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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4년07월26일(화) 04시38분22초 KDT
제 목(Title): 하숙집 이야기 1 (음식)


처음으로 하숙을 시작했던 1984 년 가을에는 무척 날씨가 좋았던듯 하다. 언덕위에

자리한 하숙집 2 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부 순환 도로와 그 너머 보이는 숲이

처음 그 집에 짐을 풀고나서 본 모습이었다. 하늘도 공기도 아주 맑아서 하숙을

하게되면서 느낀 불안함도 잊을 수 있었다. 하숙집 아저씨는 전직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후 집에서 놀고 계셨고 결혼하지 않은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들은 대학원 박사

과정이었고 딸은 대학 졸업후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비록 아저씨는 무뚝뚝하고

무섭게 보였지만 아줌마는 상냥해보였고 그 집에서 있는 1 년 반동안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한가지 어려움은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주 심각

하다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상냥하고 친절한 인간적인 매력에도 불구하고 하숙집

아줌마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음식 솜씨였다. 하숙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리라. 일과후 집에 돌아와 맛있는 한끼의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마음을. 남의 집에서는 왜 그리도 배가 자주 고팠는지. 며칠은 내색을 하지 않고

맛이 있다는 둥, 잘 먹었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가며 먹었지만 한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밖에서 사먹고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술을

좋아하시는 아저씨와 한잔 하겠다며 근처에 사는 사위가 맥주와 통닭을 한마리

사가지고 찼아왔다. 마침 아저씨께서 일찍 주무시는 바람에 술 상대를 찾던 그

사위는 하숙생들이 있는 2 층으로 올라왔고, 나와 옆 방의 용식이는 오랜만의

별미에 감격을 했다. 한참 주거니 받거니하며 잔을 비우던 중 하숙집 사위가 갑자기

한숨을 길게 쉬며 이야기 한다.

"장모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지요?"

얻어 먹는 주제에 아줌마 험담에 그렇다고 할 수도 없어서 난처해진 나와 용식이는

닭고기를 입에 문채 서로 얼굴만 처다보며 눈치만 보고 있는데...

"제 마누라도 그래요.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고..."

다시 한번 한숨을 짖는 그 사람 앞에서 더 할말이 없었다. 그 이후로는 맛있게

먹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일부로 피하지는 않았다. 하긴, 일생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으니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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