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event () 날 짜 (Date): 1995년04월23일(일) 15시03분59초 KST 제 목(Title): 똑같은 놀이터 - 소극적 자본주의 그렇습니다. 관료체제의 특성상, 형식적 유지에만 급급하고 그 형식을 감싸는 내용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겁니다. 어느 도시에 가보더라도 그리고, 어느 아파트촌을 가보더라도 똑같은 놀이터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원인을 관료체제의 특성보다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성에서 찾고 싶습니다. 만약 놀이터를 일정 주택이상의 아파트에 필수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규정이 없다면, 업자들은 한사코 놀이터를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들은 아파트를 짓는 사람이지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변명을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자본적 특성을 '소극적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소극적 자본주의'는 단순히 그 자본주의의 유지에만 급급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후진 자본주의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그 후진성으로 말미암아 '소극적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극적 자본주의'의 유지성, 자체 순환성이 계속 되는 한 우리는 똑같은 놀이터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 자본주의' - 일부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지사업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적극적 자본주의는 그 자본의 원천인 기업과 비자본적인 사회복지와의 적극적 연계를 말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 가 싹이 터나가는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는 더이상 똑같은 놀이터를 보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적극적 자본주의'란 거대자본주의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말입니다. 어린들의 모든 세상인 놀이터. 똑같은 놀이터. 그 옛날 철부지처럼 돌아 다녔던 저 논이며 밭이며 들판이며 그 이상 좋은 놀이터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정윤철 사람들은 네게 죽음보다는 삶을 강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그것은 바로 너의 죽음을 두려워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너의 삶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에 안도를 느낄 것이다. - 정윤철 - * http://integ.postech.ac.kr/~ycjeong, ycjeong@integ.postech.ac.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