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oGang ] in KIDS 글 쓴 이(By): giDArim (_기_다_림_) 날 짜 (Date): 2001년 9월 22일 토요일 오후 06시 59분 57초 제 목(Title): 베를린 이야기 4 이번엔 제가 있는 연구소와 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일단 건물부터 살펴보면, 전체 5층 짜리 건물로 1층은 연구소 살림 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2층은 감염을 세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사람들과 자가면역질환 연구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3층은 헬리코백터 라는 위염의 원인으로 알려진 세균을 주로 분자생물학과 생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하는 집단이 사용하고 있고, 4층은 제가 있는 층으로 결핵균, 리스테리아, 살모넬라, 뉴모니아 등의 세포내 세균들에 대한 연구를 면역학 적인 관점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층은,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이 건물은 작년에 들어선 새 건물인데 그 큰 규모에 비해, 엘리베이터 라곤 달랑 하나있고 사람들도 걸어 올라다니는 데 익숙합니다. 오피스를 봐도 창가 쪽에는 전등이 하나도 안달려있고 창 반대편 출입문 쪽에만 하나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더워도 에어콘이 없어 그냥 땀을 줄줄 흘리며 지냅니다. 단, 실험실 안은 항상 22도로 유지되더군요. 지난 8월, 이곳 베를린은 정말 더웠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한국의 찜통더위나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 였는데, 이곳 사람들 부채질 한 번 안하고 잘도 버팁니다. 베를린 전체적으로 에어콘을 보기가 무지 힘듭니다. 자동차들 도 에어콘 안 달린게 태반이고, 백화점이고 대형 할인점이건 간에 도대체 냉방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보스는 비서가 세명이나 있습니다. 게다가 비서중 하나는 러시아 에서 온 물리학 박사입니다. 또 뭐가 그리 바쁜지 일주일에 반정도만 얼굴을 보이고 그나마 자리에 있는 날도 5분짜리 면담이라도 하려면, 며칠 전에 약속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 뭣도 모르고 찾아갔다가, 절/대/ 안된다는 말을 비서한테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 아무튼 이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저같이 미천한 개도국 학생을 위해, 할 말이 있으니 오피스로 오라고 한게 바로 그저께 아침. 스테판: 너 어떻게 지내냐? 나: 길이 좀 익숙치 않은 것 말고는 지낼만 하다. 스테판: 그래? 그런데 길은 내가 따라다니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 나: (우씨, 누가 같이 다니자고 했나... ) 그래 할 말이 뭐냐? 스테판: 너 한국에선 이렇고 저런것 해봤다고 했지? 이거 한번 해봐라. 나: (대충 살펴보고) 어... 이런 주제의 일은 해본적이 없지만 한번 해보겠다. 뭐, 필요한 논문이나 몇개 추천해 주라. 스테판: (이상한 눈초리로) 너 컴퓨터 없냐? 나: 어... 있는 데, 왜? 스테판: 그럼, 가서 네가 찾아. '멛라인' 뒤지면 아마 수백개 나올꺼야. 넌 테크니션이 아니고 사이언티스트 잖아. 네가 혼자서 알아서해. 나: -_-; 뭐.. 이렇게 제 연구소 생활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포스닥 들에게 물으러가도 스테판이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면서 아무런 코멘트도 거부하니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알고보니 여기 분위기가 원래 그렇답니다. 실험자가 어느 정도 스킴을 짜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조언을 구하기전에는 아무도 간섭을 하지않습니다. 그게 그 사람을 존중하는 거라 믿는거죠. 뭐, 좋다 이겁니다. 혼자서 계획을 세우는 것까진 좋은데, 이 아저씨 오늘은 난데없이 나타나서, "나 다음주랑 다다음주에 바빠서 못오거든, 그러니까 내일까지 계획 정리해서 내 방으로 와.". 오피스는 실험실과 완전히 분리되어 사용되는 데, 보통 4명이 한 방 을 같이 씁니다. 제 오른쪽에는 서울에서 온 김나영이란 분이 앉아있고, 제 뒤엔 마커스 그리고 오른쪽 대각선 뒤쪽으론 울리케가 사용하고 있습 니다. '마커스'는 저보다 한살이 많은 독일인으로 키는 저랑 비슷하고 배가 넉넉히 나오고 몸집도 있는, 쉽게 말해, 영화에 흔히 나오는 외국의 시골 농부들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이 녀석도 대부분의 독일 젊은이들처럼 여자친구와 동거중 입니다. 