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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ellen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4시03분04초 KST
제 목(Title): [퍼온 글] 9. 중환자실에서의 하룻밤.

중환자실의 하룻밤                            03/06 20:51   158 line


   중환자실에서의 밤이 깊어간다. 이젠  완전히 질려버리다시피한 배
달된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하루동안의 노곤함과 배부름이 겹쳐
진 몽롱함을 커피 한 잔으로 좀 쫓아볼까하면서 멍하니 앉아있다.다른 
두 명의 중환자실 주치의들이 퇴근해버린 지금  나는 한 명의 인턴 선
생과 함께 오늘  하루 밤동안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사수(?)해야만 한
다. 게다가 비어있는 두 자리로 밤 사이에 들어올지 모를 환자들이 과
연 어떤 엄청난  중환일지 불안에 떨고 있어야만  하는 가련한 신세이
다. 아니, 가련한 신세란 말은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내과 전공의로 
일한 것도 이제 1년 반, 중환자실에서의 생활도 2달이 거의 다 되어가
고, 그 동안 벼라별 험악한 일들을  겪어온 내가 겁낼 일이 무엇이 있
겠는가. 지난 달에는 지금껏 겪어왔던  일 중에서도 가장 황당했던 일
이 벌어졌었다.
   지난 달, 중환자실에 배치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대동맥박리증의 환
자가 한 명 들어왔다. 대동맥박리란  보통 심한 고혈압 환자에서 생기 
는데, 대동맥 내벽이 찢어지면서 내벽과 외벽이 분리되는 병으로 극심
한 통증을 동반하고 때에 따라서는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무
시무시한, 다행히도 그렇게 흔하지는  7년전에 
그 병을 겪었으나 다행히 살아남았고 이후로 지금까지 혈압 조절을 잘 
하면서 별탈없이 지내던 사람으로 이번에는  전혀 다른 문제, 즉 기침
할 때 가래에 피가 섞여나오는 증상으로 내원한 것이다. 실은 꼭 중환
자실에 올 이유도  없었지만 마침 병실이 비어있어  오게된 것이었다. 
환자는 일견 보기에도 멀쩡한 상태였다. 우선 오늘은 대동맥박리가 있
었던 부위를 다시 보기 위하여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한 후 내일 바로 
일반 병실로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환자가 방사선과로 촬영을 
위해 떠난 후, 나는 저녁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때, 나의 동료가 걸려
온 전화를 받더니 나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면서 말했다.
   "아까 네 환자, 방사선과에서 arrest와서 CPR중이래..."
   Arrest란  심장박동,  또는  호흡이  정지했다는  말이고  CPR이란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즉 심페 소생술이란 뜻이다. 결국 내 
환자가 지금 심장  박동이 정지해서 소생술을 시행  중이라는 말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인가, 밥먹고 있는데 그런 
심한 말장난 하기냐, 하는 얼굴로  나의 동료를 쳐다보며 전화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군... 다음 순간, 나는 먹던 
밥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채로 눈썹을 휘날리며 방사선과를 향해 뛰
고 있었다. 방사선과 자기공명영상실에서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
다. 수십명이 달라 붙어 느닷없이 생긴 이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수습
해 보려고 끓는 물에 넣었다가  꺼낸 고양이들처럼 날뛰고 있었다. 방
사선과에서 더 이상의 조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고 나는 환자 침
대에 올라타서 계속 심장 마사지를  계속하면서 침대를 끌고 중환자실
로 향했다. 이 진기한 광경에  복도의 모든 사람들이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카퍼레이드를  즐길 기분은 결코  아니었다. 중환자실에 
도착하여 몇 분간의 시간이 흐른  뒤, 환자의 심장은 겨우 꼼지락거리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날같은  맥박조차 만져지지 않을 정도
에 불과하였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환자 가족들의 아우성이었
지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전의 박리되어 커져있었던 부
분의 대동맥이 그  순간 파열된 것임에 거의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 순간에...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환자는 결국 숨
을 거두고 말았고 결국 멀쩡하게 걸어 들어온 사람이 병원 온지 8시간
만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의 하염없는 회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려대면서 당직실의 평화를 깨뜨린다.
   "선생님! 여기 XX병동인데요..."
   그의 말인즉, 55세 남자 환자인데  폐렴으로 입원한지 얼마 안되어 
갑자기 숨을 1분에 한 40번쯤  쉬더니만 혈압이 뚝 떨어지더라는 것이
다. 음... 패혈성 쇽에 빠진 것일까?  병동에 가서 그 환자를 보니 식
은 땀을 뻘뻘 흘리고 의식이 왔다갔다하면서 호흡수는 분당 40번은 됨
직하였다. 손발은 차고 맥은 잘  안만져질 정도였다. 이런... 나 오늘 
밤에 잠자기는 아예  글렀구만... 그 환자를 끌고  중환자실로 돌아와 
인공호흡기를 걸고 동맥관, 중심정맥도관등을 삽입한 후, 수액을 주입
하면서 동시에 승압제인 도파민을 주사하기 시작하였다. 쓰고 있던 항
생제는 더 광범위  항생제로 바꾸어 투여한다. 환자의  팔목의 동맥에 
삽입한 동맥관을 통해 계기에 측정된 혈압은 50에서 60 정도에 불과하
였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있어 사망할 것이다. 중심정맥압을 측정하고 
식염수 200-300 cc를 쏟아 붇듯이 주입하고 다시 중심정맥압을 측정하
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시소게임이 계속되었다. 도파민은 이미 최고 
용량에 가까울 정도로  올린 상태였다. 혈압이 90  가까이 올라서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시 혈압은 곤두
박질 친다. 또 수액을 환자의 정맥  안으로 퍼부어 넣는다. 거의 환자 
옆에 자리 잡고 지키다시피하여 몇시간을  버티자 어느 정도는 혈압이 
안정되고 소변도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만, 이정도
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동맥혈 가스분석상의 수치도 대사성산증이 있
기는 하지만 심한 편은 아니다. 이야...드디어 중환자실에서 오랜만에 
한 명 살려보나보다...
   그때, 빌어먹을, 응급실에서 또 전화가 온다. 이번엔 괴상 망칙한, 
생전 처음보는 부정맥이란다. 처음에는 심실성빈맥이라고 생각하고 리
도케인을 주었는데 맥박이 불규칙해졌다가  규칙적이 되었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할수없이  이 환자도 중환자실로 옮겼다. 
으... 내가 무슨 손오공인가? 털만 뽑아서 후 - 불면 몸뚱아리가 두개
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심전도를 아무리 뚫어져라 들여다보아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처음 환자의 혈압이 다시 불안해진
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핵핵거리던 나는 마침내 두번째 환자에게 부정
맥이 뭐건간에 전기쇼크를 주어 부정맥을  중단시키는 방법이 가장 확
실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근데, 그 동안에 저 환자는 어떡하지? 
음... 그래 그렇게 하자...
   글쎄 기발한  아이디어인지 최악의 아이디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무한 루프를 만들었다. (물론 플로우 차트로 그렸지
만 지면 관계상 이렇게...)

