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eyedee (아이디) 날 짜 (Date): 1995년02월16일(목) 09시26분18초 KST 제 목(Title): * 80년대 - 82-3년의 시위양상 80년대 초와 중반의 시위양상은 많이 달랐다. 거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복경찰의 상주 여부도 변화의 한 요인이었다. 82-3년경엔 시위가 있건 없건 대규모 사복전경부대가 교내에 상주했기 때문에 신림동아니라 교문앞 진출도 쉽지않았다. 잘모르지만 각 팀의 고학년들이 서로 연계되서 시위계획을 작성하는 듯했 다. 5월 27일이라든가 11월 3일등 누가보더라도 시위가 일어날지 뻔한날 도 있지만 그렇지않은 경우는 팀의 선배들이 전날 쯤 미리 계획을 알려줬 다. 이런날이 오면 랜드로바 대신 운동화를 신고 어쩔 땐 책가방도 없이 등교하곤했다. 그런데 이상? 아니 당연?한건 경찰도 미리 눈치를 채고 이런날은 사복부대를 대폭 증원 시키곤했다. 평상시 교내 상주 사복부대를 보면 짧은 머리에 어린 모습이어서 전경임을 알 수 있었지만 이런 때는 20대후반이나 30대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들로 구성된 사복부대가 추가로 동원되었다. 상황이 전개되길 기다리며 학생들이 에정된 장소에 모여들면 (주로 아크로폴리스 주변),1-4명의 주동자들이 유인물을 뿌리면서 핸드마이크로 구호를 외치곤했다. 하지만 그 외침은 잠깐...짭새들이 개때 처럼 달려들어 그들을 개패듯이 패면서 닭장차에 실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다 잡혀가려고 주동학생들은 건물 옥상이나 난간 에서 유인물을 뿌리며 선언문을 낭독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 | 실족의 위험이 있으므로 많은 경우 미리 --- | 밧줄을 준비하곤 ㎎다. | 도서관 | |�� <-- 주동자 어떤 사람은 밧줄에 매달려 시위하기 맨윗층 ||| --- 도㎎다. | --- | | | | 여기서 비극이 발생한 적이 있다. 82년 11월 공대생으로 기억되는 황정하 학형이 도서관에서 밧줄을 타고 시위하다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짭새들이 무리하게 검거를 시도하지않았다면 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 이런 비극을 겪지 않더라도 아뭏든 그런식으로 "뜬" 사람들 즉 주동자들은 전부 감옥행이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 스크럼을 짜기 시작하고 다시 짭새 들이 와!하고 고함을 지르고 좇아오면 도망가고 그러다가 다시 모이고... 이때 잡히면 동조자가 되는 것이었다. 동조자로 잡혀가면 무조건 지나가다 영문도 모른채 끌려왔다고 잡아떼야 ㎎다. 이런 경우는 구류를 살거나 밤 12시가 넘어 훈방되었다. 학교에서는 경고나 근신 정학등의 징계를 내렸다. 순진하게 그저 엉겹결에 구호만 한번 따라 외쳤다고 자백하는 경우나 전력이 있거나 경찰이 찍어놓고 있던 경우엔 운이 좋으면 구류고 대부분 강제징집을 당했다. 신검도 안받고 친구나 부모 얼굴도 못보고 경찰서에서 곧장 전방부대로 꿀려갔다. 군대에 가도 녹화사업자로 분류되서 감시를 받고 보안사의 협박과 회유에 시달려야했기 때문에 호적에 빨간 줄만 안갈 뿐 감옥가는 거 보다 나을게 없었다. 실제로 전국에서 수백명이 이제도로 끌려갔는데 이중 5-6명이 군생활중 의문사를 당해 크게 문제가 되기도했다. 학생이 강집을 당하면 학교는 경찰의 통보를 받고 소위 "지도휴학"처리를 했다. 당시 고모 서울대 부총장이 이제도를 학생들을 보호하기위한 제도 라고 망언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 ..... |