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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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ford ] in KIDS
글 쓴 이(By): doolee (텅빈마음.)
날 짜 (Date): 1997년10월19일(일) 09시58분41초 ROK
제 목(Title): 구보씨 San Francisco 가다. 1-1



Ref. http://www.sponge.co.kr/



샌프란시스코에 간 까닭은?


작년 장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애인]이라는 연속극에서 아내가 
있는 남자와 불륜의 사랑에 빠진 남편이 있는 여자 황신혜가 툭
하면 떠나가겠다고 하던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였다.
그래서인지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의 웬만한 여자들이면 누구나 가
고픈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 바람에 그 연속극에 쓰였던 샌프란
시스코에 갈 땐 꽃을 꽂고 가라는 오래된 팝송이 날개 돋친듯 팔
리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연속극이 가지는 위력
은 참 대단하다.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재작년이던가, 왕가위의 [중경삼림]이라는 영화가 나뭇잎들은 다 
갈색으로 물들고 하늘은 회색빛이었네, 하는 [캘리포니아 드리밍]
이라는 고색이 창연한 노래로 역시 장안이 떠들썩하도록 만들었
던 것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바람에 이제
는 [그랜드 마마스 앤 그랜드 파파스]가 되어버린 [마마스 앤 파
파스]의 그야말로 역사적인 내한공연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스낵바의 종업원인 왕정문이 도마도케찹을 뿌리며 
혹은 양조위의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며 혹은 기타 등등하
며 언제나 그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고 몸을 귀엽게 까부
는 모습이 서울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왕정문이 왜 캘리포니아를 꿈꾸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사실 
잘 알 필요도 없지만) 그 노래를따라 부르며 영문도 모르고 (몰
라도 사실은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캘리포니아를 꿈꾸었
던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젊은이라면 다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싶다는 희망에 사로잡혔다. 왕정문이 스튜어디스로 합승한 비행
기를 타고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캘리포니아는, 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는 한국
의 젊은이들과 아직 자신이젊다고 생각하는 중년여성들까지 모두
가 꿈꾸는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답답한 현실의 구속을 벗어
버리고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은 곳.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꿈꾸는 해방구가 바로 캘리포니아, 그 중에서도 샌프
란시스코가 된 것이다. 왜 하필 캘리포니아고 샌프란시스코일까. 
왜 하필 그곳으로 가면 홍콩반환의 불안감도 남편과 자식에 대한 
도덕적부담감도 다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든 사
회적 역사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글쎄, 그건 아마 캘리포니아가 거대한 평화의 바다(太平洋) 너머
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 대양을 건너면 이곳의 모든 근심걱정이 저절로 그 바다 속으
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그리고 캘리포니아는 신
대륙 아메리카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짧은 그러니까 가장 젊은 
기운을 가진 곳이니까. 비트제너레이션의 새로운 문학, 전쟁과 문
명을 거부하는 히피운동, 산업사회의 경직성을 비판하는 뉴레프
트 학생운동의 본거지로서 그야말로 꽃의 아이들 시절을 풍미했
던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 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였으니까. 한
때 케네디대통령과 킹목사와 말콤엑스와 로버트 케네디가 줄줄이 
암살 당하면서 모든 진보적인 운동이 퇴조하고 보수반동세력들에 
의해 세상이 어둡고 차갑고 딱딱한 감옥 같은 곳이 되어버렸지만
60년대 히피의 후손들은 90년대에 와서 다시 꽃을 피워내고 있는 
건지도 몰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대륙에 그들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내
는 일이 바로 이 캘리포니아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
로 이뤄지고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닐 거야.
구보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리고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는 피
터와 폴과 메리라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만들어내는 
[꽃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나]라는 노래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화음을 들으며 샌프란시스코행 여객기에 올라타 있는 것이었다. 
물론 왕정문같은 스튜어디스는 없었지만.
그런데 구보씨는 정말 그러그러한 이유로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애인]이란연속극과 [중경삼림]이란 영화가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황신혜와 왕정문이라는 여배우들이 또 그리고 거
기서 들었던 노래들이 구보씨로 하여금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했단말인가? 그리하여 구보씨는 캘리포니아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인 운동의 역사
를 샅샅이 구석구석 남김없이 훑어볼 작정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
가? 또 그리하여 그 꽃의 힘이 황신혜의 불륜에 왕정문의 느닷
없는 증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따져보기라도 하겠다는 건
가? 
물론, 아니다. 구보씨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그런 
사람이란 이를테면 용의주도한 사람을 말한다. 철저히 계획하고 
계산된 대로 실행하는 사람. 구보씨는 단지 그냥어쩌다보니 샌프
란시스코에 가게 된 것이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렇
게 그리로가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러고 나
니 이번 여행에는 그런그런 자취들을찾아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
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을지도모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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