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nford ] in KIDS 글 쓴 이(By): doolee (텅빈마음.) 날 짜 (Date): 1997년10월19일(일) 10시01분42초 ROK 제 목(Title): 구보씨 1-2.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쯤 기내에서 작성한 입국신고서 어딘가에 그 런 말이 써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은 전혀 구보씨를 환영하지 않았다. 환영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문전박대를 했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입국신고서와 세관통과서류 때문에 일어났다. 구보씨 는 가족들에게 가져다주기로되어 있는 한국의 신토불이 음식들이 무사히 세관을 통과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여행목적을 관광으로 쓰고 방문가족 주소도 쓰지 않고 세관신고물품목록도 작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칙대로 하면 빼앗길 수도 있는 음식 물이었으므로. 남들은 그러고도 언제나 별문제 없이 다 통과가 된다던데 구보씨 에게는 말썽이 일어나고말았다. 입국심사를 하던 중남미 계의 여 자가 그날 무슨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있었는지 구보씨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무 것도 아닌 거짓말이었는데 꼬치꼬치 따지고 들어오니 점점 복잡한 거짓말이 되어 가는데, 문제는 구 보씨의 영어가 그리 유창하고 능란하지못하다는 데 있었다. 구보 씨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뭔가 어정쩡하게 둘러대는 듯한 미숙한 거짓말쟁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구보씨는 이민국 사무실까지 끌려 들어갔고, 그제서야 이 실직고를 했던 것이다. 사실은 가족들을 만나러 왔다고. 하지만 가방 속에 신토불이 음식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끝끝내 불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진짜 임무였으므로. 그 음식물 을 빼앗기고 말면 이번여행은 공허해지고 말테니까. 비싼 비행기 값 날리는 거니까. 한 번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구보씨의 말을 그들은 믿어주지를 않는다. 더 교묘한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아니 정말이지 진실을 말하려고 해도 구보씨는 그 말들이 전혀 영어로 떠오르지않는 것 이었다. 한국말로 할 수 있다면 그들을 진실로든 거짓으로든 얼 마든지 납득시켜줄 수있었을 텐데. 그들은 고집스럽게 구보씨의 행선지를 그러니까 가족들의 주소를 적기 전에는 내보내줄 수가없다고 했고, 구보씨는 주소는 기억하 지 못하고 전화번호만 안다고 했고, 그들은 가족의 주소도 모르 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그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주소를 적어놓고 나가라고 윽박을 질렀고, 구보씨는 가족들이 바로 앞 공항출국장 에 마중 나와 있을 텐데 전화를 건들 받을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하소연했고, 그들은 절대 구보씨를 믿지 않는 표정이었고, 구보씨 가한국사람들은 주소를 외우는 습관이 잘 되어 있지 않고 전화번 호를 알면 어디든 찾아간다고하자, 그들은 쓸데없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 저쪽에 가서 앉아있으라며 이젠 빽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서러울 수가! 빌어먹을, 입국을 환영한다더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구보씨는 미국이 자기에 대해 전혀 호의가 없다는 걸 확실히 깨 달았다. 신대륙이 어떻고 미국이 어떻고 캘리포니아가 어떻고 샌 프란시스코가 어떻고 하는 소리는 다 개소리였던것이다. 개자식들, 그래서 내가 80년대에 반미운동했던 거다. 더러워서. 당장 돌아가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전해줄 신토불이 음식물 때문 에 참는다, 참아. 꽃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공항 이민국 사무실의 딱딱한 대기의자 에 앉아 구보씨는 새삼 미국과자기의 관계에 대해 별의 별 생각 을 다했고, 그러다 보니 비자를 받기 위해 미대사관에 줄서서 받 은 수모부터가 이미 심상치 않은 전조였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었다. 구보씨가 타고 간 한국항공사 여승무원이 찾아와 도와주지 않았 더라면, 구보씨는 바로 바깥 공항출국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 들을 만나지도 못한 채 태평양을 건너온 신토불이 음식을 전해주 지도 못한 채 그야말로 그 음식물들을 신토불이시키러 한국으로 곧바로 돌려보내질 뻔했다. 구보씨는 새삼 동포의 소중함을 깨달 았다. 아! 역시 한 핏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멀 고 민족주의는 가까운 거구나. 빌어먹을. 구보씨는 평소에는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동족들이 그리워지는 것 이었다. 미국은 절대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