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eyedee (아이디) 날 짜 (Date): 1995년02월17일(금) 20시00분43초 KST 제 목(Title): * 80년대 - 무제 2/2 하지만 이건 선배들이 Marx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답이었다(이해랄 것 도 없는 간단한 거였지만). Marx는 "자본에 체화되어있는 노동은 "dead labor"로서 잉여가치를 만들지 못하다"고 분명히하고있다. Marx는 다만 내 의문같은 난점을 피하기 위해 "생산가격이론"(이 이론도 엄청난 헛점에 모순 투성이이다)이라는 것을 이용한다. 선배들은 "생산가격이론(이것도 주요한 뼈대중의 하나이다)"뿐아니라 Marx의 기본적인 가치개념 규정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들의 대답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실망이 컸다. 얼마후 질문 당시는 나도 몰랐던 생산가격이론을 살펴보곤 실망이 더커졌다. 내가 받은 실망은 "선배들이 왜 그런 것도 모르냐"라기 보다는 "왜 알지도 못하는 것을 미리 옳은 걸로 전제하고 사고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Marx를 공부해 보니 그가 옳더라"가 아니라 공부도 하기전에 이미 마음속 에 Marx를 받아들이고 출발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농활을 통해 팀의 경직된 분위기에 회의를 픔기 시작했던 나는 이런 일로 실망하게되자 변혁운동 이념자체도 비판적으로 살펴보게되었다. 언젠가 동기들끼리 MT를 가서 난 "어떤 전제를 미리 너무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전제하에서만 이론을 강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론의 정교화를 가져올지언정 옳은 대답을 얻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말을 했다. 교조주의를 경계하자는 것이었는데 홍일점이었던 여자친구만 어느정도 동조할뿐 다른 친구들은 선뜻 동의하려 들지않았다. 점차 노동가치설에 대해서 뿐아니라 사회주의가 더나은 사회를 위한 feasible한 대안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도 생겼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정치적 다원 주의 배제로 인한 체제의 자기 비판/교정 능력의 결여, 생산 수단의 공유를 전제로 했을 때 꼭 필요한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이타적 인간성 보유가능성에 대한 불신등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팀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항상 제일 선명한 논리가 분위기를 지배한 다는 것이었다. 몸은 팀에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회의를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회의는 변혁운동 이념의 좌편향성에 관한 것일 뿐 시대상황이 모순과 불의로 가득찼다는것.. 이땅에 사는 젊은이라면 그 모순 을 극복하기 싸워야한다는 점은 의문의 의지가 없는 당위였다. 그렇게 때문에 회의가 시작된후에도 일년이 넘도록 쉽게 팀을 떠나지 못하다 결국 2학년 2학기 어느날 탈퇴 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 결정은 지금도 후회하고있다. 아니 후회라기 보다는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 보건데 당시 한국사회의 모순의 "군사독재와 천민자본주의" 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군사독재를 타도해서 의회민주주의를 정립하고 공정한 경쟁과 경제적 약자에 대해 일정한 보호를 하는 체제 정도가 운동의 목표이었여야 하지 않을까....물론 이런 목표도 아직 제대로 실현되 지 못하고 있지만... 그 모순의 극복에 구태여 Marxism이나 주체사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니 내생각엔 오히려 그게 또다른 극복대상이다. 내 견해론 80년대의 변혁운동은 이데올로기 과잉이었고 그게 6월 항쟁이후 재야나 운동권의 점진적 영향력상실, 대중성 획득 실패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회의만이 내가 팀을 그만둔 이유는 아니다. 또다른 이유는 내가 치열하게 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Marx가 옳건 그르건 그와 무관 하게 당시는 투쟁을 요하는 상황이었다. 동족의 피를 마시며 집권한 군사 독재 집단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잠시나마 영등포 경찰서 2층에 갇혀 강제징집가능성을 두려워하며 태평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자유를 부러워하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대의를 위해 헌신할 용기가 없었다.. 운동한다고 다 감옥가는 것도 아닌데 생각이 좀 틀리면 어떠랴.. 이견이 있으면 설전을 벌이면되고.. 그게 안받아들여지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적을 두고는 어떤 형태라도 싸워야했을 것이다. 팀을 그만 둔후의 내생활이 줄곧 무기력했으므로 그런 자책은 지울 수가 없다. 난 간혹 신념이 결여되고 무기력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변혁이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시작했던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난 비록 몸은 말을 안듣더라도 생각은 제대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대학 때 고민하면서 품던 (이념에 대한)생각은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을 그만둔 후의 무기력한 생활은 팀 탈퇴의 변으로 그걸 들먹이길 주저하게한다. 난 팀을 그만두기 전 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권의 "좌편향"이 강화될걸 로 예상한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내 예상의 정도를 뛰어넘어 주사에 까지 이르는걸 보니 안타까왔다. 난 주사의 출현을 보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민족과 민중의 기묘한 결합이라 생각했다. 사회주의는 후자에서 그치는 측 면이 있으니...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들을 탓할 수 있으랴. 많은 젊은이들이 운동에 투신 한 이유는 이땅의 모순과, 그들의 보다나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명감 과 애정 때문인데... 그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군사독재의 그늘아래 이웃이 고통받고 죽어가도 무기력하게 지내고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싸워야했던 것이다...그들이 있어 6월 항쟁이 가능했고 운동권이라 할 수는 없지만 광주시민들이 80년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독재자들은 87년에 탱크와 총칼을 택했을 것이다. 희생자들은 서울시민일수도 있고 부산 시민일 수도 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서 kids user가 되었을 어느 중학생일수도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