if (혈압 < 80)
  {
  식염수 200 cc 주입; 5분 대기;
  }
while (혈압 < 80)
  {
  if (중심정맥압 상승 < 2 cm H20) 식염수 200cc 더 주입;
  else if (중심정맥압 상승 > 5 cm H2O) 
    {
    저를 부르세요; exit;
    }
    else (중심정맥압 상승 >= 2 || 중심정맥압 상승 <= 5) 
      {
      5분 대기; continue;
      }
  5분 대기
  }

   Bug 없나? 이 황당한 flow chart를  본 그 환자의 담당간호사는 그 
와중에도 깔깔거리고 웃었다.
   "정말... 대단한 프로그램이네요, 선생님.  근데 제 머리가 XT급이
라 이게 제대로 돌아갈까요?"
   "이구...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즉시 저를 
부르세요."
   나는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번째 환자의  부인을 만났
다. 그리고 환자에게는  좀 부담이 되겠지만 전기쇼크를  주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임을 설명해주었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후 환자에게 바리움 5mg을  정맥 주사하였다. 
그는 잠시만에 의식을 잃었다. 나는  전극을 양손에 쥐고 팽팽한 긴장
감이 온 몸을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말했다.
   "100 주울로... Charge.... 손 떼세요..."
   그리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의 몸이 3 센티미터쯤 공중에 떴다
가 떨어졌다. 순간 심전도는 완전히  평평해졌다. 그 2-3초 동안 나의 
심장도 같이 멎어버리는  듯 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정상적인 박동이 
시작되었다. 성공이다!
   좀 험악했던 광경에 멍한 표정이  되어버린 뒤에 서있던 환자의 부
인은 내가 성공했다고 말하자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하도 그녀가 감격해서 내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첫번째 환자에게 돌아와보니 다행히도 큰 변화없는 상태였다. 휴 - 
벌써 새벽 3시다. 갑자기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당직실로 돌아와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잠이란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 것인지 알 수
도 없었다. 저쪽 구석의 침대에선 인턴 선생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
다. 
   불쌍한 인턴... 나의  인턴 시절, 그것도 가장  힘들었던 중환자실 
근무하던 때가 떠오른다. 무모하게도  중환자실 인턴을 자원하였던 나
는 당장에 완전히 망했다는 걸 깨달았었다. 30일동안 내내 당직에다가 
중환자실과 당직실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완전한 감옥 생활로 거의 
햇볕을 보지 못하고 지냈으니... 그러나  힘든 일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인턴 당직실이 따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 달동안 나만의 시
간, 나만의 공간이란 없었다. 나는  정말로 고독했었다. 항상 다른 사
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것보다 더  힘들었었다. 나의 
유일한 자유로운 공간은 화장실뿐이었다. 그리곤,  한 달이 흘러 마침
내 바깥 세상을 구경하게 되었을 때, 그 경이로움이란... 
   아마 깜박 잠에 빠져 들었었나보다. 눈을 문득 떠보니 나는 신발도 
안벗은채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들기
고 있었다.
   "선생님! Arrest예요!"
   뭐야?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잠에  푹 쩔은 듯한 머리를 휘둘렀다. 
분명 꿈은 아니다. 후다닥 뛰어나갔다.
   "어디? 어디?"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한 미소를 띈 한 아가씨, 아니 간호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해요... 심전도 전극이 떨어진 줄 모르고..."
   처음 근무하는 간호사다. 나는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늑대와 양
치기 소년이 생각나는군... 근데... 완전히 날 새버렸네... 잠은 언제 
자지? 이래 가지고 나 오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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