내년에 졸업이라기에 학위끝나면 뭐할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실험하는 게 싫어서 더 이상 바이오쪽 일은 안하고 사람들 컴퓨터 세팅해주러 돌아다닐거랍니다. 실제 하는 일도, 주로 오피스 에서 리눅스 만지작 거리기인 걸 보면 농담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석사과정 중 보스턴에 교환 학생으로 다녀온 적이 있어, 영국식 영어가 우세한 연구 소에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 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는 말은 '와러 페인'과 '히스 위어드'. 실험하는 걸 좋아 하지는 않는다지만 외부 강사의 세미나가 있는 날이면 빠짐없이 참석하여 꼭 질문 하나씩은 던지고 가는 걸 보면 전공이 아주 싫은 건 아닌가 봅니다. 실험실에 무슨 벡터가 어디 있고 하는 걸 모두 꿰고 있어 이 친구 한테 물어보면 거의 다 구할 수 가 있습니다. 참고로, 독일은 석사가 보통 4년 입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중에 이루어지는 코스웍이 이 기간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3년간의 박사과정 중엔 수업이나 시험없이 실험만 하면 됩니다. '울리케'는 독일사람들이 보면 교포2세 입니다. 아빠가 NIH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미국에서 자랐답니다. 그래 서 영어와 독어 모두 능통합니다. 이 여자애랑 말을 하면 '프렌즈'같은 미국 시트콤을 듣는 것 같습니다. 말이 무지 빨라 따라가기가 힘들고 내용도 사이언티픽한 게 아닌, 무슨... 옷수선을 맡겯는데 꿰메주지않고 그냥 접착제로 붙여놨다느니 등등의 익숙하지 않은 영어를 계속 주절거리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수다스러움과 동시에 행동거지 또한 용감무쌍하여, 하루는 " 천, 네 여자 친구도 말랐냐? 내 일본 친구는 일본에선 마른 여자가 인기라면 맨날 약도 먹던데... 그런데 난 도무지 이해가 안가... (허리를 숙여 가슴을 살짝 드러내 보이며) 이 정도는 되야 만질 것도 있고 그렇지 않아? " -_-;;; 부러워하실지 모르겠지만 한번 당해 보시죠. 너무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자세히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솔직히 이 일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만),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왠지... 성추행 당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집 계약서 난에 써야 할 모든 문장을 독어로 바꿔 준다던지 상대가 영어를 못해서 통역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나서서 잘 도와주는 고마운 녀석 입니다. 게다가 제 후진 영어를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다 알아듣고, 버벅댈만한 어려운 문장들은 단어 몇 개만 듣고 선 자기가 먼저 말해버리고 "이 말 하려고 했지?" 하기도 합니다. -_- 커피 당번을 맡고 있어서 커피가 떨어질 때 쯤이면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사오는 데, 이때 한 번에 사오는 게 1리터짜리 우유 12개 한 상자와 원두 커피 6통, 설탕 한통. 이걸 혼자 얼굴이 벌게져서 끙끙거리며 들고 옵니다. 한번은 도와주겠다고 나섰더니, 자기가 당번 맡은 이후로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며 무지 고마워 하더군요. 그거 들고나서 다음날 팔에 근육통이 장난 아니던데, 아무튼 독일 여자들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 녀석 책상 위에는 '제2회 분자 생물학회 기념'이란 한글이 선명히 세겨진 컵이 있습니다. 아빠가 한국과 일본에 가끔식 가기 때문에 우리쪽 분위기도 잘 알고 있고 아무튼 말이 안통해 불편할만한 모든 건 이 친구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쥐를 다루는 일은 '가젠'이란 인도 포스닥이, Infection은 '헬렌'이란 영국 포스닥, FACS라는 면역학적 기술은 캐나다 출신 '한스-윌리', DNA Delivery는 독일에서만 쭉 지내온 '폴커'란 사람이 도와주고 제 생활비와 거취에 관한 모든 건 러시아 출신 '골린스키'가 처리해주기 때문에, 정말 이곳에선 다국적 영어를 접하게 됩니다. 발음도 천차만별인데다가 사용하는 문장들도 서로 다르고... 아직, 제대로 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중요한 게 아니다 싶으면 대부분 어림 짐작으로 넘기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