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oGang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5월18일(수) 15시40분22초 KDT 제 목(Title): 부끄러운 아이디... 아시다시피 제 아이디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저는 이 아이디가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바꾸지 않는 이유는... 늘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리고 철없던 시절 저는 staire가 되었습니다. 그 땐 왜 그랬는지 누구나 쉽게 짐작하시겠지요. 멋있는 녀석이었고, 왠지 달콤한 느낌을 주는 서양식 이름이기 때문에... 저는 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는 것에는 저항감을 느낍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소위 고급 문화와 저급한 문화가 뒤섞이고, 재평가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왔다는 것은 변증법의 신봉자가 아니라도 동의하시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핵심' 문화와 '변두리' 문화는 있습니다. 비록 필요에 따라 달리 정의될 여지가 있지만요... 일본의 만화 비디오, 일본의 상업 방송, 일본의 외설 문화... 이런 것은 말하자면 변두리 문화, 껍데기 문화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알고,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배우고 분석해야 하는 문화는 일본의 핵심 문화, 일본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을 흐르는 알맹이 문화이지 만화 비디오같은 변죽 문화가 아닙니다. 솔직해집시다. 국제화에 발맞추기 위해서, 일본을 알기 위해서라구요? 정말 그런 깊은 의미를 품고 만화 비디오를 보십니까? 십중 팔구 아닐 것입니다.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멋있고, 우리 만화에서 보기 어려운 것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보는 거지요. 정말 일본을 알고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지루하더라도 일본의 정치 프로그램이나 일본 기업가의 책, 일본 풍속지를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정광현님의 말씀대로 일본 도깨비는 우리 문화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무조건 몰아내야 한다는 발상이 과연 시대착오적인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태도에 비하면 훨씬 건강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도깨비의 추방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은 바로 대학생들입니다. 다소 오만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지성인의 대열에 올라 있습니다. 예비 지성인이 아니라 당당한 이땅의 인텔리겐차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장래와 생존과 번영을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당당히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입니다. 이국의 껍데기 문화에 희희낙락하기보다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일본 만화를 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일본 만화에 탐닉하여 중요한 것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남의 보드에서 너무 말이 많았군요. 그럼 staire는 물러나서 좀더 반성하기로 하겠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