나와 비슷한 생각이셨을까.

감동을 가지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고, 위축되고 싶지도 않았다.

감정을 내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느끼고 싶었다.

꼼꼼히 묘소 하나하나를 챙겨 보던 끝에, 이한열-- 그의 이름을 보았다.

목이 메어왔다. 나와 그는 아무 인연도 없던 사람인데.

난 선글래스를 내려 쓰고 말았다.



그 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름답고도 시원한 나무들 사이로 굽이굽이 나 있었다.

땅과 나무. 하늘과 공기. 시원한 기운으로 충천한 그곳에서 먹은

꽁보리밥은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경험과 기억으로 다시 더듬은 그곳은. 전과 달랐다.

날씨는 더없이 아름다웠으며, 뭉게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 작은 갈등은 그때부터 일기 시작했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귀로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터미널 옆의 수퍼에서 씨네21을 한권 집어들었다.

올라오는 차속에서는 내내 그것만 읽었다. 몰두하진 않았다. 그저 읽었을 뿐.

커튼으로 가리던 따가운 햇살이 은은한 붉은 저녁 노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어느순간엔가 알아챘다. 커튼을 걷고 하늘을 보았다. 

   -- 저건 마네의 하늘이야. 

흰색 물감을 붓에 거칠게 묻혀 쓱쓱 몇번 그린것 같은 구름, 

하늘에 펼쳐진 풍경은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빛깔의 물감들로 가득차 있었다.

의자 앞 망 안에 넣어두었던 워크맨을 켰다.

무슨 노래를 들으면서인가 눈이 시큼해졌다. 아-- 맞다. '이방인'이었다.

꼴에 잠깐 이방인이었다고 '이방인'을 들으면서 눈물 몇방울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여전히 워크맨을 들으며

전이라면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를 일이 생겼다는 걸 문득 알게 되었다.

씨네21을 차 안에 그대로 두고 내렸지 않은가.

   -- 아무려면 어때.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겠지.



어지러진 내 방은 여전했고, 폴 녀석도 여전했다.

그러나 그것 혹은 그들의 '나'는 왠지 조금 변한 것 같았다.









                                                 - 아일린 








   ... ..,   ...., ...., ..,  ..  *   사람이새벽다섯시에일어나밤열시에 
    :   :     :..,  :..,  :.  :     잔다면지금내삶은이른열한시십오분쯤
    :   :     :     :     : : :     --- 난저녁때고운노을을만들수있을까
   .:. .:..; .:..; .:..; .:  ::      E-mail_ ileen@chol.dacom.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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