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ellen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4시00분38초 KST 제 목(Title): [퍼온 글] 8. 증례 보고. 증례 보고 05/04 23:50 119 line 나는 응급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방금 당직실에서 받았던 전화는 평 화스러운 한 밤의 나른한 졸음을 산산조각나서 흩어지는 유리창처럼 박 살내었다. 아니, 애당초 평화란 단어와 응급실이란 단어는 전투기와 금 붕어처럼 서로 잘 안 어울리는 법이다. DOA (death on arrival, 사망한 채 도착한 경우를 말함.)! 방금 나에게 걸려왔었던 전화는 그렇게 방금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짧게 소개하였었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경과 된 환자일까? 가망이 있는 환자일까? 당직실에서 응급실까지의 불과 이 십여미터의 복도를 뛰어가는 그 몇초 사이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 을 스쳐간다. 잠시 뒤에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들것에 실린채 바닥에 누워있는 한 젊은 남자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다. 간호사, 인 턴 선생, 119구조대원들, 보호자인듯한 젊은 여인, 팔짱끼고 멍하니 쳐 다보고 있는 옆자리의 환자 보호자들... 그리고,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 굴에 촛점을 잃은 흐린 눈을 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 는 외치듯이 서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얼마나 됐습니까?" "방금 그랬어요!" 거의 미친듯이 절규하는 젊은 여인네의 목소리다. 방금? 방금이라니? 방금이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하지만 더 물어볼 시간이 없다. "Intubation (기관 삽관: 기관에 관을 삽입하여 기도를 확보함)! 앰 부 (ambu: 손으로 쥐어짜서 인공호흡을 시키는 고무 백)! EKG (electrocardiography: 심전도)! 빨리!" 빨리...! 빨리라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하여 잔소리에 불과하다. 하지 만 간호사가 E-tube (endotracheal tube: 기도에 넣는 관)와 앰부를 건 네주기까지의 몇초를 멍하니 서서 있는다는 건 뜨거운 철판 위에 서있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 어쩔 수 없이 구강 대 구강 법으 로 몇차례 인공호흡을 한다. 경동맥의 맥박은 전혀 만져지지 않고 동공 은 완전히 열린 상태이다. 후두경으로 혀를 밀어젖히고 성대를 찾는다. 성대를 보지 않고 기관 삽관을 해버리면 자칫 식도로 관이 들어가버리기 도 한다. 일껏 관을 밀어넣고 열심히 앰부로 바람을 넣는데 폐로는 하나 도 공기가 안들어가고 배만 빵빵하게 불러오는 황당한 꼴을 당하지 않으 려면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앗! 이런... 순간 후두경의 불이 나가버리 고 아무 것도 안보인다. "빌어먹을...! 제대로 된 거 좀 줘요!" 쌍욕이 튀어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는다. 심전도가 부착된다. 맙소 사... 심전도는 일직선이다. 꼬물락거리는 미동도 없이 잔잔한 수평선같 은 모습... 바다... 갑자기 왜 바다가 보고 싶을까? 몸뚱아리를 허리에 서 둘로 가르는 듯한 저 진절머리나는 심전도 화면의 수평선말고 진짜 바다를... 아름다운 푸른 수평선을... "DC shock(심장에 대한 전기 충격)을 먼저! 200 주울(joule) charge (충전)! 손 떼요!" 전극을 양손에 들고 순간 주위를 보니 구경꾼들이 빙 둘러서있다. 내 가 무슨 묘기라도 부릴까 쳐다보고 있는건가? 젠장할... 난 차력사가 아 냐... 모두 꺼져버려다오, 제발. '퍽'하면서 환자의 몸이 튀어 오른다. 반사적으로 심전도를 돌아보지만 수평선은 끄덕도 없다. 인턴선생이 심 장 마사지를 시작한다. 다시 후두경을 들고 목을 제끼고 혀를 눌러본다. 성대가 보인다. 쉽게 기도가 확보가 된다. 앰부 백을 연결하여 짜주면서 들어가는 바람소리를 청진기로 확인한다. 또다른 인턴 선생이 다행히도 쉽게 혈관을 잡아 정맥 주사를 연결한다. "에피네프린 (epinephrine: 강심제) 0.5 mg 주세요!" 이 신비스런 영약이 이 남자의 한 물 가버린 심장을 뛰게 할 수 있을 까?