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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Gang ] in KIDS
글 쓴 이(By): giDArim (_기_다_림_)
날 짜 (Date): 2001년 9월 22일 토요일 오후 07시 00분 25초
제 목(Title): 베를린 이야기 5



      제가 사는 동네는 Wedding(이걸 '웨딩'이 아니라 '베딩'이라고 읽습

니다.)이란 지역으로 베를린 시청에서 지하철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 

입니다. 시청에서 가까우니까 좋은 동네구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베를린에서 가장 집 값이 싼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다보니 터키 사람들,

아프리카 사람들, 동유럽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해서

이 동네는 독일인대 외국인의 비율이 대충 7대 1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거리 곳곳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건물 외벽엔 각종 낙서들이 즐비하고, 

처음엔 정말 정이 안가는 동네입니다. 얼마전에 Charlottenberg라는 

구 서독 지역을 가본적이 있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TV에 자주 등장하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거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이런 곳도 

있었구나하고 이사를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집값이 제가 현재 있는 곳의 

두배인데다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대부분 독일의 

중장년층들 입니다. 우리 동네는 좀 지저분하긴해도 이뿐 언니들이 많이 

사는 데, 여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동네에 터키 사람들이 

많다보니 터키 상점들도 많이 있고 이곳에선 각종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정말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덤도 주고요. 여기서 덤이란 우리나라

처럼 한두개를 더 주는건 아니고 1-2그램 초과하는 정도는 그냥 무시하고 

계산하는 걸 말합니다.

      토요일이랑 일요일에 혼자서 뭐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처음엔 정말 할 게 없어서 실험실에 나갔습니다. 요즘은 어떠냐고요? 

역시 실험실에 나갑니다. -_-; 하지만 얼마전에 집에서 전차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비디오 샵을 발견하고는 가끔씩은 DVD를 빌려다가 노트북에서 

영어자막 틀어놓고 보기도 합니다. 영화들은 그 커버만 진열대에 놓여있고 

그 앞에 있는 카드를 가져가면 그 번호에 해당하는 영화를 카운터 안쪽의 

서랍에서 찾아 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미로처럼 지그재그로 전시되어 

있는 일반 영화들을 지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게슴프레 반쯤 풀린 

눈에 뭔가 갈급해 하는 듯한 묘한 표정의 언니들이 옷하나 걸치지 않은 채 

찍은 사진들로 도배된 구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곳 독일은 '노루표' 

영화들이 합법적으로 유통되나 봅니다. 처음엔 깜짝 놀라 '바로' 나와

버렸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하지만 저의 본분, 바로, 베를린

이란 어떤 곳인가 어떠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가를 

여러분께 있는 그대로 전해드리기 위해선 제대로 확인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내면 깊은 곳으로 부터 몰려오는 강한 거부감 억누르며 

전 다시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어떠냐고요? 

한마디로......

 오~


     그렇다고 제가 그냥 껍데기만 보고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쓰고

있는 이 리포트가 수박 겉핱기가 되었을 때 여러분이 느끼실 그 크나큰 

실망감은 제겐 커다란 자괴감으로 평생에 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저의 맑고 순수한 수퍼이고(superego)에서의 완강한 저항을 가까스로 

진정시켜 카드를 집어 나온 것이 제목하여 '사라의 방황'. 바짝 마른 

입술과 쿵쾅거리는 가슴을 다스리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노트북에 

넣고 돌리기 시작한지 십여분, 전 도저히 입을 다물 수 가 없었습니다. 

숨조차 멈추게 됩니다. 정말 다 보여주더군요. 하나도 빠짐없이... 

그런데,

삼십분이 지나도 그거, 한시간이 되도 그거, 한시간 반이 되어 이젠 좀 

진전이 있을까 해도 그거, 영화가 끝날 때가 다 되어서도 그거 그거 

그거...  도대체 사라가 왜 방황을 하는 건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고, 

그 방황이 왜 주위 여자들에게 계속 번져만가는가는 더욱 더 미스테리

입니다. 요즘도 그거 빌려다 보냐고요? 아니요. 대신, 최근엔 그 앞에 

서서 어떤 사람들이 빌려가나를 한 이십분 정도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자들은 그 구역으로 안들어온다는 겁니다. 이걸 

보고선 또 무슨, " 그것 봐! 남자들은 역시 동물적이야! 어쩌구 저쩌구 " 

하실 여자 분들 있을지 모르겠는 데, 여자들이 촉각에 민감한데 반해 

남자는 시각에 민감합니다. 그 곳의 비디오 대부분이 이러한 남성 고객을 

주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모두 여자이고 카메라도 그 여자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러니, 취향이 여성인 female이 아니고서야 어느 

여자가 자기 몸이랑 똑같은 걸 돈주고 보려 하겠습니까? 뭐... 그냥 제 

짧은 생각입니다. 아무튼 계속 얘기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침만 

흘리고 계실 남자분들, 너무 부러워 마십시요. 한 번 보면 질립니다. 

스토리가 없거든요. 정말 나중엔 '우씨! 제발 그만 좀 해라, 지겹다.'라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 나옵니다. 그래도 보고 싶다고요? 그럼 한번 베를린에 

놀러오세요. 제가 하루 종일 틀어드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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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

다.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가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다르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깔보고 무시하는 몇 몇 사람들, 아시아 인들은 

집을 지저분하게 쓴다며 세를 잘 안주려하는 집 주인들, 서구 외국인들에게

는 쉽게 은행 계좌를 열어주면서도, 유색 외국인들은 단순한 저축 통장도 

보증을 세울 것을 요구하는 은행들. 전 사실 연구소에서 보증을 서주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다 해결할 수 있었으나 P.I.의 추천서를 

보여주기 전,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던 난감한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저 처럼 특정 재단의 보증이 없는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힘들 게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 근로자들도, 우리의 그 잘난 단일 민족 

어쩌고 하는 얼토당토한 자부심과 백인들만 보면 사족을 못 쓰면서 우리

보다 못 산다고 여겨지는 이들 앞에선 뭔가 내세우길 좋아하는 비뚤어진 

졸부 심성들 때문에, 아주 아주 힘들게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곳 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이란 상황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역사나 사회 시간에 

한 두번 씩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한국에 대해 기억하는 것

은 데모와 화염병으로 위험한 나라, 잔인하게 개를 도살하여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나라 정도 입니다. 여러분은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지 몰라도

이들의 인식엔 인도네시아나 스리랑카등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편견들을 덜어버리기위해, 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 모든 일은 깨끗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어쩌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잘 정리하여 바로 주위 동료들이나 포스닥들에게 

들고 가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습니다. 말이 딸려 좀 띨하게 보일런지는

몰라도, 어자피 뻔한 전공 내용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괜찮으면 이들로

부터 바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를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못 사는' 한국에서도 어지간한건 다 가르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이 사람들 모두, 이런 걸로 디스커션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말은 버벅거려도 

알 건 다 안다고 이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만나본 독일인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여기도 역시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끔가다 

아주 가끔씩, 좀 비뚤어진 편견을 가진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걱정은 안 합니다. 열심히 생활하다보면 이들도 알게 될거라고 믿는거죠, 뭐.

    이 곳 베를린은 지저분하고 차가와 보이던 첫 인상과는 달리 꽤 살만한

곳 입니다. 한번 쯤 들려보셔도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이 

방 두개란 사실을 잊지마시고 유럽을 여행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부담

갖지 말고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십시요. 


  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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