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에게 소 리 지른다. 소리지를 필요는 없는데... 제발 흥분하지말자... "어쩌다가 이런 겁니까?" "..." 정말 제정신이 아닌가보다. 옆에 있던 사람이 툭치자 소스라치게 놀 라면서 대답한다. "몰라요... 저도.... 자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만..." "얼마나 됐죠?" "몰라요...! 얼마 안됐어요..." 얼마 안됐다고? 혈액 공급이 중단된 뒤 5분이 지나면 뇌는 죽기 시작 할 것이다. 30분이 넘도록 이사람의 심장박동을 돌려 놓지 못한다면 그 땐 모든게 끝이다. 이 사람은 어쩌면 병원에 오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이 경과되었을런지 모른다. 설사 살아나더라도 회복될 수 있을까? 맥이 좀 풀려버린다. "300 주울... charge! 손 떼요!" 다시 한번 남자의 몸이 화들짝 뛰어오르지만 심전도는 변함이 없다. "에피네프린 한 앰플 더! 그리고 비본(Bivon: sodium bicarbonate, 탄산나트륨, 대사성 산증을 교정하는데 사용하는 알칼리)도 한 앰플!" 힘들어서 헉헉대고 있는 인턴 선생과 교대하여 내가 심장 맛사지를 한다. 순간, 우드득 거리면서 갈비뼈 몇개가 뿌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제발... 침착하라니까... 누구는 기관 삽관하다가 이빨뿌러트려 먹었다고 소송당했다던데, 나도 이 사람 살아나면 갈비뼈 뿌러트렸다고 물어내라는 거 아닐까? 몇분 지났지? 심폐소생술 시작한지 10분쯤? 시간 이 지나면 지날수록 희망은 사라진다. "에피네프린, 아트로핀(atropine: 부교감 신경 차단제), 그리고 칼코 스(Calcose: CaCl2, 염화칼슘) 한 앰플씩! 그리고 비본 두 앰플!" 간호사의 더욱 손이 바빠진다. 환자의 가슴 위에서 상하 운동을 계속 하고 있는 동안 등줄기엔 땀이 흘러내리고 허리가 뻑적지근해온다. "360 주울... charge! 자, 손 떼요!"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줄 수 있는 최고 에너지인 것이다. 남자 의 가슴에는 전류가 통한 부분에 뻘건 화상자국이 나타나고 로스 구이를 하는 듯한 야릇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다른 인턴 선생이 심장 맛사지를 하기 위해 환자의 몸 위로 올라탄다. 시간은 이미 20분 경과. 간호사가 힐끗 나를 쳐다본다. 계속하겠느냐는 뜻이다. 나는 앰부 백을 또다른 인 턴 선생에게 잠시 맡기고 남자의 부인 (실은 부인인지 뭔지도 모른다. 물어볼 사이도 없었으니까.)에게 돌아섰다. "이제 가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심장 박동과 호흡이 완전히 멈 춘 상태이고 치료에 전혀 반응이 없군요. 이미 시간이 20분이나 경과해 서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거의 기절할 듯한 얼굴의 그녀는 가느다랗게 절규한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저에겐 그럴 힘이 없어요. 나는 싸늘한 얼굴로 돌아섰다. 지 금부터의 심폐소생술은 그녀가 포기할 때까지가 될 것이다. 의학적으로 는 이 사람은 이미 가망이 없다. 내가 사망을 선언하는 시각이 곧 그의 사망 시각이 될 것이다. 그 후로도 약 40분 간, 우리는 그 남자의 갈비를 몇개 더 뿌러트렸고 황소의 심장이라도 터지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강심제와 한 병의 염산 이라도 중화할 수 있을 정도의 알칼리를 퍼부으면서 그의 앞 가슴을 완 전한 불고기로 만들었다. 인턴 선생들은 땀에 쩔어서 헉헉대고 앰부 백 을 짜주는 손은 물집이 잡히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만 합시다."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호사가 챠트에다가 '02시 35분 Dr. 000 사망 선언함.'이라고 끄적거렸다.... 심전도는 변함없는 수평선이 댄 흐린 두 눈, 얼음장같이 식어버린 손과 발, 그리 고 부패... 그외엔 아무 것도 없다. 장엄함도, 아름다움도, 거룩한 승천 도, 내세의 삶도,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응급실로 돌아 와 챠트를 펼쳐들고 침침해진 졸린 눈을 부비면서 알이 박여 후둘거리는 손으로 펜을 집어들었다. 이름: 000 35/M Chart no. : xxxxxxx-x 199x. x. x. C.C (Chief complaint: 주소, 환자가 호소하는 주된 증상): DOA .... cause of death: unknown 챠트를 반납 칸에 던져넣었다. 이제 아무도 저 챠트를 찾는 이는 없 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